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 가면 대여점

1화: 자기 얼굴을 빌리러 온 손님
새벽 두 시가 넘으면 장례식장 맞은편 가면 대여점에 손님이 왔다.
백소희는 유리 진열장에서 흰 가면 하나를 꺼내 먼지를 닦았다. 가면의 왼쪽 눈 아래에는 얇은 금이 있었고, 입술은 웃는 듯 굳어 있었다. 그날 장례식장에는 3층 7호실 빈소 하나만 남았다. 소희는 야간 직원으로, 가면을 대여하고 새벽 전에 반납 받았다. 가면을 쓴 손님은 고인의 얼굴로 마지막 인사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얼굴은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손님이 기억하는 표정에서 만들어졌다.
이현우는 가면의 안쪽에 종이 태그를 붙였다. 이름 대신 기억을 적는 규칙이었다. ‘입꼬리가 왼쪽으로 먼저 올라감.’ ‘잠들기 전 콧노래.’ ‘추운 날 목도리를 두 번 감음.’ 소희는 태그를 보고 손님에게 표정을 묻곤 했다. 손님들은 대개 처음엔 고인의 이름만 말했다. 그 다음엔 그 사람의 웃음과 습관을 꺼냈다.
“오늘은 몇 시까지 있어야 해요?” 현우가 물었다.
“해 뜨기 전까지요. 반납이 늦으면 기억이 붙어요.”
“어떤 기억이요?”
“빌린 사람 쪽에서 빠진 기억.”
현우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가면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손님의 기억이 어떻게 사라지는지는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가면을 쓰고 돌아온 사람들은 가끔 고인의 표정을 잊었다. 어떤 사람은 마지막 대화를 기억하지 못했고, 어떤 사람은 고인의 웃음소리를 더는 떠올릴 수 없었다.
새벽 2시 17분,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손님은 서나래라고 이름을 밝혔다. 빗물이 나래의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졌다. 검은 코트의 어깨도 젖어 있었지만, 장례식장 입구 바닥에는 발자국이 하나도 없었다. 장례식장 입구를 지나온 흔적은 없었다. 소희가 어느 빈소에 왔느냐고 묻자, 나래는 자기 얼굴을 찾으러 왔다고 답했다.
“본인 얼굴을 왜 빌려요?”
“내 얼굴이 여기 있다고 들었어요.”
소희는 가면을 찾기 위해 보관함을 열었다. 나래가 거울 앞에 서자, 진열된 가면들이 차례로 그녀를 향했다. 현우는 가면 하나를 골라 나래에게 건넸다. 가면은 젊은 여성의 얼굴이었지만, 눈썹 사이에 소희와 같은 작은 점이 있었다. 소희는 그 점을 보고 손을 멈췄다. 언니 백수진에게도 같은 점이 있었다.
“이 가면은 누구 얼굴이에요?”
“나래 씨가 기억하는 얼굴입니다.” 현우가 말했다.
“난 내 얼굴을 기억 못 해요.” 나래가 답했다.
장례식장 장례지도사 장미정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나래를 보고 입술을 다물었다. “오늘은 빌려 줄 수 없어요.”
“내 얼굴인데요.”
“그 얼굴은 이미 장례를 치렀어요.”
미정은 소희를 밖으로 불러 수진의 사망 기록을 보여 줬다. 수진은 7년 전에 병원에서 사망했고, 장례식은 3층 7호실에서 치렀다. 시신은 화장됐고, 소희도 영정 사진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런데 소희는 언니의 마지막 표정이 기억나지 않았다. 장례식 사진에는 수진이 눈을 감고 있었고, 소희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나래는 가면을 쓰지 않은 채 가게 안에 앉아 있었다. “언니가 마지막으로 나한테 말했어요. 내 얼굴을 빌리지 말라고.”
“무슨 뜻이죠?” 소희가 물었다.
“그게 기억이 안 나요.”
현우는 가면의 안쪽에서 금속 조각을 찾아냈다. 오래된 대여 태그가 뜯긴 흔적이었다. 태그에는 소희 이름이 쓰여 있었다. 소희는 자기가 가면을 빌린 적이 없다고 했다. 미정은 7년 전 장례 당일 밤, 소희가 가게에 왔었다고 말했다. 소희는 그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기억만 있었다.
“그럼 내가 뭘 빌렸어요?”
미정은 답하지 않았다. 나래는 가면을 들어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나래와 같았지만, 한쪽 눈 아래에 소희의 점이 보였다. 소희는 가면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려 했다. 나래는 먼저 가면을 쓰고, 숨을 들이켰다.
“언니가 여기 있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수진과 달라지지 않았다. 대신 소희는 자기 머릿속에서 언니의 웃음소리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소희는 나래의 어깨를 잡았다. 가면을 벗기려는 순간 나래가 손을 쳐냈다.
“아직 인사 못 했어요.”
“그 얼굴은 네 것이 아니야.”
“그럼 누구 것이죠?”
나래의 질문에 소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가면 안쪽에서 작은 종소리가 났다. 반납 시간이 오기 전인데, 가면은 이미 무언가를 빌리고 있었다.
가게의 낡은 대여 장부가 저절로 펼쳐졌다. 7년 전 기록 한 줄이 드러났다. ‘백소희, 얼굴 하나, 새벽 4시 반납.’ 반납 확인란은 비어 있었다.
소희는 나래를 가게 안쪽 의자에 앉혔다. 가면을 쓴 채 오래 있으면 머리가 아프고, 새벽이 지나면 빌린 기억의 흔적이 지워진다고 설명했다. 나래는 가면을 벗지 않았다. 그녀는 장례식장에 온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빈소 복도의 냄새를 정확히 설명했다. 향 냄새가 아니라 소독약과 식은 보리차 냄새. 소희는 그 묘사가 수진의 장례 때와 같다는 것을 알아챘다.
“언니를 어떻게 알아요?”
“얼굴은 몰라요. 그런데 누군가 나를 안고 있었어요. 가면을 보면 그 사람이 돌아올 것 같았어요.”
현우는 가면을 만드는 방식부터 설명했다. 손님은 고인의 사진을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 기억한 얼굴을 손으로 진흙 위에 그리면, 가면은 그 표정을 따라간다. 하지만 기억이 불완전하면 표정도 불완전하게 빚어진다. 나래의 가면에는 소희와 닮은 눈 아래 점이 있었지만, 수진의 얼굴과 같지는 않았다.
미정은 장례식장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했다. 빈소에 손님이 기다린다는 이유였다. 소희는 오늘 장례식이 없다고 반박했다. 미정은 7호실은 비어 있어도, 밤마다 예약된 빈소로 남겨 두었다고 했다. 장례식장에는 기록되지 않은 방문자가 가끔 찾아왔다. 그녀는 그들을 고인으로 등록하지 않고,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집으로 돌려보냈다.
나래는 가면을 벗고 싶지 않다고 했다. 소희는 손을 뻗지 않았다. 대신 가면 안쪽의 금속 태그를 손전등으로 비췄다. 태그에는 ‘새벽 4시 30분까지, 착용자 동의 없이 벗기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현우는 자신도 이 규칙을 스승에게서 들었을 뿐, 왜 그런지는 몰랐다.
가게 밖에서 장례식장 직원이 걸어왔다. 그는 소희에게 7호 빈소의 호출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빈소를 확인하러 간 미정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희는 나래를 가게에 남겨 두고 복도로 나갔다. 장례식장 복도는 불이 꺼져 있었고, 환자용 휠체어 하나가 빈소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바퀴에는 흙이 묻지 않았다. 누군가 방금 끌고 온 흔적은 있었지만, 복도 끝에는 발자국이 없었다.
7호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안쪽에서 수진의 얼굴이 찍힌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사진은 소희가 마지막으로 본 언니보다 훨씬 젊었다. 액자 아래에는 흰 가면이 하나 놓여 있었고, 소희가 다가가자 입꼬리가 움직였다. 그녀는 손대지 않고 밖으로 물러났다.
미정은 복도 반대편에서 나타났다. “네가 여기 올 줄 알았어.”
“오늘 장례가 없다고 했잖아요.”
“없어. 그런데 네 언니는 매년 이 시간에 손님으로 와.”
“죽은 사람이요?”
미정은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소희가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가면은 사람의 얼굴을 빌리지만, 그 안에 남은 것이 진짜 고인인지 손님의 기억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소희는 가면을 쓰지 않고 빈소 문을 닫았다.
가게로 돌아왔을 때 나래는 거울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가면 안쪽에서 자기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보았다고 했다. 소희는 확인하려 했지만, 태그는 비어 있었다. 나래는 거울 속에서 자기 얼굴을 찾지 못했다.
새벽 세 시, 진열장 앞에 또 다른 손님이 섰다. 장례식장 빈소에서 온 중년 남자였다. 그는 아내의 가면을 빌리고 싶다고 했지만, 고인의 사진을 보여 주지 않았다. 대신 “밥 먹을 때 오른쪽 볼이 먼저 움직였다”고 말했다. 현우는 기억한 표정을 확인하려고 웃을 때의 눈과 입을 물었다.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아내가 웃는 얼굴보다 병원 침대에서 눈을 감은 얼굴을 더 오래 봤다고 했다.
소희는 대여를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남자에게 기억을 되돌릴 수 없고, 가면을 쓰면 그 얼굴을 떠올리던 감각이 흐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자는 아내가 마지막으로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면을 통해서라도 마지막 인사를 받고 싶었다. 소희는 그에게 지금 기억하는 표정을 진흙판에 그려 보라고 했다. 남자의 손은 얼굴 윤곽을 그리다 멈췄다. 그는 눈을 감고 아내가 밥상을 차리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자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현우는 그 표정을 받아 가면의 안쪽에 새겼다. 남자는 대여를 취소하고 싶다고 했다. 소희는 취소를 받아들였다. 그가 가게를 나갈 때, 아내의 웃음이 흐려질 위험보다 지금 가진 기억을 지키기로 한 선택을 존중했다. 나래는 그 광경을 보고 가면을 쓰지 않은 채 자기 이름을 말했다. 그 이름은 그녀의 얼굴과 함께 장부에 남았다.
나래는 거울을 보다가 가면을 살짝 들어 올렸다. 눈 아래의 작은 점이 가면의 얼굴에도, 자기 피부에도 겹쳐 있었다. 그녀는 가면을 벗기지 않았다. “아직 새벽 전이에요. 기억을 더 확인할 수 있죠?” 소희는 그렇다고 답했지만, 무언가를 더 알게 된다는 보장은 하지 않았다.
현우는 나래에게 새 가면을 만들기 전에 이름을 다시 물었다. 나래는 이번에는 “서나래”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소희는 그 이름을 장부에 적고, 나래가 가면을 벗고 돌아갈 때까지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