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급 헌터는 요리로 각성한다

5화: 국자 하나면 충분하다
재개발 구역 뒷골목의 밤바람은 서늘했지만 몬스터 키친의 문을 열고 들어선 사내들의 기세는 험악하기 짝이 없었다.
가죽 재킷을 걸친 세 명의 덩치 뒤로 잔뜩 주눅 든 왜소한 헌터 한 명이 억지로 떠밀려 들어왔다.
“여기가 그…… 마력을 뚫어준다는 괴상한 식당이 맞소?”
맨 앞의 덩치 큰 사내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주방 안을 거칠게 훑었다. 목덜미에 징그러운 뱀 문신이 새겨진 사내의 이름은 배종석이었다. 이 일대 하위 헌터들을 상대로 사채놀이를 일삼고 푼돈을 갈취하는 악질 C급 헌터였다.
그의 뒤에 선 부하 둘이 쇠파이프와 손도끼를 짤랑거리며 빈 테이블을 발로 걷어찼다.
쿵!
“어이구, 간판 꼬락서니 하고는. 야, 주인장! 여기서 뭐 금지 약물이라도 섞어 파냐? D급 찌꺼기 놈이 여기서 밥 한 끼 처먹고 C급이 됐다고 출장소가 발칵 뒤집혔던데?”
배종석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주방 카운터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카운터 너머에서 도마를 닦고 있던 성훈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영업 끝났습니다. 나가시죠.”
“뭐? 나가?”
배종석이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양반이 어디서 굴러먹던 뼈다귀길래 사람을 몰라보고 이따위야? 내가 누군지 몰라? 이 골목에서 숟가락 하나 얹으려면 나한테 먼저 보호비부터 내고 도장을 찍어야 하는 거 몰라?”
그때 배종석 일당의 등 뒤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던 왜소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사장님…… 소문 듣고 왔습니다. 저, 정말로…… 손상된 회로를 고쳐주시는 게 맞습니까?”
사내의 이름은 박진철이었다. 십 년 넘게 D급으로 현장을 구르다 과도한 마력 역류로 오른쪽 상체 회로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불운한 헌터였다. 더는 무기를 쥘 수 없어 치료비를 위해 사채를 썼고 그 빚 때문에 배종석 일당에게 개처럼 끌려다니던 처지였다.
성훈의 무심한 눈동자가 박진철을 향했다.
[감별: 대상의 오른쪽 상체 마력 회로 심각한 석회화 및 경화 진행.]
[원인: 저급 마력석 과다 흡수 및 마력 역류 흔적.]
[처방: 고단백 마력 분해 성분과 정화된 온기 보충 요리 필요.]
성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1인분 남았습니다. 거기 앉으시죠.”
“야, 박가 놈아! 너 지금 내 말 씹고 저 돌팔이 밥을 처먹겠다는 거냐?”
배종석이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박진철의 멱살을 잡으려 굵은 팔을 뻗었다.
그 순간 허공을 가르는 성훈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내리꽂혔다.
“내 식당에서 손님한테 손대지 마라.”
배종석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그는 성훈의 서늘한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섬짓함을 느꼈지만 이내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자식이 진짜 돌았나! 야, 엎어!”
배종석의 신호에 뒤에 서 있던 부하 둘이 쇠파이프를 치켜들며 주방 조리대를 향해 사납게 돌진했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부하 한 명이 쇠파이프를 내리치며 성훈의 불판을 부수려던 찰나였다.
성훈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성훈이 쥔 것은 칼이 아니었다. 주방 벽면에 걸려 있던 평범한 무쇠 국자였다.
툭.
성훈이 국자 자루를 가볍게 튕겨 올렸다.
국자의 둥근 모서리가 쇠파이프를 쥐고 있던 사내의 손목 관절을 정확하게 짚었다.
딱!
“끄아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쇠파이프가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내의 손목뼈가 어긋나며 마력의 흐름이 단숨에 끊겨 나갔다.
“뭐, 뭐야? 이 새끼가!”
다른 부하가 품에서 시퍼런 단검을 꺼내 성훈의 목을 향해 찔러왔다.
성훈은 몸을 반 보 비틀어 단검을 흘려내며 국자를 거꾸로 쥐었다. 무쇠 국자의 단단한 자루 끝이 사내의 명치를 정통으로 찔렀다.
퍽!
“커흑……!”
사내는 숨을 들이켜지도 못한 채 눈을 허옇게 뒤집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마력 회로가 통째로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부하 둘이 바닥을 뒹굴자 배종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런 괴물 같은 자식이……!”
배종석은 이를 악물고 전신의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C급 헌터로서 그가 자랑하는 방어 스킬인 [강철 피부]였다. 그의 피부가 검푸른 쇳빛으로 물들며 단단한 금속성 광택을 뿜어냈다.
“죽여버리겠다!”
배종석이 강철처럼 단단해진 주먹을 내지르며 주방 카운터를 통째로 부술 기세로 덮쳐왔다.
하지만 성훈의 눈에는 그 모든 궤적이 하품이 나올 만큼 느렸다. 심연에서 시속 백 킬로미터로 돌진하는 바위 멧돼지와 피를 뿜는 맹수들을 썰어 넘기던 감각에 비하면 어린아이의 몸짓에 불과했다.
[해체 시야: 대상의 마력 연결 결절점 3개 포착.]
성훈은 웍을 불 위에 얹은 채 왼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의 국자를 부드럽게 내리쳤다.
깡—!
맑고 청명한 쇠 소리가 식당 안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무쇠 국자의 바닥면이 배종석의 오른쪽 쇄골 아래 림프선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찰나 배종석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푸른 강철빛 마력이 유리창 깨지듯 와장창 흩어졌다.
“어……? 내 스킬이……?”
배종석이 경악하여 말을 잇지 못할 때 성훈의 국자가 다시 한번 허공을 갈랐다.
딱!
이번에는 턱 끝이었다.
국자 모서리에 턱을 정타로 얻어맞은 배종석의 육중한 몸이 공중으로 반 바퀴 회전하더니 바닥에 처박혔다.
콰당탕!
“커어억……!”
배종석은 피를 토하며 바닥을 기었다. 온몸의 마력 회로가 찢겨 나간 듯 쑤셔왔고 부서진 턱뼈의 고통에 눈물과 침이 바닥을 적셨다.
성훈은 국자를 싱크대에 던져 넣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스 불을 올렸다.
치이익—!
달궈진 철판 위에 마지막 남은 뿔토끼 간과 회색 고블린 갈비살이 올라갔다. 고소한 고기 냄새와 생강의 알싸한 풍미가 매캐하던 주방의 공기를 단숨에 정화하며 퍼져 나갔다.
성훈은 고슬고슬한 밥 위에 노릇하게 익은 갈비와 부드러운 간을 얹고 특제 소스를 넉넉히 둘렀다.
달그락.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릇이 굳어 있던 박진철의 테이블 위에 놓였다.
“식기 전에 드세요.”
박진철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배종석 일당과 덮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신을 몇 달 동안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악질 헌터가 국자 몇 번에 바닥의 쓰레기처럼 구르고 있었다.
“저, 정말…… 제가 먹어도 됩니까?”
“손님이 주문하신 음식입니다.”
성훈의 담담한 대답에 박진철은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오른팔이 굳어 숟가락을 쥐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입안으로 덮밥을 밀어 넣는 순간 온몸에 번개가 치듯 전율이 흘렀다.
달콤 짭조름한 양념이 고기의 잡내를 완벽히 지워내고 씹을수록 농후한 감칠맛의 육즙이 뿜어져 나왔다. 뿔토끼 간의 부드러운 풍미가 혀를 감싸더니 식도를 타고 뜨거운 온기가 쏟아져 내렸다.
화아악—!
따스한 열기가 그의 굳어 있던 오른쪽 어깨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갔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마력 회로의 석회질이 봄눈 녹듯 사르르 풀려나갔다. 굳어서 삐걱거리던 근육과 관절이 시원하게 펴지며 멈춰 있던 마력이 전신을 거세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으아아……!”
박진철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팔이…… 팔이 움직여! 마력이 돌아온다!”
박진철은 그릇에 코를 박고 허겁지겁 밥을 삼켰다.
그사이 성훈은 주방에서 질긴 노끈을 꺼내 들고 바닥에 뒹굴던 세 놈에게 다가갔다.
“크윽…… 너, 너 이 자식……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배종석이 부러진 턱을 감싸 쥐며 신음했다.
성훈은 대꾸도 없이 세 놈의 손과 발을 노끈으로 꽁꽁 묶었다. 심연에서 사나운 마수를 포박하던 솜씨라 어설픈 발버둥으로는 풀릴 턱이 없었다.
이어 성훈은 배종석의 주머니를 거침없이 뒤졌다.
두툼한 가죽 지갑에서 오만 원권 지폐 뭉치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품 안쪽 비밀 주머니에서는 은은한 마력을 뿜어내는 푸른빛의 D급 중급 마석 네 개가 나왔다. 부하들의 주머니에서도 현금과 잡다한 마석들이 털려 나왔다.
“이, 이걸 왜 뺏어! 강도냐!”
배종석이 피를 흘리며 악을 썼다.
성훈은 현금 뭉치와 마석을 카운터 위에 얹으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식당 기물 파손 미수금 100만 원. 영업 방해 및 손님 위협 합의금 200만 원. 마석은 주방 청소비로 치겠습니다.”
“뭐, 뭐라고? 야!”
“불만 있으면 협회 감사팀이나 경찰에 신고하시든가요. 불법 사채업자가 손님을 협박하려다 식당 집기에 걸려 넘어졌다고 적어줄 테니까.”
성훈의 싸늘한 말에 배종석은 숨이 턱 막혔다. 협회에 알려지면 자신들의 불법 갈취 행위가 고스란히 드러나 헌터 면허가 영구 박탈될 판이었다.
성훈은 세 놈의 멱살을 한 손에 모아 쥐고 식당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마치 쓰레기봉투를 내놓듯 골목길 구석의 분리수거장 옆에 냅다 내던졌다.
쿵!
“아침 전까지 굴러서 꺼져라.”
문이 닫히며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맑게 울렸다.
식사를 마친 박진철은 밥알 한 톨 남지 않은 깨끗한 그릇을 앞에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생기로 가득 차 있었고 오른팔에서는 단단한 마력의 박동이 고동치고 있었다.
“사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밥값은…….”
“밥값은 만 이천 원입니다.”
박진철은 가슴 포켓에서 꼬깃꼬깃하게 접어둔 돈을 꺼내 조심스럽게 건넸다.
“언젠가 이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제 빚도, 헌터 인생도 사장님 덕분에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박진철이 깊게 머리를 숙인 뒤 식당 문을 나섰다.
가게 안에는 다시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
성훈은 카운터 위에 놓인 현금 삼백만 원과 푸른빛 마석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야옹.”
검은 고양이가 카운터로 가볍게 뛰어올라 마석 하나를 앞발로 툭툭 굴렸다.
“이 정도 돈이면 내일 처리장에서 제대로 된 부위를 잔뜩 사 올 수 있겠군.”
성훈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올라갔다. 폐기 직전의 잡육이 아니라 제대로 된 마력 육질을 가진 특수 부위를 넉넉하게 사 올 밑천이 마련된 것이다.
한편 식당 밖 어두운 골목 어귀.
가로등 불빛조차 닿지 않는 후미진 모퉁이에 검은색 최고급 세단 한 대가 조용히 멈춰 서 있었다.
차 안의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창문을 반쯤 내린 채 몬스터 키친의 문을 유심히 응시하고 있었다.
국내 1위 길드 ‘태양’의 수석 스카우터 강태식이었다.
그는 출장소에서 들려온 기이한 C급 승급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러 왔다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뒷골목에서 악명 높던 C급 불량 헌터 배종석 일당이 국자 하나를 든 식당 주인에게 몇 초 만에 쓸려 나가는 기현상이었다.
강태식이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본부입니까? 스카우트 1팀장 강태식입니다.”
— 보고하십시오. 출장소 소문의 진위는 확인했습니까?
강태식은 침을 꿀꺽 삼키며 몬스터 키친의 낡은 간판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단순한 소문이 아닙니다. D급 회로를 치료한 식당이라더니…… 주방장이 C급 헌터 셋을 국자 하나로 털어버렸습니다. 내일 당장 정식으로 접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