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스킬만 모아 공략 지도를 그립니다

3화: 돌아오는 길에 찍은 표식
소진은 지도를 접지 않았다.
돌아갈 길이 막힌 뒤에도 그들은 한동안 문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안쪽 통로에서 날아든 먼지는 멈췄다가 다시 흘렀다. 던전의 공기 흐름이 바뀌고 있었다. 임소진은 감지창이 돌아오기까지 남은 시간을 셌다. 1분 18초. 그 사이에 새 통로를 골라야 했다.
“아까 만든 표식대로 돌아가면 되잖아.” 파티장 한찬우가 말했다.
“표식은 입구 쪽에 있어요. 마지막 통로가 막혔습니다.”
“그럼 새 길을 찾으면 되지.”
“찾을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찬우는 반박하려다 말았다. 뒤쪽에서 바위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들은 철사가 연결된 문을 열지 않고, 공기 흐름이 들어오는 통풍구를 확인했다. 구멍은 사람 하나가 지나가기엔 좁았지만, 바람은 들어갔다가 더 낮은 쪽에서 빠져나왔다.
민재는 손바닥을 펴고 바람을 보냈다. 먼지는 구멍 안으로 들어가 오른쪽 아래로 떨어졌다. 예림은 남은 빛을 아끼기 위해 켜지 않았다. 기훈은 방패를 벽에 붙이고 손가락으로 공명을 확인했다. 통풍구 뒤쪽은 빈 공간이었지만, 벽 두께가 얇지는 않았다.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출구는 아닙니다.” 기훈이 말했다. “안쪽 방의 환기 통로일 거예요.”
소진은 지도에 추정 통로를 점선으로 그렸다. 감지창이 켜지는 순간 벽의 윤곽을 볼 수 있지만, 그 시간까지 기다리면 뒤쪽 길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었다. 그녀는 찬우에게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맡겼다. 이번에는 자신이 지도를 근거로 결정해 주지 않았다.
찬우는 통풍구 아래 바닥에 남은 돌가루를 살폈다. “방패로 벽을 뜯을 수는 있어. 하지만 무너지면 더 막힐 거야.”
“확인된 약한 곳은요?”
“없어. 두드려 봐도 빈 소리가 일정하지 않아.”
“그럼 그 벽은 통과로 표시하지 않을게요.”
그 말에 찬우는 지도를 받아 들었다. 그는 돌아갈 길을 빨리 찾으라고 소리치던 사람에게서, 이제 어느 위험을 감수할지 함께 정하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바닥이 다시 울렸다. 먼지가 위로 떠올랐다. 민재의 바람이 아니라, 뒤쪽에서 강하게 밀려오는 압력이었다. 그들은 좁은 벽감 안으로 몸을 피했다. 돌 조각이 통로를 쓸고 지나가며 지도 일부를 찢었다. 소진은 종이를 움켜쥐었고, 예림은 빛을 켜려다 손을 내렸다. 불빛이 생기면 벽감 밖의 그림자에게 위치를 알려 줄 수 있었다.
잠깐의 정적 뒤, 바닥에서 발톱 긁는 소리가 들렸다. 보스인지 작은 몬스터인지 알 수 없었다. 기훈은 방패를 세우고, 민재는 손바닥에 힘을 모았다. 소진은 감지창이 켜질 때까지 남은 초를 세었다.
그림자가 벽감 입구를 지나갔다. 숨소리는 없었지만, 통로의 먼지가 바닥에 가라앉지 않았다. 바람을 일으키는 몸체가 지나간 듯했다. 민재가 바람을 쓰면 상대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손을 움켜쥐고 기다렸다.
감지창이 다시 열리자 소진은 즉시 능력을 켰다. 윤곽은 11초 동안만 보였다. 벽감 앞 통로와 오른쪽 아래 공간이 이어져 있었다. 왼쪽은 막혔고, 뒤쪽에는 큰 덩어리가 천천히 움직였다. 감지창은 몬스터의 형체를 보여 주지 않았다. 다만 구조물과 움직이는 부피가 겹치는 위치를 알려 줬다.
소진은 지도를 펼쳐 오른쪽 아래 길을 그었다. “저쪽으로 가면 얕은 빈 공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출구인지는 몰라요.”
“그럼 가 보자.” 찬우가 말했다.
파티는 줄을 다시 연결했다. 민재는 바람을 쓰지 않고, 바닥의 먼지가 흐르는 방향을 눈으로 따라갔다. 예림은 빛을 한 번 켜고 통로 아래를 확인한 뒤 바로 끄기로 했다. 기훈은 반사광을 벽면에 남겨, 빛이 닿지 않아도 방향을 기억하게 했다.
첫 표식은 나예림이 만들었다. 벽에 작은 분필선을 두 개 긋고, 귀환 방향을 화살표로 표시했다. 다음은 기훈이 방패 끝으로 바닥에 짧은 홈을 냈다. 민재는 가벼운 먼지를 한쪽 모서리에 모았다. 같은 표식이 겹치지 않도록 각자 다른 위치에 남겼다.
소진은 표식 옆에 시각과 감지창 사용 시각을 적었다. 지도에 적은 길의 폭은 실제보다 좁을 수 있었다. 그녀는 ‘추정’ 표시를 지우지 않았다.
통로 아래 빈 공간은 작은 방으로 이어졌다. 한쪽에는 낡은 배낭과 반쯤 찢긴 지도, 말라붙은 음식이 놓여 있었다. 오래전 탐사대가 머문 흔적이었다. 소진은 지도에서 같은 점 세 개를 발견했다. 낡은 종이의 표식과 지금 자신들이 만든 표식이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이전 탐사대가 여기까지 왔나 봐.” 민재가 말했다.
“출구를 찾았는지는 몰라요.”
소진은 배낭을 열지 않았다. 안에는 작은 붉은 띠가 걸려 있었고, 바닥에는 발자국이 하나만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 혼자 나갔을 수도, 다른 길로 옮겨 갔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이 방을 ‘안전지대’로 표시하지 않고 ‘잠시 머문 흔적’이라고 적었다.
찬우는 배낭 속에서 금속 통을 꺼내려다 멈췄다. “먹을 물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되잖아.”
“봉인 상태를 몰라요. 내용물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통을 내려놓았다. “네가 괜찮다고 하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네.”
“아니요. 제가 모르는 것들을 표시하는 거예요.”
그때 방 한쪽 돌벽에서 두 번의 두드림이 들렸다. 파티원들은 모두 멈췄다. 신호일 수도, 돌이 부딪히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두 번, 다시 두 번. 벽 너머에 누군가 있었다.
소진은 답을 하기 전에 주변 구조를 살폈다. 작은 방의 바닥은 안정적이었지만, 벽 뒤 통로는 확인되지 않았다. 기훈이 방패를 두드리자 벽 안쪽에서 같은 울림이 돌아왔다. 누군가 방패 소리를 흉내 낸 것일 수도 있었다.
“사람이면 구조 신호일까요?” 예림이 속삭였다.
“모르겠어요. 우리가 먼저 들어가진 않겠습니다.”
소진은 표식을 세 번 남기고,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민재는 바람을 벽 쪽으로 보내 작은 먼지를 움직였다. 먼지는 벽의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쪽 공간이 이어져 있다는 단서였지만,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 다시 두드림이 들렸다. 이번에는 세 번이었다. 소진은 자신들이 정한 철수 삼신호가 아니라고 확인했다. 누군가 두드린 횟수에 의미를 두고 싶었지만, 아직 서로의 신호를 공유하지 않은 상태였다.
뒤쪽에서 보스의 발톱 소리가 가까워졌다. 파티는 머물 수 없었다. 찬우는 구조 신호를 무시하고 출구를 찾을지, 위험을 감수해 벽 너머를 확인할지 골라야 했다. 그는 한참 고민하다 말했다.
“벽은 건드리지 않는다.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길부터 만든다. 구조 요청이 확인되면 그때 다시 판단하자.”
소진은 지도에 ‘벽 너머 두드림, 주체 미확인’을 기록했다. 돌아오는 길에 이 지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화살표를 남겼다. 파티는 낡은 방을 지나 얕은 경사로 향했다. 뒤에서 발소리가 멈추고, 앞쪽에서 찬 공기가 흘러왔다.
그들은 돌아오는 표식을 따라 처음의 갈림길까지 이동했다. 입구로 향하는 길은 완전히 닫혔지만, 경사로 끝에 밝은 틈이 있었다. 예림은 남은 빛을 쓰지 않았다. 자연광이 들어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민재가 먼지를 손끝으로 날렸다.
먼지는 밝은 틈 쪽으로 흘러갔다. 출구일 수도 있지만, 바람길이 바깥으로 연결된다는 뜻만 알 수 있었다. 소진은 그 지점을 지도에 표시하고, 바닥에 세 번째 표식을 남겼다.
그때 안쪽 방에서 누군가 벽을 세 번 두드렸다. 파티원들은 모두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소진은 시간을 적었다. 다음에는 그 소리가 정말 사람의 신호인지, 그리고 벽 너머에 있는 사람이 지금도 살아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밝은 틈은 바깥으로 이어졌을지 몰랐지만, 파티는 그 길을 즉시 출구라고 부르지 않았다. 찬우는 세 번째 표식 앞에 섰다. 그는 경사로를 내려와 낡은 방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정했다. “사람이 있다면 확인하고 나가자. 다만 벽을 깨지는 않는다. 안전한 틈을 찾지 못하면 구조 신호를 남기고 후퇴한다.”
소진은 돌아갈 동선을 지도에 다시 그렸다. 보스의 발소리가 멀어진 시각과 자신들이 만든 표식 위치를 연결했다. 민재가 낮은 바람을 보내자 먼지가 이전과 반대로 움직였다. 던전의 기류가 바뀌고 있었다. 예림은 빛을 사용하지 않고, 기훈은 방패로 좁은 벽의 울림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벽 안쪽에서 작은 기침 소리가 났다.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기훈이 말했다.
그들은 벽 아래로 난 배수 틈을 찾았다. 어깨 하나가 겨우 통과할 크기였다. 예림은 손전등을 한 번 켜고 틈 안쪽을 비췄다. 낡은 지도 조각과 사람의 팔이 보였다. 팔은 움직였지만, 손목에 붉은 끈이 감겨 있었다.
“제 목소리가 들리면 손가락을 움직여 주세요.” 소진이 말했다.
안쪽에서 손가락 두 개가 움직였다. 탐사자는 살아 있었다. 그는 이름을 말했지만 목소리가 작았다. 소진은 던전 구조가 움직일 때 벽과 배수 통로 사이에 끼었다고 들었다. 그를 끌어내려면 돌을 무너뜨리지 않고 틈을 넓혀야 했다.
기훈은 방패를 벽에 대고 흔들림을 막았다. 민재가 바람을 낮게 보내 먼지를 걷어 냈고, 예림은 남은 배터리를 써서 균열 위치를 비췄다. 소진은 감지창을 쓸 수 없었기에 손으로 틈을 재고, 돌의 무게가 실리지 않는 구간을 지도에 표시했다. 네 사람은 각자 신호를 확인한 뒤 하나씩 작은 돌만 빼냈다.
탐사자는 무릎을 다쳤고 혼자 기어 나올 수 없었다. 기훈이 방패를 낮게 밀어 받침을 만들고, 찬우가 팔을 잡았다. 소진은 줄이 팽팽해지는 순간 멈추라고 외쳤다. 한 번에 당기면 다리의 상처가 벌어질 수 있었다. 그들은 숨을 맞춰 세 번에 나눠 그를 끌어냈다.
그는 자신의 파티가 더 깊이 갔다고 말했다. 소진은 출구 위치를 묻지 않았다. 먼저 부상자의 다리를 고정하고, 물과 응급 붕대를 나눴다. 그가 들고 있던 지도에는 출구가 반대로 표시되어 있었다. 누군가 잘못 그린 선을 따라가다 혼자 떨어진 것이었다.
“이 표식은 당신이 남겼습니까?” 소진이 낡은 종이를 보여 줬다.
탐사자는 ‘빛이 돌아오면 오른쪽’이라는 문장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지도에 출구를 그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은 예전 지도가 거짓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누가 바꿨는지는 몰랐지만, 소진은 이제 그 표식을 따라가지 않을 근거를 얻었다.
그들은 구조 신호를 반복하지 않고, 정해 둔 세 신호로 후퇴를 시작했다. 빛 한 번, 방패로 벽 두 번, 지도 접기 한 번. 부상자를 줄에 연결하고 표식을 따라 밝은 틈까지 이동했다. 틈 바깥에서 구조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상자는 구조대에 인계됐다. 소진의 파티는 보스가 있는 곳까지 가지 못했다. 대신 탐사자 한 명을 데리고 돌아왔고, 덫과 불확실한 통로, 잘못된 출구 표식이 어디 있는지 남겼다.
구조대가 지도 사본을 요구했을 때, 찬우가 먼저 건넸다. 그는 이름을 적는 대신 ‘F급 파티 임시 기록’이라고 썼다. 소진은 그 아래에 확인되지 않은 길은 안전로가 아니라는 문장을 덧붙였다.
그때 구조대원이 부상자에게서 다른 탐사대의 호출 신호가 들렸다고 말했다. 소진은 방금 그들이 지나온 던전 안쪽을 바라봤다. 지도에는 아직 그 신호가 울린 위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