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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을 빌려주는 전당포1화

스킬을 빌려주는 전당포

스킬을 빌려주는 전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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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담보는 방패 하나

백수진의 전당포에는 가격표가 없었다.

손님이 값을 물으면 그녀는 먼저 물건이 누구의 것인지 확인했다. 이름이 다르면 위임장을 요구했고, 가족이라고 해도 소유권을 대신 주장할 수 없었다. 헌터의 스킬은 더 까다로웠다. 능력 등록증과 사용권을 확인하고, 담보 기간과 이자, 반환 조건을 읽어 줘야 했다.

지하상가의 셔터가 내려가기 직전, 장혜진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왼팔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등에는 금이 간 방패가 매달려 있었다.

“치유 스킬을 빌리고 싶어요.”

“무엇을 담보로 맡길 건가요?”

“방패 스킬.”

수진은 거래를 진행하기 전에 전당포 내부의 감정 단말을 혜진에게 보여 줬다. 화면에는 담보 스킬의 범위, 사용 금지 항목, 만료 시각이 한 줄씩 표시됐다. 혜진이 동의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어떤 능력도 병에 담기지 않았다. 수진은 화면을 넘기지 않고 기다렸다.

“동의하지 않으면 거래를 취소할 수 있어요.”

“취소하면 방패 스킬은 그대로 남죠?”

“네. 아무것도 담보하지 않습니다.”

혜진은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먼저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치유 스킬을 빌리면 사용 횟수가 줄어들고, 담보 중에는 자기 방패를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동료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치료를 선택했다. 혜진은 그 대답을 듣고 다시 화면을 봤다.

“그럼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수진은 동의를 확인하고 계약서 사본을 출력했다. 원본과 사본의 페이지 수를 대조한 뒤, 혜진에게 한 부를 건넸다. 계약서에는 사용 한도를 넘기기 전 대여를 중단할 수 있고, 기억 이자는 봉인 상태에서 당사자가 확인할 때까지 보관된다는 문장이 추가되어 있었다.

혜진은 스킬을 맡기는 순간 왼팔의 힘이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방패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방패를 불러낼 수 있는 감각이 잠시 닫힌 듯했다. 그녀는 손목 보호대를 풀었다가 다시 채웠다. 빈 곳을 확인하듯 팔을 천천히 움직였다.

수진은 혜진에게 현재 상태를 기록해 달라고 했다. 어떤 감각이 바뀌었는지, 통증이 있는지, 다른 능력에 영향이 있는지 적었다. 혜진은 “왼쪽 팔이 평소보다 차갑고, 힘을 주면 손끝이 저리다”고 썼다. 증상이 생기면 즉시 연락하라는 안내도 함께 받았다.

전당포는 담보물의 상태만 보관하는 곳이 아니었다. 능력을 맡긴 사람이 무엇을 잃는지 기록해야 했다. 수진은 혜진의 감각과 다음날 상태를 비교할 수 있도록 점검 시각을 세 번 예약했다.

수진은 능력 등록증을 확인했다. 혜진은 C급 헌터였다. 방패 스킬은 희귀하지 않았지만, 유지 시간이 길고 순간 충격을 분산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혜진은 부상당한 동료를 위해 치유 스킬을 빌리려 했다.

“담보하는 동안 본인은 방패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알아요.”

“대여자는 3회 발동까지 사용할 수 있어요. 기간은 오늘 밤부터 내일 정오까지. 초과 사용 시 기억 이자가 발생합니다.”

“기억 이자가 뭔지는 알아요.”

“어떤 기억이 담보될지는 정할 수 없습니다. 계약 전에 다시 설명합니다.”

혜진은 등록증을 내려다봤다. 그녀는 과거 팀원 하나가 기억 이자를 치르고도 스킬을 되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거래는 불법 대부업자와 맺은 것이었다. 전당포의 기록은 달랐지만, 능력을 맡기는 행위 자체가 두려웠다.

“기억이 담보되면 누가 가져가죠?”

“장부에 묶입니다. 제가 볼 수는 있지만, 마음대로 꺼내거나 팔 수는 없어요.”

수진은 계약서를 테이블 가운데 놓았다. 혜진이 직접 읽도록 기다렸다. 담보 스킬은 방패 생성, 대여 스킬은 저급 치유. 사용 한도 3회, 만료 시 자동 반환. 이자는 원금 스킬을 담보로 제공하는 대신 별도 금액으로 지불하기로 했다. 기억은 초과 시에만 담보되며, 발생 즉시 계약을 중단할 수 있었다.

“제 동료가 한 명 더 있어요. 그 사람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나요?”

“치유 스킬은 본인에게만 쓸 수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쓰려면 별도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혜진은 잠시 망설였다. 동료는 던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부상은 심각하지 않았지만, 게이트가 닫히기 전에 치료를 받지 않으면 팔을 움직이기 어려워질 수 있었다.

“그럼 제가 먼저 쓰고, 필요하면 그 사람이 직접 동의하게 할게요.”

혜진은 방패 스킬을 맡기기 전에 등록증과 담보 조건을 꼼꼼히 비교했다. 능력 이름은 ‘충격 분산’이었지만, 길드 전산에는 ‘전면 방벽’이라고 저장돼 있었다. 수진은 두 이름이 같은 능력인지 먼저 감정했다. 전면 방벽은 일정 범위에 벽을 세우는 기술이고, 충격 분산은 자신이 받은 힘을 주변으로 흘리는 기술이었다. 둘은 비슷해 보여도 사용 방식과 위험이 달랐다.

“등록증이 잘못된 것 같아요.” 혜진이 말했다.

“길드가 다른 이름으로 올렸을 수도 있어요. 원본 감정서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럼 오늘 거래는 안 되나요?”

“능력 자체를 확인하기 전에는 담보를 받을 수 없어요.”

혜진은 가방에서 오래된 감정서를 꺼냈다. 종이에는 전면 방벽과 충격 분산이 함께 적혀 있었다. 등록 시스템으로 옮길 때 두 항목이 하나로 합쳐진 흔적이 있었다. 수진은 감정서를 복사하고, 원본은 혜진에게 돌려줬다. 능력의 명칭이 정확하지 않아도 거래 범위를 정할 수는 있었지만, 담보로 맡기는 것은 전체 스킬이 아니라 충격 분산의 사용권으로 한정했다.

“전면 방벽은 맡기지 않는다는 뜻이죠?”

“등록된 기술 중 분리 가능한 능력만 담보할 수 있어요. 전체 능력을 통째로 넘기면 안 됩니다.”

수진은 거래 설명서에 담보 범위를 다시 썼다. 혜진은 문장을 읽고, 담보 기간 중 전면 방벽을 별도로 사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 감정 결과상 두 기술이 신경 경로를 일부 공유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편이 안전했다. 혜진은 그 제한을 받아들였다.

수진은 손님에게 거래를 권하지 않았다. 전당포의 이자는 높은 편이었고, 대여 횟수를 초과하면 기억이 묶였다. 혜진이 다른 치료 방법을 찾을 시간이 있다면 그쪽을 먼저 알아보라고 했다.

“동료를 병원에 데려가면 치료비가 얼마나 드는지 알아봤어요.” 혜진이 말했다. “그보다 지금 던전 문이 닫히기 전에 회복시켜야 해요.”

“그 판단은 본인이 하세요. 제가 대신 서명할 수는 없습니다.”

혜진은 한 번 더 조건을 읽었다. 사용 횟수는 발동 기준으로 세며, 효과가 충분하지 않아도 발동된 순간 한 번을 차감한다. 스킬이 실패하면 대여자의 책임이 아니라 담보 능력의 한계로 기록한다. 기간이 끝나면 남은 사용 횟수와 상관없이 능력을 반환한다.

“이 조건에 동의합니다.”

그제야 수진은 서명란을 돌려 주었다. 혜진은 자기 이름을 쓰고, 담보 능력의 범위를 다시 읽었다.

수진은 거래를 진행했다. 혜진의 방패 스킬이 투명한 유리병 안에 담겼다. 방패 모양의 빛이 병 안에서 한 번 부딪혔다. 혜진은 자기 몸에서 능력이 빠져나가는 감각을 느끼고 손을 쥐었다 폈다.

수진은 보관 장부에 스킬 이름과 담보 시각을 적었다. 혜진은 치유 스킬을 빌렸다.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옅은 초록빛이 맺혔다. 발동 횟수는 자동으로 한 번 차감됐다.

“동료에게 써도 되는지 먼저 묻고 싶어요.”

“그게 좋습니다.”

혜진은 밖으로 나가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답을 듣고 돌아와 두 번째 발동을 했다. 손바닥의 상처가 붙었지만 완전히 낫지는 않았다. 치유 스킬은 상처를 없애는 게 아니라 회복을 돕는 능력이었다.

그녀는 다시 쓰고 싶어 했지만, 수진이 사용 횟수를 보여 줬다. 아직 한 번 남아 있었다. 혜진은 동료의 상태를 확인한 뒤 마지막 사용을 보류했다.

“한 번 남겨 두면 마음이 편하겠죠.”

“남기는 것도 선택이에요.”

거래가 끝난 뒤 혜진은 반환 확인용 연락처를 남겼다. 수진은 전당포 바깥의 비상 연락처와 병원 위치를 확인했다. 능력을 빌린 사람이 쓰러지면 담보 스킬을 회수해야 하지만, 응급 상황에서 계약서를 찾느라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됐다.

“제가 연락을 못 받으면요?”

“정해 둔 동료에게만 연락합니다. 가족에게 알릴지는 별도 동의가 필요해요.”

혜진은 동료의 번호를 적었다. 그 이름은 장부의 다른 계약 기록과 겹쳤다. 수진은 이전 거래와 관련이 있는지 물었지만, 혜진은 다른 사람이 맡긴 스킬이라고 답했다. 수진은 확인 없이 그 기록을 열지 않았다.

혜진은 문을 나서기 전에 유리병 안의 방패 빛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빛은 안정적으로 떠 있었지만, 능력을 맡긴 자리에는 가벼운 허전함이 남았다. 그녀는 팔을 들었다 내리며 방패가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확인했다.

“내일 정오까지 제가 지켜야 할 건 뭔가요?”

“대여 스킬의 한도와 시간을 넘기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이 대신 쓰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 거래를 중단하는 것.”

혜진은 그 말을 휴대폰 메모에 적었다. 전당포를 나간 뒤에도 계약 내용이 남아 있어야 했다. 수진은 출입문을 잠그고, 담보 능력을 보관함에 넣기 전에 두 번 감정했다. 한 번은 등록증과 대조하고, 한 번은 발동 기록과 맞췄다.

그녀는 장부에 혜진의 방패 스킬이 들어온 시간과 상태를 적었다. 능력은 멀쩡했지만, 보관함의 온도가 평소보다 조금 낮았다. 수진은 센서를 교체하기로 메모했다.

혜진은 전당포 밖으로 나갔다. 수진은 거래가 끝났다고 장부에 표시하지 않았다. 스킬은 반환 전까지 담보 상태였다. 영수증에는 보관 번호와 만료 시각, 사용 횟수, 담보자의 연락 방법이 적혔다.

그때 전당포 안쪽의 오래된 유리 보관함에서 소리가 났다. 안에는 수진의 동생 백수호가 맡긴 스킬이 있었다. 수진은 열쇠를 갖고 있었지만 계약 만료 전에는 열 수 없었다. 보관함의 날짜는 10년 전에서 바뀌지 않았어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만료일이 하루 뒤로 연장되어 있었다.

수진은 장부에 적힌 갱신 사유를 읽었다. 글씨는 짧았다.

‘대여자 미확인.’

그녀는 계약서의 수령인란을 확인했다. 수호의 스킬은 누구에게도 대여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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