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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맹수들이 내 말을 듣는다2화

돌연변이 맹수들이 내 말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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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으르렁거림의 이면

지하 배관을 타고 올라온 진동은 바닥의 붉은 웅덩이를 잘게 흔들었다.

손전등의 노란 불빛이 벽면의 녹슨 파이프를 훑었다. 강태오는 숨을 죽인 채 발걸음을 멈췄다. 은빛 줄무늬의 거대한 맹수가 그의 반 걸음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목덜미부터 등줄기까지 털을 바짝 세운 하랑의 송곳니 사이로 낮고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뚝.

물방울 하나가 웅덩이 위로 떨어졌다. 붉은 비의 찌꺼기와 섞이지 않고 기름처럼 둥글게 뭉쳐 떠오른 검은 액체였다. 그 검은 방울이 닿은 수면 주위로 살얼음 같은 한기가 번졌다.

냄새가 찌른다. 살을 파먹는 냄새.

하랑의 신호가 태오의 관자놀이를 강하게 두드렸다. 단순한 문장이 아니었다. 코를 찌르는 역겨운 금속성 비린내와 함께 살갗이 얼어붙는 듯한 냉각통이 머릿속에 그대로 밀려들었다.

태오는 턱을 굳히며 통증을 삼켰다. 공감 청각은 편리한 번역기가 아니었다. 상대가 느끼는 육체적 불쾌감과 신경통이 고스란히 뇌세포를 갉아먹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랑 씨, 진정하세요. 냄새가 독하지만 독가스는 아닙니다.”

태오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흥분한 맹수 앞에서 높은 톤의 목소리는 위협이나 비명으로 오인되기 십상이었다.

하랑은 귀를 뒤로 눕힌 채 태오를 힐긋 보았다. 한쪽 금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작은 손은 코가 막혔다. 저건 썩은 덫이다.

“덫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발을 그렇게 디디면 아까 묶은 붕대가 다 터집니다.”

태오가 가리킨 하랑의 오른쪽 앞발은 바닥을 세게 짓누르고 있었다. 방금 전 금속 파편을 뽑아내고 거즈와 탄력 붕대로 감아 둔 상처 부위에서 다시 붉은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하랑은 멈추지 않았다. 어깨 근육을 비틀며 배관실 통로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어깨높이가 이 미터에 달하는 거구가 지나갈 때마다 녹슨 파이프가 긁히며 쇳소리를 냈다.

통로 끝에는 사료 준비실과 관리실로 이어지는 두꺼운 방화문이 비스듬히 열려 있었다.

문 안쪽 어둠에서 버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판을 긁는 날카로운 마찰음이었다. 그 소리가 울릴 때마다 하랑의 목구멍에서 천둥 같은 포효가 터져 나왔다.

크르르르— 쾅!

하랑이 다친 앞발을 내던지듯 방화문으로 돌진했다. 거대한 몸체가 철문에 부딪히며 통로 전체가 울렸다. 경첩이 뜯겨 나가며 녹가루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찢는다. 목을 찢는다. 먼저 짓밟아야 내가 산다.

태오의 머릿속에 붉은 피와 살점의 이미지가 번쩍였다. 폭력적이고 흉포한 살기였다. 겉으로만 보면 눈앞에 걸리는 모든 생명을 도륙하려는 피에 굶주린 괴수의 의지처럼 느껴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공포에 질려 도망치거나 무기를 쥐고 뒤로 물러섰을 터였다.

하지만 태오는 하랑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동물행동 상담사로 일하던 시절 수없이 마주했던 문제 행동들이 뇌리를 스쳤다. 극단적인 공격성을 보이는 개체들의 팔할은 사나워서가 아니라 공포에 질려 있었다.

‘저건 사냥 본능이 아니야.’

태오는 하랑의 머릿속에서 쏟아지는 감각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공감 청각을 통해 전해지는 살기 밑바닥에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비명이 깔려 있었다.

‘다리를 들키면 먹힌다. 철창에 갇혔을 때 쇠막대로 찔렸던 통증. 뒤를 보이면 끝장이다.’

하랑은 상대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었다. 부상당해 움직임이 둔해진 자신의 약점을 들키기 전에 먼저 상대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어 쫓아내려는 절박한 허세였다. 과거 철창 안에서 무력하게 학대당했던 트라우마가 붉은 비와 검은 냄새를 만나 폭발하고 있었다.

“하랑 씨! 멈춰요!”

태오가 소리치며 하랑의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하랑의 거대한 꼬리가 뱀처럼 허공을 갈랐다. 은빛 털이 곤두선 등짝이 태오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하랑은 방화문 틈새로 앞발을 들이밀며 문을 통째로 뜯어내려 하고 있었다. 붕대가 풀리며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멈춰!”

태오는 하랑의 앞을 가로막는 대신 하랑의 시야 모서리에 서서 자신의 손바닥을 벽에 쾅 부딪쳤다.

둔탁한 소리에 하랑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금빛 눈동자에 실핏줄이 터져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언제든 태오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수 있는 거리였다.

“하랑 씨가 먼저 부수면 저 문 뒤에 있는 게 뭔지도 모른 채 다리만 완전히 망가집니다. 피 냄새를 풍기면 진짜 포식자가 몰려와요.”

태오는 떨리는 호흡을 다잡으며 하랑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시선을 피하면 먹잇감이 되고 과도하게 노려보면 도전이 된다. 태오는 시선을 하랑의 콧등 부근에 고정하며 천천히 손을 내렸다.

“내가 먼저 보겠습니다. 문 뒤에 있는 게 당신을 죽이려는 포식자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내가 확인하겠습니다.”

작은 손이 찢긴다. 저 안에서 냄새가 난다. 나를 찌르던 냄새.

“안 찢깁니다. 당신이 나를 믿고 다리를 내줬듯이 이번에는 내가 문을 확인하게 해 주세요.”

태오는 스패너를 주머니에 넣었다. 무기를 쥐지 않은 맨손을 들어 보이며 방화문 쪽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갔다.

하랑의 으르렁거림이 미세하게 낮아졌다. 여전히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더 이상 문을 부수려 돌진하지는 않았다. 하랑은 낮게 엎드린 채 태오의 등 뒤를 지키듯 버텼다.

태오는 손전등의 각도를 낮추고 뜯겨 나간 방화문 틈새로 불빛을 비췄다.

사료 준비실 내부는 난장판이었다. 천장의 단열재가 뜯겨 내려와 있었고 바닥에는 깨진 유리병과 뒤집힌 배합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방구석 무너진 철제 선반 밑에서 무언가 웅크리고 있었다.

크르륵…… 끾.

날카로운 쇳소리의 정체는 거대한 포식자가 아니었다.

몸길이 오십 센티미터 남짓한 오소리였다. 온몸에 검은 점액과 붉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무너진 선반 다리를 발톱으로 미친 듯이 긁어대고 있었다. 뒷다리가 찌그러진 철망 틈에 끼어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태였다.

오소리의 머리 위에는 변이의 영향인지 작은 뿔 같은 골질 돌기가 돋아 있었지만 눈빛은 맹수의 그것이 아니었다. 극도의 공포에 질려 젖먹이처럼 떨고 있었다.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분비물이 방 전체에 지독한 금속 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포식자가 아닙니다. 새끼 오소리예요. 다리가 끼어서 겁에 질려 냄새를 뿜어낸 겁니다.”

태오가 문 밖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랑이 조심스럽게 문틈으로 코를 들이밀었다. 콧구멍을 씰룩거리며 공기를 들이마신 하랑의 귀가 쫑긋 섰다.

포식자가 아니다? 하지만 냄새가 나를 태운다.

“검은 분비물 때문에 냄새가 왜곡된 겁니다. 저 녀석도 다쳐서 공포에 질려 있어요. 하랑 씨가 아까 철창에서 소리 질렀던 것처럼요.”

하랑의 금빛 눈동자에서 살기가 스르륵 빠져나갔다. 맹수의 얼굴에 기이할 정도의 당혹감이 스쳤다. 거대한 몸을 흠칫 뒤로 물리며 바닥에 고인 피 묻은 제 발을 내려다보았다.

작은 벌레 같은 놈이 그렇게 크게 짖었단 말인가.

“누구든 궁지에 몰리면 가장 사나운 소리를 냅니다. 하랑 씨도 그랬잖아요.”

하랑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통로 벽을 바라보았다. 머쓱함과 무안함이 섞인 체온이 태오의 감각에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태오는 배낭에서 물통을 꺼냈다. 바닥을 기어가듯 선반 앞으로 다가가 물을 조금 부어 오소리의 코앞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배낭 끈을 풀어 찌그러진 철망 틈에 걸고 지렛대처럼 당겼다.

끼기긱 소리와 함께 철망이 벌어졌다.

오소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물통의 물을 허겁지겁 한 모금 핥고는 열린 천장 환기구 틈새로 번개처럼 기어 올라갔다. 배관 속으로 쏙 들어간 작은 꼬리가 사라지자 방 안을 가득 채웠던 살벌한 긴장감도 거짓말처럼 흩어졌다.

태오는 무릎을 털며 일어났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자 봐요. 아무것도 아니었죠?”

태오가 방화문 쪽으로 돌아서며 웃어 보였다.

하랑은 여전히 콧김을 씩 내뿜으며 딴청을 피웠다. 그러나 태오가 다가오자 순순히 다친 앞발을 들어 올렸다.

작은 손은 눈보다 귀가 밝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붕대부터 다시 감죠.”

태오는 바닥에 주저앉아 풀어진 붕대를 다시 단단히 동여맸다. 이번에는 하랑도 으르렁거리지 않고 얌전히 턱을 태오의 무릎 옆 바닥에 괴었다. 뜨겁고 묵직한 숨결이 태오의 바지를 적셨다.

치료를 마친 태오는 손전등으로 사료 준비실 안쪽을 꼼꼼히 살폈다. 무너진 선반 뒤편 구석에 두꺼운 방수 천막으로 덮인 대형 플라스틱 보관함이 눈에 들어왔다.

태오가 천막을 걷어내고 보관함 뚜껑을 열었다.

진공 포장된 대용량 사료 포대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붉은 비가 스며들지 않아 겉면이 보송보송했다.

“찾았다.”

육식동물용 고단백 건사료 이십 킬로그램 들이 두 포대와 초식 및 잡식동물용 펠릿 사료 한 포대였다. 적어도 보름 동안은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막대한 양이었다.

하랑의 귀가 번쩍 뜨였다. 사료 포대 틈새로 흘러나오는 고소한 고기 냄새에 하랑의 입가에 침이 고였다.

먹이다. 마르지 않은 진짜 먹이다.

“네. 우리 둘 다 오늘 밤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습니다.”

태오는 사료 한 봉지를 뜯어 플라스틱 바가지에 가득 담았다. 그리고 깨끗한 물과 함께 하랑의 앞에 내려놓았다. 하랑은 사양하지 않고 거대한 주둥이를 박은 채 게걸스럽게 사료를 삼키기 시작했다. 바가지가 바닥에 긁히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오도 비상식량 통조림 하나를 따서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기름진 콩과 고기 조각이 목구멍을 넘어가자 온몸에 온기가 돌았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찰랑.

발밑에서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태오가 손전등으로 바닥을 비추자 통로 쪽에서부터 붉은 오수가 빠르게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배수관의 역류였다. 지상에 고였던 비가 지하 배관망을 타고 통로 바닥을 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쿵…… 쿵……

멀리 지하 깊은 곳에서 아까 들렸던 저주파 진동이 다시 한번 파이프를 울렸다. 검은 점액질이 섞인 오수가 발목 높이까지 차오르는 데는 채 십 분도 걸리지 않을 기세였다.

하랑이 사료 그릇에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물이 올라온다. 이 구멍은 곧 막힌다.

“맞아요. 여기는 오래 있을 곳이 못 됩니다.”

태오는 남은 사료 포대들을 튼튼한 방수포로 꽁꽁 싸맸다. 물탱크에서 물을 가득 채운 여분의 통들도 챙겨야 했다. 이 무거운 짐들을 짊어지고 붉은 오수가 차오르는 지하를 빠져나가야 했다.

“사육동 옥상으로 가야 합니다. 거기는 비를 피할 지붕도 있고 환기구도 살아 있어요. 사방이 트여 있어서 아래를 감시하기도 좋습니다.”

태오의 말에 하랑이 젖은 코를 들어 올려 지상 쪽을 향했다.

위쪽 냄새. 흙과 바람 냄새가 난다.

“날이 밝는 대로 짐을 옮깁시다. 오늘은 여기서 물을 채우고 배를 채운 뒤 잠시 눈을 붙이죠.”

태오는 방수포로 감싼 사료 포대를 물탱크실 가장 높은 콘크리트 턱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마른 박스를 깔고 벽에 등을 기댔다.

하랑은 배를 불린 뒤 물탱크실 입구 쪽에 거대한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웠다. 태오와 바깥 통로 사이를 가로막는 완벽한 방패의 형상이었다.

피곤하다. 눈을 감아라 작은 손. 내가 듣는다.

태오의 머릿속에 전해진 신호는 더 이상 날카롭거나 아프지 않았다. 묵직하고 따뜻한 바위 같은 안정감이 가슴을 채웠다.

태오는 손전등을 끄고 어둠 속에 몸을 맡겼다.

지하를 울리는 차가운 물소리 너머로 맹수의 고른 숨소리가 자장가처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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