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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몬스터 학자는 기사단을 지휘한다1화

아카데미의 몬스터 학자는 기사단을 지휘한다

아카데미의 몬스터 학자는 기사단을 지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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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학자의 손끝

수정구는 끝내 빛나지 않았다.

서준은 반투명한 푸른빛 구체 위에 얹었던 손을 거두었다. 손가락 마디마다 스며든 검은 먹물과 독초 방부액 냄새가 차가운 실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불합격일세."

심사위원석 중앙에 앉은 바르톨 교수가 양피지 서류를 무심히 넘기며 말했다.

"측정 수치 삼 점 이하. 마력 활성화 반응 전무. 이서준 자네는 오 년 동안 왕립 몬스터 아카데미에 머물렀지만 전임 교수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소양조차 갖추지 못했어."

"교수님. 제 연구 논문은 몬스터의 마력 방출 기관과 지형별 행동 양식에 관한 분석입니다. 학자의 본령은 생태의 법칙을 규명하는 일이지 직접 마탄을 쏘는 것이 아닙니다."

서준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억울함에 떨리지도 않았고 비굴하게 숙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바르톨 교수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학자의 본령? 허울 좋은 소리 집어치우게. 지금 국경에서 날뛰는 괴물들이 네 논문을 읽고 물러서나? 기사단이 원하는 것은 칼날에 마력을 불어넣어 괴물의 멱을 딸 수 있는 실전형 지도자야. 책상머리에서 가죽 냄새나 맡는 짐꾼 따위가 아니라."

좌우에 앉은 다른 심사위원들도 헛기침을 삼키며 시선을 피했다. 이미 짜인 각본이었다. 귀족 가문의 후원을 받는 기사단 출신 교관들이 아카데미의 요직을 차지한 지 오래였다. 전투 마력이 전무한 서준 같은 평민 연구자에게 돌아갈 강단은 없었다.

"임용 취소 통보서는 조교실로 보내겠네. 대신 이번에 편성된 신입 기사단 숲 실습에 보조로 배정해 줄 테니 나가보게."

사실상의 퇴출이자 강등 통보였다. 서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결정, 잘 알겠습니다."

서준은 뒤돌아 심사실 문을 열고 복도로 걸어 나왔다.

복도 벽면에는 역대 대마법사와 맹장들의 초상화가 화려한 금박 액자에 걸려 있었다. 그들은 모두 괴물의 목을 벤 검이나 화려한 마법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괴물이 어디서 번식하고 왜 특정 계절에 포효하는지 기록했던 학자들의 이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상관없다.'

서준은 외투 주머니 속에 든 낡은 양피지 수첩을 만지작거렸다.

마력이 깃들지 않는 손끝. 하지만 그 손끝은 누구보다 예민했다. 손끝을 스치는 바람의 습도, 흙먼지에 섞인 분비물의 냄새, 짐승이 남긴 발톱의 미세한 마찰흔.

기사들이 뿜어내는 거친 마나의 소음 속에서는 결코 들리지 않는 괴물의 진짜 숨소리가 서준에게는 선명하게 읽혔다.


본관 지하 1층에 자리한 제1표본 해부실은 생도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강철 해부대 위에는 거대한 괴수의 사체가 눕혀져 있었다. 회색 털 속에 뾰족한 가시가 돋아난 맹수, 검은 숲의 사냥꾼이라 불리는 '바브드 울프'였다. 몸길이만 이 미터가 넘는 거구에서 여전히 비릿한 피 냄새가 풍겼다.

"잘 보아라!"

붉은 망토를 두른 실습 교관 하켄이 허리에 찬 장검의 손잡이를 툭툭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놈이 바로 너희가 사흘 뒤 검은 숲 실습에서 마주할 바브드 울프다. 가죽이 질기고 털 사이에 돋은 가시 때문에 어설픈 참격은 튕겨 나간다. 하지만 약점은 명확하지."

하켄 교관이 사체의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가죽이 깊게 찢겨 나가 굳은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늑대형 마수는 뼈가 가슴을 둘러싸고 있으나 갈비뼈 세 번째와 네 번째 틈새가 유일한 통로다. 마력을 실은 검으로 이 틈을 꿰뚫어 심장을 파괴한다. 이것이 기사단의 정석적인 돌격 섬멸법이다."

주변에 모여선 신입 생도들의 눈이 경외감으로 반짝였다.

무리 맨 앞줄에서 화려한 은장 검집을 차고 선 금발의 소년, 로슈 백작가의 후계자이자 이번 기수 수석인 카일 로슈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교관님 말씀대로입니다. 괴물의 움직임이 아무리 사나워도 결국 심장에 일격을 꽂아 넣으면 끝나는 법이지요. 기사의 검에 망설임만 없다면 숲의 마수 따위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하, 역시 로슈 가문의 기린아답구나. 바로 그 기백이다!"

교관의 칭찬에 카일의 턱이 한층 더 오만하게 치켜올라갔다.

서준은 해부실 구석에서 연구 일지를 챙기려다 말고 멈춰 섰다.

그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졌다.

서준의 코끝으로 사체에서 풍겨오는 기묘한 잔향이 스며들었다. 피 냄새 아래 깔린 옅은 마비 독 특유의 쌉싸름한 냄새. 그리고 공기 중에 퍼진 미세한 점액질의 기운.

서준은 자신도 모르게 해부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시선이 사체의 여러 부위를 훑었다. 안쪽으로 비정상적으로 오그라든 뒷발톱의 각도, 반쯤 벌어진 입안에서 푸르게 변색된 혓바닥 그리고 찢겨진 가슴 상처 단면의 혈액 응고 상태.

"틀렸습니다."

조용한 목소리가 해부실의 공기를 갈랐다.

웅성거리던 생도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하켄 교관의 눈썹이 험악하게 치켜올라갔다.

"……누구냐?"

생도들이 길을 터주자 낡은 학자 망토를 걸친 서준이 해부대 바로 앞까지 걸어 나왔다.

"조교실의 이서준입니다. 교관님, 방금 말씀하신 설명은 전부 틀렸습니다. 이 늑대는 심장이 찔려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해부실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내 카일 로슈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뭐라고? 조교 주제에 감히 교관님의 지도를 부정하는 건가? 저 흉곽에 뚫린 상처가 보이지 않는 거요?"

하켄 교관 역시 얼굴을 붉히며 다가왔다.

"이서준 조교. 자네가 마력 측정에서 떨어져 정신이 나간 모양인데 여긴 무능한 학자가 말장난하는 곳이 아니다. 상처 부위에서 심장까지 관통흔이 선명하거늘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나!"

서준은 그들의 험악한 기세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는 해부대 옆에 놓인 은색 핀셋과 메스를 집어 들었다.

"상처는 관통흔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개체가 이미 절명한 뒤에 찌른 것입니다."

"사후 손상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직접 확인하면 됩니다."

서준은 메스 끝을 사체의 가슴이 아닌 목덜미 오른쪽으로 가져갔다.

"바브드 울프가 살아 있을 때 심장에 치명상을 입었다면 폐동맥 압력으로 인해 가슴 주변 가죽 안쪽에 광범위한 피하 출혈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저 상처 주변에는 멍이 전혀 없습니다. 피가 엉긴 것은 상처 틈으로 스며든 잔류 혈액이 굳었을 뿐입니다."

서준의 손이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사각.

질긴 목덜미 가죽이 정밀하게 갈라졌다. 서준은 핀셋으로 피하 조직 속을 헤집어 엄지손가락 크기의 기묘하게 부풀어 오른 푸른색 주머니를 끄집어냈다.

"이것을 보십시오."

주머니 표면에는 검붉은 핏줄이 기괴하게 얽혀 있었다. 서준이 핀셋으로 살짝 압박하자 독한 마비향이 퍼져 나왔다.

"변이된 하악 림프샘입니다. 이 개체는 사망 직전 체내 독샘이 폭주해 기도가 막혀 질식사했습니다. 혓바닥이 푸르게 부풀고 뒷발톱이 안쪽으로 경련하며 굳은 것이 그 증거입니다."

카일의 얼굴에서 여유로운 미소가 지워졌다.

"독샘 폭주……?"

"그렇습니다."

서준은 메스를 내려놓고 하켄 교관을 똑바로 응시했다.

"교과서에 실린 일반 바브드 울프는 맹독을 다루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표본은 최근 검은 숲 안쪽에서 유입된 변종입니다. 녀석들은 위험을 느끼면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목 주변의 마비 독안개를 흉곽 전체로 역류시키는 방어 기전을 씁니다."

서준의 목소리가 해부실 구석구석을 무겁게 파고들었다.

"만약 교관님의 훈시대로 생도들이 심장을 노리고 정면 돌격하여 가슴을 찌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늑대는 죽지 않고 체내에 응축된 독안개를 폭발시킬 겁니다. 갈비뼈 틈새를 뚫으려 좁은 간격으로 모여든 기사 분대 전체가 사 초 안에 전신 마비에 빠져 몰살당합니다."

하켄 교관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 그게 사실이란 말이냐? 고작 일개 조교의 가설일 뿐이잖아!"

"가설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저 림프샘을 알코올 용액에 넣어보십시오. 삼 초 안에 붉게 산화 반응을 일으킬 테니까요."

서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해부실 입구 쪽에서 맑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 짝, 짝.

흐트러진 백금발 머리에 둥근 안경을 쓴 여인, 아카데미 수석 연구원 미레나 칼트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옷자락에서는 익숙한 약초와 방부제 냄새가 났다.

"서준이 말이 맞아요, 하켄 교관."

미레나가 푸른 림프샘을 눈여겨보며 안경을 고쳐 썼다.

"저 표본은 이틀 전 숲 외곽 순찰대가 가져온 사체예요. 이미 연구실 1차 간이 검사에서도 신경독 반응이 검출됐답니다. 현장 기사들이 급소만 찌르면 다 이긴다고 우기다가 사인을 날조해서 넘긴 바람에 분류표 수정이 늦어졌을 뿐이죠."

미레나의 확인 사살에 하켄 교관의 턱이 바들바들 떨렸다.

생도들의 시선이 하켄 교관과 카일 로슈에게 쏠렸다. 조금 전까지 기사의 무용과 돌격을 찬양하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카일은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쥐었다. 마력도 없는 초라한 학자 하나에게 완벽하게 논파당했다는 사실이 귀족 생도로서의 자존심을 난도질했다.

"……크흠!"

하켄 교관이 헛기침을 하며 메스를 노려보았다. 수치심과 분노로 목덜미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좋다. 생태적 변수 하나를 짚어낸 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전장은 학술 토론장이 아니다! 현장에서 괴물이 덮쳐올 때 네놈의 그 긴 해부학 강의를 들어줄 몬스터가 어디 있단 말이냐!"

하켄은 화풀이하듯 서준의 가슴팍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마침 잘됐군. 이서준 조교, 자네는 이번 신입 기사단 숲 실습의 최전방 보조로 임명한다. 현장 짐꾼 겸 사체 수거역이다."

미레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하켄 교관, 전투 마력이 없는 연구원을 최전방에 배치하는 건 규정 위반이에요."

"규정? 실습생들의 안전을 위해 현장 생태 전문가가 동행하는 것뿐입니다. 본인이 그렇게 잘난 지식을 가졌으니 현장에서도 훌륭한 고기방패…… 아니, 길잡이가 되어 주겠지요!"

비열한 보복성 인사였다. 위험천만한 숲속에서 짐을 나르다 괴물에게 찢겨 죽어도 상관없다는 악의가 노골적으로 묻어났다.

생도들 사이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카일 역시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모두가 서준이 겁에 질려 물러서거나 바르톨 교수에게 매달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검은 눈동자 깊은 곳에서 차가운 불꽃이 일렁였다.

'변종이 실제로 나타났다.'

서준은 최근 아카데미 서고의 표본 일지에서 북부 몬스터의 이상 번식과 변이 기록이 고의로 누락된 흔적을 여러 차례 발견했었다. 책상머리 연구실에서는 결코 밝혀낼 수 없던 진실이 지금 검은 숲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서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서준아?"

미레나가 놀라 부르는 소리도 뒤로한 채, 서준은 하켄 교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실습 보조로 참가하겠습니다. 대신 사체 수거와 현장 기록에 관한 전권은 제가 갖겠습니다."

"흥! 좋을 대로 해라. 숲에 발을 들이는 순간 네놈이 가진 헛된 지식이 얼마나 무력한지 뼈저리게 알게 될 테니까."

하켄 교관은 혀를 차며 생도들을 이끌고 해부실을 빠져나갔다. 카일 로슈는 나가기 직전 서준을 향해 깊은 적의와 혼란이 뒤섞인 눈빛을 던지고 돌아섰다.

텅 빈 해부실에 서준과 미레나만이 남았다.

미레나가 다가와 한숨을 내쉬었다.

"무리할 필요 없었잖아. 바르톨과 하켄이 손잡고 널 밀어내려 하는 거 뻔히 알면서."

"밀려난 게 아닙니다, 선배."

서준은 늑대의 목덜미 상처를 다시 한번 매만졌다. 차가운 가죽 너머로 희미하게 진동하는 기괴한 마력 잔향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단순한 자연 변이가 아니었다. 숲 전체의 질서를 뒤흔드는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직접 봐야겠습니다. 저들이 무지로 인해 기사들을 사지로 몰아넣기 전에 제가 먼저 기록해야 합니다."

서준은 해부대 위에 놓인 낡은 일지를 집어 들었다.

마력도 검도 없지만 그에게는 몬스터의 언어를 읽는 눈이 있었다.

학자의 전장이 이제 막 막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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