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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빚을 갚는 신관3화

봄의 빚을 갚는 신관

봄의 빚을 갚는 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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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함께 갚는 봄

“미엘을 잊지 마.”

얼음 밑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라칸은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갑옷이 삐걱거리며 금을 늘렸다. 미엘은 창고 문에 귀를 대지 않았다. 얼음은 차갑고, 오래된 기억의 목소리는 늘 듣는 사람의 바람을 닮았다.

“누구 목소리예요?”

“모르겠습니다. 제 목소리였을 수도 있어요.”

“당신은 나를 전에 만났나요?”

“기억이 없습니다.”

그 답은 미엘을 안심시키지 않았다. 그녀는 장부를 들고 신전으로 돌아가려 했다. 라칸이 그녀의 소매를 잡았다.

“오늘은 가지 마십시오.”

“장부를 대조해야 해요.”

“당신 이름이 들어간 페이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더 확인해야 할 이유예요.”

그는 손을 놓았다. “그렇군요.”

미엘은 자신이 그의 걱정을 밀어내려 한 걸 알아차렸다. “무서워서 그래요. 장부에 내 이름이 있으면, 당신을 구하려고 이미 뭔가를 약속했을 수 있으니까.”

“그 약속이 당신을 해친다면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원하는지는 제가 정할게요.”

라칸은 고개를 숙였다. “네.”

신전 기록실에서 아르덴 신관장은 옛 계절 대여장을 꺼냈다. 그는 두꺼운 가죽끈을 풀며 말했다. “기억의 담보가 끝나면 채무자는 다음 봄까지 대가를 갚아야 한다. 다른 규칙은 없다.”

“그 규칙은 누가 정했습니까?” 미엘이 물었다.

“오래전 계절신전의 창립자들.”

“그때의 서약 원본을 봐도 됩니까?”

신관장은 망설였다. “원본은 봉인실에 있다. 하지만 그걸 열면 장부에 기록된 모든 채무가 다시 계산될 수 있어.”

“그럼 계산해야죠.”

“신전은 다음 겨울의 봄을 비축하고 있다. 채무를 다시 열면 공급을 보장하지 못해.”

“장부가 틀렸어도 그대로 두는 게 더 안전하다는 뜻인가요?”

신관장은 답을 피했다. “마을이 위험해질 수 있다.”

“마을은 이미 위험합니다. 씨앗 창고가 얼었고, 아이들이 몰래 들어가야 했어요.”

미엘은 봉인실 열쇠를 요구했다. 신관장은 주지 않았다. 대신 옛 장부의 목록을 내밀었다. “그 안에 네 어머니 이름이 있다.”

미엘의 손이 굳었다. 어머니의 빚은 약초와 침상 대여로 끝났다고 들었다. 신전은 그 대가를 모두 갚았다고 증명했지만, 세부 장부를 보여 주지 않았다.

“그 기록도 제게 보여 주세요.”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숫자를 감당하는 게 제 일이에요.”

그녀는 옛 장부를 펼쳤다. 어머니의 이름 옆에는 ‘봄 기억 한 조각’이라고 적혀 있었다. 미엘은 숨이 막혔다. 어머니는 기억을 대가로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신전은 그 기록을 기적의 대가로 계산했다.

“이건 거짓 기록입니다.”

아르덴은 조용히 말했다. “네 어머니가 동의한 건 맞다.”

“무엇을 위해서요?”

“네가 열병에서 살아나도록.”

미엘은 장부의 글씨를 다시 봤다. 자기 이름은 없었다.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 어머니가 기억을 내놨다는 뜻이었다. “어떤 기억을 잃었죠?”

“너를 처음 안아 올린 날.”

그녀의 눈앞이 흐려졌다. 어머니는 미엘을 알아봤지만, 첫 순간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 상실을 사랑의 증거처럼 말하지 않았다. 미엘은 종이를 덮었다.

라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손을 뻗자 그제야 손등을 받쳤다. 그의 손은 얼음 갑옷보다 따뜻했다.

“나는 당신 기억을 담보로 하지 않을 거예요.” 미엘이 말했다.

“그럼 무엇으로 봄을 갚죠?”

“사람들이 원하고 감당할 수 있는 일로요. 함께 결정해야 합니다.”

아르덴은 봉인실 열쇠를 내놓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신전이 봄의 대가를 통제하지 못한다.”

“통제해야만 기적을 줄 수 있다면, 그건 돌봄이 아니라 독점이에요.”

그녀는 기록실 문을 열고 마을 사람들을 불렀다. 소아와 세라, 토비의 어머니, 밭을 가진 농부가 먼저 도착했다. 주민들은 어제 씨앗을 나눈 일을 기억했지만, 모두 그 방식에 찬성한 건 아니었다. 농부는 자기 몫이 줄어드는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토비의 어머니는 아들이 빚진 아이로 낙인찍힐까 두려워했다.

미엘은 옛 장부를 펼쳐 어머니의 이름을 보여 줬다. “저도 기적을 받았어요. 어머니가 기억을 잃었죠. 그때 동의는 있었지만, 어떤 기억을 내놓는지 고를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은 사랑이나 희생으로만 설명할 수 없어요.”

“그럼 신전 빚을 없애자는 거요?” 농부가 물었다.

“아니요. 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을 숨기지 말자는 겁니다. 씨앗을 돌보고, 물길을 열고, 약한 집을 돕는 일이 실제 대가라면 각자가 무엇을 맡는지 정하고 기록하죠. 싫다는 사람은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부하면 봄이 늦게 오나요?” 세라가 물었다.

“그럴 수 있어요.”

“그럼 부자 집만 봄을 먼저 얻겠죠.”

“그래서 최소한의 공동 일을 정하되, 일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같은 몫을 강요하지 않을 겁니다. 신전도 봄을 빌려준 만큼 책임을 져야 하고요.”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토비의 어머니가 먼저 손을 들었다. “아이들과 물길을 청소할게요. 다만 우리가 못 한 날을 빚으로 적지 말아요.”

농부가 밭을 내놓았다. “씨앗을 심을 땅은 제공하겠소. 대신 수확의 일부는 우리 집에도 남겨 줘야 해.”

“그건 정당한 요구입니다.” 미엘이 말했다.

소아는 씨앗 창고를 관리하고, 세라는 다친 사람을 돌보는 일을 맡았다. 라칸은 얼음 갑옷을 사용해 물길을 열겠다고 했지만, 미엘은 그의 몸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확인했다. 그는 세 시간 이상 갑옷을 입지 않고, 균열이 손목까지 번지면 작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아무도 그의 희생을 무제한으로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제가 맡을 일은 뭡니까?” 미엘이 물었다.

“기록을 공개하고, 우리 말을 신전 장부에 옮겨요.” 소아가 말했다.

“그것도 제일 힘든 일이네요.”

“숫자를 쓰는 사람이니까요.”

그들은 나무판에 공동 서약을 적었다. 각자 맡은 일, 할 수 없는 조건, 중단을 요청할 권리를 함께 기록했다. 마지막 칸은 신전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아르덴은 한참 망설인 끝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신전은 씨앗 보관실과 약초를 제공하고, 다음 해 겨울의 사용 내역을 주민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서약이 완성되자 해빙선이 창고 앞에 닿았다. 얼음 문이 저절로 녹지는 않았지만, 물길을 연 사람들의 삽과 손이 얼음 아래로 들어갔다. 라칸은 갑옷을 짧게 입고 고드름을 잘랐다. 다른 이들이 돌을 옮겼고, 소아는 씨앗 자루를 옮겼다. 미엘은 그들의 이름을 적었다.

마지막 자루를 창고에서 꺼내는 순간 라칸의 갑옷이 크게 갈라졌다. 그는 주저앉았다. 미엘이 달려가 어깨를 받쳤다.

“내가 기억을 잃은 이유를 찾았어요.” 그가 낮게 말했다.

“뭔가 떠올랐습니까?”

“당신이 제게 봄을 요구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대답했죠.”

“그 약속은 제가 했나요?”

“모르겠습니다. 목소리는 당신과 닮았는데 얼굴은 보이지 않아요.”

미엘은 그의 젖은 이마에 손을 대었다. “확인할 때까지 제 기억이라고 단정하지 마세요.”

“그러겠습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바닥이 얼음 갑옷의 금에 닿았다. 둘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잠시 숨을 골랐다.

장부 마지막 칸에는 ‘함께 갚는 봄’이라는 제목이 적혔다. 누구도 개인의 빚을 대신 지지 않았고, 누구도 약속을 강요받지 않았다. 마을의 봄은 늦게 왔지만, 첫 씨앗은 흙에 들어갔다.

모두가 서명한 것은 아니었다. 마을 동쪽에 사는 목수 가족은 서약판 앞에서 끝내 물러섰다. 가장이 겨울 동안 다리를 다쳐 노동을 맡을 수 없었고,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전이 씨앗을 나눠 주더라도 다음 수확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우리 이름은 적지 마세요.” 그가 말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일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떠나겠어요.”

소아는 붙잡지 않았다. “길이 열릴 때까지 먹을 종자는 드릴게요.”

“그러면 우리도 다음 마을에서 씨앗을 나누겠습니다. 여기서 받은 걸 빚으로 남기지 말고요.”

미엘은 장부에 그 선택을 그대로 적었다. 떠나는 가족은 노동을 약속하지 않았고, 대신 도움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겠다고 했다. 라칸은 그들을 대신해 서명하지 않았다. 그는 부서진 갑옷을 벗고, 목수의 지팡이를 다듬었다. 그 손재주가 서툴렀지만 목수는 손잡이를 받아 들었다.

“내가 당신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라칸이 말했다.

목수는 잠깐 웃었다. “그럼 이름을 적어 두면 되겠군요. 기억보다 오래 남게.”

미엘은 장부 옆면에 그 가족이 떠난 날짜와 받은 씨앗 수를 썼다. 숫자는 작았지만, 그들이 봄에 들어오는 방법을 선택한 흔적이었다. 아르덴 신관장은 그 기록을 보고 계절 대여장에 주민의 거부권 항목을 추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항목을 지키지 않으면요?” 소아가 물었다.

“다음 해의 봄을 신전이 독점할 수 없게 하겠다.”

“그런 약속은 장부에 써야죠.”

신관장은 자기 이름 아래 서명했다. 미엘은 날짜와 증인을 적었다. 라칸은 그 장면을 지켜보며 손등으로 서리 문양을 문질렀다. 균열은 아물지 않았지만, 안쪽에서 새 살이 돋는 듯 붉은 기운이 비쳤다.

신전의 봉인실에서 그날 밤 종이 한 장이 저절로 떨어졌다. 미엘이 태어나기 전 날짜에 쓴 공동 서약이었다. 가장 아래에는 라칸의 이름과 함께, ‘미엘의 첫 봄을 지킨다’는 문장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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