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급 헌터는 요리로 각성한다

4화: 막힌 회로가 뚫릴 때
숟가락이 그릇 바닥을 긁는 소리가 적막한 식당 안에 선명하게 울렸다.
도윤은 홀린 사람처럼 밥을 퍼 올렸다.
입안에 퍼지는 고기의 육즙은 씹을 때마다 짙은 감칠맛을 뿜어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게 익은 고블린 갈비살 사이로 스며든 비법 양념이 혀끝을 자극했다. 다진 뿔토끼 간의 부드러운 고소함과 생강 향이 어우러져 목구멍을 타고 따뜻하게 흘러내렸다.
하지만 단순히 맛이 좋은 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변화가 그의 몸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으…… 윽!”
도윤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명치 안쪽에서 뜨거운 불길이 일어났다. 지난 몇 년간 균열문에서 다친 뒤로 얼어붙은 쇳덩이처럼 굳어 있던 마력 회로였다. 그 굳어 있던 덩어리가 덮밥의 따스한 기운에 닿자마자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꽝꽝 얼어붙은 강물에 거대한 봄볕이 내리쬐듯 갈라지는 틈 사이로 격류가 쏟아져 들어왔다.
‘뭐지? 마력이…… 마력이 움직인다!’
회복 물약을 들이부을 때마다 찾아오던 역겨운 메스꺼움이나 쓰라림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묵은 체증이 씻겨 나가듯 시원하고 맑은 기운이 핏줄을 타고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성훈은 팔짱을 낀 채 도윤을 묵묵히 응시했다.
[감별: 대상의 마력 회로 내 독소 및 찌꺼기 분해 중.]
[정화된 마력 정수가 손상된 핵의 균열을 메웁니다.]
[잠재 마력 개방률: 35%…… 60%…… 92%……]
도윤의 낡은 방어복 위로 푸른빛의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파지직!
희미하게 명멸하던 빛은 이내 굵은 푸른 안개가 되어 그의 어깨와 등을 휘감았다.
골목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멈춘 것처럼 식당 안의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물컵의 수면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하아…… 하아……”
마지막 남은 밥알 한 톨까지 긁어삼킨 도윤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의 이마와 목덜미는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러나 표정은 식당에 들어섰을 때의 흙빛이 아니었다. 생기 넘치는 혈색이 뺨을 물들였고 흐리멍덩하던 눈동자에는 선명한 광채가 차올라 있었다.
“속이…… 아프지 않아.”
도윤이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
늘 그를 짓누르던 명치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만성 두통으로 욱신거리던 관자놀이도 맑게 개었다.
무엇보다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력의 박동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세고 선명했다.
도윤은 주먹을 쥐었다. 손끝에서 푸른 마력의 불꽃이 가볍게 피어올랐다.
D급 시절의 흐릿한 불꽃이 아니었다. 단단하게 응축되어 흔들림 없이 타오르는 선명한 청색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내 마력 회로는 분명 영구 손상 판정을 받았는데…….”
도윤은 멍하니 성훈을 바라보았다.
주방 카운터 너머의 성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행주를 들어 도마를 닦고 있었다.
“기본 마력량이 본래 D급에 머물 수준이 아니었네요. 회로가 막혀서 억눌려 있던 것뿐입니다.”
성훈의 담담한 목소리에 도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럼 내 마력이 막혀 있던 걸…… 이 밥 한 끼로 뚫었다는 말입니까?”
“정화된 고블린 갈비의 온기와 뿔토끼 간의 수복 성분이 엉킨 회로를 풀어준 겁니다. 손님이 포기하지 않고 버텨온 몸이라 반응이 빨랐던 거고요.”
성훈은 빈 접시를 가리켰다.
“밥값은 1만 2천 원입니다.”
도윤은 멍하니 서 있다가 황급히 품을 뒤졌다. 낡은 가죽 지갑에서 구겨진 만 원짜리 지폐 세 장과 동전 몇 개를 꺼냈다. 그가 가진 전 재산이었다.
“이, 이걸로 됩니까? 이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요리인데…….”
“첫 손님이고 가오픈입니다. 재료비와 조리비만 받습니다.”
성훈은 정확히 만 이천 원만 챙기고 남은 돈을 도윤의 손에 쥐여주었다.
도윤은 떨리는 손으로 남은 돈을 쥐며 깊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인사는 몸부터 완전히 추스르고 하세요. 지금 상태라면 협회에 가서 재측정을 받아보는 게 좋을 겁니다.”
“재측정이요?”
“마력 파동의 농도가 바뀌었으니까요.”
성훈의 말에 도윤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어졌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손끝에서 일렁이는 푸른 마력을 확인했다. 가슴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도윤은 다시 한번 깍듯이 인사를 올린 뒤 거의 뛰쳐나가듯 식당 문을 박차고 나갔다.
골목을 질주하는 그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재개발 구역 인근에 위치한 헌터 협회 강남 제3출장소.
해 질 무렵의 출장소는 한산했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직원은 모니터로 야구 중계를 보며 하품을 쩍쩍 찢고 있었다.
딸랑—!
출장소 문이 부서져라 열리며 땀에 흠뻑 젖은 사내가 뛰어 들어왔다.
“헉…… 헉…… 마력 측정, 재측정 신청합니다!”
직원은 낯익은 얼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 한도윤 헌터님? 낮에 오셔서 은퇴 서류랑 보조 운반직 신청서 다 넣고 가셨잖아요. 마력핵 손상 기록 때문에 보조직도 반려되셨을 텐데…….”
“재측정 부탁드립니다. 지금 당장이요!”
도윤의 목소리가 출장소 로비에 쩌렁쩌렁 울렸다.
직원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측정실 구석에 놓인 반투명한 마력 구체를 켰다.
“한도윤 헌터님, 마력 회로 손상은 재측정한다고 수치가 바뀌지 않아요. 괜히 수수료만 날리시는 건데…….”
“손만 올리면 됩니까?”
도윤은 직원의 말을 끊고 측정 구체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혹시나 식당을 나오며 느꼈던 그 감각이 일시적인 환각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나 도윤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구체 위에 오른손을 얹었다.
웅—!
도윤이 단전에서부터 마력을 끌어올리는 순간 구체 내부에서 눈이 멀 것 같은 푸른 섬광이 폭발했다.
삐비비빅!
기계음과 함께 측정 구체 안에서 푸른 파도가 소용돌이치며 솟구쳤다.
[마력 수치 측정 완료]
[마력량: 1,420 MP]
[회로 안정도: 94%]
[종합 판정: C급 (중위)]
“……어?”
모니터를 건성으로 보던 직원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직원은 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은 뒤 다시 화면을 응시했다.
“1,420? 회로 안정도 94%? 잠깐만, 이게 왜 이래? 기계가 고장 났나?”
직원은 당황하여 측정 구체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한도윤 헌터님, 다시 한번 올려보세요. 센서 오류인 것 같습니다.”
도윤은 다시 손을 얹었다.
결과는 똑같았다. 오히려 수치가 1,435로 미세하게 더 상승하며 완벽한 C급 중위의 마력 파동을 증명했다.
“말도 안 돼……! 영구 손상된 마력 회로가 어떻게 흔적도 없이 아물어? 게다가 D급 하위에서 C급 중위로 뛰었다고?”
직원의 경악에 찬 비명에 대기실에 앉아 있던 다른 헌터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뭐? 한도윤이 C급으로 올랐다고?”
“그 사람 회로 망가져서 오늘내일하던 폐급 아니었어?”
“어떻게 된 거야? 무슨 비약이라도 먹은 겁니까?”
웅성거리는 동료 헌터들이 도윤을 에워쌌다.
도윤은 측정표를 쥐어 든 채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끝없는 절망 속에서 그를 구원한 것은 대형 길드의 비싼 영약도, 고위 힐러의 기적도 아니었다.
재개발 구역 구석, 간판도 제대로 없는 허름한 식당에서 먹은 따뜻한 덮밥 한 그릇이었다.
“한도윤 씨, 대체 뭘 한 겁니까? 어디서 치료를 받은 거예요?”
동료들의 빗발치는 질문에 도윤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식당…….”
“예? 식당이요?”
“상가 3호 골목 안쪽에 있는 ‘몬스터 키친’이라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같은 시각, 몬스터 키친.
성훈은 도윤이 두고 간 만 이천 원을 주방 서랍에 가지런히 넣었다.
첫 매상이었다.
심연에서는 마석이나 몬스터 가죽 따위가 화폐를 대신했지만 지구의 빳빳한 지폐는 또 다른 실감을 주었다.
“야옹.”
어느새 창틀에서 내려온 검은 고양이가 성훈의 다리에 머리를 콩 들이받았다.
“배고프냐?”
성훈은 냄비에 조금 남아 있던 뿔토끼 간과 고블린 갈비 조각을 작은 접시에 담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양이는 만족스러운 듯 골골송을 부르며 고기를 핥아먹기 시작했다.
성훈은 행주로 카운터를 닦으며 생각에 잠겼다.
첫 손님의 반응으로 요리의 효과는 확실히 입증되었다. 손상된 마력 회로를 정화하고 복구하는 것은 물론 잠재 마력의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식재료가 부족해.’
처리장에서 가져온 회색 고블린 갈비와 뿔토끼 간은 이제 두어 번 조리할 분량밖에 남지 않았다.
더 다양한 효과를 내고 안정적으로 식당을 운영하려면 신선하고 다양한 몬스터 식재료를 수급할 통로가 필요했다.
‘내일 다시 부산물 처리장에 가봐야겠군.’
성훈이 정리를 마치고 앞치마를 벗으려던 찰나였다.
딸랑—
유리문에 달아둔 작은 종이 울리며 문이 열렸다.
성훈이 고개를 들자 거친 가죽 재킷을 입은 헌터 서너 명이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며 들어서고 있었다.
“여기가 그…… 마력을 뚫어준다는 식당이 맞소?”
맨 앞에 선 험상궂은 사내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주방 안을 훑었다.
그들의 등 뒤로 어둑해진 골목 어귀에서 서성이는 또 다른 헌터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