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우리는 환승 연애가 안 됩니다4화

우리는 환승 연애가 안 됩니다

우리는 환승 연애가 안 됩니다

AD
스폰서 광고

4화: 문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유나는 휴대폰 화면을 한참 내려다봤다.

오늘 가장 궁금했던 사람은 당신이에요.

짧은 문장 하나가 이상하게 무거웠다.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데 심장은 이미 아는 사람의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

테라스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현욱이 보였다. 지아와 짧게 대화를 나누던 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실내로 들어갔다. 유나는 화면을 껐다.

“왜 확인도 안 하고 끄세요?”

지아가 난간에 기대며 물었다.

“확인했어요. 보낸 사람을 모를 뿐이지.”

“저는 아직 못 받았어요. 현욱 씨는 받았나?”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런 걸 왜 물어요?”

유나는 웃으며 계단 쪽으로 먼저 몸을 돌렸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지아가 듣고 있을 것 같았다.


현욱은 거실을 지나 복도 끝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비밀 문자실이었다. 문 안쪽에는 휴대폰을 보관하는 바구니와 전송용 태블릿이 놓여 있었다. 카메라는 천장 구석에 한 대뿐이었다.

“강현욱 씨. 문자는 한 명에게만 보내시면 됩니다.”

막내 작가가 안내하고 나갔다.

현욱은 태블릿에 뜬 이름을 내려다봤다. 정유나. 서지아. 미태준. 다른 이름들도 차례로 떠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서지아 쪽으로 가져갔다가 멈췄다.

지아에게 보내면 편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보내는 평범한 문자가 된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머릿속에는 유나가 테라스에서 휴대폰을 끄던 모습만 남아 있었다. 읽었는지 묻지 못한 얼굴이었다. 기대하지 않겠다고 애쓰는 얼굴.

현욱은 이를 악물고 정유나를 눌렀다.

문장 입력창이 떴다. 그는 몇 글자를 썼다가 지웠다. 잘 지내? 보고 싶었어? 그런 말은 보낼 자격이 없었다. 5년 동안 하지 않은 말을 익명 문자 한 통에 몰아넣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화면에 남은 문장은 짧았다.

오늘 가장 궁금했던 사람은 당신이에요.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손끝이 굳었다. 태블릿에서 전송 완료 알림이 떴다.

현욱은 화면을 뒤집듯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방을 나섰다.

거실에 돌아오자 지아가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문자 보내고 오셨어요?”

“네.”

“누구한테 보냈는데요?”

현욱은 유나가 있는 테라스 쪽을 보지 않았다.

“아직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럼 제가 맞혀 볼게요.”

지아가 웃었다. 현욱은 그 웃음에 맞춰 입꼬리만 올렸다. 하지만 손목시계에 닿은 손가락이 두 번 움직였다.

멀리서 그걸 본 유나의 표정이 굳었다.


다음 날 아침 식탁에는 익명 문자가 남긴 긴장이 묘하게 떠 있었다. 태준은 프라이팬 앞에서 계란을 뒤집었고 지아는 커피를 내렸다. 유나는 접시 위 토스트를 반으로 자르면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다들 문자 받으셨어요?”

지아가 물었다.

“저는 받았어요.”

태준이 손을 들었다.

“저도요.”

유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받았어요.”

현욱은 물컵을 들었다. 아무 표정도 하지 않으려는 얼굴이 오히려 너무 단정했다.

지아가 그를 쳐다봤다.

“현욱 씨는요?”

“받았습니다.”

“누구한테 보냈는지는 말해도 되잖아요. 저는 현욱 씨가 저한테 보냈을 것 같은데.”

지아는 장난처럼 말했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현욱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웃었다.

“맞아요. 지아 씨한테 보냈습니다.”

유나의 칼끝이 접시에 닿았다. 작은 소리가 식탁 위에 선명하게 울렸다.

현욱이 유나를 보았다. 단 한 번이었다. 그 짧은 시선이 더 화가 났다.

“유나 씨는 누구한테 받았어요?”

태준이 물었다.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모르죠. 익명이니까요.”

“문자 내용은 마음에 들었어요?”

“문자 한 통에 마음을 내주면 바보죠.”

“그럼 다행이네요. 저는 단순한 편이라서.”

태준이 계란을 유나의 접시에 올렸다. 유나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깐 고민하다가 포크를 들었다.

“맛있네요.”

“다행입니다. 다음에는 유나 씨가 좋아하는 걸로 해 드릴게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아세요?”

“알아 가면 되죠.”

태준의 대답은 가벼웠지만 정확했다. 유나는 오랜만에 현욱을 의식하지 않고 웃을 뻔했다.

현욱은 물컵을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소리가 조금 컸다.

지아가 재빨리 그쪽을 보았다.

“현욱 씨는 문자 내용 마음에 들었어요?”

“괜찮았습니다.”

“누가 보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궁금하니까 보낸 거죠.”

유나는 고개를 들었다. 현욱은 지아를 보고 있었다.

그 말이 자신에게 보낸 문자의 답처럼 들려서 싫었다. 동시에 정말 자신에게 한 말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서 더 싫었다.

도윤 PD가 식탁 옆으로 다가왔다.

“좋습니다. 다들 문자를 잘 활용하고 계시네요. 오전 촬영은 간단한 취향 카드로 진행하겠습니다.”

“취향 카드요?”

태준이 물었다.

“상대가 긴장할 때 하는 행동, 아침에 제일 먼저 찾는 것, 피하는 음료. 서로 관찰한 내용을 적고 맞혀 보는 미션입니다.”

현욱의 시선이 유나의 컵으로 향했다. 유나는 그 눈을 보고 컵을 뒤로 밀었다.


거실 벽면에 네 사람의 이름이 붙은 카드가 차례로 놓였다. 제작진은 각자 마음에 드는 상대를 한 명 골라 카드 세 장을 작성하라고 했다.

태준은 유나의 이름 앞에 앉았다.

“제가 유나 씨를 골라도 되죠?”

“왜요. 벌써 관찰할 게 많았어요?”

“토스트를 자르는 방향이 일정하던데요. 일할 때도 뭔가를 반듯하게 맞추는 편이죠?”

유나는 눈을 크게 떴다. 태준은 사람을 편하게 만들면서도 꽤 자세히 보는 사람이었다.

“그건 관찰이라기보다 직업병이에요.”

“그럼 첫 번째는 맞혔네요.”

맞은 게 없는데도 태준은 웃었다. 유나는 오랜만에 현욱을 의식하지 않고 웃을 뻔했다.

맞은편에서는 지아가 현욱의 카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현욱 씨는 제가 뭘 싫어하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저 아까부터 단 음료 안 마셨는데.”

“컵을 안 건드리길래요.”

“그 정도는 누구나 보죠.”

“그럼 별거 아니네요.”

현욱은 태연하게 카드를 뒤집었다. 유나는 그 손이 시계 쪽으로 가지 않는지 지켜봤다.

도윤 PD가 박수를 쳤다.

“좋아요. 이제 상대의 긴장 습관을 맞혀 보겠습니다. 정유나 씨부터요.”

유나는 카드 한 장을 집었다. 익명의 글씨였다.

웃다가도 카메라가 꺼지면 입꼬리를 먼저 내린다.

누가 썼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현욱만이 그런 순간을 봤다. 아니 현욱만이 봤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누가 썼는지 맞혀야 하나요?”

“정답을 맞히면 작은 힌트를 드립니다.”

유나는 현욱을 보았다.

“강현욱 씨요.”

현욱의 눈썹이 움직였다.

“왜 저라고 생각합니까?”

“표현이 재수 없어서요.”

출연자들이 웃었다. 현욱도 따라 웃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틀렸습니다.”

“그럼 누군데요?”

“익명 카드라서 공개할 수 없습니다.”

도윤 PD가 대신 대답했다. 유나는 카드 모서리를 세게 눌렀다.

이번에는 현욱의 차례였다. 그는 카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손목시계를 두 번 만진다.

현욱의 손이 멈췄다. 유나가 쓴 카드였다.

“정답은 정유나 씨죠?”

지아가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현욱 씨가 지금 손목시계를 두 번 만졌거든요.”

거실의 웃음이 잠깐 끊겼다.

유나는 현욱을 똑바로 보았다. 그가 숨기려고 했던 습관을 자신이 그대로 폭로한 셈이었다.

“맞아요?”

도윤 PD가 물었다.

현욱은 카드를 내려놓았다.

“모르겠습니다. 저런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추측 아닌가요?”

“그렇지만 정확하네요.”

태준이 조용히 말했다.

현욱의 시선이 태준에게 향했다.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틀린 말을 했나요?”

“아뇨. 맞는 말입니다.”

유나는 웃음을 삼켰다. 둘이 부딪히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속이 시원했다. 하지만 그보다 현욱의 손목이 더 신경 쓰였다.

그는 정말 긴장하고 있었다.


저녁 촬영이 끝난 뒤 유나는 창고 옆 통로에서 현욱을 기다렸다. 카메라가 지나가는 길을 미리 확인해 둔 곳이었다. 완전한 사각지대는 아니었지만 목소리를 낮추면 대화할 수 있었다.

현욱이 계단을 내려오다 유나를 발견했다.

“왜 기다려.”

“지아 씨한테 문자 보냈다면서요.”

“그랬다고 했지.”

“보내지도 않은 문자로 친한 척하는 건 무슨 취미예요?”

현욱의 얼굴이 굳었다.

“네가 내가 보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니까.”

“누가 곤란한데요?”

“너.”

그 대답이 너무 빨라서 유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내가 그런 걱정 부탁했어요?”

“부탁받아야만 해?”

“또 혼자 결정하네.”

그 말에 현욱의 표정이 흔들렸다. 5년 전에도 그는 설명 없이 결론을 내리고 혼자 사라졌다. 유나에게 남은 건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별과 끝내 보내지 못한 질문뿐이었다.

“문자 한 통으로 네가 또 다칠까 봐 그랬어.”

“다친 건 지금인데요.”

“유나야.”

“그 이름 부르지 마요. 카메라 없는 데서만 그렇게 부르는 것도 싫으니까.”

현욱은 입을 다물었다. 복도 끝의 작은 조명이 두 사람 사이를 희미하게 갈랐다.

유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문자를 보여 줄 듯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왜 보냈어요?”

현욱의 눈동자가 화면으로 향했다.

“궁금해서.”

“뭐가요?”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여기서 누구를 보면서 웃는지.”

“5년 동안은 안 궁금했나 봐요.”

현욱은 대답하지 않았다. 유나는 그 침묵에서 예전과 같은 벽을 보았다.

“그럴 거면 보내지 말지.”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말은 잘하네요.”

유나는 몸을 돌렸다. 등 뒤에서 현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네가 받았으면 했어.”

발이 멈췄다.

현욱은 더 말하지 않았다. 유나는 돌아보지 않은 채 주먹을 쥐었다. 기대하게 만드는 말은 왜 늘 늦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때 하우스 전체에 도윤 PD의 안내 방송이 울렸다.

“내일 첫 데이트 상대를 오늘 밤까지 선택해 주세요. 가장 궁금한 사람 한 명의 이름을 비밀 선택 화면에 입력하면 됩니다. 선택 결과는 내일 아침 공개합니다.”

유나는 현욱을 돌아보았다.

“가장 궁금한 사람이라면서요.”

“문자와 데이트는 다른 문제야.”

“그쪽 마음은 늘 종류가 많아서 좋겠네요.”

유나는 먼저 통로를 빠져나갔다.

잠시 뒤 현욱은 비밀 문자실 옆 선택 공간으로 들어갔다. 화면에는 네 사람의 이름이 떠 있었다.

정유나.

미태준.

서지아.

그는 정유나를 오래 바라봤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서지아를 눌렀다.

선택 완료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현욱은 눈을 감았다. 유나에게 보낸 문자를 지키기 위해 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유나에게 어떤 표정으로 돌아갈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