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1로 지구를 구하는 법

6화: 완벽한 F급
임시 천막 안은 소란스러웠다.
소독약 냄새와 피비린내, 흙먼지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구급대원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들것을 날랐다.
강현은 간이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체온 정상, 맥박 미약. 외상 다수."
의료 지원팀 헌터가 진단봉을 강현의 목덜미에 대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마력 파동이 아예 안 잡히는데요?"
"원래 F급 비전투원이라 그렇습니다."
강현이 건조하게 대답했다.
그의 시야 한구석에는 여전히 위태로운 붉은 숫자가 깜빡이고 있었다.
[현재 체력: 1/10]
포션을 두 병이나 털어 넣었지만 마지막 난타전에서 닳고 닳아 다시 1로 돌아왔다. 바람만 세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았다. 체력 1이라는 건 이 기괴한 시스템 안에서 엄연히 '생존 상태'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천막 입구 쪽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F급 짐꾼이 C+급 마수랑 오우거를 맨손으로 잡았다고요?"
협회 현장 조사관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 앞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 민재가 억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진짜라니까요! 제가 숫자를 셌어요. 백 번도 넘게 때려서 잡았다고요!"
"민재 헌터님. 던전 브레이크의 정신 충격으로 인한 착란 증세일 수 있습니다. C+급 붉은갈기 화염 마수는 방어막만 해도 B급 화력이 필요한 개체입니다. 짐꾼용 단검 따위로 가죽에 흠집이나 나겠습니까?"
"단검은 진작에 부러졌고 손잡이랑 돌멩이로 때렸다니까요!"
조사관의 표정이 점점 싸늘해졌다.
거의 정신과 진료를 예약해야겠다는 눈빛이었다.
그 옆 구석에서는 박도윤이 협회 감찰반 직원 둘에게 붙들린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저는 모릅니다. 출구가 무너져서 먼저 확인하려던 것뿐입니다. 포션을 숨기다니요. 팀의 비상 물품 관리였을 뿐입니다."
"박도윤 팀장님. 짐꾼을 미끼로 방치하고 도주를 시도했다는 팀원 진술이 일치합니다. 포션 은닉 건과 함께 본부에서 정식 청문회를 진행하겠습니다."
감찰반 직원이 냉정하게 도윤의 손목에 마력 차단 수갑을 채웠다.
도윤은 창백하게 질려 강현을 노려봤다.
원망과 공포가 뒤섞인 눈빛이었다. 강현은 그 시선을 가볍게 무시했다. 남을 미끼로 던진 자의 말로는 늘 정해져 있는 법이었다.
"차강현 헌터님."
정장을 입은 협회 직원이 다가왔다. 명찰에는 '대한헌터협회 현장대응팀'이라고 적혀 있었다.
"본부로 이동하셔야겠습니다."
"병원부터 가면 안 됩니까? 지금 뼈마디가 다 쑤시는데요."
"상부 긴급 지시입니다. 이번 F급 게이트는 내부 마력 코어가 기괴하게 정지된 채 수거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벌어진 사태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긴급 재측정이 결정되었습니다."
직원은 강현을 유심히 살폈다.
눈앞의 청년은 흙투성이에 옷은 찢겨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기묘할 정도로 차분했다.
협회 직원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었다.
'극한의 위기 속에서 뒤늦게 고등급으로 각성한 은둔자.'
그런 사례가 10년에 한 번꼴로 학계에 보고되곤 했다. 평범한 짐꾼이 갑자기 S급이나 A급 스킬을 개화해 보스를 때려잡았다는 이야기.
직원의 태도가 은근히 공손해졌다.
"전용 이송 차량이 대기 중입니다. 모시겠습니다."
강현은 한숨을 삼켰다.
'고등급 각성은 무슨.'
속으로는 헛웃음이 나왔지만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공인된 신분증이 있어야 다음 던전 일감을 구할 수 있었다.
대한헌터협회 서울 본부 지하 3층.
일반적인 등급 심사실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원형으로 둘러싸인 강화 격벽실 중앙에 거대한 흑요석 기둥이 서 있었다. 고위 헌터들의 잠재력과 마력 총량을 오차 없이 측정하기 위해 제작된 100억 원 상당의 '마력 공명석'이었다.
"차강현 씨. 긴장 푸시고 중앙 측정석에 손을 올려 주십시오."
측정관 정태식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마이크로 안내했다.
그는 15년 동안 수만 명의 각성자를 감정한 베테랑이었다. 격벽 너머 관제실 모니터에는 수많은 데이터 그래프가 실시간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유리벽 너머에는 상부 전술분석팀에서 파견된 참관관들도 몇몇 보였다. 다들 이번 사건의 이상 징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냥 손만 대면 됩니까?"
"네. 체내의 마력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시면 됩니다. 잠재된 특성이나 고유 스킬이 있다면 공명석이 파장을 감지해 자동으로 분석합니다."
강현은 흑요석 표면에 손바닥을 얹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위이이잉-!
공명석 내부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일렁였다. 기계 장치들이 가동되며 바닥이 미세하게 떨렸다.
정태식 측정관은 마른침을 삼키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C+급 정예 마수를 단신으로 때려눕혔다면 최소 B급 최상위권. 어쩌면 A급 이상의 파괴 계열 각성자일지도 모른다.'
관제실의 모든 시선이 메인 스크린에 집중됐다.
빛이 점점 강해졌다.
푸른 광채가 흑요석 기둥을 타고 올라가 천장의 수정 렌즈에 도달했다. 웅장한 기계음과 함께 공명음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틱.
경쾌하다 못해 허무한 전자음 하나가 울렸다.
공명석의 푸른빛이 순식간에 꺼졌다. 마치 누군가 전원 플러그를 뽑아버린 것처럼 조용해졌다.
모니터에 굵은 고딕체의 글자가 떠올랐다.
[이름: 차강현]
[소속: 미등록 (자유 계약 짐꾼)]
[각성 등급: F급]
[레벨: 1]
[근력: 1]
[민첩: 1]
[체력: 1]
[마력: 1]
[고유 특성: 감지 불가 / 특이 사항 없음]
정태식은 안경을 벗었다.
눈을 세 번 비비고 다시 안경을 썼다.
화면은 바뀌지 않았다.
"……어?"
정태식의 입에서 바보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관제실에 있던 참관관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기계 고장인가?"
"공명석 초기화 돌려봐. 마력 반응이 1이라고?"
"일반 성인 남성도 기본 마력 3은 나오는데 1이라니 말이 되나?"
정태식은 식은땀을 흘리며 재부팅 버튼을 연타했다.
"잠시만요. 시스템 렉인 것 같습니다. 차강현 씨 손 떼지 마시고 그대로 계세요!"
위이잉!
기계가 다시 돌아갔다. 흑요석 기둥이 덜덜 떨리며 최대 출력으로 마력 스캔을 시도했다.
강현은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손바닥에 닿은 공명석의 거대한 마력 파동이 순식간에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너도 내 앞에선 1이지.'
공명석이 아무리 거대한 에너지를 뿜어내도 강현의 몸에 닿는 순간 모든 수치는 1로 평등해졌다. 측정 기계 자체가 강현의 [절대 상쇄: 1] 영역에 먹혀버린 셈이었다.
틱.
[레벨: 1]
[스탯: 전체 1]
[판정: F급]
변함없는 결과가 다시 떴다.
정태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게 왜 이러지? 보조 계측기 가져와! 휴대용 마력 감응기도 전부 가동해!"
직원들이 뛰어다니며 수억 원짜리 보조 계측기를 강현의 팔과 가슴에 덕지덕지 붙였다.
삐비빅.
마력 수치: 1.
근력 반응: 1.
잠재 마력: 0.00.
측정기들이 하나같이 고장 난 것처럼 숫자 1만 뱉어냈다.
정태식은 뒷목을 잡았다.
"말도 안 돼. 이런 수치는 갓난아기보다 낮아! 이 상태로 숨은 어떻게 쉬고 있는 겁니까?"
"숨은 잘 쉬어지는데요."
강현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팔굽혀펴기는 세 개 정도 하면 지치긴 합니다."
"지금 장난칠 때가 아닙니다! 당신 방금 전까지 C+급 던전에서 마수를 때려잡았다면서요!"
"그러니까요. 열심히 때렸더니 잡히더라고요."
"스탯 1로 어떻게 마수를 때려잡습니까!"
"백 번 넘게 때리면 잡히던데요."
정태식은 가슴을 쥐어뜯었다.
15년 측정관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눈앞에 있는 헌터는 틀림없이 보스를 죽이고 살아 돌아온 당사자인데 측정 장비는 이 인간이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일 최약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때 관제실 인터폰으로 상부의 통신이 들어왔다.
- 정 측정관.
차분하고 지적인 여성의 목소리였다. 백설아 전술분석팀장의 직속 라인이었다.
"네, 팀장님! 장비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긴급 점검을……."
- 기계는 정상입니다. 마력 코어의 잔여 파장 분석 결과 현장에서 방출된 마력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소멸한 기록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럼 이 차강현 씨가 정말로……?"
- 시스템상 수치 조작이나 위장은 불가능합니다. 일단 공식 결과는 시스템 출력값 그대로 처리하세요.
정태식은 침을 꿀꺽 삼켰다.
"F급으로 발급하라는 말씀이십니까?"
- 네. 현행 헌터 관리법상 측정 장비의 공식 수치를 거스르고 임의로 등급을 상향할 근거는 없습니다. 대신 해당 인원의 던전 출입 기록은 전술분석실 특별 모니터링 대상으로 지정합니다.
통신이 끊겼다.
정태식은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 버튼을 눌렀다.
치이익.
발급기에서 플라스틱 카드 한 장이 출력되어 나왔다.
[이름: 차강현]
[등급: F급 (짐꾼/보조)]
[대한헌터협회 공인]
정태식은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카드를 강현에게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F급 갱신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강현은 정중하게 카드를 받아 지갑에 넣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행이다.'
만약 여기서 어설프게 B급이나 A급 판정을 받았다면 온갖 길드와 방송국에서 들러붙었을 것이다. 고위 레이드에 끌려다니며 연타 공격이라도 맞으면 체력 10짜리 몸뚱이는 1초 만에 분쇄된다.
영원한 레벨 1.
완벽한 F급.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실속 있는 방패막이였다.
협회 본부 1층 로비로 나오자 바깥세상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강현은 비틀거리며 로비 구석의 헌터 전용 편의점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불어왔다.
"어서 오세요."
아르바이트생이 심드렁하게 인사했다.
강현은 곧장 응급 의약품 코너로 걸어갔다. 진열대 한구석에 빨간 뚜껑이 달린 작은 유리병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하급 체력 회복 포션]
효과: 복용 시 체력 1 즉시 회복.
가격: 5,000원.
일반적인 헌터들에게 하급 포션은 거의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체력이 수천에 달하는 D급이나 C급 헌터에게 체력 1 회복은 모기 물린 자리에 침 바르는 수준의 효과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고위 헌터들은 한 병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상급 정제 포션을 마셔야만 겨우 상처가 아물었다.
하지만 강현에게는 달랐다.
강현의 최대 체력은 딱 10이다.
즉, 이 5천 원짜리 싸구려 빨간 포션 단 한 병이.
'내 전체 생명력의 10%를 채워 준다.'
체력 10,000짜리 랭커가 10%를 채우려면 수천만 원짜리 엘릭서를 들이켜야 하는데 강현은 단돈 5만 원이면 빈사 상태에서 완전 풀피로 부활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가성비지."
강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1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이거 두 병 주세요."
완벽한 F급 짐꾼 차강현의 진짜 생존 전략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