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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로 지구를 구하는 법7화

레벨 1로 지구를 구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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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5천 원의 목숨

협회 1층 편의점 문을 밀고 나오자 정오의 따가운 햇살이 쏟아졌다.

광장 분수대 주변에는 수많은 헌터와 협회 직원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화려한 장비를 걸친 고위 랭커부터 낡은 가죽 조끼 차림의 하급 헌터들까지 저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강현은 화단 옆 빈 벤치에 주저앉았다.

온몸의 관절이 삐걱거렸다. 손목에는 보스들과의 난타전에서 긁힌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시야 구석에서는 붉은 숫자가 위태롭게 깜빡였다.

[현재 체력: 1/10]

10점 만점에 1점.

체력 1은 엄연한 생존 상태였지만 동시에 바람 한 점에도 목숨이 오갈 수 있는 벼랑 끝이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피해 1이라도 뜨면 그 자리에서 사망이었다.

강현은 비닐봉지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투명한 병 속에 맑은 붉은색 액체가 찰랑거렸다.

[하급 체력 회복 포션]

  • 효과: 복용 시 체력 1 즉시 회복.
  • 가격: 5,000원.

뚜껑을 따자 옅은 딸기 향과 쌉싸름한 약재 냄새가 풍겼다.

강현은 망설임 없이 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미지근한 액체가 넘어가자마자 뱃속 깊은 곳에서 따스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열기는 순식간에 실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체력이 1 회복되었습니다]

[현재 체력: 2/10]

"……어?"

멍한 탄성이 새어 나왔다.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지끈거리던 두통이 가라앉고 손목의 상처가 마술처럼 아물며 새살이 돋았다. 뻐근하던 허리 근육도 부드럽게 풀렸다.

통증과 피로의 10퍼센트가 한꺼번에 날아간 느낌이었다.

"진짜였네."

일반 각성자들에게 하급 포션은 취급도 안 해 주는 쓰레기였다.

체력이 수천에 달하는 C급이나 수만에 이르는 A급 헌터에게 체력 1 회복은 모기 물린 자리에 침 바르는 수준에 불과했다.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수백만 원짜리 중급 포션을 마셔야 했고 장기가 파열되면 억대를 호가하는 엘릭서를 쏟아부어야 했다.

하지만 강현의 최대 체력은 고작 10이었다.

5천 원짜리 싸구려 빨간 물약 한 병이 전체 생명력의 정확히 10퍼센트를 채워 주는 셈이었다.

강현은 곧바로 두 번째 병을 뜯어 마셨다.

[체력이 1 회복되었습니다]

[현재 체력: 3/10]

휘청거리던 다리에 확실하게 힘이 들어갔고 흐릿하던 시야가 또렷해졌다.

단돈 1만 원으로 전체 생명력의 20퍼센트를 채웠다. 5만 원이면 죽음의 문턱에서 완벽한 만피로 부활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헌터 계좌의 잔고는 34,200원이었다.

오전 F급 던전 브레이크 사고로 팀장 박도윤이 감찰반에 넘어가며 정산금이 전액 동결된 탓이었다.

목숨 걸고 보스 둘을 때려잡았는데 손에 쥔 것은 F급 카드 한 장과 잔돈 3만 원뿐이었다. 단검은 부러졌고 배낭도 잃었다.

"당장 일부터 구해야겠네."

포션을 쟁여 두고 장비를 갖추려면 당일 현금을 쥐어 주는 일감이 절실했다.


협회 1층 의뢰 매칭 센터.

벽면 전광판에는 공격대들의 구인 공고가 쉴 새 없이 스크롤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E~F급 던전 짐꾼 공고는 일당 10만 원 안팎에 정산까지 사흘 이상 걸렸다.

그때 강현의 시선이 전광판 최상단에 붉은 글씨로 깜빡이는 긴급 공고에 멈췄다.

[긴급 / C급 게이트 '푸른 이끼 동굴' 짐꾼 1명 급구]

  • 소속: 프리랜서 공격대 '붉은 갈퀴'
  • 담당: 마석 및 마수 부산물 운반 (최대 하중 50kg)
  • 보수: 150만 원 (클리어 즉시 전액 현금 지급 / 장비 선급금 20만 원 가능)
  • 특이사항: 출발 직전 결원 발생. 20분 내 즉시 출발 가능자 우대.

"150만 원."

F급 짐꾼이 보름을 꼬박 뛰어야 만질 수 있는 거금이었다. 심지어 선급금 20만 원까지 준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전광판 앞의 수많은 짐꾼 중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미쳤지. 저기 C급이잖아."
"아까 가기로 했던 짐꾼도 도망쳤다더군."
"C급이면 독안개 도마뱀이 득실거리는데 비전투원은 스치기만 해도 녹아내려."

짐꾼들의 말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F급 비전투원에게 C급 던전은 말 그대로 도살장이었다.

하지만 강현에게는 달랐다.

'어떤 공격이든 피해는 딱 1.'

가까이 붙으면 놈들의 마력도 1로 묶인다. 연타 공격만 조심하면 C급 던전은 150만 원짜리 노다지였다.

강현은 붉은 갈퀴 공격대의 접수 테이블로 걸어갔다.

거구의 사내가 줄담배를 태우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C급 공격대장 배진혁이었다.

"15분 안에 안 들어가면 입장권 취소된다고! 짐꾼 새끼들 왜 이렇게 간이 콩알만 해?"

"팀장님. 짐꾼 찾으십니까?"

배진혁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흙투성이 작업복 차림의 강현을 보며 인상을 팍 썼다.

"너 뭐야?"

"차강현입니다. 짐꾼 5년 차입니다."

강현이 새로 발급받은 F급 등록증을 내밀었다.

배진혁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F급? 야 장난치냐? C급 마수가 앞발만 휘둘러도 네 몸은 고기반죽이 돼."

"짐꾼 5년 하면서 살아남은 비결이 눈치 빠르고 발 빠른 겁니다. 50kg 거뜬하고 도망 안 칩니다. 선급금 20만 원 지금 당장 주십시오."

배진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시간이 없었다. 짐꾼 없이 들어가면 헌터들이 직접 마석을 짊어져야 해 사냥 효율이 바닥을 치게 된다.

배진혁이 서류 한 장과 5만 원권 네 장을 탁자에 내던졌다.

"좋아. 대신 이거 서명해. [던전 내 사고 발생 시 공격대 면책 동의서]. 안에서 네가 팔다리가 뜯기든 죽든 우린 일절 책임 안 진다."

강현은 망설임 없이 이름을 적었다.

"30분 뒤 4번 게이트 앞이다. 1분이라도 늦으면 계약 파기야."

"안 늦습니다."

강현은 20만 원을 챙겨 곧장 돌아섰다.


협회 지하 1층 보급 상점.

수천만 원짜리 마력 갑옷들이 즐비했지만 강현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스탯 1짜리 몸에 무거운 갑옷을 입히면 걷지도 못할뿐더러 1억 원짜리 보구를 입든 누더기를 걸치든 강현이 받는 피해는 똑같이 1이었다. 방어구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강현은 응급 소비재 코너로 갔다.

"하급 체력 회복 포션 14병 주세요."

점원이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14병이요? 개당 5천 원이니까 7만 원입니다만…… 이걸 왜 이렇게 많이……."

"마시려고요."

강현은 7만 원을 건넨 뒤 잡화 코너로 가 손잡이가 단단한 짐꾼용 강철 단검(5만 원)과 포션 퀵슬롯이 달린 보강형 배낭(6만 원)을 집었다.

정확히 18만 원을 쓰고 2만 원이 남았다.

점원이 건네준 비닐봉지에서 포션 한 병을 꺼내 곧장 뚜껑을 땄다.

꿀꺽.

[체력이 1 회복되었습니다]
[현재 체력: 4/10]

강현은 멈추지 않고 연달아 병을 비웠다.

꿀꺽 꿀꺽 꿀꺽.

[체력이 1 회복되었습니다]
[현재 체력: 7/10]

점원이 입을 떡 벌린 채 쳐다보는 사이 강현은 일곱 번째 병까지 깨끗하게 마셨다.

마지막 한 방울이 넘어가자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체력이 1 회복되었습니다]
[현재 체력: 10/10 (최대)]

화아아-!

온몸의 모공이 열리며 뼛속 깊이 박혀 있던 피로가 씻겨 나갔다.

5년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단돈 3만 5천 원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완벽한 만피를 달성했다.

남은 포션은 7병.

강현은 배낭 어깨끈과 허리 벨트의 퀵슬롯에 포션 7병을 나란히 꽂았다. 손만 뻗으면 0.5초 만에 마실 수 있는 전술적 배치였다. 허리춤에는 새 강철 단검을 차고 배낭을 둘러멨다.

'체력 10. 그리고 여분의 목숨 7개.'

연타 공격만 피한다면 C급 던전 안에서 17번의 치명타를 버텨낼 수 있었다.

강현이 미소를 지었다.

"준비 끝났네."


협회 12층 전술분석실.

벽면 대형 스크린 위로 전국의 게이트 파동 그래프가 갱신되고 있었다.

백설아 팀장이 서류철을 넘기던 중 분석관이 급히 들어왔다.

"팀장님 지시하신 차강현 헌터의 동선이 확인되었습니다."

"어디로 갔습니까?"

"방금 C급 게이트 '푸른 이끼 동굴'의 짐꾼으로 등록을 마쳤습니다. 10분 뒤 출격 예정입니다."

백설아의 펜촉이 우뚝 멈췄다.

"C급 게이트?"

"네. 오늘 아침 브레이크에서 살아 돌아와 전신 타박상을 입은 F급 짐꾼입니다. 공명석 측정값도 전부 1이었는데 C급에 자원하다니 상식 밖입니다."

백설아가 천천히 안경을 고쳐 썼다.

"상식 밖이라고 해서 현실이 아닌 건 아니에요. 오늘 아침 수거된 마력 코어 데이터예요. C+급 마수의 마력이 외부 요인에 의해 단 1초 만에 0에 수렴한 뒤 차단됐어요. 현행 스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물리 법칙 왜곡이에요."

백설아의 시선이 화면 속 차강현의 사진에 닿았다.

"유일한 생존자가 차강현 씨였죠. 열심히 때려잡았다는 진술은 자신의 능력을 숨기려는 태도예요. 고등급 각성자라면 측정석에서 파동이 1로 고정될 리 없으니 이건 등급이 아니라 법칙의 문제예요."

백설아의 입가에 흥미로운 미소가 번졌다.

"관제 3팀에 전달하세요. 푸른 이끼 동굴 게이트 외부 센서를 집중 모니터링 모드로 전환합니다. 내부 마력 파동의 급격한 감쇄 징후가 포착되면 즉각 내 직통으로 연결하세요."

"알겠습니다!"

백설아는 창밖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차강현. 당신 정체가 대체 뭡니까."


서울 외곽 폐공장 지대.

직경 5미터 크기의 푸른빛 소용돌이가 거칠게 회전하고 있었다.

C급 게이트 '푸른 이끼 동굴'의 입구였다.

주변에는 붉은 갈퀴 공격대원 6명이 무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대검을 멘 배진혁 옆으로 부팀장과 궁수 마법사 등이 서 있었다.

"팀장님 저 녀석 진짜 왔는데요?"

새 배낭을 메고 가볍게 걸어오는 강현이 보였다.

배진혁이 강현의 차림새를 훑어보더니 비소를 흘렸다.

"선급금 쥐여 줬더니 방어구 하나 안 사고 빨간 물약만 주렁주렁 매달고 왔네. 피풍선을 달고 왔구만."

팀원들이 낄낄거리며 비웃었다.

"하급 포션으로 C급 마수를 막겠다고? F급 티를 팍팍 내네."

"야 짐꾼. 들어가면 내 뒤통수에만 딱 붙어 있어라. 마수 꼬이면 안 지켜 준다."

배진혁이 대검을 고쳐 메며 으르렁거렸다.

강현은 비웃음을 가볍게 흘려넘겼다.

'너희가 날 지켜 줄 필요는 없지.'

오히려 마력이 1로 고정되어 당황할 마수들 앞에서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은 저 오만한 헌터들일 터였다.

배진혁이 게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출발한다! 오늘 할당량 채우기 전까진 못 나온다!"

헌터들이 차례로 푸른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던졌다.

강현은 허리 벨트에 꽂힌 빨간 포션의 감촉을 손끝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원문의 경계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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