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용 꼬리를 꿰매는 재봉사

1화: 지도 밖 골목의 용
축제 전날, 연지의 공방에는 종이용이 세 마리 누워 있었다. 몸통은 푸른 한지, 뿔은 금박, 꼬리는 검붉은 물결무늬였다. 연지는 손목에 감은 실을 풀어 찢어진 꼬리 끝에 바늘을 넣었다.
“이 꼬리는 누가 밟았어요?”
배달 가방을 멘 해준이 문턱을 넘다가 멈췄다. “내가 안 밟았어. 아이가 발로 차는 건 봤고.”
“그 아이 이름은?”
“그걸 왜 물어?”
“수선비를 청구하려고.”
“축제 끝나고 장부에 올려.”
“장부에 올라갈 이름은 필요해.”
해준은 자전거 체인을 닦으며 웃었다. “진짜로 청구할 줄은 몰랐네.”
“진짜로 망가졌으니까.”
그는 찢어진 꼬리를 들여다보았다. “그 문양은 스승님이 마지막으로 만든 용에 있던 거야.”
연지는 바늘을 놓았다. 꼬리 안쪽에 아주 가는 선 하나가 겹쳐 있었다. 옥주 선생이 죽기 전까지 공방에서 숨겨 왔던 물결무늬였다.
“이게 왜 지금 용에 붙어 있어?”
“축제위원회에서 옛 용을 창고에서 꺼냈대. 보관 상태가 나빠서 수선할 사람을 찾았고, 네 공방으로 보낸 거지.”
“그럼 수선 요청서도 같이 왔어야죠.”
“요청서는 서명구 씨가 들고 있겠지. 큰길 행사에 정신없을 테니까.”
연지는 꼬리를 펼쳤다. 종이는 보통 공예용 한지가 아니었다. 물결무늬가 접힌 자리를 따라 얇은 실금이 이어졌다. 그 실금은 지도의 등고선처럼 보였다.
“이거 전에 본 적 있어?”
“옛날 용꼬리에는 도시 경계가 들어갔다고 들었어.”
“그런 얘기는 축제위원회가 어린애들한테 하는 전설이지.”
“전설이면 내 배달길이 그렇게 많이 바뀔 이유도 없었겠지.”
해준은 밖을 가리켰다. 맞은편 좁은 골목 입구에 공사용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그는 주민들이 쓰던 지름길이 막혀 오늘 배달도 늦었다고 했다. 지도에서 골목 이름은 ‘솔기길’. 어릴 때 연지는 스승을 따라 그 길로 종이를 사러 다녔다.
연지는 바늘을 다시 들었다. “꼬리 끝은 내가 맡을게. 하지만 문양은 건드리지 않을 거야.”
“그럼 찢어진 선을 어떻게 잇게?”
“비슷한 종이를 덧댈게.”
“옛 종이용은 자기 꼬리에서 나온 종이만 받아들이는대.”
“그건 네가 만든 전설이지?”
“스승님이 그랬어.”
연지는 바늘을 내려놓았다. “그 선생님은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는데, 이제 와서 뭘 물어볼 수는 없잖아.”
해준은 체인 닦기를 멈췄다. “공방을 지키고 싶다고 했잖아. 그러려면 선생님 얘기부터 덮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얘기를 꺼내면 공방까지 무너질까 봐 그래.”
그때 밖에서 축제 북소리가 났다. 종이용을 시험 비행시키려는 자원봉사자들이 골목에 모였다. 바람이 용의 종이 날개를 들어 올렸다. 꼬리가 공방 문에 걸리며 찢어진 부분이 더 벌어졌다. 연지는 재빨리 꼬리를 잡았다.
“멈춰요! 지금은 바람이 너무 세요!”
서명구가 골목 건너편에서 손을 들었다. “행렬 출발 연습만 할 겁니다. 옛 용은 대열 맨 뒤에 두면 돼요.”
“꼬리 수선이 끝나지 않았어요.”
“축제는 내일이에요. 수선은 지금 해도 되지 않습니까?”
“종이가 젖었어요. 이대로 끌면 더 찢어집니다.”
“그럼 고정핀으로 붙이세요. 큰길에는 사람도 많고, 길도 넓습니다.”
연지는 용을 놓지 않았다. “이 문양은 접힌 자리까지 수선해야 해요.”
구명구는 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전에 길을 정해야 하니까, 공방에서라도 붙잡고 계세요.”
그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출발 신호를 줬다. 바람이 용의 몸통을 끌어당겼다. 해준이 꼬리를 잡아 버티고, 연지는 바늘을 꼬리 접힌 선에 넣었다. 종이가 손끝에서 얇게 울었다. 그녀가 실을 당기자 문양 속 골목들이 살아 움직였다.
“바늘 빼!” 해준이 외쳤다.
실은 빠지지 않았다. 꼬리 안쪽 접힘이 열리며 종이 위에 없던 골목이 길게 펼쳐졌다. 공방 뒤편 담벼락이 갈라지고, 그 안으로 좁은 돌길이 나타났다. 습한 흙냄새가 올라왔다. 연지는 뒤로 물러났다.
“지도에 이런 길이 있었어?”
해준은 고개를 저었다. “없었어. 배달 지도에도, 내가 아는 우회로에도.”
돌길은 공방 안쪽에서 시작해 시장 뒤편으로 이어졌다. 골목 안에 작은 등불이 켜지고, 어디선가 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해준은 자전거를 끌고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잠깐. 아무도 들어가면 안 돼.”
“안쪽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우리가 모르는 길이야.”
“배달 손님이 기다리고 있어. 이 길이면 훨씬 빨라.”
그는 한 발을 들여놓았다. 공방 앞 솔기길의 가림막이 갑자기 안쪽으로 접혔다. 공사등이 꺼지고, 길 위에 놓인 돌판이 사라졌다. 길을 열며 다른 길 하나가 닫힌 것이었다.
“해준아, 멈춰!”
해준은 자전거를 끌어당겼다. 뒷바퀴가 열린 틈에 빠져 짐가방이 뒤집혔다. 안에 있던 약국 봉투와 국수 그릇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가 급히 주우려다 무릎을 돌바닥에 부딪쳤다.
연지는 실을 끊으려 했다. 가위날이 종이에 닿자 용의 꼬리에서 붉은 빛이 번졌다. 골목이 더 넓게 열리면서 솔기길의 돌판이 하나씩 닫혔다. 그녀는 손을 멈췄다.
“왜 안 풀려?”
“실을 자르면 종이가 찢어져.” 해준이 바닥에서 말했다. “그럼 길이 어디까지 무너질지 몰라.”
“미안해.”
“미안하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야. 오늘 약을 가져가야 할 집이 둘 있어.”
연지는 상자에서 자투리 천을 꺼내 찢어진 꼬리를 감쌌다. 해준의 짐을 자전거에 다시 실었다. “이 길을 계속 열어 두지는 않을게. 우선 사람부터 찾아서 돌아가게 하자.”
“길 안에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내가 들어갈게. 네가 밖에서 꼬리를 붙들어.”
“안쪽에서 길이 닫힐 수도 있어.”
“그럼 네가 열어 둬.”
“닫힌 길은?”
“우리가 책임져야지.”
해준은 무릎을 쓸고 일어섰다. 연지는 바늘을 쥐고 숨을 가다듬었다. 그녀가 문양의 첫 접힘을 눌렀다. 돌길 안쪽의 등불이 반짝였다. 길 끝에서 작은 용 한 마리가 나타났다. 종이로 만든 게 아니라, 종이와 같은 무늬를 가진 살아 있는 그림자였다.
그 용의 꼬리에는 옥주 선생의 바늘땀이 남아 있었다.
연지는 처음으로 스승의 죽음과 공방이 별개의 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 길을 열면 누군가의 생활길이 닫혔다. 누군가가 만든 선택을 이어받은 사람이 자신이었다.
“연지야.” 해준이 불렀다. “네가 결정해야 해.”
그녀는 바늘을 들었다. 그림자 용은 골목 안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돌길을 두드리는 소리는 공방 바깥이 아니라 새로 열린 골목 안쪽에서 들렸다. 해준이 먼저 들어가려 하자 연지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내가 바늘을 들었으니 내가 확인할게.”
“그럼 내가 같이 가.”
“네 배달이 먼저라고 했잖아.”
“약은 이미 깨졌어. 지금은 네가 다치면 더 큰일이야.”
두 사람은 종이용 꼬리에 실을 연결한 채 조심스럽게 골목으로 들어갔다. 바닥은 오래전에 비가 스며든 돌로 되어 있었고, 벽 사이마다 종이등이 걸려 있었다. 담벼락 너머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안 열려요. 누가 길을 막았어.”
해준이 벽을 살폈다. “여기가 솔기길의 반대편인가 봐.”
“짝길이면 문도 같이 닫혔겠지.” 연지는 벽에 손을 대고 접힘선을 찾았다. 종이용 문양에서 본 것과 같은 세 줄이 돌 사이에 박혀 있었다.
그녀는 가위 대신 손톱으로 실을 한 땀 풀었다. 벽의 돌 하나가 바깥으로 밀려나며 문틈이 열렸다. 안쪽에는 손수레에 절임 항아리를 가득 실은 할머니가 서 있었다. 골목이 닫히며 문 앞이 막힌 것이었다.
“어디로 가려던 길이었어요?” 해준이 물었다.
“시장에 가려 했지. 오늘 장날인데 길이 사라졌어.” 할머니는 연지를 바라봤다. “이 아가씨가 문을 열었구나.”
“네. 제가 실수했어요.”
“실수라면 고치면 돼. 다만 내 항아리 깨지면 누구한테 청구할지는 정해야겠지.”
해준이 웃음을 삼켰다. 그는 수레를 밀어 공방 쪽으로 옮겼다. 항아리 하나가 돌에 걸려 기울었지만, 연지가 어깨로 받쳐 넘어지는 걸 막았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 대신 손수레 손잡이를 꼭 쥐었다.
“이 길은 언제 다시 열려요?”
“아직 모르겠어요.”
“그럼 오늘은 시장 대신 네 공방에서 절임을 팔아야겠네.”
할머니는 실을 매단 작은 표찰을 꺼냈다. 거기엔 ‘열린 길로 배달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다. 연지는 표찰을 받지 않았다. “길이 언제 닫힐지 몰라요.”
“그러면 내가 여기 앉아서 기다릴게. 누가 길을 닫는지 보고 이야기해야지.”
할머니는 공방 안으로 손수레를 밀고 들어왔다. 공방 문턱을 넘기 전에 그녀는 항아리 하나를 꺼내 해준에게 건넸다. “깨진 그릇값 대신 먼저 먹어. 바닷물에 절인 무야.” 해준은 한 조각을 씹고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약 배달보다 더 급한 물건이네요.” 할머니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웃었다. 연지는 자신이 만든 접힘선이 사람을 가두고도 살릴 수 있다는 걸 동시에 보았다. 더 이상 길을 먼저 펼쳐 놓고 나중에 허락을 구할 수는 없었다. 내일 아침, 솔기길을 쓰는 사람들부터 모아 어느 길을 열지 물어야 했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듣는 것이 그녀가 배운 첫 번째 수선법이었다.
작은 눈이 그녀의 손목 실을 바라봤다.
“내가 고칠게.”
바람이 멎었다. 종이 꼬리 아래에서 도시의 지도 전체가 한 번 접혔다가 펴졌다. 닫힌 솔기길 방향에서, 누군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세 번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