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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무기 도색공은 마력의 흠집을 본다1화

헌터 무기 도색공은 마력의 흠집을 본다

헌터 무기 도색공은 마력의 흠집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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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죽은 헌터의 검에 난 푸른 흠집

윤해원은 죽은 사람의 검을 칠하지 않았다.

그 원칙은 십 년 동안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었다. 유족이 돈을 더 얹어도, 길드가 수리 기록을 지워 달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죽은 헌터의 무기는 장례가 끝날 때까지 손대지 않는다. 금속이 아니라 남은 사람의 손을 기다리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해원은 공방 셔터 앞에서 검은 운반함을 마주쳤다. 빗물에 젖은 포장천 아래 금속 모서리가 드러나 있었다. 발신인은 백야 길드 장비팀. 수령란에는 동생 윤민재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민재가 죽은 지 사흘째였다.

해원은 운반함을 열지 않았다. 대신 문을 잠그고 장갑을 벗었다. 동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음성 메시지를 다시 재생했다. ‘누나, 이번에 돌아오면 그 검 색 좀 골라 줘. 촌스러운 건 싫어.’ 숨을 들이마신 뒤 웃는 소리가 짧게 섞였다. 해원은 메시지를 끄고 열쇠를 꺼냈다.

함 안에는 민재가 쓰던 장검이 누워 있었다. 칼날에는 검은 피가 말라붙었고, 손잡이 가죽은 반쯤 벗겨졌다. 칼등에서 칼끝으로 이어지는 흠집은 얼핏 긁힌 자국 같았지만, 해원에게는 다른 색으로 보였다. 금속 아래 가느다란 푸른 선이 번졌다. 칠이 벗겨진 데만 드러나는 색이 아니었다. 칼의 속살을 따라 갈라진 마력이 숨을 쉬듯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해원은 손대지 않은 채 숨을 멈췄다. 균열은 칼끝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손잡이 바로 위, 손이 감기는 자리에서 시작해 칼등을 거슬러 올라갔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힘이 팔로 돌아왔을 것이다. 민재는 그걸 알고도 썼을까.

운반함 속 서류에는 ‘임무 중 충격으로 발생한 표면 손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점검 날짜는 사고 전날. 해원은 날짜 아래에 남은 번진 잉크를 확대경으로 들여다봤다. 숫자 7 위로 흰 수정액이 얇게 덮여 있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백야 길드 장비팀장 문태혁이 우산도 접지 않고 공방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 코트 어깨에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검을 돌려받으러 왔습니다. 장례 전에 유품 목록을 맞춰야 해서요.”

“장비팀에서 보낸 검이에요. 유족에게 먼저 연락했어야죠.”

“유족이 누나분이시잖습니까.”

“동생이 죽은 뒤에야 가족 취급하는군요.”

태혁은 대답 대신 운반함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해원은 몸을 가로막았다. 문태혁은 말끝을 다듬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은 입술 안쪽을 깨물고 있었다.

“검에 이상이 있었습니까?” 해원이 물었다.

“레이드 중 파손됐습니다. 사고 보고서에 다 나와 있습니다.”

“사고 전날 점검했다면서요.”

태혁의 눈이 서류로 갔다가 돌아왔다. 그 짧은 흔들림이면 충분했다. 해원은 검을 보지 않은 척 운반함을 닫았다.

“유품은 장례가 끝날 때까지 여기 둡니다. 당신이 가져갈 수 없어요.”

“그럼 공식 감정 절차를 밟겠습니다. 손을 대지 마세요. 도색업자가 무기 고장 원인을 단정하면 곤란합니다.”

“단정한 적 없어요. 색을 봤을 뿐이죠.”

태혁은 나가는 길에 명함을 놓고 갔다. 뒷면에 볼펜으로 ‘민재 씨가 마지막으로 맡긴 외주 건은 폐기됐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해원은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장비팀이 굳이 외주 작업을 언급할 이유는 없었다.

오후가 되자 공방의 단골인 차유경이 찾아왔다. 유경은 백야 길드의 전직 검사이자 민재의 레이드 동료였다. 왼쪽 무릎에 보조대를 차고 있었고, 비가 올 때면 통증 때문에 계단을 한 칸씩 내려왔다.

“그 검 왔네.” 유경이 말했다. “태혁 팀장이 가져가려 했지?”

“어떻게 알아요?”

“아침에 길드에서 유품 확인 서명을 받으러 왔어. 민재 검은 장례식장에 보냈다고 하더라.”

해원은 서류를 보여 주었다. 유경은 수정액 자국을 보자 턱을 굳혔다.

“사고 전날 민재가 검을 맡겼어. 마력이 손에 역류한다고 했지. 장비팀은 다음 점검 때 보자고 했고.”

“그런데 점검은 완료로 적혀 있네요.”

“내가 그날 야간 교대를 섰어. 점검실 문은 잠겨 있었고, 민재는 검을 들고 돌아왔어. 누가 기록만 바꿨는지는 몰라.”

유경의 말은 증언이었지만, 이름을 적는 순간 직장과 퇴직금이 걸릴 수 있었다. 해원은 종이를 밀어 주지 않았다. 대신 따뜻한 차를 내놓았다. 유경은 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그날 민재가 검을 맡기러 왔을 때, 내가 같이 가겠다고 했어.” 유경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하지만 장비팀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지. 나는 무릎 때문에 교대에서 빠질까 봐 그냥 돌아갔어. 민재는 내가 미안해할까 봐 괜찮다고 했고.”

“그건 유경 씨 잘못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해 주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유경은 짧게 웃었다. “편해지지는 않네.”

해원은 대꾸하지 못했다. 민재가 다친 날에도 그녀는 공방 주문이 밀렸다는 이유로 전화를 늦게 받았다. ‘끝나고 얘기하자’고 보낸 문자는 읽음 표시만 남긴 채 아직 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휴대전화에 붙어 있었다. 잘못을 나누면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 각자가 붙든 무게를 더 정확히 보게 되는 때가 있었다.

해원은 검을 만지지 않고 작업대 조명을 낮췄다. 도색 검사에 쓰는 편광등을 켜자 칼날 위에 숨은 층이 드러났다. 원래 은색 코팅 아래에는 오래된 붉은 보호막이 있었고, 그 위에 새 안료가 두 차례 덧발려 있었다. 가장 바깥층은 표준 색상표에도 없는 회색이었다. 마력을 죽이는 안료였다. 칼날의 균열은 그 층을 뚫고 푸르게 빛났다.

해원은 작업 수첩에 관찰한 순서와 조명 조건을 적었다. ‘마력 피로 의심’이라고 썼다가, ‘의심’ 아래 밑줄을 그었다. 도색공이 볼 수 있는 것은 표면과 색의 변화뿐이었다. 원인을 증명하려면 검을 만든 대장간의 기록과 장비실 출입 기록이 필요했다. 그녀는 증거가 되지 않는 확신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작업대 구석의 작은 스피커에서 민재가 녹음해 둔 공방 알림음이 흘렀다. 동생은 해원이 손님 앞에서 지나치게 엄격해질 때마다 일부러 우스운 경고음을 바꿔 놓곤 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칼집을 뽑는 소리였다. 해원은 소리를 끄려다 멈췄다. 민재가 웃으며 “누나, 무기에도 옷이 필요해”라고 말하던 날, 그녀는 그 말이 유치하다고 놀렸다. 지금은 그 유치함을 다시 들을 수 없었다.

“네가 나서면 그 사람들은 검부터 없앨 거야.”

“검을 없애면 흠집도 사라질까요?”

“그럼 네가 위험해져.”

“민재도 알고 있었겠죠.”

유경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민재가 마지막 레이드 전날 ‘괜찮다’고 말하며 웃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웃음이 지나치게 밝아 보였지만, 유경은 그때 더 묻지 못했다. 자기 무릎이 먼저 꺾일까 겁났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동안 찻잔 가장자리에 물방울이 맺혔다.

해원은 검을 작업대 위에 올렸다. 아직 붓도 용제도 대지 않았다. 푸른 선이 다시 희미하게 일렁였다. 확대경으로 균열의 가장자리를 살피자, 푸른 빛 사이에 얇은 황금색 점이 하나 박혀 있었다. 최근 도색층 아래로 밀려든 색이었다. 사고 때 묻은 마력 잔류물이 아니라, 누군가 균열을 덮으려 올린 차폐 안료였다.

공방 문밖에서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났다. 해원이 돌아보자 골목 끝에 회색 밴이 서 있었다. 창문은 짙게 어두웠다. 차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 듯 곧바로 출발했다.

해원은 셔터를 반쯤 내린 채 골목으로 나가 밴이 사라진 방향을 확인했다. 젖은 아스팔트에는 타이어 자국이 선명했지만 번호판은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사진을 찍고, 근처 세탁소 주인에게 부탁해 골목 카메라의 보존 기간을 확인했다. 주인은 요즘 헌터 길드 차량이 자주 들락거린다며 조심하라고 했다. 해원은 그 말을 기록해 두고도 곧바로 경찰에 전화하지 않았다. 아직 위협을 입증할 수는 없었지만, 더는 우연이라고 넘기지 않기로 했다.

유경은 돌아가기 전에 동생의 장례식장에서 해원이 혼자 서 있던 일을 사과했다. 조문객들 사이에서 무릎이 아파 오래 서지 못했고, 민재의 누나를 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고 했다. 해원은 사과를 받는 대신 택시 문을 열었다. 유경이 올라탄 뒤에도 한동안 창문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서로를 두고 떠나지 않았다.

유경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무릎을 짚었다. 해원은 그녀를 붙잡았다.

“오늘은 혼자 돌아가지 마요.”

“괜찮아.”

“그 말은 이제 믿지 않을래요.”

잠시 뒤 두 사람은 공방 문을 잠그고 함께 골목으로 나왔다. 유경이 택시를 잡는 동안 해원은 운반함을 안쪽 금고에 넣었다. 문태혁의 명함은 서류와 분리해 봉투에 넣었다. 손이 자꾸 미끄러져 봉투 입구를 두 번이나 놓쳤다.

해원은 동생의 검을 지키는 일이 동생을 되살리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푸른 선은 아직 거기 있었다. 누군가 색을 덧칠해 감추려 한 흔적과 함께.

문을 닫기 직전, 그녀는 검집 안쪽에서 작은 종이 쪽지를 발견했다. 민재가 쓰던 짧은 메모였다.

‘다음엔 파란색 말고, 누나가 좋아하는 색으로.’

그 아래에 낯선 장비 번호가 적혀 있었다. 해원은 번호를 휴대전화에 입력했다. 검색 결과는 백야 길드의 공식 목록에 없었다. 하지만 유경이 그 번호를 보는 순간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이건… 지하 수리실 장비 번호야. 폐쇄됐다고 했는데.”

공방 바깥, 잠근 셔터 너머에서 누군가 세 번 두드렸다. 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네 번째 두드림 대신 바닥에 무언가 밀려 들어왔다. 젖은 종이 한 장에는 푸른 안료가 번져 있었고, 그 위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 검은 더 이상 당신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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