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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가 된 천재 의사1화

네크로맨서가 된 천재 의사

네크로맨서가 된 천재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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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사망 선고는 아직이다

심전도 모니터의 경고음이 귓가를 찢었다.

“혈압 60에 40! 심실세동입니다!”

“제세동기 충전 200줄. 모두 물러서세요. 샷!”

쿵 하는 둔탁한 충격과 함께 환자의 흉곽이 튀어 올랐다. 매캐한 연기와 피비린내 속에서 도윤은 이를 악물며 가슴을 압박했다. 대형 복합 상가 붕괴 현장에 마련된 임시 응급진료소였다. 천장이 다시 흔들리고 콘크리트 파편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선생님! 2차 붕괴입니다! 어서 피해야 합니다!”

“환자 맥박 아직 안 돌아왔어! 에피네프린 1밀리그램 더 줘!”

손바닥 아래로 전해지던 가느다란 파동. 꺼져가던 심장이 아주 미약하게 박동을 재개하던 바로 그 순간 굉음과 함께 시야가 새하얗게 지워졌다.

그리고 지독한 냉기가 온몸을 덮쳤다.


서도윤은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공기는 소독약이나 알코올 냄새가 아니었다. 눅눅한 곰팡이와 쇠 녹 냄새 그리고 지독하게 씁쓸한 마른 약초 냄새였다.

‘살아 있는 건가?’

도윤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손을 움직였다. 다섯 손가락이 정확하게 오므라들었다. 손가락 끝의 감각과 관절의 반응 속도는 정상이었다.

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딱딱하고 차가운 돌바닥이었다. 입고 있는 옷은 방수 수술 가운이 아니라 거친 삼베 셔츠와 두꺼운 가죽 앞치마였다. 팔뚝은 평소보다 약간 가늘었지만 수술칼을 쥐던 굳은살의 감각만은 손바닥에 뚜렷이 박혀 있었다.

시선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면은 거칠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천장 구석의 좁은 철창 틈으로 희뿌연 새벽빛이 한 줄기 쏟아져 내렸다. 바닥에는 핏물을 흘려보내는 배수 홈이 파여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두 개의 커다란 석재 해부대가 놓여 있었다.

벽면 선반에는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도구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형태는 투박하지만 분명 외과용 메스, 뼈를 자르는 톱, 구부러진 봉합 바늘과 굵은 실 그리고 피를 닦아내는 겸자였다.

‘병원이 아니다. 응급실도 재난 본부도 아니야.’

그렇다면 이곳은 어디인가. 낯선 시체안치실이었다.

도윤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머릿속이 쪼개질 듯 아팠지만 직업적인 본능이 의식을 지배했다. 응급의학과 외상외과에서 십 년 넘게 굴러먹은 의사에게 낯선 공간보다 중요한 것은 눈앞의 상황 판단이었다.

그의 시선이 두 개의 석재 해부대로 향했다.

좌측 해부대 위에는 낡은 군복 차림의 여성이 누워 있었다. 짧은 적갈색 머리카락에 창백하게 굳은 얼굴. 왼쪽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근육과 혈관이 심하게 찢겨 나간 참혹한 외상이었다. 상처 주변의 출혈은 이미 검게 굳어 있었고 흉곽의 미동은 전혀 없었다.

도윤은 조용히 다가가 그녀의 목동맥에 손을 얹었다.

체온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경동맥의 맥박은 영(0). 동공은 완전히 산대되어 빛에 반응하지 않았다. 임상적으로 명백한 사망 상태였다.

‘좌측 상완동맥 파열 및 대량 실혈사.’

도윤은 시신의 상처를 살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깨에서 팔로 이어지는 상처는 날카로운 도검이나 포탄 파편에 찢긴 형태였다. 그녀가 입은 군복 가슴팍에는 낡은 황동 계급장과 함께 피에 젖은 작은 가죽 수첩이 꽂혀 있었다.

도윤은 조심스럽게 수첩을 꺼냈다. 가죽 표지에는 낯선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수첩을 펼치자 핏자국 사이로 거칠게 휘갈겨 쓴 글씨가 드러났다.

‘…제7수송대 간호병 마라 벨른. 부상자 호송 중 습격. 약품 소진. 마지막 한 사람까지 지키지 못했다.’

글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호였지만 기묘하게도 머릿속에서 뜻이 명확한 문장으로 해석되어 읽혔다.

‘언어가 읽힌다고?’

이유를 곱씹을 틈도 없이 도윤의 시선이 우측 해부대에 누운 또 다른 시신으로 향했다.

그것은 중년 남성의 시신이었다. 그런데 상태가 기괴했다.

남성의 목덜미와 쇄골을 따라 하얀 균열이 나뭇가지처럼 번져 있었다. 곰팡이나 부패 변색이 아니었다. 피부 조직 자체가 마른 석고처럼 하얗게 굳어 미세하게 갈라져 있었고 그 틈새로 희미한 백색 결정이 돋아나 있었다.

도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성의 흉부를 관찰했다.

‘사후 경직의 형태가 아니다. 혈관을 따라 무기물 결정이 침착된 건가? 전염성 결핵이나 석회화 병변이라기엔 진행 양상이 너무 비정상적이야.’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성의 목 뒤쪽과 가슴골 중앙에는 검푸른 실로 꿰맨 봉합 흔적이 있었다.

외과의인 도윤의 눈에는 그 봉합이 몹시 거슬렸다. 인체의 근막 주행 방향이나 절개선을 완전히 무시한 채 오직 특정 근육과 힘줄만을 강제로 팽팽하게 묶어 놓은 기괴한 매듭이었다.

‘이건 상처를 아물게 하려는 봉합이 아니야. 인위적으로 관절을 당겨 놓으려는 결찰(Ligation)이다.’

도윤이 의아함을 품고 남성의 손목을 만지려던 찰나였다.

귓가에서 낯익은 소리가 울렸다.

쿵. 쿵. 쿵.

폭발 직전 자신이 살려냈던 환자의 심장 박동음이었다. 환각인가 싶어 숨을 멈추자 도윤의 손끝에서 기이한 감각이 일렁였다.

심장 박동의 리듬에 맞춰 도윤의 손바닥에서 푸르스름한 미광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 빛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지 않고 가느다란 실 형태가 되어 마라의 찢겨진 왼쪽 팔 상처를 향해 뻗어나갔다.

‘이게 뭐지?’

도윤이 놀라 손을 거두려는 순간 우측 해부대에서 둔탁한 파열음이 터졌다.

드드득!

석재 상판을 긁는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도윤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백색 균열이 뒤덮인 남성 시신의 손가락이 기괴하게 꺾이며 석재 모서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

죽은 자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사후 경련이라기엔 지나치게 격렬했다. 시신의 턱관절이 덜컥거리며 벌어지더니 굳어버린 성대 사이로 쇳소리 섞인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악……!

희뿌옇게 백태가 낀 시신의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남성의 가슴과 목을 뒤덮은 백색 균열에서 창백한 빛이 번쩍이더니 팽팽하게 묶여 있던 검푸른 봉합선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남성의 상체가 벌떡 일어났다.

쾅!

시신이 휘두른 팔이 해부대 옆에 놓인 금속 트레이를 후려쳤다. 쇠붙이 도구들이 바닥으로 요란하게 쏟아졌다.

도윤은 반사적으로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체온 없음. 맥박 없음. 뇌파 정지 상태의 시신이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현대의학의 상식이 정면으로 부정당하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공포보다 먼저 솟아오른 것은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는 외과의의 차가운 이성이었다.

크르르르!

시신이 해부대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균열이 번진 무릎 관절이 부자연스럽게 꺾였지만 남성은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도윤을 향해 손을 뻗으며 덮쳐왔다.

손톱 끝은 이미 석회질 결정으로 단단하게 변해 흉기나 다름없었다.

도윤은 바닥에 뒹굴던 묵직한 외과용 뼈 끌과 굵은 지혈 겸자를 낚아챘다.

시신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빠르지만 단순했다. 전신의 근육이 유기적으로 협동하는 것이 아니라 목 뒤와 가슴골에 묶인 검푸른 봉합선이 인형의 줄처럼 근육을 강제로 잡아당기며 팔다리를 휘두르고 있었다.

‘저 매듭이 운동 동력을 전달하고 있어!’

시신의 손톱이 도윤의 어깨를 스치며 가죽 앞치마를 찢었다. 묵직한 충격에 어깨가 얼얼했지만 도윤은 물러서지 않았다.

상대의 체중이 앞으로 쏠리는 틈을 타 도윤은 몸을 낮추며 시신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왼손의 지혈 겸자로 남성의 쇄골 윗부분을 강하게 틀어쥐어 자세를 무너뜨렸다. 인체 해부학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손길이었다. 뼈와 인대가 맞물리는 급소를 정확히 짚자 괴성을 지르던 시신의 목이 순간적으로 뒤로 젖혀졌다.

목덜미의 검푸른 매듭이 훤히 드러났다.

그 매듭 주위로 백색 결정이 파열하듯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망한 환자는 수술대 위에 얌전히 누워 있어야지.”

도윤은 낮게 읊조리며 오른손에 쥔 뼈 끌의 날을 매듭 한가운데에 정확히 박아 넣었다.

짜악!

섬유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검푸른 실밥이 터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도윤은 손목을 비틀어 매듭 밑으로 얽혀 있던 비정상적인 신경삭과 운동 건 다발을 단번에 절제해 버렸다.

파지지직!

공기를 태우는 듯한 섬광이 튀더니 시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창백한 빛이 일순간 사그라들었다.

동력을 잃은 시신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쿵.

남성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시신의 백색 균열은 빛을 잃고 평범한 석고 같은 질감으로 가라앉았다.

안치실 안에 도윤의 거친 숨소리만이 고요하게 맴돌았다.

도윤은 피와 땀이 뒤섞인 이마를 훔치며 쓰러진 남성을 내려다보았다.

시신의 목 뒤에서 흘러나온 것은 붉은 피가 아니라 탁한 잿빛 액체였다. 그리고 그가 잘라낸 검푸른 봉합선 끝자락은 마치 살아 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다 완전히 재가 되어 바스러졌다.

‘근육을 조종하는 봉합. 그리고 뼈처럼 굳어가는 백색 결정…….’

도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남성의 목 뒤를 절제할 때 손끝을 타고 흐르던 낯선 에너지. 그것은 전기나 화학 물질이 아니었다. 몸 안쪽에서부터 솟구쳐 나오는 명백한 ‘마력’의 흐름이었다.

그는 천천히 마라의 시신이 누워 있는 해부대로 다가갔다.

바닥에 떨어졌던 피 묻은 가죽 수첩을 주워 들었다.

‘간호병 마라 벨른.’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도윤은 가만히 속삭였다.

“여긴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군.”

그때였다.

철컥, 덜컹!

안치실의 묵직한 참나무 문밖에서 굵은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어 비에 젖은 진흙을 짓밟는 무거운 군화 소리가 문 바로 앞까지 다가와 뚝 멈춰 섰다.

새벽의 어둠 속에서 굳게 닫힌 문틈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었다.

도윤은 손에 쥔 외과용 메스를 고쳐 잡으며 문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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