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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의 월광검객3화

화양의 월광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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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칼날에 남은 반대말

정무는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에 돌아왔다. 그의 회색 두루마기 소매에는 검은 먹물이 번져 있었다. 그는 문서함을 내려놓으며 기록실의 서리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집에는 핏자국이 있었지만 시신은 없었다. 책상 밑에서 발견한 건 연하의 사부 이름이 적힌 체포 명령서뿐이었다.

“그 명령은 언제 작성됐죠?” 초연이 물었다.

“도난 신고보다 이틀 전이다.”

연하는 정무가 내민 종이를 받아 들었다. 사부가 비급을 훔쳤다는 혐의가 생기기도 전에 체포 명령이 내려졌다. 기록에는 ‘월광검 계승자가 문파 기록을 탈취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부의 이름 옆에 연하의 이름도 있었다.

“누군가 처음부터 우리를 범인으로 정해 두었군요.”

“명령서가 진짜라면 그렇다.” 정무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문서가 진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는 서리의 방에서 가져온 잉크병을 꺼냈다. 병의 바닥에는 은가루가 가라앉아 있었다. 연하는 역참에서 발견한 가루를 떠올렸다. 초연이 두 가루를 천 위에 나란히 놓았다. 역참의 가루는 푸른빛이 돌았고, 잉크병의 가루는 누런빛이었다. 같은 은문 가루가 아니었다.

정무는 두 가루가 다른 출처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가 믿어 온 문서의 잉크에도 누군가 손댔을 가능성이 생겼다. 그는 명령서를 접으려다 손을 멈췄다. “이걸 폐기하면 사라진 서리의 흔적도 사라진다.”

“태우지 마세요.” 연하가 말했다. “하지만 그 종이 하나로 사부를 죄인이라 부르지도 마세요.”

정무는 명령서를 문서함 위에 놓았다. 종이의 모서리가 떨렸다. 그는 분노 때문인지 피로 때문인지 숨을 길게 뱉었다. “내가 이 문서를 들고 다니며 그를 찾았다. 혐의를 확인한다는 말 뒤에,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연하는 그의 얼굴에서 미안함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사과를 들으면 마음이 누그러질 것 같아 경계했다. 사부를 배신자로 몰았던 시간은 문장 하나로 돌아오지 않았다.

초연이 사라진 서리의 집에서 발견한 물건을 늘어놓았다. 깨진 벼루, 손톱에 묻은 먹, 벽에서 뜯겨 나간 달력 조각. 달력에는 백월루에 오기로 한 날짜가 표시되어 있었다. 누군가 사부와 서리를 같은 날 불러낸 것일까. 초연은 먹 자국의 방향을 살폈다. 서리는 오른손잡이였는데 책상 오른쪽 벽에 먹이 튀어 있었다. 누군가 그의 손을 책상 반대편으로 비틀어 눌렀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 사람은 자발적으로 사라진 게 아닐 수 있어요.” 초연이 말했다.

정무는 즉시 수색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누구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나서려 했다. 그러나 연하는 그를 불러 세웠다. “사람을 찾는다고 방을 뒤집으면, 숨어 있는 사람은 더 깊이 숨습니다. 가까운 의원부터 물어봐요. 피를 치료하려면 약이 필요했을 테니까.”

초연이 나루터 아래 빈 약방을 알고 있었다. 서리의 아내가 몇 해 전 그곳에서 약재를 팔았다. 세 사람은 해가 기울기 전에 나루로 향했다. 연하는 길 내내 수배 명령서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생각했다. 죄가 입증되지 않아도 이름은 사람을 쫓아다녔다.

약방은 문을 닫은 지 오래였다. 처마 밑에는 비에 젖은 약초 다발이 매달려 있었다. 초연은 문에 귀를 댔다. 안쪽에서 기침이 들리자 약방 문을 두드렸다.

“의원입니다. 피가 멎지 않으면 지금 문을 열어야 해요.”

한참 뒤 문이 열렸다. 안에는 기록실 서리의 아내 설주가 있었다. 그녀의 왼손은 붕대로 감겨 있었고, 방 구석에는 서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정무를 보자 몸을 움츠렸다.

“무림맹에서 왔습니다.” 정무가 말했다.

“그 말을 믿고 남편이 끌려갈 뻔했어요.” 설주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정무는 문턱에서 멈췄다. “체포하러 온 게 아닙니다.”

“당신들이 만든 문서엔 이미 우리 이름이 있던데요.”

연하는 수배 문서를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그 문서가 거짓일 수 있다고 확인했어요. 하지만 지금 당신에게 우리를 믿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말에 설주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초연은 남편의 상처를 보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설주는 초연의 눈을 한참 살핀 뒤에야 길을 비켰다. 서리의 어깨에는 얕은 칼자국이 있었다. 상처는 급하게 감겨 있었고, 피가 안쪽 옷까지 배어 있었다.

초연이 붕대를 풀자 서리가 숨을 삼켰다. “문서가 사부의 것이 아니란 걸 알았어요. 탁본을 고치라는 명을 받았죠. 거부했더니 밤에 사람들이 왔습니다.”

정무는 누가 명령했느냐고 물었다. 서리는 고개를 저었다. “얼굴을 못 봤습니다. 그런데 칼집에 흰 비단을 감았어요. 무림맹 수석 장로의 호위가 쓰는 표식입니다.”

그 말은 새로운 의심을 낳았다. 정무는 수석 장로에게 충성해 온 감찰관이었다. 그는 설주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그 표식만으로 장로를 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걸 안다고 해서 당신들 입을 막지는 않겠습니다.”

서리는 약장 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비급 도난 신고를 접수한 날, 그는 원본 탁본을 보관해 두었다. 표식의 왼쪽 획이 문서와 달랐다. 그러나 종이 아래에 손으로 쓴 문장이 있었다. ‘월광검은 열람자가 직접 보관할 것. 검이 대답을 기억한다.’

연하의 손이 굳었다. 사부가 기록실 서리에게 월광검을 맡겼던 것일까. 아니면 검을 둘러싼 비밀을 누군가 알아내려 했던 것일까. 종이를 받아 드는 순간 칼집이 낮게 울렸다. 그녀는 검을 뽑지 않고 종이를 초연에게 건넸다.

“글씨가 사부 것인지 확인할 수 있나요?”

“마지막에 본 글씨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연하는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획을 보고 틀린 점을 말할 수는 있어요.”

그녀는 사부가 자주 쓰던 ‘보관’의 끝 획이 종이에서 반대로 기울었다고 짚었다. 초연은 같은 글자를 세 번 써 보게 한 뒤 손목의 움직임을 비교했다. 글씨는 사부를 흉내 냈지만, 손의 버릇은 달랐다. 정무는 이를 메모하면서도 단정하지 않았다.

“누군가 우리에게 일부러 그 종이를 보여 준 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원본 탁본과 같이 보관해야 해요.” 초연이 말했다. “한 장의 종이만 믿지 말고, 서로 다른 흔적을 맞춰 봐야죠.”

설주는 남편이 증언하러 나서면 무림맹이 그를 죽일 거라고 했다. 서리는 아내를 두고 도망칠 수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연하는 자신의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을 알았다. 사부에게도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 선택을 배신이라고 부르기 전에, 자신은 무엇을 보았는가.

“오늘 여기서 증언할 필요는 없어요.” 연하가 말했다. “하지만 종이를 넘기면 다음 사람이 더 큰 위험을 감당하게 됩니다. 숨기기로 한다면 그 선택도 당신들 몫이에요.”

서리는 잠시 아내의 손을 바라봤다. 설주는 붕대를 감은 손을 내밀어 그의 손등에 얹었다. “이번엔 당신 혼자 결정하지 마.”

두 사람은 원본을 내놓는 대신, 내용의 사본을 세 사람에게 나눠 주기로 했다. 한 장은 초연이 약재 목록과 함께 숨기고, 한 장은 정무가 봉인해 두며, 마지막 한 장은 설주가 보관한다. 그들은 공개할 시기를 정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한 사람이 사라지면 남은 둘이 기록을 세상에 내놓기로 약속했다.

정무는 그 약속을 문서로 쓰지 않겠다고 했다. 설주가 그의 손을 바라봤다. “당신이 종이에 쓰면 우린 더 위험해져요.”

정무는 빈 종이를 접어 넣었다. 처음으로 그는 조사관의 권한보다 그 자리에 남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먼저 헤아렸다.

약방을 나서기 전, 연하는 서리에게 사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물었다. 서리는 한참 입술을 달싹이다 겨우 대답했다. “그는 월광검을 맡기며 말했어요. ‘기억을 옮겨도 책임은 옮겨지지 않는다.’”

그 문장은 연하의 가슴을 무겁게 눌렀다. 사부는 기억이 사라질 것을 알고도 검을 쓰게 했다. 그것이 제자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는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한 선택이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초연은 약방 문을 닫으며 연하에게 물었다. “검에 그 말이 남아 있을까요?”

“확인하고 싶어요.”

“잊을지도 몰라요.”

연하는 칼집 위에 손을 놓았다. “그럼 오늘은 뽑지 않겠어요. 그 말은 이 사람들의 입으로도 들었으니까요.”

정무가 앞서 나가다가 걸음을 늦췄다. 그는 서리의 증언을 무림맹에 보고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다. 대신 보고하기 전에 초연과 연하에게 사본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했다. 완벽한 신뢰는 아니었다. 그러나 연하는 약속이 지켜지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나루의 물은 어둠 속에서 검은 유리처럼 흘렀다. 연하는 물가의 돌을 세며 걸었다. 열일곱 번째 돌 앞에서 발을 멈췄다. 사부가 가르친 답이 떠올랐는지, 초연이 전에 말한 발걸음이 생각났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 구분을 억지로 메우지 않았다.

그날 밤 초연은 수첩에 세 사람의 증언을 서로 다른 색으로 적었다. 연하는 자신의 빈 기억에 검은 선을 긋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빈칸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다만 아직 자신이 채울 수 없는 자리였다.

마지막으로 정무가 보내온 쪽지에는 사라진 서리의 명령서가 수석 장로의 인장으로 봉인되어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정무는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쪽지 끝에 한 문장을 덧붙였다. ‘장로가 직접 명령했는지는 아직 모른다.’

연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사부가 배신자라는 단정은 흔들렸지만, 이제 다른 사람을 배신자라 부르고 싶은 마음도 함께 흔들렸다. 사부가 남긴 기억을 찾는 길은 칼날보다 사람들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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