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산장 방명록의 다음 손님1화

산장 방명록의 다음 손님

산장 방명록의 다음 손님

AD
스폰서 광고

1화: 눈 오기 전의 이름

서진은 방명록에 다음 날의 날짜가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산장 바깥으로 눈보라가 몰아쳤다. 창문 틈마다 바람이 울고, 난로의 불이 낮게 흔들렸다. 서진은 숙박객 명단을 정리하다 오래된 방명록을 펼쳤다. 그날 들어온 손님은 태건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 다음 줄에는 내일 날짜와 손님의 이름, 사망 시각이 적혀 있었다.

‘윤미라, 01:12.’

미라는 산악 구조대원이었다. 서진은 그녀를 알고 있었다. 5년 전 실종된 언니 수진을 찾으러 온 구조대였다. 그날 구조 요청은 폭설 때문에 중단됐고, 수진은 돌아오지 않았다. 서진은 방명록에 적힌 이름을 지우려 했다. 잉크는 마르지 않은 듯 손끝에 묻었다.

태건은 로비 난로 옆에 앉아 젖은 장갑을 말렸다. 그는 방명록을 보고 이름을 가리켰다. “내일 오는 사람이 있습니까?”

“길이 막혔어요. 오늘 밤엔 아무도 못 와요.”

“그럼 왜 내일 날짜가 있죠?”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산장 관리인 복수는 방명록을 덮고 서랍에 넣으라고 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손님이 오기 전에 이름이 적힌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 번도 예고를 막지 못했고, 이름을 지우면 더 나쁜 일이 생겼다.

“그럼 왜 계속 기록해요?” 서진이 물었다.

“이름을 남겨야 누가 사라졌는지 알 수 있으니까.”

서진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니의 이름은 어떤 방명록에도 남지 않았다. 그녀는 눈 속에서 언니를 찾다 구조가 끊긴 뒤, 매년 산장에 새 방명록을 두었다. 혹시 돌아온 사람이 이름을 쓸 수 있도록.

새벽에 바람이 잠시 약해졌다. 문 밖에서 삽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태건이 문을 열려고 하자 서진이 막았다. 바람이 다시 몰아치고, 문 앞에 눈이 쌓였다. 손님은 오지 않았다. 서진은 방명록을 펼쳐 이름을 확인했다. 윤미라 옆의 사망 시각은 그대로였다.

그날 밤 1시 12분, 산장 밖에서 구조용 무전기가 울렸다. “여기 윤미라. 들리면 답해.”

태건은 무전기를 잡으려 했다. 서진은 그를 말렸다. 무전은 산악 구조대가 쓰는 채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호출음은 실제로 수신되고 있었다. 복수는 전원을 끄라고 했다. 태건은 구조 요청일 수 있다며 응답해야 한다고 했다. 서진은 방명록의 이름과 시간을 다시 보았다. 오늘은 아직 윤미라가 오지 않았다.

무전기에서 사람의 숨이 들렸다. 이어서 미라의 목소리가 말했다. “서진 씨, 이번에는 문을 열어.”

서진은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가 놓았다. 과거에도 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언니가 눈 속에서 부르던 소리였다. 그녀는 그때 문을 열지 못했고, 다음 날 구조대는 빈 흔적만 찾았다.

태건은 서진을 밀치지 않았다. 대신 무전기를 그녀 쪽으로 돌렸다. “네가 결정해.”

서진은 문을 열지 않고 무전기에 자기 이름을 말했다. “서진입니다. 위치를 확인하세요.”

응답은 오지 않았다. 바깥에서 삽을 끄는 소리가 멈췄다. 곧이어 난로 불이 꺼졌다. 복수는 연료를 확인하러 지하 저장고로 내려갔다. 태건은 창문을 비추다가 눈 속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봤다.

문 밖의 사람은 구조대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눈을 털고 문에 다가왔다. 손에는 방명록이 들려 있었다. 서진이 안에서 쓰는 것과 같은 책이었다.

그 사람이 문을 두드렸다. 세 번.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건은 숨을 죽였다. 복수는 아래층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문 너머에서 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을 지우면, 다음 줄은 네 이름이야.”

서진은 방명록을 펼쳤다. 다음 줄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종이의 눌린 자국은 이미 문장을 만들고 있었다. ‘서진, 03:08.’

태건은 방명록의 잉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글씨는 번지지 않았다. 그는 이름을 지우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간다는 복수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5년 전 수진이 그를 눈사태에서 구해 준 사실은 잊지 못했다. 그는 당시 산장에서 구조를 기다렸고, 누군가 바깥에서 세 번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복수는 문을 열지 말라고 했고, 태건은 그 말을 따랐다. 아침이 되자 수진은 사라져 있었다.

“그날 문을 열었다면 언니가 돌아왔을까요?” 서진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태건은 젖은 장갑을 불 가까이에 두었다. “하지만 내가 문을 열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복수는 그에게 그날 눈사태 경보가 울렸고, 문을 열면 산장까지 무너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태건은 자신이 옳았다고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구조 신호가 들렸는데도 기다린 선택을 후회했다.

서진은 방명록의 이름을 지우지 않고, 다음 손님이 실제로 올 수 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미라의 이름과 시각은 내일의 기록일 수 있었다. 하지만 미라는 구조대원이라면 폭설을 뚫고 들어올 수 있었다. 서진은 외부 무전기를 켜고, 구조대 호출 채널을 열었다. 응답은 없었다.

태건이 배터리의 접점을 닦자 무전기에서 잡음이 났다. 그 잡음 사이로 세 번 노크가 들렸다. 복수는 무전기를 끄라고 했지만, 서진은 볼륨을 낮추고 위치를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방명록의 미라 이름 아래에 새 문장이 나타났다. ‘남쪽 능선, 길이 끊김.’

서진은 산장 지도에서 남쪽 능선을 찾았다. 그 길은 오래전 폐쇄된 구조 통로와 이어졌다. 그녀는 무전으로 좌표를 전송했다. 수신 확인은 없었지만, 창밖의 눈보라가 잠시 옅어졌다. 바람이 멎은 틈에 멀리서 조명 하나가 깜박였다.

그녀는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태건을 붙잡고, 로프를 문고리에 묶었다. 누군가 실제로 오고 있다면 눈사태 위험을 먼저 확인해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복수는 오래된 방명록을 내려놓았다. 그의 손가락은 특정 페이지에서 떨렸다.

서진은 산장 밖의 불빛을 확인하려고 문에 달린 작은 망원경을 들었다. 눈발 사이로 빛이 한 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위치는 남쪽 능선의 낡은 구조 표지와 가까웠다. 태건은 구조대가 임시 신호를 보낸 것일 수 있다고 했다. 복수는 산장에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는 날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내일 미라가 온다고 적혔잖아요.” 서진이 말했다.

“이름이 맞다고 해서 사람이 온다는 뜻은 아니야.”

“그럼 방명록은 뭘 말하는 거죠?”

“우리가 아직 모르는 걸 말하지.”

태건은 복수의 말을 듣고도 방명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서진이 이름을 지우려는 순간마다 손을 막지 않았다. 대신 그녀에게 왜 지우고 싶은지 물었다. 서진은 언니가 돌아오지 못한 책임을 자기 몫으로 옮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름을 지우면 언니가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다.

태건은 자신도 그 희망을 이용했다고 털어놨다. 5년 전 구조대가 철수한 뒤, 그는 산장에 남아 수진의 생존 흔적을 찾고 싶었다. 복수는 눈보라가 끝나면 수색하겠다고 했지만, 태건은 기다리는 동안 언니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돌아온 이유는 그때의 선택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서진은 방명록을 닫고 무전기를 다시 켰다. 구조 채널에서 잡음이 들렸지만, 자신의 위치와 산장 인원 수를 반복해 보냈다. 미라가 정말 내일 오든, 이미 산 아래에 있든, 구조대가 들을 수 있도록 신호를 계속했다.

한 시간 뒤 신호등이 세 번 깜박였다. 창밖의 빛은 움직이지 않았다. 복수는 그 신호를 보자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는 오래된 로프와 눈삽을 가져왔다. 수진이 실종되던 날, 구조대가 철수하면서 남긴 장비였다. 서진은 로프의 매듭을 살폈다. 끝부분에 언니가 쓰던 두 겹 매듭이 있었다.

그녀는 로프를 방명록 옆에 놓고 잠들지 않기로 했다.

태건은 산장에 남아 있는 사람을 다시 세었다. 서진, 복수, 자신. 미라가 내일 온다면 네 번째 손님이 될 것이다. 그는 그 숫자를 방명록의 인원란에 적었다. 이름 옆에 사망 시각을 쓰지 않고, 현재 위치를 남겼다. 서진은 그가 조용히 장부를 쓰는 모습을 지켜봤다.

복수는 예전에 이름을 지운 페이지를 보여 주었다. 종이에는 지워진 자국만 남았지만, 뒷면에는 눌린 글씨가 있었다. 사망 예정자는 복수의 아내가 아니라, 폭설에 고립된 손님이었다. 복수의 아내는 그를 찾으러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복수는 손님을 살리기 위해 아내를 내보낸 것이 아니라, 이름을 지운 뒤 누가 위험해질지 몰라 문을 잠갔다.

서진은 그가 악의를 품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선택이 누군가를 고립시킨 결과는 그대로 남았다. 복수는 자신이 기억하는 사실과 기록에 남은 사실을 나누어 적었다. 그는 아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인정했다.

방명록의 이름은 다시 바뀌었다. 다음 날 날짜가 지워지고, ‘윤미라, 도착 예정’이라는 문장만 남았다. 사망 시각은 여전히 적혀 있었다. 서진은 그 줄 옆에 구조 무전의 좌표를 적었다. 기록이 예고를 반복하더라도, 지금의 행동은 선택할 수 있었다.

밤이 깊어졌지만 바람은 줄지 않았다. 서진은 구조 무전의 배터리를 갈아 끼우고, 문 가까이에 비상 담요와 눈삽을 준비했다. 미라가 오지 않더라도 구조대가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바깥에 반사 표식을 걸었다.

그녀는 복수에게 방명록을 건네며 다음 줄에 자신이 직접 기록을 남기겠다고 했다. 복수는 책을 받지 않고, 서진이 쓰도록 자리를 비켰다.

서진은 글씨가 마를 때까지 기다린 뒤 방명록을 덮었다.

서진은 그 줄을 다시 읽었다.

AD
스폰서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