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마지막 유령이었다

1화: 신방의 손님
서화는 첫날 밤 남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신방에는 등불이 하나만 켜져 있었고, 침대 맞은편 의자는 비어 있었다. 혼례를 치르기 전 도윤 가문의 대리인은 남편이 병약해 손님을 피한다고 했다. 그는 결혼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서명된 혼인 계약서와 저택 열쇠를 보냈다.
“부인, 이제 저택은 아가씨의 집입니다.”
연주가 차를 내려놓았다. 서화는 머리 장식을 풀지 않은 채 물었다.
“도윤 씨는 어디에 있죠?”
연주는 잠시 침묵했다. “저택에 계십니다.”
“그건 알고 있어요. 방에 있나요?”
“어느 방인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서화는 계약서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혼인 당사자의 서명란 두 곳 중 하나에는 도윤의 이름이 있었고, 다른 칸에는 ‘증인’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결혼 당사자가 아닌 증인이 혼인 계약에 서명한 셈이었다. 서화는 식이 시작되기 전에 이 오류를 지적했지만, 대리인은 가문의 관습이라고 답했다.
“이 계약을 읽어 본 사람이 있나요?”
“도련님과 선대 가주께서 작성하셨습니다.”
“도련님은 살아 계신가요?”
연주의 손이 찻잔 옆에서 굳었다. “그 질문은 직접 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서화는 저택의 문을 나서려 했지만, 정문은 바깥에서 잠겨 있었다. 열쇠는 한 개뿐이었고, 연주는 다른 출구도 지금은 열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방에 갇힌 기분을 억누르고 저택 안을 살피기로 했다. 계약이 무효라면 가문은 빚을 갚지 못하고, 친정은 토지를 잃을 터였다. 남편이 누구든 먼저 계약의 효력부터 확인해야 했다.
복도에는 백 년 전 유행한 옷을 입은 남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얼굴은 서화의 혼례 상대와 같았다. 액자 아래에는 ‘도윤 가주, 29세에 별세’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날짜는 정확히 백 년 전이었다.
서화는 연주를 돌아봤다. “이 초상화가 잘못 걸린 건가요?”
“아닙니다.”
“도윤 씨는 백 년 전에 죽었어요?”
연주는 대답 대신 복도 끝 종각을 바라봤다. 종은 밤 열 시를 알리는 소리를 냈다. 그 순간 초상화의 유리 표면이 어두워졌다. 액자 안 남자의 눈이 움직였다. 서화는 한 걸음 물러섰다.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남자가 액자에서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는 발바닥을 바닥에 대지 않았다. 검은 조끼와 흰 셔츠, 가슴을 가로지른 희미한 상처. 서화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녀는 계약서에 적힌 이름과 초상화의 설명을 다시 확인했다.
“도윤 씨인가요?”
“그렇습니다.”
“유령이군요.”
“현재로선 그 표현이 가장 정확하겠죠.”
서화는 의자를 끌어 앉았다. “제가 당신과 결혼한 건가요?”
“법적으로는 그렇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나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계약서에는 증인으로 서명했습니다.”
“그런데 제 남편으로 등록됐어요.”
“그 문서가 내 서명을 혼인 당사자의 서명으로 바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요?”
도윤은 대답을 바로 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책상 위의 계약서를 만지려 했지만 손가락이 종이를 통과했다. “내가 죽었을 때 이 저택은 상속자가 없었습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필요로 했겠죠.”
“그 누군가가 누구죠?”
“기억이 온전하지 않습니다.”
서화는 도윤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종이를 만질 수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계약서의 서명칸을 보여 주었다.
“당신은 이 문서에 언제 서명했나요?”
“죽기 전날입니다. 혼인 계약이 아니라 재산 관리 위임장이라고 들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말했죠?”
“아버지의 대리인.”
“그 이름을 기억하나요?”
도윤은 눈을 감았다. “아니요. 얼굴은 보았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서화는 그 답을 기록했다.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말을 사건의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과 이름을 숨기는 것은 다를 수 있었다. 그녀는 도윤에게 자신이 이 저택을 떠날 수 있는지 물었다.
“정문 열쇠는 연주가 가지고 있습니다. 원한다면 내일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요?”
“오늘은 종각이 울리기 전까지 문이 잠깁니다.”
“그건 저택의 규칙인가요?”
“내가 만든 규칙이 아닙니다.”
서화는 연주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연주는 열쇠를 가져와 정문에 꽂았다. 열쇠는 돌아갔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틀 안쪽에 새로 설치된 빗장이 걸려 있었다. 누군가 안에서 걸어 잠갔다.
“누가 빗장을 걸었죠?” 서화가 물었다.
“저는 아닙니다.” 연주가 답했다.
“도윤 씨는 손으로 물건을 움직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복도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은 동시에 돌아봤다. 발소리는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멈췄다. 연주는 저택의 모든 하인이 이미 퇴근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누군가 안에 있었다.
서화는 등불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도윤은 따라오지 않았다. 유령은 계단 중간의 경계를 넘을 수 없다고 했다. 연주는 열쇠 꾸러미를 챙겼다. 계단 아래에는 잠긴 서고 문과 오래된 벽시계가 있었다. 벽시계는 멈춰 있었고, 시침은 밤 열 시 십칠 분을 가리켰다.
문틈에서 종이 한 장이 나와 있었다. 서화가 종이를 빼내자, 혼인 계약서와 같은 필체로 적힌 문구가 보였다. ‘증인은 저택의 주인을 대신해 새 배우자를 맞이한다.’ 그 아래에는 도윤의 서명이 있었다.
“이게 당신 글씨인가요?”
도윤은 계단 위에서 종이를 보았다. “서명은 내 것이지만, 문장은 내가 쓴 게 아닙니다.”
“그럼 누가 썼죠?”
“그날 밤 내가 살해당한 뒤에 쓰인 것 같습니다.”
연주는 서고 문을 확인했다. 열쇠구멍 안쪽에서 새 왁스가 굳어 있었다. 누군가 최근에 문을 봉인했다. 그녀는 오래된 열쇠 중 하나를 골라 잠금쇠를 돌렸다. 문이 열리자 안에서 말라붙은 꽃 냄새가 났다.
서고에는 장부가 정리돼 있었지만, 한 칸이 비어 있었다. 빈 자리의 먼지에는 책 한 권이 놓여 있던 흔적이 남았다. 서화는 주변 서류를 살폈다. 도윤의 사망 기록, 장례 비용, 저택 상속 문서가 있었고, 혼인 계약의 초안은 없었다.
“사망 당시의 증인은 누구였죠?”
연주가 장부를 넘겼다. “저택 하인 두 명과 가문의 의원입니다. 하지만 두 하인은 이후 저택을 떠났습니다.”
“의원은요?”
“이름이 지워져 있습니다.”
서화는 장부의 종이 가장자리를 보았다. 이름을 칼로 긁어낸 흔적이 있었다. 긁힌 자국 아래 남은 잉크를 비춰 보면 성의 첫 글자가 ‘윤’처럼 보였다. 그녀는 종이를 다시 덮었다.
“내일 아침 이 장부를 복사하겠습니다. 원본은 움직이지 않아요.”
“저택의 주인이 허락해야 합니다.” 연주가 말했다.
서화는 도윤을 바라봤다. 그는 계약서의 서명란을 보고 있었다. “당신이 저택의 주인이라면 허락해 주세요. 아니라면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알려 주세요.”
도윤은 한참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합니다. 다만 원본을 공개하기 전에 당신의 가문이 연루됐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저는 그 사실을 감출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은 서고의 문을 다시 잠갔다. 위층에서 종이 한 번 울렸다. 벽시계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종각의 소리는 지하까지 내려왔다. 도윤의 몸이 순간 투명해졌다. 그는 가슴의 상처를 눌렀다.
“무슨 일이죠?” 서화가 물었다.
“그날 밤의 기억이 돌아옵니다.”
도윤은 손을 들어 서고 문을 가리켰다.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은 누군가 문을 안에서 잠그는 모습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손에 낀 반지에 벨로르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서화는 자기 가문의 문장을 떠올렸다. 같은 문양이었다. 그녀는 방금 본 기억을 그대로 적고, 해석은 덧붙이지 않았다.
“제 가문이 당신을 죽였을 수도 있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게 계약을 허락했나요?”
“당신이 저택에 들어오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서화는 도윤의 눈을 보았다. 그 눈에는 미움보다 혼란이 많았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의심할 권리를 인정했다. “내일 기록을 함께 확인하죠. 당신이 원한다면 계약을 무효로 만들 방법도 찾겠습니다.”
도윤은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 선택은 당신 것이기도 합니다.”
방으로 돌아온 서화는 반지를 빼 탁자에 놓았다. 결혼은 종이에 적힌 사실이었지만, 남편은 백 년 전에 죽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음을 확인하려고 문을 열어 두었다. 새벽이 오면 이 저택의 규칙이 풀리고, 그녀는 나갈 수 있었다.
그때 문 아래로 작은 종이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글씨는 서화의 아버지가 쓰던 필체였다. ‘도윤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다. 네 결혼은 계약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하다.’
서화는 종이를 뒤집었다. 발신자의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아래쪽에는 그녀의 가문 인장이 찍혀 있었다.
서화는 쪽지를 봉투에 넣고 밀랍을 살폈다. 아버지의 인장은 맞았지만, 왁스에 찍힌 선이 너무 깊었다. 집안의 공식 인장은 오래 사용해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이번 자국은 새로 만든 복제품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녀는 봉투를 불빛에 비춰 종이의 워터마크를 확인했다. 공작가에서 쓰는 문서지가 아니라 마을 법률 사무소의 재고였다.
“이 편지는 저택 안에서 쓰인 게 아니에요.” 서화가 말했다.
도윤은 쪽지를 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살았을 때도 그 사무소는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연주는 저택 출입 기록을 가져왔다. 손님이 들어온 날은 없었지만, 우편물은 정문에서 받지 않고 마을 우체국을 거쳤다. 서화는 편지의 봉투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보관했다. 발신지가 밝혀지면, 누군가가 현재도 이 사건을 조작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연주에게 방의 창문과 문을 점검해 달라고 부탁했다. 누군가 다시 들어오더라도 어떤 경로였는지 알 수 있도록 밀가루를 얇게 뿌리고, 문고리에는 실을 걸었다. 도윤은 물체를 움직일 수 없어 그 작업을 돕지 못했다. 대신 자신의 이동 범위를 설명했다. 그는 초상화가 있는 복도와 지하 서고, 종각을 잇는 공간에만 나타날 수 있었다.
“저택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되죠?”
“사라질 것 같다. 하지만 시험해 본 적은 없다.”
“그럼 억지로 나가려 하지 마세요. 먼저 계약의 범위를 확인하죠.”
도윤은 알겠다고 답했다. 서화는 그가 죽은 뒤에도 타인의 결정에 묶여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새 종이에 자신이 동의한 임시 체류 조건을 적었다. 그는 종이를 읽고 자신의 동의를 표시했다. 두 사람은 첫날 밤에 혼인이 아니라 임시 조사 동거의 약속을 새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