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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방 막내의 역적 명단1화

활자방 막내의 역적 명단

활자방 막내의 역적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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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달라지는 이름의 활자

첫 장에는 남경수라고 찍혔다. 둘째 장에는 도연승. 셋째 장을 들어 올린 서필준은 종이를 내려놓지 못했다. 먹이 덜 마른 세 글자가 그의 손 아래에서 번졌다. 서도경.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같은 활자를 세 번 눌렀다. 나무틀의 배열은 바꾸지 않았고 먹을 묻힌 솔도 그대로였다. 종이만 새로 올렸다. 이름이 달라질 이유가 없었다. 필준은 손가락에 붙은 먹으로 활자의 모서리를 덮지 않으려 젖은 천을 먼저 찾았다. 닦는 동안 어깨 너머에서 인쇄방 책임자 송묵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 장 다 찍었으면 건조대에 올려라.”

필준은 아버지 이름이 나온 셋째 장을 맨 아래에 넣었다. 숨기는 행동이 너무 빨랐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이미 종이가 겹쳐졌다. 송묵이 다가와 묶음의 모서리를 잡았다. 굳은 손목 때문에 엄지로만 장을 넘겼다.

“먹이 겹치면 못 쓴다.”

“마지막 이름의 먹이 진합니다.”

송묵의 손이 마지막 장에 닿기 전에 필준이 종이를 다시 나눴다. 세 장을 건조대의 먼 자리에 걸고 얇은 바람막이를 내렸다. 그 종이들은 왕명으로 찍는 대조본이었다. 금서를 식별하려면 금서의 글을 알아야 한다며 압수한 책을 다시 인쇄하는 일. 이름 목록이 왜 금서의 마지막 장에 붙었는지는 누구도 막내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송묵은 활자틀을 보더니 나무덮개를 닫았다.

“오늘은 끝이다. 말미를 먼저 찍으라고 했으니 본문은 내일 해.”

“틀을 닦지 않습니까?”

“닦으면 글자 사이가 벌어진다. 그대로 둬.”

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은 목제 활자가 물을 먹어 부푸는 것을 누구보다 경계했다. 오늘 닦지 말라는 말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묻지 말라는 뜻도 있었다. 필준은 벽에 걸린 인쇄 수량판에 세 장이라고 적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는 건조대에서 셋째 장을 다시 확인했다. 서도경의 이름 옆에는 넷째라는 표시가 있었다. 남경수 옆은 둘째, 도연승 옆은 셋째였다. 세 사람을 역적으로 분류한 번호라면 첫째가 없었다. 아버지가 명단의 맨 앞에 선 것도 아니었다.

필준은 종이를 훔치지 않았다. 종이가 없어지면 길복부터 문초를 받았다. 운반 견습은 아침마다 묶음을 세었고 수량이 틀리면 자신이 잃었다고 답했다. 필준은 종이의 작은 모서리에 자신의 손톱으로 점을 눌러 두고 작업대로 돌아갔다.

덮개 아래의 활자틀에는 여전히 세 글자 공간만 있었다. 남경수, 도연승, 서도경은 같은 자획이 거의 없었다. 획이 번져 다른 이름으로 보인 것도 아니었다. 필준은 틀을 빛 쪽으로 기울였다. 다른 활자보다 높이가 낮은 나무 조각이 하나 있었다. 옆면에 얇은 틈이 두 줄 났다.

그는 손톱을 틈에 넣지 않았다. 힘을 주면 자국을 남겼다. 대신 종이 끈을 얇게 찢어 틈을 따라 넣었다. 나무 안쪽에 빈 공간이 있었다. 끈이 쑥 들어갔다가 무언가에 막혔다. 필준이 모서리를 눌렀을 때 작은 소리가 났다.

딸깍.

활자 얼굴이 아주 조금 돌아갔다. 표면에 보이던 글자는 역으로 새겨진 ‘남’의 첫 획이었다. 그 획이 안으로 들어가고 다른 나무 조각이 올라왔다. 필준은 숨을 고르고 먹을 묻히지 않은 종이 조각을 덮었다. 손가락으로 눌러 빛에 비추자 도연승이라는 압흔이 남았다.

“막내. 문 닫는다.”

길복이 문밖에서 불렀다. 필준은 종이 조각을 손등에 접어 감추고 덮개를 닫았다. 누가 활자 속에 사람 이름을 넣었는지, 왜 스승이 그 틀을 닦지 못하게 했는지 머릿속에서 돌았다. 하지만 아버지 이름이 나왔다는 사실이 다른 질문을 자꾸 덮었다.

길복은 종이 묶음 세 개를 등에 메고 있었다. 내일 관청으로 옮길 종이였는데 미리 자루에 넣어 두는 중이었다. 필준이 하나를 들어 주자 생각보다 무거웠다.

“백 장짜리잖아.”

“이번엔 백한 장입니다. 수량표에 그렇게 적혔어요.”

필준은 표를 봤다. 본문 백 장에 별도 한 장. 그 한 장은 인쇄할 내용이 적히지 않았다. 종이를 찢어 검사할 권한은 막내에게 없었다. 그는 묶음의 굵기를 손으로 기억하고 길복을 내보냈다.

활자방 문이 닫힌 뒤 골목에는 종이 장수의 수레만 남았다. 배소진은 젖은 종이 뭉치를 햇볕에 말리듯 들어 올리고 있었다. 날은 이미 어두웠다. 종이를 말리는 것이 아니라 거리의 등불에 비춰 결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송 장인 안에 계셔?”

“안 계십니다.”

필준이 답했다. 소진은 그의 먹 묻은 손을 봤다.

“틀 닦지도 않고 보냈나 보네. 손에 먹이 굳었어.”

그녀가 젖은 천을 내밀었다. 필준은 천을 받아 손가락을 닦았다. 숨겨 둔 압흔 종이가 손등에서 떨어졌다. 그는 급히 주웠지만 소진이 먼저 글씨를 봤다. 먹이 없는데도 등불 아래에서 이름의 자획이 드러났다.

“그건 왜 백장에 찍었어?”

“시험했습니다.”

“먹이 안 맞아서?”

필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진은 종이를 빼앗지 않고 등불 가까이 들어 보라고 했다. 필준이 높이 들자 세 글자 바깥에 작은 원이 보였다. 활자의 틀이 종이에 남긴 자국이었다. 원의 오른쪽 아래에 틈 같은 선이 하나 더 있었다.

“상자 활자네.”

“아십니까?”

“송 장인이 옛날에 시험하던 것. 안에 작은 조각을 넣어서 같은 틀에 다른 자획을 쓰는 방식이라던데. 종이를 많이 쓰고 사람도 헷갈리게 해서 버렸어.”

필준은 활자가 마술이 아님을 알았다. 누군가가 세 이름을 미리 새겨 넣었다. 그 사실이 마음을 놓이게 하기보다 더 무섭게 했다. 아버지의 이름이 나올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활자는 누가 주문합니까?”

“도장 모양을 바꾸고 싶은 상인이나, 외부 사람이 읽으면 안 되는 주문서 만드는 사람. 관영 방에서 쓸 물건은 아니지.”

소진은 자신의 수레에서 백 장 묶음 하나를 꺼냈다. 관청에 납품한 것과 같은 종이였다. 필준이 묶음이 하나 남았다며 백한 장을 요구받았다는 말을 하자 그녀의 손이 멎었다.

“난 백 장씩 보냈어. 별도 한 장은 주문이 없었는데.”

길복의 등에 있던 한 장이 새롭게 무거워졌다. 필준은 내일 어떤 묶음을 먼저 보내는지 알고 싶었다. 소진은 관청이 지급한 수령표를 펼쳤다. 수령자는 류정서. 검열관의 이름이었다. 아버지를 데려간 명에도 같은 이름이 있었다.

그가 표를 너무 오래 보는 바람에 소진이 물었다.

“찾는 사람이 있어?”

“제 아버지가 금서를 숨겼다고 잡혀갔습니다.”

“이름이?”

“서도경.”

소진은 압흔 종이를 다시 봤다. 다른 이름도 보았는지 물었다. 필준은 남경수와 도연승을 말했다. 소진은 남경수가 자기 종이를 사 가던 제본공이라고 했다. 얼마 전 관청이 그의 가게를 봉했다. 도연승은 이름이 낯설지만 그와 비슷한 이름으로 수신표가 온 적이 있었다.

“역적들이었습니까?”

“종이를 산 사람이 다 역적이면 나도 역적이지.”

그녀의 말에 필준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무죄를 밝히려 명단의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려고 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찍힌 까닭이 죄 때문이라고 정해 놓는 순간 누군가가 만든 판본을 그대로 믿는 셈이었다.

소진은 압흔 종이를 가져가도 되느냐고 묻지 않았다. 등불 아래에서 자기가 본 자국을 작은 종이에 베껴 필준에게 함께 돌려줬다. 원과 옆면 틈의 위치까지 적었다.

“내일 같은 종이인지 먼저 봐. 결이 달라지면 누가 한 장을 넣은 건지 찾을 수 있어.”

필준은 종이를 품에 넣었다. 다시 활자방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문빗장이 잠겨 있었다. 송묵은 안쪽 숙소에서 잠들고 있을 터였다. 열쇠를 달라고 하면 이유를 말해야 했다. 그는 밤을 기다리는 대신 아버지가 일하던 제본소로 향했다.

제본소 문에는 관청의 봉인이 붙었다. 안에 있던 책들은 모두 가져갔고 벽에 남은 실가위 하나만 달빛을 받았다. 필준은 봉인을 떼지 않았다. 창호가 찢긴 구멍으로 작업대가 보였다. 아버지가 종이를 묶을 때마다 눌러 두던 번호표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둘째, 셋째, 넷째. 방금 본 명단의 순서와 같았다.

그는 바닥을 더 보려고 몸을 숙였다. 번호표 옆에 ‘되돌림’이라는 글자가 적힌 끈이 있었다. 압수한 책을 다시 맡기는 표시였다. 아버지는 숨긴 책이 아니라 돌려줄 책을 묶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골목 입구에서 등이 다가왔다. 필준은 담장 그림자로 물러났다. 류정서가 군사 하나와 제본소 앞에 섰다. 검열관은 봉인을 확인하고 창문을 보았다. 그의 손에는 얇은 나무판이 들려 있었다. 필준의 아버지 죄목을 찍은 판인지 알 수 없었다.

“빠진 장이 하나 있다.”

류정서가 군사에게 말했다.

“필사한 죄목입니까?”

“아니다.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장이다.”

필준은 품에 든 압흔 종이를 꽉 눌렀다. 검열관이 찾는 것은 글이 있는 금서가 아니었다. 백한 번째 빈 종이였다. 그는 두 사람이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숨을 고르게 쉬었다. 종이를 빛에 비추는 법을 알려 준 소진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아무것도 찍히지 않아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필준은 손톱 밑의 먹을 더 닦지 않았다. 내일 같은 틀을 다시 누를 때 어느 모서리에 힘이 실렸는지 비교하려면, 손끝에 남은 방향부터 기억해야 했다.

활자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필준은 압흔 종이 뒷면에 작은 표를 그렸다. 세 이름, 세 방향, 세 번호. 아버지 이름 옆의 넷째 앞에 아직 모르는 첫째 칸을 남겼다. 그 칸에 죄인이라고 적지 않았다. 누구인지 모른다는 말만 적고 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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