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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을 빌려주는 전당포3화

스킬을 빌려주는 전당포

스킬을 빌려주는 전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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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계약서에 없는 대여자

수진은 계약번호를 확인한 뒤 보관함과 연결된 서류를 전부 꺼냈다. 수호의 스킬은 ‘기억 공명’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전투 능력이 아니라 물건과 장소에 남은 기억의 흔적을 감지하는 감각 스킬이었다. 수호는 실종되기 전부터 이 능력을 제어하기 어려워했고, 수진은 그를 치료받게 하려 했다.

계약 사본에는 담보 이유가 ‘능력 안정화’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안정화는 스킬을 보관하는 이유일 수 있어도, 대여 기간과 대여자의 이름을 비워 두는 근거가 되지는 않았다. 수진은 보호자 서명이 자신의 필체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서명 날짜와 시계의 수리 기록은 어긋나 있었다.

“제가 그날 여기에 있었는지부터 확인해야 해요.”

“기억이 돌아오지 않으면요?” 도겸이 물었다.

“기억을 대신 만들어 넣을 수는 없죠.”

그녀는 장부를 열어 과거 기록을 조회하지 않았다. 기억 공명 스킬을 사용하면 계약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동생의 능력이 누구에게 연결됐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활성화하면 위험했다. 먼저 종이 기록과 전산 로그로 계약의 경로를 확인하기로 했다.

도겸은 당시 계약을 중개한 회사가 길드와 함께 일했다고 말했다. 수호에게는 일주일 동안 스킬을 안전하게 보관한다고 설명했지만, 원본 계약의 반환 조항을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 중개 수수료를 받았고, 계약이 갱신될 때 별도 통지를 하지 않았다.

“그때 제대로 확인했으면 수호가 사라지지 않았을까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확인하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수진은 그의 책임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중개인의 말만으로 계약이 불법이라고 결론 내리지 않았다. 원본 계약, 갱신 서명, 보관 기록을 확인해야 했다.

혜진의 기억 이자는 별도 봉인되었다. 수진은 기억이 혜진의 것이라고 장부에 확정하지 않았다. 혜진은 공동 감정에 동의하고, 첫 던전에서 함께했던 팀원에게 입회 요청을 보냈다. 이자가 다른 사람의 기억이라면 그 사람에게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진은 세 장의 문서를 각각 다른 파일에 보관했다. 수호의 담보 계약, 혜진의 스킬 대여, 기억 이자 유예. 한 전당포에 기록되어 있어도 권리자는 서로 달랐다. 그녀는 장부에 계약번호를 연결하되, 내용을 한 문서로 합치지 않았다.

도겸은 길드 문서 보관소에 원본 열람과 자동 갱신 중지를 요청했다. 회신은 며칠 뒤에 올 예정이었다. 그동안 수진은 보관함을 열지 않고 잠금 상태를 기록했다. 혜진은 전당포에서 기다릴지 집으로 돌아갈지 직접 선택했다.

“오늘은 돌아가겠습니다. 내일 감정인이 오면 다시 올게요.”

“좋아요. 변경 사항이 있으면 먼저 연락하겠습니다.”

수진은 혜진이 남긴 연락 동의 범위만 확인했다. 동료나 가족에게 기억 이자 문제를 알리지 않도록 별도 표시했다.

이도겸은 수호의 계약서 사본을 확인했다. 문서에는 담보자 백수호의 서명과 보호자 백수진의 서명이 있었다. 그러나 대여자 이름은 비어 있었다. 대여 기간도 한 줄이 검게 지워져 있었다.

“이런 계약은 무효 아닌가요?” 혜진이 물었다.

“원본과 작성 경위를 확인하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수호가 직접 서명했어요?” 수진이 물었다.

“제가 중개했을 때는 그랬습니다.”

수진은 도겸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는 계약 당시 10년 전, 수호가 헌터 등록을 막 마친 때였다고 말했다. 길드가 먼저 접근했고, 수호는 임시 보호 계약이라고 설명을 들었다. 보호자 서명란에는 수진의 이름이 있었다.

“제가 왜 서명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보호자에게 설명했어야 합니다.”

“그랬습니다. 다만 스킬 보관 기간과 반환 조건은 계약서에 분명히 적히지 않았어요.”

도겸은 계약서의 원본이 길드 법무 창고에 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중개 수수료를 받았고, 계약 종료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숨겨 온 이유도 인정했다.

수진은 도겸에게 원본을 가져오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먼저 공식 열람 요청을 넣고, 문서 보존을 신청했다. 계약의 당사자와 권한을 확인하지 않은 채 보관함을 열면 수호의 스킬을 잃을 수도 있었다.

혜진의 기억 이자도 미결 상태였다. 장부는 ‘첫 던전 생존 기억’이라고만 표시했다. 혜진은 그 기억이 자신의 것인지 물었다. 수진은 빌린 스킬의 사용자가 혜진이 아니라면, 이자가 혜진의 기억에서 나온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억을 가져갈 수 있습니까?”

“아직은 봉인되어 있어요. 누구의 기억인지 확인될 때까지 열지 않겠습니다.”

“그럼 제 기억일 수도 있다는 거군요.”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래서 당사자 확인이 먼저예요.”

혜진은 첫 던전에서 누구와 함께 갔는지 떠올렸다. 당시 팀장은 그녀에게 방패 스킬을 처음 가르친 사람이었다. 그 팀장은 지금 길드에 없었다. 혜진은 그와 연락이 끊긴 뒤, 자신이 팀을 실패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왔다.

도겸은 장부에 기록된 네 번째 발동을 조사했다. 전당포의 장비 로그에는 상점 안에서 스킬이 사용된 시간이 찍혀 있었다. 수호의 스킬 보관함은 같은 시각에 반응했다. 그러나 계약서에 적힌 대여자 코드와 장부의 코드가 달랐다.

“누군가 보관함의 스킬을 빌려 쓰고 있어요.”

“어떻게 열었죠?”

“담보 스킬은 계약 당사자만 불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보관함의 잠금 기록이 지워져 있습니다.”

수진은 보관함을 열지 않았다. 대신 외부에서 전원을 차단하고, 접근 기록을 봉인했다. 스킬을 회수하려다 수호의 능력에 손상이 갈 수 있었다. 그녀는 전당포를 닫고 경찰과 협회에 신고했다.

도겸은 수진에게 계약 당시의 기억을 물었다. 그녀는 서명한 사실도, 수호가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서명은 자신의 필체와 비슷했지만, 손목 시계의 날짜는 계약 일자와 맞지 않았다.

“제가 그날 있었는지부터 확인해야겠어요.”

“기억을 찾으려면 장부의 기록을 열 수 있습니다.”

“기억 이자를 대가로 지불해야 하나요?”

“원 계약에 그런 조항이 있다면요.”

“그 조항을 제가 동의한 적이 있는지 모릅니다.”

도겸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중개인으로서 계약의 빈칸을 확인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수진은 그가 지금 돕는다고 과거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겸은 동의하고 원본을 찾겠다고 했다.

혜진은 자신의 기억 이자를 어떻게 할지 결정했다. 그녀는 기억을 수진에게 맡기지 않고, 봉인 상태를 유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사자가 확인될 때까지 누구도 열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도겸은 원 계약을 중개한 회사의 옛 주소를 확인했다. 회사는 폐업했지만 문서 일부를 다른 법인에 넘겼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담당자에게 연락한 시각과 답변을 적고, 이름을 확인하기 전까지 장부에 등록하지 않았다.

수진은 수호의 실종 기록을 다시 읽었다. ‘본인 의사로 길드를 떠남’이라는 문장이 있었지만 서명란은 비어 있었다. 문장을 입력한 계정 코드와 수정 시각은 적혀 있었다. 그녀는 원본 로그를 보존해 달라고 요청했다.

“수호가 스킬을 포기했다고 적힌 게 사실인지 확인해야겠어요.”

“계정이 그 문장을 입력했다는 것과 수호가 말한 사실은 다릅니다.” 도겸이 말했다.

“알아요. 작성자, 승인자, 당사자를 각각 찾아야 합니다.”

수진은 길드의 승인자 기록을 조사할 권한이 없었다. 도겸은 계약 중개 기록을, 협회 감사관은 서버 로그를 확인하기로 했다. 역할을 나눈 뒤 각자 확보한 자료의 원본을 서로에게 전달할 때에는 수신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그날 늦은 밤 전당포 장부에는 수호의 스킬 사용 기록이 한 번 더 나타났다. 수진은 페이지를 촬영하고 즉시 장부를 닫았다. 보관함을 열거나 스킬을 호출하지 않았다. 기록은 장부에 남았지만, 누가 사용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협회에 긴급 보존 요청을 보냈다. 스킬 기록이 계속 바뀌는 동안 원본 로그가 지워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수진은 전당포의 문을 잠그고 보관함 주위에 임시 감시선을 설치했다. 선은 스킬을 구속하는 장치가 아니라 접근이 있었는지 알려 주는 감지 장치였다. 보관함을 열려고 하면 기록이 남고, 수진이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경보가 울리지 않도록 설정했다.

도겸은 과거 중개 기록을 다른 사람과 함께 보관하기로 했다. 혼자 보유하면 분실이나 훼손 의심이 생길 수 있었다. 그는 사본의 생성 시각을 기록하고, 원본과 비교할 수 있도록 문서 번호를 적었다.

“계약을 없애면 수호의 스킬이 바로 돌아오나요?” 혜진이 물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손상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해요.” 수진이 말했다. “빨리 꺼내는 것보다 안전하게 돌려주는 게 우선입니다.”

혜진은 기억 이자의 독립 감정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는 더는 전당포가 자기 기억을 가져갈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대신 누가 기억의 주인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진은 보관함 점검을 매일 같은 시각에 하기로 했다. 스킬이 다시 발동하면 날짜와 횟수를 기록하고, 장부의 자동 갱신은 수동 확인 전까지 중단 요청을 유지한다. 도겸은 협회 답변이 도착하면 원본 계약 열람을 신청하겠다고 했다.

그날 밤 유리 보관함 안에서 수호의 스킬이 크게 빛났다. 전당포 장부에는 새 대여 기록이 생겼다. 대여자 이름은 공란이었고, 대여 횟수는 1회로 적혔다.

수진은 장부를 닫았다. 자동 갱신을 중단하려면 원 계약을 찾아야 했다. 그녀는 보관함을 지키며 새벽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잠금 유리의 안쪽에서 누군가 손바닥을 댔다.

수호의 손에는 전당포 열쇠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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