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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 방명록의 다음 손님2화

산장 방명록의 다음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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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지워진 이름의 값

서진은 이름을 지우지 않았지만 방명록의 페이지를 찢으려 했다. 종이는 찢어지지 않았다. 태건이 책을 잡아당기자 표지가 손바닥을 베었다. 방명록은 오래됐지만 새 종이처럼 질겼다.

복수는 지하 저장고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서진과 태건은 등불을 들고 내려갔다. 복수는 연료통 옆에 앉아 손에 피를 묻힌 채 있었다. 그는 방명록의 사망 시각이 자기 이름으로 옮겨 왔다고 말했다. ‘복수, 01:12.’ 그는 과거에도 이름을 한 번 지운 적이 있었다. 그날 사망 예정이던 손님 대신 다른 사람이 죽었다.

“누구요?” 서진이 물었다.

“네 언니.”

서진은 복수의 옷깃을 잡았다. 태건이 그녀의 손을 떼어냈다. 복수는 수진의 이름을 지운 뒤 자신에게 죽음이 올 줄 알았지만, 수진이 대신 산장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구조 기록은 수진이 그날 산장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적혀 있었다. 복수는 어느 기록을 믿어야 하는지 몰랐다.

“방명록은 죽음을 옮기는 게 아니야.” 태건이 말했다. “그 사람이 위험해질 시간을 옮기는 것일 수도 있어.”

그는 자신의 팔에 오래된 동상 흉터가 있었다. 5년 전 산장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손님 중 한 명이었다. 태건은 수진이 자신을 눈사태에서 끌어냈다고 말했다. 그날 수진은 구조대와 함께 내려가려 했지만, 복수는 폭풍이 멎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태건은 구조대가 오기 전에 혼자 길을 나섰고, 수진은 그를 따라 나왔다.

서진은 언니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적이 없었다. 구조대는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만 했다. 그녀는 방명록에서 수진 이름을 찾으려 했다. 페이지에는 이름 대신 얼룩만 남았다. 복수는 수진이 쓴 글씨가 다른 방명록에 있을 거라고 했다. 옛 산장 기록은 지하 저장고의 철제 상자에 보관돼 있었다.

상자는 눈보라에 젖어 열리지 않았다. 태건은 난로에서 금속을 데워 자물쇠를 녹였다. 연기가 방 안에 찼고, 서진은 젖은 천으로 얼굴을 가렸다. 상자가 열리자 오래된 장부가 여러 권 나왔다. 각 방명록의 마지막 줄에는 이름이 없었다. 대신 지워진 자국이 있었다.

미라는 새벽 전에 산장에 도착했다. 그녀는 구조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에는 눈이 얼어붙었다. 사망 시각 01:12는 이미 지났지만, 그녀는 살아 있었다. 서진은 방명록의 이름을 보여 줬다. 미라는 자신의 이름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구조대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수진의 실종 기록을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누가 제 이름을 적었죠?”

“모릅니다.” 서진이 답했다.

미라는 장부를 펼치며 방명록의 이름을 읽었다. 이름을 지우자 미라의 사망 시각은 사라지고, 복수의 이름 옆에 같은 시간이 옮겨 갔다. 복수는 이미 상처를 입고 있었다. 태건은 지우지 말라고 했지만 서진은 지우개를 들었다. 그녀는 언니를 잃은 뒤, 다음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미라는 서진의 손을 막았다. “내가 위험을 알고 여기 왔어요. 내 이름을 지우는 건 내 선택을 빼앗는 거예요.”

서진은 지우개를 내려놓았다. 미라는 사망 시각을 확인한 뒤, 자신의 구조 무전기를 켰다. 눈보라 속에서 구조대와 통신이 연결되지 않았다. 산장 바깥의 기상 센서는 바람이 3분 뒤에 잦아든다고 표시했다. 미라는 그 시간에 밖으로 나가 구조 신호를 쏘기로 했다.

복수는 그녀를 말렸다. “그 시간에 나가면 죽어요.”

“안 나가면 다른 사람이 대신 죽겠죠.”

미라는 밖으로 나갔다. 서진은 문을 열어 두되, 문턱을 넘지 않았다. 태건은 로프를 잡고 그녀의 신호를 기다렸다. 폭풍이 잦아드는 순간 붉은 조명탄이 산 위로 올라갔다.

방명록의 미라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망 시각은 1시 12분에서 3시 08분으로 바뀌었다. 그 시간은 서진의 이름 옆에 적힌 시각과 같았다.

미라는 무전으로 말했다. “이제 네 차례야.”

복수는 오래된 페이지를 펼쳤다. 그곳에는 ‘서진, 03:08’과 같은 필체가 있었다. 날짜는 서진이 태어나기 전이었다. 복수는 자신이 이름을 지운 뒤 죽음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는 것을 처음 확인한 날이라고 했다. 그는 사망 시각이 적힌 여행자의 이름을 지웠고, 그날 밤 그의 아내가 산장에서 넘어져 숨졌다. 이후 복수는 방명록을 숨겼다. 이름을 지우면 죽음이 옮겨간다는 규칙을 알면서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럼 이름을 지우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는 말도 확실하지 않네요.” 미라가 말했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아.” 복수는 답했다. “다만 이름을 지울 때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다쳤어.”

미라는 구조대 무전기를 점검했다. 폭설로 안테나가 휘어져 신호가 약했다. 그녀는 지붕 위로 올라가 안테나를 바로 세우려 했다. 서진은 사망 시각을 들어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미라는 자기 판단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태건이 안전 로프를 묶고, 복수가 아래에서 줄을 잡았다.

미라는 지붕 위에서 안테나를 돌리다가 미끄러졌다. 줄이 팽팽해졌고, 태건이 팔을 다친 채 그녀를 끌어당겼다. 구조 신호는 잠시 살아났지만 다시 끊겼다. 미라는 이름 옆에 적힌 시간이 단순한 사망 예고가 아니라, 위험이 가장 커지는 시각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그녀는 그 시간 전에 안전을 확보하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서진은 복수에게 방명록을 숨기기만 할 게 아니라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복수는 자신의 아내가 죽은 일을 다시 들추는 게 두렵다고 했다. 서진은 그 두려움 때문에 언니의 실종도 말하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복수는 오래된 장부를 닫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태건은 방명록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 찾았다. 오래된 페이지에 그의 이름은 적혀 있었고, 옆에는 ‘구조 요청을 듣고 대답하지 못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태건은 그 문장을 읽고 책을 닫으려 했지만, 미라가 손을 얹었다. 기록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데 동의했다.

바깥에서 구조 경적이 울렸다. 실제 구조대인지, 눈보라가 만든 소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미라는 창문을 열지 않고 위치 신호를 보냈다. 응답은 없었지만, 방명록의 사망 시각이 1시 12분에서 2시 40분으로 바뀌었다. 미라는 아직 살아 있었고,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미라는 눈보라가 잠잠해진 틈을 타 산장 문에 도착했다. 방명록에 적힌 시간보다 먼저였다. 그녀는 구조대 무전기를 꺼내며 자신의 이름이 왜 적혔는지 물었다. 서진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미라는 방명록을 읽고, 이름을 지우지 말라고 했다. 자신이 위험을 감수하고 온 이유를 기록에서 지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5년 전 구조 포기를 결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당시 지휘관이 철수를 명령했고, 미라는 그 명령을 따랐다. 그녀는 수진이 살아 있을 수 있다는 신호를 들었지만, 무전이 끊겨 확인하지 못했다. 구조 기록에는 신호가 잡음으로 정리됐다. 미라는 그 기록이 자신의 손으로 작성된 게 아니라고 해명하지 않았다. 당시 그녀는 확인을 더 요구하지 않았다.

“왜 이제 왔어요?” 서진이 물었다.

“그때 못 한 확인을 하러 왔어요.”

미라는 눈에 파묻힌 남쪽 능선으로 돌아가려 했다. 서진은 함께 가겠다고 했다. 태건은 지도와 로프를 챙겼다. 복수는 그들이 나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대신 사고가 나면 방명록에 기록하겠다고 했다.

산길은 허리까지 쌓인 눈으로 막혔다. 미라는 앞에서 길을 열었고, 태건은 뒤에서 로프를 잡았다. 서진은 구조 표지의 위치를 찾았다. 오래된 표지는 눈 속에 기울어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손전등과 빨간 천 조각이 묻혀 있었다. 서진은 그것이 언니의 것인지 확인하려고 맨손으로 잡지 않았다.

미라는 조각을 살펴보고 수진의 스카프와 같은 직조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눈사태 경보가 울렸다. 멀리서 눈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세 사람은 바위 아래로 몸을 낮췄다. 태건이 로프를 감았고, 서진은 미라를 끌어당겼다. 눈이 길을 덮었다.

그들은 산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서진은 언니의 흔적을 찾았지만, 무리하게 내려가면 세 사람 모두 구조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미라는 이 선택을 기록했다. 그녀는 다시 혼자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산장으로 돌아왔을 때 복수는 난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미라의 이름이 사망 시각 뒤에도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방명록이 누구의 선택을 기록하는지 다시 생각했다.

미라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손등의 상처를 보여 주지 않았다. 그녀는 방명록의 이름과 사망 시각이 자신의 선택을 대신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구조대에 실시간 위치를 전송하고, 폭설이 잦아들면 산 아래로 내려갈 계획을 세웠다.

태건은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웠지만, 미라의 로프를 대신 잡기로 했다. 그는 구조 신호를 들었을 때 문을 열지 못한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 했다. 이번에는 위험을 숨기지 않고, 모두에게 공유했다.

복수는 미라의 이름을 장부에서 지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선택과 지금의 선택을 나란히 적었다.

미라는 자기 결정이 기록되는 것을 허락했다. 그녀는 위험을 알면서도 구조를 택했다고 썼다.

그 기록은 미라가 직접 확인한 뒤 서명했다.

미라는 무전기를 다시 충전기에 꽂았다.

그녀는 배터리 표시가 녹색으로 바뀐 것을 확인했다.

미라는 무전기로 짧게 위치를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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