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너는 여덟 명

3화: 물살을 가르는 이름
학교가 잡아 준 마지막 테스트 레이스는 토요일 오전이었다. 정식 대회가 아니라 인근 대학 두 팀이 함께 기록을 재는 날이었지만, 태성에게는 장학금 심의 전에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성적이었다. 혜진은 선수들에게 기록을 약속하지 말라고 했다. 강은 지난밤 비로 불어 있었고, 바람은 출발선과 결승선에서 방향이 달랐다. 대신 여덟 명이 끝까지 보트를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자고 했다.
태성은 출발선에 앉아 맞은편 보트의 노를 바라봤다. 상대 팀 스트로크는 몸을 크게 쓰지 않고도 리듬을 단단히 끌고 갔다. 태성은 자기 어깨의 뻐근함을 의식했다. 아침에 통증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지금 빠지면 팀은 에이트를 띄울 수 없었다. 혜진은 태성이 노를 내려놓을지 강요하지 않았다. “통증이 세지면 네가 먼저 신호해. 대타 없이 버티는 게 용기는 아니야.” 태성은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그 말이 자신을 향한 약속인지 혜진을 안심시키려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유진은 콕스석에 몸을 낮췄다. “출발은 스물여섯. 첫 열 번만 다 같이 세고, 그다음은 물소리로 간다.” 지난번 부표 앞에서 멈춘 뒤 태성은 빠른 레이트를 먼저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손잡이를 쥔 채 옆자리 동료의 손등이 떨리는 걸 보았다. 지훈은 야간 교대를 마치고 왔다. 얼굴은 피곤했지만 눈은 감기지 않았다. 태성은 출발 전에 그에게 괜찮으냐고 물었다.
“내가 못 버틸 것 같으면 말할게. 네가 대신 결정하지 마.”
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의 깃발이 내려가고 스타터가 신호를 주었다. 첫 세 번의 캐치가 엇갈렸다. 상대 보트가 반 길이 앞서 나갔다. 태성은 속도를 올리고 싶은 충동을 삼켰다. 넷, 다섯, 여섯. 노가 물을 놓치는 소리가 왼쪽에서 났다. 태성은 스트로크를 당기는 대신 회복 때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뒤쪽 좌현에서 따라오는 노가 곧 같은 높이로 돌아왔다.
“좋아, 지금. 다리로 밀어.” 유진이 짧게 외쳤다.
보트가 흔들리며 앞으로 튀었다. 첫 250미터에서 상대와의 간격은 한 길 반이었다. 유진은 “따라붙어”라고 하지 않았다. 숫자만 말했다. 태성은 그 차이를 받아들였다. 무리하게 따라잡으라는 말 대신 자기 보트의 리듬을 지키라는 뜻이었다. 지훈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태성은 그가 뒤에서 더 세게 밀어 주길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지훈은 힘을 더 쓰지 않고 노를 물에 넣는 순간을 맞췄다. 그 선택에 맞춰 태성도 회복을 늦췄다.
500미터 표식을 지날 때 유진이 레이트를 28로 올렸다. 태성은 그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 몸을 당겼다. 이번에는 여덟 개의 노가 거의 동시에 물을 잡았다. 보트가 조금씩 상대 팀의 선미를 향해 다가갔다. 맞은편 보트의 선수 한 명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봤다. 태성은 그 눈길에 반응해 더 빨리 가고 싶었지만, 물이 좌현에서 부딪히며 선수를 흔들었다. 유진이 “왼쪽, 손 높이 맞춰”라고 외치자 태성은 팔 힘을 빼고 몸통을 세웠다.
태성이 숨을 고르는 사이, 4번 좌석의 민재가 낮게 말했다. “나 오늘 여기서 밀리면 다음 학기 기숙사 연장 신청 못 해. 기록 내야 해.” 민재는 지난주 태성의 일정을 바꾸자는 제안에 가장 먼저 반대했던 선수였다. 태성은 그제야 민재가 왜 훈련마다 초시계를 봤는지 알았다. 그는 대답 대신 출발선 쪽의 스타터를 바라봤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속도로 따라갈게. 대신 네가 혼자 끌어당기지는 마.”
민재가 짧게 코웃음을 쳤다. “네가 팀장처럼 굴 때는 싫었는데, 오늘은 그 말이 맞네.” 그는 뒤쪽 어깨를 한 번 돌리고 노를 제 위치에 놓았다. 유진은 그 대화를 듣고도 끼어들지 않았다. 각자의 사정을 전부 공개하지 않아도 같은 보트에 탈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민재는 태성의 신호를 기다렸고, 태성은 이번에는 먼저 명령하지 않았다.
700미터 지점에서 상대 보트의 콕스가 크게 외쳤다. “한 번 더 붙어!” 그 팀의 2번 좌석은 작년에 태성과 함께 훈련했던 윤서였다. 윤서는 학교 구조조정 때 다른 대학으로 옮겼고, 그 뒤로 태성은 연락을 피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윤서는 먼저 살아남은 사람처럼 불렸다. 태성은 그를 보자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졌지만, 그 감정을 경기 중에 꺼내 놓을 수는 없었다.
윤서의 보트가 옆으로 다가왔다. 윤서는 손잡이를 당기는 사이 한 번 태성을 바라봤다. “그때 연락했어야지.” 물소리에 묻힐 만큼 짧은 말이었다. 태성은 답을 삼켰다. 그때는 답할 말이 없었다. 팀이 흔들릴 때 남은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 떠난 사람이 더 편해질 것 같아서였다. 지금은 윤서가 먼저 말을 걸었고, 태성은 더 이상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끝나고 말할게.” 태성이 숨을 내뱉었다. 윤서는 고개를 돌려 자기 보트의 리듬으로 돌아갔다. 상대와의 간격이 잠깐 더 벌어졌다. 태성은 기록만 좇느라 옆 보트를 보지 않으려 했지만, 이제 그 사실을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았다. 경주가 끝나면 먼저 말을 걸어야 했다. 팀을 지키는 일과 떠난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일은 같은 선택이 아니었다.
650미터에서 예상하지 못한 파도가 옆구리를 때렸다. 좌현 노 하나가 물을 깊게 물고, 오른쪽 선수는 반동에 밀려 손을 놓칠 뻔했다. 보트가 순간 비스듬히 틀어졌다. 유진은 멈추라고 하지 않았다. “한 번만 짧게, 앞사람 손 봐!” 태성은 세게 당기던 동작을 줄여 캐치 지점을 앞당겼다. 왼쪽 선수도 노를 얕게 넣었다. 지훈이 낮은 목소리로 “같이 간다”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뒤쪽에서 웃음 비슷한 숨이 터졌다. 보트는 방향을 되찾았다.
마지막 250미터에서 유진은 전력 질주를 제안했다. 태성은 어깨의 통증이 한 단계 올라오는 걸 느꼈다. 지금 신호하면 물러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통증을 감춘 채 버티는 대신 유진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왼쪽 어깨가 올라왔어. 레이트는 유지하고 다리로 끝낼게.” 혜진이 강변에서 듣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지훈은 “내 뒤는 내가 맞출게”라고 답했다. 유진은 고개를 숙여 확인하고, 28을 유지했다.
태성은 팔로 노를 끌어오지 않도록 다리를 밀었다. 허벅지가 타들어 가고 손바닥이 젖은 손잡이에서 미끄러졌다. 상대 팀이 다시 반 길이 앞서 나갔다. 마지막 열 번, 유진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세 번, 네 번. 여덟 명은 서로를 보지 못했지만, 물이 밀려나는 소리는 한 박자였다.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기록은 상대보다 2초 8 느렸다. 예선 기준 기록에도 조금 못 미쳤다.
상대 팀이 정박해 돌아오는 길에 윤서의 보트가 그들 곁을 스쳤다. 윤서는 노를 세우고 말했다. “다음 달에 우리 학교가 합동 레이스를 열어. 네 팀 자리도 하나 비워 둘게.” 태성은 초대인지 위로인지 따져 묻고 싶었다. “우리 팀은 아직 해체 안 했어.” 윤서는 웃지 않았다. “알아. 그래서 부르는 거야. 네가 혼자 버티는 게 아니라는 말도 해 두려고.” 태성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윤서는 이미 선착장 쪽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그 말이 더 불편했던 건, 윤서가 태성을 안쓰러워해서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상대 팀은 실제로 다음 레이스에서 이길 생각으로 초대했다. 윤서는 자신이 떠났다고 해서 예전 팀의 실패를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태성은 그 사실을 인정하면 지난 일의 단순한 원망으로 버티던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았다. 유진이 “먼저 우리 배부터 내리자”고 불러서야 그는 다시 노를 잡았다.
보트가 정박하자 태성은 말없이 손잡이를 내려놓았다. 지훈이 먼저 그의 어깨를 봤다. “괜찮아?” 태성은 통증을 숨기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혜진은 뛰어 내려와 얼음 주머니를 건네려다 멈췄다. 태성이 자기가 들겠다고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그 작은 선택이 기록보다 먼저 팀에 보여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유진은 물가에 앉아 장갑을 벗었다. 손바닥에 붉은 자국이 있었지만 그녀는 웃지 않았다.
상대 팀은 결승선을 지난 뒤에도 보트를 세우지 않고 짧게 한 번 더 페이스를 맞췄다. 태성은 그 모습을 보고 아까 자신들이 틀어졌던 지점을 떠올렸다. 지훈은 그의 시선을 따라가며 “다음엔 이기자는 말부터 하지 말자”고 했다. “이번엔 네가 내 근무를 대신 결정하지 않았고, 내가 네 어깨를 모른 척하지 않았어. 그게 먼저야.” 태성은 기록표를 접었다. “다음엔 같이 출발하자. 결과는 그다음에 보자.”
학교에서 온 메일은 보트 창고 앞에서 확인했다. 팀 예산은 삭감이 확정됐고, 장학금 심의는 개인 성적과 출석을 따로 평가한다는 내용이었다. 태성의 수상 기록은 부족했지만, 대회 참가 경비를 팀이 마련할 방법은 아직 남아 있었다. 혜진은 다른 대학과 합동 훈련을 제안해 보겠다고 했다. 태성은 기록이 좋지 않다고 팀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그 말은 자신에게도 처음 해 보는 말이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지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점장이 다음 주 야간 근무를 더 맡아 달라고 했다. 지훈은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번에는 바로 거절하지 않았다. 팀 훈련이 끝나고 나서 통화하겠다고 짧게 답했다. 태성은 왜냐고 묻지 않았다. 둘은 강변 계단을 나란히 걸었다. 뒤에서 유진이 외쳤다. “금요일에 다시 타. 이번엔 내가 박자 바꾸는 걸 네가 먼저 들어.”
태성은 돌아서서 “그러자”고 답했다. 그날 처음으로 그는 다음 레이스의 기록보다 출발선에 함께 설 사람들의 얼굴을 먼저 떠올렸다. 다만 금요일까지 지훈의 근무표가 바뀌지 않는다면, 여덟 번째 좌석은 다시 비어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