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화타의 환생은 현대 외과의사1화

화타의 환생은 현대 외과의사

화타의 환생은 현대 외과의사

AD
스폰서 광고

1화: 사망 선고 대신 눈을 떴다

삐이이이익——.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운 기계음이 귓가를 찔렀다.

심전도 모니터의 붉은 파형이 직선으로 꺾여 나가고 있었다. 혈압 40에 20. 분당 심박수 영.

"교수님! 바이탈 안 잡힙니다! 심정지예요!"

"에피네프린 1밀리그램 정맥 투여. 제세동기 충전해. 200줄로."

자신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흉부외과 전문의 서강준은 열네 시간째 이어진 대동맥 박리 수술의 마지막 봉합사를 묶어내던 참이었다. 찢겨 나간 인공혈관 문합부는 완벽했다. 피 한 방울 새지 않았다. 수술대 위의 환자는 분명 살았다.

그러나 정작 멎어버린 심장은 환자의 것이 아니었다.

쿵, 하고 가슴 한가운데를 둔기로 후려친 것 같은 흉통이 밀려들었다. 호흡이 끊어졌다. 시야가 새하얗게 탈색되며 수술대 조명이 빙글빙글 돌았다. 손에 쥐고 있던 타이타늄 핀셋이 바닥으로 떨어져 쨍그랑 맑은 소리를 냈다.

'아, 나였나.'

사흘 밤을 꼬박 새운 당직과 연이은 응급수술. 과로로 굳어버린 심근경색이었다. 서강준은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며 자신의 사망 시각을 선고하는 후배 의사들의 울부짖음을 아득하게 들었다.

그것이 서강준이라는 인간의 마지막 기억이어야 했다.


코를 찌르는 것은 포르말린이나 소독약 냄새가 아니었다.

먼지 낀 흙냄새, 눅눅하게 젖은 볏짚, 알싸하게 찌르는 묵은 감초와 당귀 향이었다.

서강준은 번쩍 눈을 떴다.

천장에 수술실 무영등은 없었다. 거미줄이 군데군데 얽힌 낡은 서까래와 얼룩진 한지 천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등 뒤로 느껴지는 것은 차갑고 딱딱한 온돌 바닥이었다.

"……하아."

입을 벌려 숨을 들이켜자 쇳소리가 섞인 거친 숨이 폐포를 긁었다.

강준은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제 왼쪽 손목 안쪽을 짚었다. 요골동맥을 촉지하는 동작은 십수 년간 몸에 밴 외과의사의 반사작용이었다.

팔딱. 팔딱. 파르르.

맥박이 잡혔다. 분당 백이십 회에 달하는 빈맥. 게다가 서너 번에 한 번꼴로 맥이 건너뛰는 심실 조기 수축이었다.

강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제 손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이건……."

손가락이 지나치게 가늘고 길었다. 수술용 칼과 겸자를 수없이 쥐어 굳은살이 박여 있던 마흔 살 베테랑 외과의의 손이 아니었다. 햇볕을 보지 못해 창백하고 살점이 거의 없는 소년의 손이었다.

손등을 타고 흐르는 혈관은 푸르스름하게 비쳤고 손톱 밑은 핏기가 없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심한 만성 빈혈과 영양실조의 전형적인 소견이었다.

강준은 손을 가슴뼈 중앙으로 옮겨 늑골 사이를 꾹 눌렀다.

'수축기 잡음. 판막 역류가 있거나 중격 결손이 의심되는 둔탁한 진동.'

이 몸의 주인은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선천적인 결함을 안고 살았던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최근 며칠간 극심한 탈수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머릿속으로 낯선 기억의 파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대륙을 통일한 천하제국 18년.

하남성 소도시 청하현의 변두리에 자리한 청연의원.

그리고 이 몸의 이름은 진도현. 열일곱 살.

의원을 운영하던 선친 진청연이 보름 전 원인 모를 급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겨진 몰락 의가의 독자였다. 도현은 선친의 장례를 치르고 밀려드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오늘 새벽 마당에서 각혈하며 쓰러졌던 것이다.

'환생인가.'

의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귓가를 울리는 불규칙한 심장 박동과 차가운 공기는 이것이 꿈이나 임사체험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때 삐걱거리는 나무 문이 거칠게 열렸다.

"도련님!"

치마꼬리를 걷어 올린 한 소녀가 뚝배기 사발을 받쳐 든 채 허겁지겁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열여덟 남짓 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 머리를 단정하게 묶었으나 옷소매에는 진한 먹물과 약재 얼룩이 배어 있었다. 청연의원의 견습 의녀 백소린이었다.

소린은 바닥에 상체를 일으킨 도현을 보자마자 사발을 든 채 굳어버렸다.

"정신이…… 드신 거예요? 새벽에 마당에서 피를 토하고 숨도 안 쉬어서 정말 돌아가신 줄 알았잖아요!"

소린의 목소리에는 원망과 안도가 뒤섞여 있었다.

도현은 가만히 소린의 얼굴을 관찰했다. 눈 밑의 짙은 암륜, 바짝 마른 입술, 오른손 엄지손가락 손톱 주변에 벌겋게 부어오른 조갑주위염. 밤새 잠 한숨 자지 못하고 약을 달이며 찬물을 만진 흔적이었다.

도현은 목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물을 좀 줄 수 있겠습니까."

"……예?"

소린의 눈이 둥그레졌다.

평소의 진도현은 소심하고 말수가 적어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도련님이었다. 소린이 쏘아붙이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부터 하던 소년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도현은 등을 꼿꼿이 세운 채 건조하고 명료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차분한 눈빛이 소린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체내 수분이 고갈되어 전해질 균형이 깨졌습니다. 탕약보다 끓여서 식힌 맹물이 급합니다."

"저, 전해요? 도련님,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머리라도 어디 부딪치셨어요?"

소린이 기겁하며 사발을 바닥에 내려놓고 도현의 이마에 손을 얹으려 했다.

도현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살짝 뒤로 물려 접촉을 피했다. 환자의 신체를 접촉할 때는 상대의 동의와 위생이 우선이라는 외과의의 무의식적인 거부 반응이었다.

"열은 없습니다. 탈수로 인한 일시적인 기립성 현기증과 부정맥입니다. 물부터 부탁합니다."

도현의 단호한 태도에 압도된 소린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더니 구석에 놓인 주전자에서 미지근한 물을 한 대접 따라 건넸다.

도현은 대접을 받아 천천히 세 번에 나누어 삼켰다. 건조하게 말라붙었던 식도와 위장벽에 수분이 흡수되며 미약하게나마 혈액순환이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이제 설명해 주겠습니까. 의원의 상태가 어떤지."

소린은 귀신이라도 본 듯 도현을 쳐다보다가 이내 왈칵 울분을 터뜨렸다.

"상태가 어떻긴 어때요! 원장 어르신께서 남기신 탕약 대금 외상이 백 냥이 넘어요. 게다가 삼합상단에서 의원 건물을 담보로 빌려 간 은자 오십 냥을 오늘 해 질 때까지 갚지 못하면 명패를 떼고 우릴 길바닥으로 쫓아내겠다고 으름장을 놨단 말이에요!"

소린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약방에 남은 약재는 전부 곰팡이 슨 하품뿐이고 치료받으러 오던 환자들도 원장님이 돌아가시자마자 발길을 딱 끊었어요. 당장 오늘 저녁에 곽두칠 패거리가 들이닥칠 텐데 도련님이 마당에서 쓰러지기까지 하니…… 제가 뭘 어쩌겠어요!"

소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도현은 눈을 감고 상황을 정리했다.

선친 진청연의 급사.

은자 백오십 냥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

의원 몰락과 강제 퇴거 위기.

그리고 쇠약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육신.

'수술실에서 과로사했더니 이번엔 빚더미 의원에 떨어졌군.'

도현의 입가에 씁쓸한 자조의 미소가 스쳤다. 하지만 절망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응급실에서 심정지 환자를 맞닥뜨렸을 때 필요한 것은 한탄이 아니라 즉각적인 처치와 우선순위 설정이었다.

"약방에 소독용으로 쓸 독주나 증류주가 남아 있습니까?"

"예? 독주요? 술은 왜 찾으세요?"

"그리고 쇠붙이를 달굴 화로와 깨끗한 무명천은."

"도련님, 지금 제정신이세요? 빚쟁이들이 몽둥이를 들고 오게 생겼는데 무슨 무명천 타령이에요!"

쾅——!

소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당 대문이 부서져 나갈 듯한 굉음이 터졌다.

"진도현! 안에 있는 거 다 안다! 썩 튀어나오지 못해!"

거칠고 탁한 쇳소리가 의원 뜰을 뒤흔들었다.

소린의 안색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왔어요…… 곽두칠이에요!"


청연의원 앞마당은 엉망진창이었다.

대문 빗장이 부러져 널브러져 있었고 덩치 큰 사내 넷이 약방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선두에 선 사내는 삼합상단의 행동대장 곽두칠이었다.

곰처럼 우람한 체격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 기름기 번들거리는 턱수염 아래로 살의가 번뜩였다.

"어이, 계집년! 안에 네 상전 놈 숨겨뒀냐? 죽었으면 시체라도 끌어내서 관아에 넘겨야겠는데!"

곽두칠이 들고 있던 쇠몽둥이로 약방 문틀을 후려쳤다. 콰직, 소리와 함께 마른 나무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뒤따라온 하수인 둘은 약재 건조대를 발로 걷어차며 마당에 널려 있던 약초들을 짓밟았다.

"당장 멈추세요! 여긴 엄연히 의원이에요!"

소린이 안채 문을 열고 뛰어나가 소리쳤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어떻게든 문 앞을 막아서려는 모습이었다.

곽두칠이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의원? 원장 늙은이 죽고 빚만 남은 폐가가 무슨 놈의 의원이야. 차용증 기한이 오늘 사시까지였다. 해가 꼴딱 넘어갔으니 이 땅과 건물은 이제 삼합상단 소유야. 당장 짐 싸서 꺼져. 안 그러면 네년 몸뚱이라도 기방에 팔아넘길 테니까."

곽두칠이 거친 손을 뻗어 소린의 멱살을 잡으려던 찰나였다.

"손 치우십시오."

낮고 서늘한 음성이 마당에 울려 퍼졌다.

소린의 등 뒤에서 하얀 무명옷을 걸친 도현이 걸어 나왔다.

마르고 창백한 얼굴이었으나 걸음걸이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도현은 소린의 어깨를 가볍게 뒤로 밀어 보호하며 곽두칠의 앞을 가로막았다.

곽두칠이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관짝에 들어간 줄 알았던 진가 놈 아니냐? 다 죽어가던 놈이 어디서 혓바닥을 놀려?"

곽두칠이 위협하듯 쇠몽둥이를 도현의 가슴팍에 들이밀었다.

보통의 열일곱 소년이라면 공포에 질려 무릎을 꿇었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도현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도현은 쇠몽둥이를 내려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곽두칠의 목과 얼굴, 손가락을 정밀 기계처럼 훑고 있었다.

'안면 홍조와 미간의 짙은 암적색 울혈.'

'우측 경동맥 부위의 비정상적인 박동.'

'말초 혈관 저항 증가로 인한 전신성 고혈압.'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우측 검지와 입꼬리의 부자연스러운 경련.'

외과의사의 눈에 곽두칠이라는 인간의 내부 지도가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도현이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흘 전부터 뒷목이 뻣뻣하게 굳고 머리 오른편이 쪼개지듯 아팠을 텐데요."

곽두칠의 눈썹이 흠칫 꿈틀거렸다.

"뭐, 뭐라고?"

"어제부터는 눈앞에 검은 점이 떠다니고 오른쪽 손끝 감각이 둔해졌을 겁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귀에서 삐 소리가 멈추지 않지요."

곽두칠의 표정이 굳어졌다. 쇠몽둥이를 쥐고 있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정확했다.

최근 며칠간 술을 마실 때마다 뒷목이 당기고 손이 저려 도박판에서 주사위를 떨어뜨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상단 의원에게 물어도 그저 주독이 올랐다며 엉뚱한 약만 지어주었을 뿐이었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알아?"

"혈압이 한계치를 넘어 뇌혈관이 터지기 직전이라는 뜻입니다."

도현이 한 걸음 다가서며 곽두칠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강호에서는 풍(風)이라 부르고 의학적으로는 뇌졸중이라 합니다. 지금처럼 소리를 지르고 흥분해서 뇌압을 올리면 오늘 밤 안으로 뇌혈관이 파열됩니다. 그렇게 되면 관아에 가기도 전에 쓰러져 평생 대소변도 못 가리고 침을 흘리며 누워 살게 될 겁니다."

도현의 목소리는 너무나 담담해서 오히려 듣는 이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하수인들이 웅성거리며 곽두칠의 눈치를 살폈다.

"두, 두칠 형님…… 진짜 얼굴이 시뻘건데요?"

"닥쳐, 이 개새끼들아!"

곽두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소리를 지르는 순간 실제로 관자놀이가 쿵쾅거리며 눈앞이 핑 돌았다. 곽두칠은 비틀거리며 쇠몽둥이로 바닥을 짚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도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또한 천하제국 상거래 규례에 따르면 부채에 따른 가압류는 관아의 공문이 당도한 후 사흘의 유예 기간을 두어야 합니다. 일몰 직후 사적인 폭력으로 의원 기물을 파손한 것은 형율상 주거침입과 재물손괴에 해당합니다. 관아에 고발하면 상단주가 당신의 행패를 곱게 봐줄 것 같습니까?"

도현의 논리정연하고 차가운 압박에 곽두칠은 숨이 턱 막혔다.

눈앞의 진도현은 자신이 알던 나약한 도련님이 아니었다. 마치 수백 명의 목숨을 쥐락펴락해 본 거물 의원처럼 사람의 급소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어지럼증이 곽두칠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너…… 네놈, 말을 지어내서 날 겁박하려는 수작이지?"

"믿지 못하겠다면 지금 당장 저를 치십시오. 몽둥이를 휘두르는 순간 당신의 뇌혈관이 먼저 터질 테니까요."

도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곽두칠의 몽둥이 앞에 섰다.

침묵이 마당을 짓눌렀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와 바닥의 부러진 나뭇가지를 굴렸다.

결국 먼저 꼬리를 내린 것은 곽두칠이었다. 곽두칠은 덜덜 떨리는 오른손을 슬그머니 뒤로 숨기며 거칠게 침을 뱉었다.

"크큭…… 말재간 하나는 청산유수로구나. 좋다. 관아 공문 핑계를 대니 딱 이틀 주마."

곽두칠이 핏발 선 눈으로 도현을 노려보았다.

"이틀 뒤 정오다. 그때까지 은자 백오십 냥을 한 푼도 빠짐없이 내놓지 못하면 네놈 혓바닥을 뽑고 이 의원을 통째로 불태워버릴 테다. 가자!"

곽두칠이 비틀거리며 마당을 빠져나갔고 하수인들도 황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대문 밖으로 빚쟁이들의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졌다.

"하아……."

도현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문기둥을 짚었다.

가슴 속에서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부정맥과 빈혈로 시야가 일순간 핑 돌았다.

"도련님!"

소린이 기겁하며 달려와 도현의 팔을 부축했다. 소린의 눈은 경악과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곽두칠 그 악질이 그냥 물러가다니요? 도련님 무공이라도 익히셨어요? 아니면 정말로 풍이 온 걸 맞히신 거예요?"

"진단했을 뿐입니다. 의사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징후니까요."

도현은 소린의 부축을 받으며 약방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에는 부서진 서랍과 흩어진 약재들이 뒹굴고 있었다. 도현은 엉망이 된 진료실 구석을 둘러보았다.

먼지 쌓인 침통, 녹슨 가위와 칼, 낡은 약탕기 몇 개.

현대의 무균 수술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참담한 환경이었다.

'이틀이다.'

이틀 안에 은자 백오십 냥을 구하지 못하면 쫓겨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이 몸의 체력을 끌어올리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의료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백 의녀."

"예, 예?"

소린이 낯선 호칭에 당황해 눈을 깜빡였다.

"가마솥에 물을 가득 붓고 펄펄 끓이십시오. 그리고 약방에 남은 가장 독한 증류주를 찾아오세요."

"술과 끓인 물은 왜요?"

"칼과 침을 씻고 손을 소독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오염 물질과 세균을 없애지 않으면 칼을 대는 족족 환자가 썩어 들어갑니다."

"세…… 균이요? 그게 뭔데요?"

"독기(毒氣)의 일종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서두르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도현의 단호한 눈빛에 소린은 더 묻지 못하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도현은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아 손을 내려다보았다. 가늘고 창백한 손가락. 그러나 감각은 살아 있었다. 혈관의 박동을 읽고 신경의 위치를 가늠하는 지식은 뇌리에 온전히 새겨져 있었다.

그때였다.

두두두두두——!

청하현 북쪽 대로에서부터 대지를 뒤흔드는 격렬한 말발굽 소리가 의원 골목을 향해 질주해 왔다.

마차 바퀴가 비명을 지르며 요동치는 소리.

그리고 늦가을의 차가운 밤바람을 타고 짙은 쇠비린내와 선혈의 냄새가 청연의원 마당 안으로 들이닥쳤다.

도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매섭게 가라앉았다.

'응급 환자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외과의사의 본능이 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