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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은 빌딩은 무너지지 않는다6화

내가 지은 빌딩은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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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기적의 2층

"이 도면을 고등학생이 그렸다고요?"

도면을 넘기던 구조안전진단 기술자 정진혁이 안경을 고쳐 썼다.

그의 눈앞에는 손으로 정밀하게 제도된 동원시장 2층 평면도와 단면 상세도가 펼쳐져 있었다. 모눈종이 위에 샤프로 그은 선들은 자를 대고 측정한 듯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예. 우리 승우가 그린 겁니다."

한태호가 굳은살 박인 손으로 탁자를 짚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정진혁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승우를 훑어보았다. 하지만 도면에 적힌 수치와 메모를 읽어 내려갈수록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계단참 하부 캔틸레버 구간의 처짐을 잡기 위해 150밀리 경량 H빔을 기존 조적벽 매립 기둥에 체결한다. 북측 노후 우수관은 강관 대신 내식성 고밀도 폴리에틸렌 관으로 교체하고 배수 구배를 100분의 1.5로 재설정한다……."

정진혁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단순히 흉내만 낸 그림이 아니었다. 기존 노후 건물의 하중 전달 경로를 완벽히 계산해 최소한의 자재와 비용으로 구조적 안전을 확보하는 설계였다.

"게다가 중앙 슬래브 일부를 개구해서 채광용 복층 폴리카보네이트를 얹는다고요? 슬래브 절단 시 주변 보강근 배근 계산까지 되어 있잖아?"

"계단 입구와 복도 안쪽의 명암 대비를 줄여야 손님이 자연스럽게 2층으로 유입됩니다. 중앙 개구부 크기는 1.2미터에 2.4미터로 제한하고 하부에 강재 프레임을 덧대면 슬래브 강성 저하는 전혀 없습니다."

승우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정진혁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현장에서 수십 년 구른 구조 기술자조차 기존 상권 동선과 채광까지 결합해 구조 보강안을 짜는 경우는 드물었다.

"도면대로만 시공하면 안전진단 통과는 물론이고 구조적 안전률도 1.8 이상 확보됩니다. 총무님. 이대로 공사 진행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정진혁의 공인 도장이 찍히자 옆에서 초조하게 지켜보던 최기석이 주먹을 쥐었다.

"좋습니다! 오늘부터 바로 본격 공사에 들어갑니다!"


공사는 사흘 동안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상인들의 협조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계단참 바닥에 임시 지지대를 대고 북측 벽체의 썩은 배관을 철거하는 동안 장만수는 직접 무거운 자재를 날랐고 오복순은 작업자들에게 시원한 보리차와 간식을 날랐다.

승우는 안전모를 쓰고 현장을 누비며 하중 경로를 점검했다.

[구조 분석 가동 중]
[계단참 보강 프레임 체결: 완료]
[북측 신규 배수관 결합: 누수율 0%]
[중앙 채광창 강재 프레임 지지력: 안정]
[구조적 위험도: 22% -> 4%]

푸른빛의 하중 선들이 벽체와 바닥을 따라 고르게 분산되며 붉은 경고등이 말끔히 사라졌다.

북측 벽으로 쏟아지던 빗물은 새로 매설된 매끄러운 배관을 타고 아케이드 외곽 집수정으로 막힘없이 빠져나갔다. 습기가 사라진 복도 벽에는 방수 미장과 밝은 베이지색 도장이 깔끔하게 입혀졌다.

그리고 마지막 날 오후 중앙 천장에 설치된 채광창 덮개가 벗겨졌다.

차르르.

따스한 자연광이 어두컴컴하던 2층 복도 한가운데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빛이 닿은 바닥에는 깔끔한 원목 벤치와 작은 화분이 놓였다. 우물 터 타일이 있던 자리는 습한 구덩이가 아니라 손님들이 잠시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아늑한 만남의 광장으로 재탄생했다.

가게마다 제각각 튀어나와 복도를 가로막던 낡은 돌출 간판들은 일정한 규격의 단정한 목재 간판으로 교체되어 시야를 탁 트이게 만들었다.

"세상에…… 여기가 진짜 우리가 장사하던 그 2층 맞아요?"

오복순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중얼거렸다.

어둡고 퀴퀴한 곰팡내 대신 산뜻한 페인트 향과 햇살 냄새가 복도를 채우고 있었다.

승우의 시야에 황금빛 시스템 알림이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동원시장 2층 재생 프로젝트]
[공간 흐름: 남측 유입 최적화 / 중앙 체류 극대화]
[풍수지리적 평가: 수기(水氣) 정체 해소, 양기(陽氣) 유입]
[상권 미래 가치: 18% -> 74%]
[보상: 구조 분석 경험치 +150, 자재 이해 경험치 +100]
[구조 분석 등급: F+ -> E-]
[특수 보조 기능 해금: '공간 유속(流速) 시각화']

승우는 입꼬리를 올렸다.

단순히 수치상의 변화가 아니었다. 공간 유속 시각화 기능이 켜지자 사람들의 시선과 발걸음이 어떻게 흐를지 보여주는 은은한 은빛 궤적이 복도를 따라 춤추듯 그려지고 있었다.


다음 날 정오.

리뉴얼을 마친 동원시장 2층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1층 시장 골목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평소라면 2층 계단 앞을 힐끔 쳐다보고 지나쳤을 손님들이 계단 입구에서 멈춰 섰다.

"어? 2층 계단이 왜 이렇게 밝아졌지?"

"올라가는 길에 등이 환하게 켜졌네. 위에 쉼터도 생겼나 봐."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계단을 밟았다.

계단참을 지나 2층에 올라선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어둡고 답답하던 복도는 햇빛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고 천장의 환기 덕트를 통해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중앙 벤치에는 장을 보러 온 어르신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저기 분식집 봐! 국수랑 떡볶이 파네!"

"자리 엄청 깨끗하다. 오늘 점심은 저기서 먹자!"

사람들이 오복순의 분식집으로 물밀듯이 밀려 들어갔다.

열 개 남짓한 테이블이 순식간에 가득 찼다. 문밖으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자 오복순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연신 함박웃음을 지었다.

손님들의 발길은 분식집에서 끝나지 않았다.

국수를 먹고 나온 손님들은 중앙 쉼터에 머물며 맞은편 장만수의 정육점 쇼케이스를 들여다보았다. 밝은 조명 아래 진열된 신선한 고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장님 여기 삼겹살 한 근만 썰어 주세요!"

"어, 어! 금방 썰어 드립니다!"

장만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칼을 쥐었다.

하루 종일 손님 서너 명이 고작이던 가게였다. 그런데 불과 한 시간 만에 준비해 둔 고기가 절반 넘게 팔려나가고 있었다.

복도 안쪽 끝에 있던 건어물 가게와 잡화점까지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남쪽 계단에서 유입된 사람들의 흐름이 중앙 광장에서 머물고 자연스럽게 복도 양쪽 끝으로 퍼져나가는 완벽한 순환 동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총무님! 대박 났어요! 오늘 점심 매출이 지난달 일주일 치보다 많아요!"

오복순이 쟁반을 들고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최기석은 팔짱을 낀 채 벅찬 얼굴로 북적이는 복도를 바라보았다.

"이게…… 설계의 힘이란 말인가."

그는 옆에 서 있는 승우를 돌아보았다.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이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수십 년 경력의 대가보다 깊고 단단했다.

장만수가 앞치마에 피 묻은 손을 닦으며 다가왔다.

그의 거친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학생…… 아니, 한 소장님."

장만수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내가 지난번에 무식한 소리나 지껄이고 의심해서 정말 미안했소. 학생 덕분에 우리 가게가 살았고 이 층 전체가 살았소. 정말 고맙습니다."

승우는 덤덤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상인분들이 믿고 물건을 치워주신 덕분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태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그 비범한 능력에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동원시장 2층의 기적은 순식간에 입소문을 탔다.

버려진 창고 취급을 받던 상가 2층이 획기적인 동선 설계와 보강 공사만으로 핫플레이스로 변모했다는 소식은 지역 상인연합회 신문 1면에 대서특필되었다.

[동원시장 2층의 부활! 빛과 동선으로 살려낸 전통시장의 기적]
[놀라운 공간 마술…… 베일에 싸인 10대 천재 건축가의 설계]

비어 있던 2층 점포 여섯 곳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전부 임대 계약이 완료되었다. 권리금조차 없던 자리에 웃돈이 붙기 시작했고 시장 전체의 유동인구가 3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상인회 사무실에서 최기석이 승우에게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상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정식 설계비와 감사의 뜻입니다. 우리가 약속했던 것보다 조금 더 넣었습니다. 거절하지 말고 받아주세요."

봉투 안에는 빳빳한 수표와 현금 5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2011년 고등학생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거금이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시장 발전에 보탬이 되어 기쁩니다."

승우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봉투를 챙겼다. 종잣돈이 생겼다. 앞으로 신성건설에 맞서 독자적인 회사를 세우기 위한 소중한 첫 자금이었다.

최기석이 흐뭇하게 웃으며 탁자 위에 놓인 조간신문을 넘겼다.

"그나저나 요즘 신성건설 놈들이 아주 기세등등하더군요. 옆 동네 땅을 싹쓸이했다던데."

그 말에 승우의 시선이 신문 전면 광고로 향했다.

신문 1면 하단에는 거대한 조감도와 함께 굵은 헤드라인이 박혀 있었다.

[신성건설, 은명지구 3,000세대 매머드급 대단지 '신성 파크' 부지 매입 확정!]
[국내 최대 복합 주거 랜드마크 조성…… 연내 전격 착공 돌입]

기사 한구석에는 신성그룹 이명훈 회장의 자신만만한 인터뷰 사진이 실려 있었다.

승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굳어졌다.

'은명지구…….'

승우의 머릿속에서 전생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회귀 전 은명지구 신성 파크 현장은 준공을 1년 앞두고 지반이 통째로 주저앉는 초대형 싱크홀 참사가 터졌던 곳이었다.

그 일대는 지하수위가 비정상적으로 높고 지하 수십 미터 아래에 거대한 석회암 공동(空洞)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위험천만한 연약지반이었다. 정밀 지반보강 없이는 10층짜리 건물조차 버티기 힘든 땅이었다.

하지만 신성건설은 원가 절감과 공기 단축을 위해 지반 조사 보고서를 조작하고 최저가 입찰로 부지를 낙찰받아 무리하게 35층 초고층 아파트를 올리려 하고 있었다.

결국 그 부실의 대가는 입주민과 무고한 인부들의 목숨으로 치러졌고 이명훈 회장은 정관계 로비를 통해 책임을 하청업체에 뒤집어씌우고 빠져나갔다.

'이번엔 절대 네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명훈.'

승우의 주먹이 단단하게 쥐어졌다.

동원시장에서 쏘아 올린 작은 불씨가 이제 거대한 신성건설이라는 골리앗을 향해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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