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헌터는 퇴근 후에 꿀만 빱니다

3화: 돌멩이 하나의 가치
게이트 관리실의 경고음은 끈질겼다.
강무혁은 국밥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유리창 너머의 모니터를 바라봤다. 코어실의 영상에는 깨진 코어와 작은 돌 하나가 찍혀 있었다. 돌 아래에서 검은 실 같은 마나가 번졌다가 사라졌다.
사라진 게 아니었다.
화면의 수치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일정한 간격으로 같은 움직임이 반복됐다.
“잔류 진동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관리 직원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폐쇄 단계에서 이런 수치가 나온 적은 거의 없어요. 재측정팀을 부르겠습니다.”
“부르면 얼마나 걸립니까?”
“한 시간 정도는…….”
무혁의 눈썹이 올라갔다.
재측정팀이 오면 장비를 설치하고 안쪽을 살핀다. 이상이 발견되면 보고서를 쓰고 책임자를 부른다. 그 과정이 길어지면 수당도 늦어지고 국밥도 늦어진다.
“돌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관리 직원은 화면을 확대했다. 작은 돌은 위로 들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화면만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저건 코어 파편 아닙니까?”
“코어가 깨질 때 튄 돌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런 움직임은…….”
직원이 말을 흐렸다.
무혁은 화면 아래의 수치를 읽었다. 진동이 높아지는 순간마다 돌이 들렸다. 돌이 내려앉으면 수치도 낮아졌다.
돌이 진동을 막고 있었다.
“안쪽에 사람은 없죠?”
“공략 파티는 전부 나왔습니다. 재측정팀이 올 때까지 봉쇄할 예정입니다.”
“그럼 알아서 처리되겠네요.”
무혁은 몸을 돌렸다.
“잠깐만요.”
최나래가 그를 붙잡았다. 게이트 안에서 함께 움직였던 파티원이었다.
“정말 그냥 가도 괜찮을까요? 안쪽에서 뭔가 터지는 거면요?”
“재측정팀이 온다잖아요.”
“그 팀이 오기 전에 터지면요?”
무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정상적인 슬라임 군락에는 저런 돌이 없었다. 코어가 사라지면 압력도 자연스럽게 빠져나가야 했다. 남은 진동이 일정한 주기로 돌아오는 것도 이상했다.
돌이 한 번 더 크게 들렸다.
모니터의 숫자가 붉은 선을 넘었다.
“이 정도면 폭주 수치 아닙니까?”
권태식이 방패를 고쳐 잡았다.
관리 직원의 얼굴이 굳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통로 쪽 압력이 올라가고 있어요.”
게이트는 봉쇄됐지만 건물 안에 협회 직원과 대기 중인 파티원들이 있었다. 여기서 터지면 상처를 입는 사람이 생긴다.
국밥이 문제가 아니었다.
무혁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재측정팀이 오면 제가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재측정팀은 삼십 분 뒤에 도착했다.
선두에 선 여자는 회색 측정 장비를 들고 있었다. 명찰에는 윤서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관리 직원에게 물었다.
“공략 파티 중 지형을 가장 잘 파악한 사람이 이 사람입니까?”
“네. 코어까지 삼 분 만에 들어간 헌터입니다.”
“등급은요?”
“E급입니다.”
윤서진의 시선이 잠깐 멈췄다.
“코어실에 들어가면 지시에 따라 움직이세요. 이상이 생겼을 때 혼자 행동하면 안 됩니다.”
“네.”
대답은 얌전하게 했다.
다만 지시에 따르는 것과 눈앞에서 사람이 다치는 걸 구경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봉쇄선이 풀리고 게이트가 열렸다. 푸른 안개가 전보다 짙어져 있었다. 권태식과 최나래도 대기 인원으로 따라붙었다.
“두 분은 밖에 계시는 게 낫습니다.”
“우리도 파티원인데 남으면 이상하잖아요.”
권태식이 말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그럼 더더욱 같이 가야지. 혼자 공을 세우려는 건 아니잖아?”
무혁은 권태식을 잠깐 바라봤다. 겁이 나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럼 제 발자국만 따라오세요.”
통로는 입장 때보다 좁아져 있었다. 물은 바닥이 아니라 벽 안쪽에서 흘렀다. 벽면을 타고 내려온 물방울이 발밑의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혁은 걸음을 멈췄다.
“왜요?”
윤서진이 묻자 무혁은 왼쪽 벽을 바라봤다.
“물이 반대로 흐릅니다.”
“게이트 안에서는 흔한 현상입니다.”
“이 정도로 일정한 건 흔하지 않습니다.”
무혁은 바닥의 흙 조각을 주워 물 위에 놓았다. 흙 조각은 코어실 방향이 아니라 입구 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윤서진이 측정기를 들어 올렸다.
“압력 차이가 생겼군요.”
“돌이 들릴 때마다 물길도 바뀝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죠?”
“아까 화면에서 봤습니다.”
코어실에 가까워질수록 마나의 냄새가 짙어졌다. 슬라임 특유의 끈적한 마나와 달랐다. 차갑고 마른 냄새였다.
코어실 입구가 보였다.
작은 돌은 전보다 높이 떠 있었다. 돌 아래의 틈은 검은 선처럼 벌어져 있었다. 선 안쪽에서 검은 마나 실이 꿈틀거렸다.
윤서진이 장비를 설치했다.
“수치가 너무 높아요.”
장비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돌이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코어실 바닥이 울리고 벽면에 금이 갔다. 천장에 맺혀 있던 물방울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검은 실이 틈 밖으로 뻗어 나오며 바닥을 훑었다.
“전원 후퇴!”
윤서진이 외쳤지만 무혁은 돌을 향해 걸었다.
돌 아래의 홈이 보였다. 돌은 홈 위에 얹힌 마개였다. 게이트 안쪽에서 밀려온 압력이 마개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이대로 놓으면 틈이 열리고 코어가 사라진 자리를 통해 다른 마나가 쏟아진다.
힘으로 누르면 안 된다.
현재 몸으로는 대출력을 버틸 수 없다. 마나를 크게 펼치면 돌은 잠깐 눌러도 자신의 회로가 먼저 타 버린다.
무혁은 바닥의 물을 보았다.
물길은 세 갈래였다. 두 갈래는 입구 쪽으로 흐르고 한 갈래는 돌 아래로 파고들었다. 물의 방향을 바꾸면 압력이 돌을 미는 각도도 바뀐다.
“무혁 씨! 나오세요!”
최나래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혁은 손끝의 마나를 물길 하나에만 얹었다. 힘을 주지 않고 방향만 틀었다. 물이 옆으로 흐르며 돌의 아래쪽을 적셨다.
압력이 한순간 약해졌다.
무혁은 그 틈에 발끝으로 돌을 밀었다. 돌이 홈의 가장자리로 미끄러졌다. 검은 실이 그의 손목을 향해 튀어 올랐다.
차가운 감각이 피부를 스쳤다.
무혁은 단검을 뽑아 실을 바닥에 눌렀다. 검은 실은 칼날에 닿자 검은 연기처럼 떨었다. 베이지는 않았다. 대신 돌 아래의 틈으로 말려 들어갔다.
“지금이군.”
무혁은 돌을 홈 중앙으로 밀어 넣었다.
돌이 내려앉는 순간 코어실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윤서진의 측정기가 폭발하듯 빛났다. 무혁은 손바닥으로 바닥을 눌렀다. 남은 마나를 물길 끝에 아주 조금 흘렸다.
한 줄.
그 이상은 안 된다.
마나가 홈을 따라 돌 아래로 스며들었다. 검은 실이 움찔하더니 끊어진 것처럼 사라졌다. 떠 있던 물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벽의 금도 더는 벌어지지 않았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무혁은 손을 거두었다. 손끝이 저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대출력은 아니었는데도 회로가 무리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방금 뭘 한 겁니까?”
윤서진이 물었다.
“돌이 빠져서 다시 끼웠습니다.”
“그 전에 물길이 바뀌었어요. 측정기에 마나 반응도 잡혔습니다.”
“그럼 장비가 그렇게 기록하겠죠.”
윤서진은 한동안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코어실은 안정됐고 다른 사람들은 무사했다.
“돌을 회수하겠습니다.”
“건드리지 마세요.”
무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금은 그게 마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확신합니까?”
“다시 들리면 알게 될 겁니다.”
윤서진은 돌과 무혁을 번갈아 봤다. 결국 측정 장비를 돌 쪽으로 향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현 상태로 봉쇄합니다. 돌은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밖으로 나온 뒤 협회는 간단한 보고를 마쳤다.
코어 파괴 후 잔류 진동 발생.
원인 불명.
작은 암석을 원위치한 뒤 수치 안정.
현장 헌터의 지형 판단이 안정화에 기여.
무혁은 마지막 문장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이건 빼 주시면 안 됩니까?”
“사실을 빼면 보고서가 이상해집니다.”
윤서진이 서류를 넘겼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협회 조사에 협조해 주세요. 보상도 지급됩니다.”
“상황을 보고요.”
무혁은 추가 안정화 수당이 입금된 것을 확인했다. 국밥을 먹고도 낮잠을 잘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 정도면 참을 만했다.
그때 협회 밖에 검은 승합차가 멈췄다.
차에서 내린 남자가 협회 직원에게 무언가를 물었다. 그의 시선이 무혁에게 닿았다.
“강무혁 헌터님이십니까?”
“누구십니까?”
“블랙스톤 길드에서 왔습니다. 이번 공략 기록을 보고 제안드릴 게 있어서요.”
남자는 새 계약서를 내밀었다.
무혁은 종이를 보지도 않고 밀어냈다.
“안 합니다.”
“그 게이트가 이상하다는 건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무혁의 발이 멈췄다.
협회가 이상 진동을 확인한 건 오늘이었다. 그런데 블랙스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무슨 뜻입니까?”
“계약하시면 설명드리겠습니다.”
무혁은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반으로 찢었다.
“설명은 됐습니다.”
그는 협회 게시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낮은 등급의 게이트 공고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 남부 3구역 E급 게이트 / 공략 시간 60분]
공고 아래에는 작은 문구가 있었다.
[최근 측정값과 등급 판정 사이에 오차가 있습니다.]
무혁은 한숨을 쉬었다.
조용히 살고 싶었다. 위험한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이상한 게이트를 발견할 때마다 모른 척하면 됐다.
하지만 모른 척한 끝에 누군가 죽는 장면을 그는 이미 한 번 겪었다.
무혁은 공고를 신청판에 붙였다.
“이번에도 한 시간 안에 끝나겠지.”
윤서진이 뒤에서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동행해도 될까요?”
무혁은 그녀를 돌아봤다.
“왜요?”
“당신이 고른 게이트라서요.”
무혁은 게시판의 경고 문구를 바라봤다.
공고지 아래에 붙은 마나 측정 날짜는 오늘이 아니었다.
사흘 전이었다.
누군가 이미 이상을 알고도 E급으로 내려놓은 게이트였다.
무혁은 신청판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칼퇴를 하려면 먼저 확인해야 할 일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