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 가면 대여점

3화: 새벽 전에 돌려줄 얼굴
7호 빈소의 여자는 소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정은 빈소 문을 닫으려 했지만, 소희가 안으로 들어갔다. 향은 피워져 있지 않았고, 영정 사진도 없었다. 빈 상 위에 가면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래가 쓰던 것과 같았지만, 눈썹 사이의 점이 반대편에 있었다.
“당신 누구예요?” 소희가 물었다.
“네가 7년 전에 빌린 얼굴.”
현우는 대여 장부를 들고 들어왔다. 손님은 가면의 기억을 빌릴 수 있지만, 가면은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규칙과 달랐다. 미정은 이 방의 기록을 봉인하라고 했다. 소희는 가면을 쓰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았다. 그 여자는 사라진 언니의 목소리를 흉내 내지 않았다. 대신 소희가 잊어버린 마지막 표정을 보여 줬다. 수진은 웃고 있지 않았다. 아픈 얼굴로 소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는 나한테 화났어요?”
“그건 네 기억이야.” 가면의 여자가 말했다. “내가 대신 답하면 안 돼.”
나래는 빈소 문턱에 멈춰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소희의 얼굴을 빌리러 온 게 아니라, 자기 얼굴이 누구에게서 빌려졌는지 확인하러 왔다고 했다. 가면의 이름표에는 나래라고 적혔지만, 대여 장부에는 손님의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그녀는 기억을 잃어 가며 얼굴을 찾고 있었다.
미정은 장례식장 폐쇄 구역에서 오래된 사진 봉투를 가져왔다. 사진에는 소희와 수진, 그리고 얼굴을 가린 어린아이가 함께 찍혀 있었다. 뒷면에는 ‘나래의 첫 장례’라고 쓰여 있었다. 나래는 그 사진 속 아이가 자기였다고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가 누구의 가족인지, 왜 장례식장에서 자랐는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나는 죽은 사람이 아니에요.” 나래가 말했다.
“그럼 왜 네 얼굴 가면이 있어?” 소희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 얼굴을 쓰면 내가 누구였는지 떠오를 것 같아요.”
현우는 가면을 만든 사람이 자기 스승이라고 밝혔다. 스승은 장례식에서 고인의 표정을 보존하려 했고, 손님의 기억으로 얼굴을 빚었다. 그 과정에서 소희의 기억과 나래의 얼굴이 섞였을 수 있었다. 그는 나래에게 가면을 돌려주면 자기 기억 일부를 잃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나래는 그 사실을 알고도 가면을 쓰기로 선택했다.
소희는 가면을 건네지 않았다. “한 번에 쓰지 말고, 먼저 안쪽 태그를 읽어.”
태그에는 ‘마지막으로 본 얼굴을 말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래는 누구의 얼굴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녀는 가면을 쓸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소희는 그 대신 자신의 기억을 내놓기로 했다. 언니의 웃음소리 한 조각을 가면에 돌려주면, 나래의 얼굴이 고정될 수 있었다. 그 기억은 다시는 소희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미정이 말했다.
“내 기억이에요.”
“빌린 기억은 네 것이 아니야.”
“그래도 내 선택이었어요.”
소희는 가면을 손에 들었다. 귀에 언니의 웃음소리가 조금 남아 있었다. 수진은 웃을 때 숨을 먼저 내쉬고, 그 다음에 입꼬리를 올렸다. 소희는 그 순서를 설명하며 기억을 하나씩 말해 주었다. 현우는 가면 안쪽에 그 기억을 새겼다. 나래는 가면을 쓰지 않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얼굴은 소희와 달랐다. 왼쪽 볼에 작은 흉터가 있었고, 눈꺼풀은 살짝 내려와 있었다. 나래는 자기 얼굴을 처음 본 사람처럼 손으로 만졌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대신 기억을 하나 떠올렸다. 병원 복도에서 누군가 자신을 안고, “소희야, 언니를 기억해 줘”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소희는 그 기억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나래의 얼굴을 빌리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확인하고, 사진 봉투를 함께 들었다. 그때 빈소의 가면이 갈라졌다. 수진의 표정이었던 가면은 부서지지 않고, 안쪽에서 새로운 이름표를 드러냈다. ‘백수진, 대여 미반납.’
새벽 4시 반, 장례식장 가면 대여점의 종이 울렸다. 반납 시간이 끝나 가고 있었다. 소희는 7년 전에 빌린 자신의 가면을 들고 거울 앞에 섰다. 그녀는 가면을 쓰지 않고, 안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도, 언니가 나를 사랑한 건 잊지 않을게.”
가면은 조용히 반납함에 놓였다. 나래는 자기 얼굴을 찾았지만, 장례식장 방문객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미정은 빈소 장부에 나래의 이름을 처음으로 적었다. 그녀는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사망자 명단에 넣지 않기로 했다.
해가 뜨자 가게의 진열장에 새 가면이 나타났다. 그 얼굴은 소희도 나래도 아니었다. 어린아이의 얼굴이었다. 눈 아래에는 작은 점 하나가 있었다.
나래는 빈소의 가면을 손에 들지 않았다. 현우가 반납함 뚜껑을 열었지만, 안쪽에서 가느다란 긁는 소리가 났다. 마치 누군가 손톱으로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세 사람은 움직임을 멈췄다. 소희는 덮개를 닫지 않고 손전등을 비췄다. 반납함 바닥에는 방금까지 없던 작은 가면이 놓여 있었다. 어린아이의 얼굴이었다. 입가에는 검은 실밥이 세 땀 박혀 있었다.
“이건 제가 만든 게 아니에요.” 현우가 말했다. 그는 장갑을 끼고 함의 안쪽을 확인했다. 실밥은 바깥에서 꿰맨 것이 아니었다. 나무판 안쪽에서 시작해 가면의 뺨으로 이어졌다. 못이나 접착제도 없었다. 가면은 마치 나무의 틈에서 자라난 것처럼 붙어 있었다.
미정은 장례식장 직원 호출기를 들어 보였다. “수장고에 아이 영정은 없어. 오늘 어린아이 빈소도 없었고.”
그때 복도 반대편의 자동문이 열렸다. 검은 우산을 든 남자가 들어섰다. 안내 데스크의 야간 직원이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남자는 손에 든 입관용 장갑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달아났다. 장갑 사이에서 작은 은색 단추가 굴러 소희의 발치에 멈췄다. 단추에는 오래된 장례식장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미정이 십 년 전 폐기했다고 기억하는, 이전 건물의 표식이었다.
소희는 복도를 뛰었다. 남자는 계단으로 꺾이며 난간에 어깨를 부딪쳤다. 우산이 펼쳐진 채 계단 아래로 굴렀다. 그는 돌아보지 않고 지하 연결 통로의 철문을 밀었다. 문이 닫히기 직전, 소희는 그의 손목에 감긴 흰 천을 보았다. 장례식장 내부에서 시신의 이름표를 묶을 때 쓰는 천이었다.
“잠깐!” 나래가 뒤따라오다 갑자기 벽을 짚었다.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소희가 팔을 받치자 나래는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 얼굴을 알아요. 기억은 아닌데, 가면 안쪽에 그 손의 온도가 남아 있어요.”
나래는 더 쫓지 않았다. 대신 바닥의 단추를 주워 소희에게 건넸다. 단추 뒷면에는 숫자 17이 긁혀 있었다. 미정은 그 숫자를 보자 눈을 감았다. 지하 통로 17번 보관실은 폐쇄된 뒤 한 번도 개방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낡은 열쇠고리에는 아직 그 열쇠가 달려 있었다.
소희는 열쇠를 받아 들었다. 나래의 손이 떨렸다. “내가 따라가면 안 될 것 같아.”
“왜?”
“저 문 안에서 내가 누구였는지 알게 되면, 지금 이름을 놓칠 것 같아서.” 나래는 소희의 손에서 열쇠를 밀어냈다. “이번엔 내가 고를게. 당신은 가서 확인해. 나는 내 얼굴로 밖에 나갈 거야.”
소희는 붙잡지 않았다. 나래는 빈소 앞에서 한 번 숨을 골랐고, 현우가 건넨 우산도 받지 않은 채 정문으로 걸어 나갔다. 미정은 장례식장 출입구까지 따라가 그녀가 빗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돌아온 미정은 다시 열쇠를 요구하지 않았다. 소희가 혼자 열어야 할 문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소희와 현우는 반납함을 잠그고, 새 가면은 그 안에 둔 채 17번 통로로 내려갔다. 나무 계단은 물을 먹어 미끄러웠다. 현우는 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다른 손으로 손전등을 비췄다. 문틈에는 오래된 소독약 냄새가 배어 있었다. 소희가 열쇠를 넣자 안쪽에서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여는 대신 그녀는 자기 이름을 말했다.
“백소희예요. 안에 누구 있습니까?”
대답은 없었다. 대신 문 아래로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밀려 나왔다. 사진 속 아이는 얼굴이 없었다. 얼굴 자리에 어린아이 가면의 눈 아래 점과 같은 작은 점 하나가 찍혀 있었다. 뒷면에는 수진의 필체로 날짜와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름을 먼저 물어.’
그 순간 소희의 손바닥에 열쇠가 뜨거워졌다. 문 너머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현우는 소희를 말리지 않았다. 그녀도 문을 억지로 열지 않았다. 사진을 품에 넣고, 통로의 비상벨을 눌렀다. 경보가 울리자 닫혀 있던 보관실 안쪽에서 발소리가 한 걸음 물러났다.
새벽빛이 창문에 닿을 무렵 둘은 가게로 돌아왔다. 미정은 보관실 출입 기록을 확인하겠다며 자리를 지켰다. 현우는 사진의 보존 봉투를 준비했고, 소희는 아이 가면의 이름표를 살폈다. 아무 글자도 없었다. 그녀는 이름을 대신 써 넣지 않았다. 아직 그 얼굴에게 물어야 할 말이 남아 있었다.
밖으로 나가기 전 소희는 아까 남자가 계단에 떨어뜨린 검은 우산을 주웠다. 손잡이에는 그의 손목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흰 천이 묶여 있었다. 매듭 안에는 새 열쇠가 하나 더 들어 있었다. 머리 부분에는 숫자 18이 새겨져 있었다. 지하 통로의 다음 문이었다.
소희는 그 열쇠를 장부에 끼워 두었다. 그날 밤의 장례 기록에는 사망자도 방문자도 아닌 항목이 처음 생겼다. ‘이름을 묻기 전까지 대기 중.’ 반납함 안쪽에서 아이 가면이 아주 작게 한 번 두드렸다. 소희는 불을 끄지 않은 채 문 쪽으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