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0위는 퇴근을 원한다

3화: 이름 없는 야간 근무자
정우는 작업표를 사진으로 찍고 원본은 손대지 않았다. 오르그는 종이를 접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사고 당일 경비실에 붙어 있던 근무표와 같았다.
“그날 누가 죽었습니까?”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
“왜요?”
“관리자가 기록하지 말라고 했다.”
다미는 오르그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몬스터가 본 기억이 정확한지, 자기에게 유리하게 말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녀는 작업표의 날짜와 훈련장 사고 보고서를 대조했다. 공식 보고서에는 사망자 없음, 근무자 전원 퇴근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우는 그 날짜에 야간 근무를 했다. 근무 기록에는 휴게 시간과 퇴근 시각이 찍혀 있었지만, 그는 사고 기억이 없었다. 어머니에게 저녁을 가져다드렸던 날이라 평소처럼 근무를 마친 것으로 기억했다.
“기억이 없으면 아무 일도 없었다고 봐야 합니까?” 다미가 물었다.
“아니요. 기록이 없으면 확인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정우는 본부에 사고 기록 원본과 출입 로그 보존을 요청했다. 시스템은 관리자 권한으로 열람할 수 있다고 표시했지만, 열람 기록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승인을 누르지 않았다. 먼저 감사관 입회와 원본 복사 절차를 요청했다.
오르그는 몬스터 구역에서 오래된 이름표 하나를 가져왔다. 이름표에는 사람 이름 대신 ‘야간조 0’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은 몬스터의 휴게 구역 문 안쪽에 걸려 있었다. 정우는 이름표를 들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증거물로 확보하려면 오르그의 동의와 현장 기록이 필요했다.
오르그는 이름표를 제공하는 데 동의했다. 다만 몬스터의 이름은 표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해 달라고 했다. 정우는 물건의 인수자와 반환 조건을 적고 서명했다. 시스템은 그를 임시 관리자라고 불렀지만, 그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 물건을 빼앗을 권한은 없었다.
다미는 공략팀의 출입 로그를 확인했다. 팀원 셋은 보고서상 모두 2시 10분에 퇴근했다. 그러나 한 명의 장비가 새벽까지 던전 내부에 남아 있었다. 장비 회수 기록은 다음 날 오전으로 미뤄졌고, 회수 담당자는 정우였다.
“제가 그날 장비를 찾으러 들어갔습니까?”
“기록에는 그렇습니다.”
“기억은 없어요.”
“그럼 기록과 기억이 다르다는 사실만 남기면 됩니다.”
정우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근무표를 확인했다. 퇴근 도장은 2시 13분, 사고 신고는 2시 17분으로 기록돼 있었다. 그 사이 4분 동안 그는 출입구를 다시 통과한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출입 카드 로그에는 입장 기록이 없었다.
그는 카드를 분실했을 가능성과 로그 삭제 가능성을 함께 적었다. 어느 쪽도 단정하지 않았다.
다미는 아침 공략을 중단하겠다고 팀에 알렸다. 팀원들은 장비 손실과 일정 지연을 걱정했지만, 부상 보조원이 회복할 때까지 안전 확인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그녀는 임무를 포기하는 대신, 필요한 인원과 장비를 다시 배치하기로 했다.
오르그는 몬스터 교대 규칙이 지켜졌다고 확인했다. 그는 휴게 구역에 물통과 교대표를 두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정우는 시스템이 물자를 제공하지 않으므로 길드에 비용을 청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럼 기록해라. 누가 물을 가져오기로 했는지도.”
정우는 협회 비용 요청서를 작성했다. 몬스터용 물통과 휴게실 수리비는 예산 항목에 없었다. 그는 임시 관리자 권한으로 비용을 승인하지 않고, 수동 검토를 신청했다.
정우가 경비실에서 인수인계 종이를 챙기러 간 사이, 현장 프린터가 저절로 켜졌다. 종이가 한 장씩 밀려 나왔지만 글자는 중간에서 끊겼다. 다미가 전원 버튼을 눌러도 기계는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장에는 오늘 날짜와 함께 ‘야간 근무자 0명’이라고 인쇄돼 있었다. 정우는 종이를 급히 잡아당기지 않았다. 안쪽 롤러에 손가락이 걸리면 다칠 수 있었다.
“전원선을 뽑아요.” 다미가 말했다.
콘센트를 뽑자 프린터가 멈췄다. 종이는 절반쯤 기계 안에 남았다. 그들은 사진을 먼저 찍고 급지 덮개를 열었다. 롤러 안쪽에는 낡은 작업표 조각이 끼어 있었다. 정우의 사번 일부와 사고 당일 새벽 2시 16분이라는 시각이 희미하게 보였다. 다미가 종이를 빼내려다 가장자리를 찢었다. 두 사람은 손을 멈췄다. 오르그가 문 안쪽에서 작업용 집게를 건넸고, 정우가 얇은 판으로 종이를 받친 뒤 조각을 겨우 꺼냈다.
“정우 씨 카드 입장 기록보다 1분 빠르네요.”
“인쇄 명령이 지금 들어왔는데 옛 종이가 나왔습니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부터 확인해야 해요.”
출력 요청자 이름은 로그에 없었다. 다미는 프린터 연결선을 뽑고, 다시 켜지 못하도록 사용 중지 표지를 붙였다. 팀장은 조사 전에 장비를 고장 냈다고 항의했지만, 다미는 원본 기록이 남아 있는지 확인할 때까지 보존하는 조치라고 맞섰다. 정우는 찢어진 조각을 봉투에 넣지 않고 투명한 현장 보관판에 끼웠다. 사진, 발견 시각, 작업자 이름을 바로 옆에 기록했다.
본부의 답변은 오전에 도착했다. 훈련장 사고 기록에는 사망자 없음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출입 기록 백업에는 야간 근무자 한 명이 퇴근한 뒤 다시 입장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출입 카드는 정우의 것이었다.
정우는 그 기록을 보고도 자신이 들어갔다고 말하지 않았다. 카드가 다른 사람의 손에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본부에 단말기 인증 로그와 CCTV 원본을 요청했다.
아침 공략팀이 도착하자 현장은 다시 흔들렸다. 팀장은 취소 통보를 못 봤다며 셔터를 열라고 했다. 다미는 문 앞을 막았지만, 팀장은 안전선 안으로 한 발 들어섰다. 정우가 출입 카드를 회수하려 하자 그가 손목을 잡았다. 팔의 긁힌 상처가 눌려 따끔했다.
“문이나 열어요. 장비만 꺼내면 됩니다.”
“안쪽에 부상자가 있고, 센서가 고장 났습니다.”
“그건 어젯밤 얘기잖아.”
“아직 구조 확인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팀장은 다미에게 책임자를 부르라고 했다. 다미는 지금 자신이 현장 책임자라며, 출입을 막는 건 규정에 따른 결정이라고 답했다. 팀장은 그녀가 공략을 취소해 실적을 망쳤다고 비난했다. 뒤에 있던 헌터 하나가 방패를 들고 나서려다, 다미의 눈짓에 멈췄다.
그 순간 셔터 안쪽에서 세 번, 쉬고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팀원들은 무기를 들었다. 정우는 잠금쇠에 손을 얹고, 오르그가 약속한 신호라며 모두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잠시 뒤 두 번의 발굽 소리가 응답했다. 적어도 안쪽은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걸 믿으라고요?” 팀장이 물었다.
“믿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확인된 사실을 말한 겁니다.”
정우는 출입 기록과 교대 합의서를 보여 줬다. 기록에는 센서가 꺼진 구간도 표시돼 있었다. 정상 작동한 것처럼 꾸미지 않았다는 점을 다미가 보충했다. 팀장은 서류를 읽지 않고 장비 회수 책임을 물었다. 다미는 통신기만 먼저 가져오고 방패는 포기하기로 한 결정을 설명했다. 그는 손실 비용을 누가 낼 거냐고 따졌다.
“제가 이의 신청을 하겠습니다.” 다미가 말했다.
“승급 심사에 남을 텐데?”
“그건 제가 감당할 일입니다.”
팀장은 그녀의 말을 비웃으며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정우는 셔터를 열지 않은 채 비상 차단 손잡이를 내렸다. 경보음이 울리고, 문 바깥의 출입 단말기가 잠겼다. 이 조치는 내부 문을 열 수 없게 만들지만, 누군가 강제로 들어가는 것도 막는다. 문제는 던전 환기팬까지 멈출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정우는 손잡이를 계속 잡고 화면의 압력 수치를 지켜봤다.
“30초 안에 해제해야 합니다.” 다미가 말했다.
팀장은 더 이상 밀고 들어오지 않았다. 다미가 본부에 전화를 걸어 승인을 받는 동안, 정우는 압력 값이 떨어지는지 숫자를 불렀다. 12초 뒤 수치는 안정됐다. 던전 안쪽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지만, 환기 경고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우는 손잡이를 풀었다. 출입 단말기가 다시 켜졌다.
그 작은 충돌로도 다미의 손등이 긁혔다. 그녀는 괜찮다고 했지만, 정우는 응급 가방에서 소독제를 꺼냈다. 다미는 상처를 닦는 동안에도 팀원들에게 무기를 내리라고 말했다. 팀장도 마침내 한 걸음 물러났다. 본부의 지시가 올 때까지 대기하겠다는 뜻이었다.
정우는 근무표를 펼쳐 자신의 이름을 보여 줬다. 사고 날짜에도 이름은 있었지만, 당시 퇴근 시각과 재입장 기록은 서로 맞지 않았다. 다미는 기억을 억지로 떠올리지 말라고 했다. “기억이 돌아오면 그걸로 기록의 빈칸을 채우고 싶어질 거예요.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는 동안은 둘 다 남겨야 해요.”
정우는 네 가지 확인 항목을 적었다. CCTV 원본, 카드 인증 기록, 야간 작업 일지, 외주 직원 급여 기록. 그것들이 남아 있다면 이름 없는 사망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오르그는 이름을 묻지 말고 먼저 물과 휴게 시간을 지켜 달라고 했다. 정우는 물통 요청 번호를 보여 줬지만, 오르그는 번호가 물을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다미는 아침 근무자와 직접 보급창고에 가겠다고 약속했다.
오르그의 말이 끝나자 콘솔의 확인 버튼이 붉게 깜빡였다. 정우는 누르지 않았다. 대신 근무표 아래에 손으로 빈칸을 하나 더 그었다. “그날 문을 열어 달라고 한 사람이 나였는지는 아직 몰라요. 하지만 문 앞에 누군가 있었다는 말은 남기겠습니다.”
팀장은 실적 손실 보고서를 들고 현장을 떠났다. 다미는 그가 사라진 뒤에야 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손등의 상처에서 피가 다시 배어났다. 정우는 응급 가방을 건넸고,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소독제를 받아 들었다. 오르그는 물통을 들고 휴게 구역으로 돌아갔다. 그 통은 비어 있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정우는 새 근무표에 자기 이름과 오르그의 서명을 나란히 적었다. 시스템은 두 이름을 읽지 못하고 ‘야간 근무자 2명, 확인 보류’라고 표시했다. 정우는 화면을 끄지 않았다. 보류라는 상태가 처음으로 누군가의 자리를 지켜 주고 있었다.
출입구 바깥에서 카드 단말기가 한 번 울렸다. 로그에는 입장 기록이 생겼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우는 문을 열지 않고 인터폰을 들었다.
“누구십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젊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이번엔 제 이름부터 적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