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아는 침입자3화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아는 침입자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아는 침입자

AD
스폰서 광고

3화: 모든 층에서 같은 초인종

새벽 2시 13분, 102동과 104동에서 동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아파트 관리실장 오세경은 경비실 무전으로 두 동의 신고를 받았다. 102동 4층 주민은 집 앞에 아무도 없는데 초인종이 세 번 울렸다고 했다. 104동 11층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두 집은 단지 반대편에 있었고, 방문 예약 기록은 없었다.

“현관문을 열지 마세요. 복도에 나오지 말고 인터폰 화면만 확인해 주세요.”

세경은 주민들에게 그렇게 안내한 뒤, 윤정미 대표에게 상황을 알렸다. 정미는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관리실 모니터에는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았고, 두 동의 공동현관문도 닫혀 있었다. 초인종은 각 세대 내부의 인터폰 시스템을 통해 울렸다.

“모든 층에서 같은 초인종이 울린다는 민원이 더 들어오면, 그때도 단순 오작동이라고 하실 건가요?”

“단순 오작동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안내한 겁니다.”

세경은 보안업체 기사 남경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원격 점검 화면을 열고, 초인종 신호가 공동현관 키패드와 같은 서버를 거치는지 확인했다. 두 시스템은 별도 회선이었지만, 관리실 계정이 공용 점검 권한을 갖고 있었다. 누군가 그 권한으로 인터폰 테스트 신호를 보낼 수 있었다.

“테스트 신호라면 주민 이름이 보입니까?”

“관리실에서 등록한 세대 번호만요. 개인 통화 내용은 확인하지 못합니다.”

“그럼 지금 누가 신호를 보냈는지 알 수 있어요?”

“로그를 열어 봐야 합니다. 다만 로그를 다운로드하면 시스템을 잠시 끊어야 해요.”

세경은 주민들의 응급 호출에 지장이 없도록 다른 회선을 먼저 확인하자고 했다. 경비원은 각 동 현관에 배치했고, 엘리베이터를 통해 이동하는 주민이 없도록 안내했다. 정미는 직접 102동으로 가려 했지만, 세경은 현장 확인보다 관리실에서 신고를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정미는 잠시 망설이다가 주민 통화 목록을 정리했다.

초인종 신고는 다섯 건으로 늘었다. 같은 동의 2층, 9층, 12층에서도 동시에 울렸다. 어떤 집은 호출음만 들렸고, 어떤 집은 인터폰 화면에 검은 화면이 떴다. 주민 한 명은 문을 열려다 이웃의 전화를 받고 멈췄다. 세경은 그 사실을 듣고 손바닥에 땀이 밴 걸 느꼈다. 누군가 문을 열게 하려는 의도라면, 호출음만으로 사람을 끌어낼 수 있었다.

“문을 열지 않았다고 확인해 주세요. 잠금 장치도 만지지 말고요.”

그녀는 경비원들에게 각 층을 돌되 세대 내부로 들어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남경수는 시스템 로그를 백업한 뒤 인터폰 서버를 분리했다. 초인종 신호는 멈췄지만, 세대별 로그에는 수신 기록만 남고 발신 기기는 표시되지 않았다.

“관리실 계정에서 테스트한 것 같아요.” 경수가 말했다. “신호가 몇 초 간격으로 여러 세대에 갔습니다.”

“그 계정에 누가 접근했죠?”

“최근 로그인은 어제 제 계정 하나, 오늘 새벽 관리실 계정 하나입니다.”

세경은 자신의 개인 출입 코드가 적힌 낡은 카드를 떠올렸다. 그것이 왜 공동현관 안쪽에서 발견됐는지, 누가 만든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관리실 계정은 여러 직원이 교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계정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접속 기록을 백업했다. 변경으로 로그가 지워지지 않도록 경수에게 확인을 받았다.

그때 한도윤이 관리실에 찾아왔다. 그는 102동 4층에 사는 이웃에게 전화해 문을 열지 말라고 알려 줬다고 했다. “제가 늦게 귀가한다고 의심하더니, 이번엔 제가 초인종을 울렸다고 하겠죠.”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출입 기록과 호출 기록을 분리해 설명할게요.”

“저는 로그에 남는 게 싫어요. 그런데 기록이 없으면 제 말을 안 믿고.”

세경은 그 갈등을 이해했다. 기록은 보호가 되기도 하고 감시가 되기도 했다. 도윤은 자신의 귀가 기록을 경찰에게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다. 세경은 그 선택을 존중했다. 대신 공용 인터폰 로그만 경찰에 제출할 수 있는지 동의를 물었다. 도윤은 공용 로그라면 동의하되 자신의 세대 기록은 빼 달라고 했다.

“확인 범위를 그렇게 제한하겠습니다.”

그는 로그 제공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고, 말로 동의를 녹음해도 되는지 물었다. 세경은 공식 양식을 안내하고, 도윤이 충분히 읽을 시간을 줬다. 결국 그는 인터폰 호출의 공용 로그만 제공하는 데 동의했다. 정미는 그가 관리실을 나갈 때 “내가 너무 몰아붙였네”라고 말했다.

“단톡방 글을 지우고, 정정해 주세요.” 세경이 말했다.

정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단체방에 특정 입주민을 의심했던 글을 내리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었다고 정정했다. 사과 문장은 짧았지만, 이름을 지우는 건 필요했다.

남경수는 인터폰 서버의 테스트 기록에서 예약 기능이 활성화된 채 남아 있는 걸 발견했다. 테스트 신호는 원래 설치 뒤 자동으로 꺼져야 했지만, 설정값이 유지되어 있었다. 그는 오래된 방문자 코드와 같은 시기에 생성된 테스트 계정을 찾아냈다. 계정 이름은 ‘층별 호출 시험’이었고, 생성자는 이전 보안업체 기사였다.

경수는 옛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름은 고정우였고, 3년 전 키패드 교체 작업을 맡았다가 퇴사했다. 그는 테스트 계정을 만든 기억은 있지만, 공사 후 폐기했다고 했다. “그때 통신이 끊겨서 현장 테스트를 못 했어요. 다음 날 다시 들어가기로 했는데, 교체 작업이 다른 기사에게 넘어갔습니다.”

“계정 폐기를 확인했습니까?” 세경이 물었다.

“아니요. 인수인계에 적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기록은 있나요?”

“개인 노트에 남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노트는 회사에 두고 왔어요.”

세경은 경찰에게 통화 사실을 알리고, 노트 제출은 공식 요청을 통해 받도록 했다. 경수는 전임자의 이름을 사건의 범인처럼 말하지 않기로 했다. 계정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과 그 계정으로 접속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정미는 주민 설명회에서 “비밀번호를 알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을 하려다 멈췄다. 세경은 키패드 입력 로그만으로 실제 입력자를 특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비밀번호를 자주 바꾸자고 했지만, 새 번호를 택배기사와 돌봄 인력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다시 유출될 수 있었다.

“그럼 카드 태그만 쓰면 되나요?” 한 주민이 물었다.

“카드도 분실되거나 빌려줄 수 있어요. 방식마다 위험이 있고, 입주민이 감당할 수 있는 절차를 정해야 합니다.”

세경은 각 세대에 선택 가능한 출입 방법을 안내하고, 임시 방문자 코드는 정기적으로 폐기하기로 제안했다. 정미는 주민투표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보안 강화를 위해 생체정보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세경은 개인정보와 비용 문제를 설명하고 즉시 도입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불안해했지만, 적어도 무엇을 선택하는지 알게 됐다.

도윤은 설명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관리실에 전화해 “제 출입 기록을 단체방에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세경은 약속했고, 공용부의 이상 로그만 경찰과 공유했다. 정미는 주민들에게 특정 세대를 의심하지 말라는 공지를 다시 올렸다. 이번에는 도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 계정으로 모든 층에 호출을 보낼 수 있어요?” 세경이 물었다.

“네. 테스트 범위를 선택하면요. 하지만 지금 누가 접속했는지는 별도 인증 로그가 있어야 합니다.”

그는 계정을 비활성화하려다가 멈췄다. 경찰이 로그를 확보하기 전에는 설정을 바꾸지 않는 게 낫다고 했다. 세경은 이번엔 그에게 맡겼다. 경수는 계정을 격리하고, 설정값의 원본 파일을 복사했다.

경찰은 관리실 계정 접속 시간과 업체 기사 출입 기록을 요청했다. 경수는 자신이 새벽 2시 9분에 단지 밖에서 원격 점검을 했다고 인정했다. 로그에는 2시 13분 관리실 계정 접속이 이어졌지만, 본인은 그 시각에 서버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계정이 공유된 적이 있었는지 묻자 그는 몇 년 전 전임자가 임시 비밀번호를 적어 두고 간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때 바로 바꿨어야 했는데, 장비를 넘겨받는 일이 급해서 미뤘습니다.”

“그 계정이 지금도 살아 있었을 수 있나요?”

“계정은 폐기됐지만, 그때 만든 테스트 계정은 남아 있었어요. 제가 확인했어야 합니다.”

세경은 그의 실수를 기록했다. “당신이 원격 점검한 사실도, 그 전에 계정이 공유된 사실도 그대로 적겠습니다.”

“저를 의심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장비 로그를 지우지 않게 해 주세요.”

세경은 그에게 원본 백업을 두 군데에 보관하고, 해시값을 기록하게 했다. 경찰은 접속 기록을 복사해 가져갔다. 사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초인종이 울려도 문을 열지 않고 경비실에 확인하도록 안내받았다.

새벽 4시가 넘어 호출음은 멈췄다. 세경은 공동현관 키패드와 인터폰 회선이 분리된 상태인지 점검했다. 주민들에게 문을 잠그라는 안내를 반복하지 않고, 평소처럼 출입하되 낯선 호출에는 응답하지 말라고 공지했다. 정미는 주민들의 불안이 잦아들 때까지 경비실 연락망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세경은 마지막 신고를 기록하려고 접속 로그를 다시 열었다. 테스트 계정의 접속 위치는 아파트 관리실이 아니었다. 인근 폐쇄된 상가의 공용 와이파이였다. 그 상가 주소는 3년 전 이사한 세대의 이전 거주지와 같은 건물이었다.

그 순간 관리실 유리문 밖에서 초인종이 한 번 울렸다. 모니터 화면에는 아무도 없었다. 세경은 문을 열지 않았다. 호출 기록에는 발신 주소 대신 ‘현관 내부 장치’라는 문구만 남았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