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무림 대장간의 전설급 도검 장인2화

무림 대장간의 전설급 도검 장인

무림 대장간의 전설급 도검 장인

AD
스폰서 광고

2화: 식어버린 화로

진혁이 화로 쪽으로 걸음을 떼자마자 등 뒤에서 거친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붉은 머리끈을 묶은 여자가 흙투성이 가죽 자루를 쿵 소리 나게 바닥에 내던졌다. 자루 입구에서 흩날린 시커먼 가루가 공방의 메케한 공기를 한층 더 무겁게 짓눌렀다.

"여기 숯 가져왔다. 이제 됐지? 당장 칼 불 속에 쑤셔 넣고 두드려."

여자의 목소리는 벼랑 끝에 몰린 자 특유의 살기 어린 초조함으로 젖어 있었다.

진혁은 자루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좁혔다. 겉으로 쏟아져 나온 것은 단단하고 윤기 있는 참나무 흑탄이 아니었다. 푸석푸석하게 바스러진 잡목 가지와 덜 탄 채 축축한 습기를 머금은 솔가지 숯이었다. 손을 대지 않고 눈으로만 보아도 탄화가 불완전하여 불을 붙이는 순간 희뿌연 연기만 내뿜을 게 뻔했다.

"이건 흑탄이 아닙니다."

"뭐라고?"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없는 잡탄입니다. 수분도 잔뜩 머금고 있습니다."

진혁은 화로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잿더미 속으로 손을 뻗었다. 흙벽돌을 쌓아 올린 화로 안쪽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손바닥을 대어 보아도 온기의 잔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화로가 완전히 식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이런 숯을 넣고 불을 지피면 쇠가 달궈지기는커녕 불완전 연소로 그을음만 엉겨 붙습니다."

여자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그녀는 허리춤에 찬 단검 자루를 거칠게 움켜쥐며 성큼 다가섰다.

"야! 지금 네놈이 한가하게 숯 타령이나 할 때야?"

여자의 눈동자에 핏발이 곤두섰다.

"오늘 밤 삼경이 지나기 전에 철검단의 무인이 도착한다. 그자가 오기 전에 칼날 휜 걸 펴놓고 틈새를 메워 놓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 그 칼값 배상 명목으로 이 대장간 건물과 땅문서까지 통째로 빚쟁이들 손에 넘어간다고!"

여자의 숨소리가 거칠게 흔들렸다.

"대장간을 털리면 나도 끝장이고 여기서 얼쩡거리던 네놈도 빚쟁이 놈들한테 뼈까지 발려 노비로 팔려 나가! 그러니까 당장 쇠를 쑤셔 박고 망치질이나 해!"

진혁은 여자의 서슬 퍼런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특수강 연구소에서 십수 년을 쇳물과 씨름하며 뼛속 깊이 새긴 철칙이 있었다. 기초 설비가 무너진 작업장에서 서두르는 것은 실패를 앞당길 뿐이었다. 더구나 손끝으로 읽어낸 환도의 내부 균열은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웠다.

"공방이 넘어가는 게 두렵다면 더더욱 지금 칼을 넣으면 안 됩니다."

진혁이 낮고 단호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네놈이 기어코 내 말을 귓등으로 처듣는구나!"

여자가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진혁의 멱살을 움켜쥐려 했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고 화로 내벽의 한 지점을 똑바로 가리켰다.

"보십시오. 화로의 내화 점토가 다 갈라져 있습니다."

진혁의 손가락 끝이 흙벽돌 틈새를 훑었다. 말라비틀어진 점토 껍질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벽돌 사이사이로 손가락 한 마디가 족히 들어갈 만한 깊은 균열이 흉터처럼 벌어져 있었다.

"화로는 단순히 숯을 태우는 구덩이가 아닙니다. 열을 가두고 일정한 온도를 칼날 전체에 균일하게 전달하는 압력실이어야 합니다."

진혁이 화로 외벽을 가볍게 두드렸다. 둔탁하고 헐거운 소리가 메마르게 울렸다.

"점토가 깨져 찬 공기가 사방에서 새어 들고 있습니다. 이런 화로에 불을 때면 중심부만 타오르고 외곽은 차갑게 식어버립니다. 칼날을 집어넣는 순간 위치마다 온도 차이가 수백 도씩 벌어집니다."

"온도 차이가……?"

여자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열충격입니다."

진혁이 모루 위의 부러진 환도를 돌아보았다.

"저 환도는 이미 내부에 불순물이 층을 이루고 있어 결함 부위에 응력이 극도로 뭉쳐 있습니다. 온도가 균일하지 않은 불길 속에 들어가는 즉시 팽창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쩍 갈라집니다. 펴기는커녕 두 동강이 나서 튕겨 나갈 겁니다."

진혁의 설명은 거침이 없었다. 현란한 무공 용어나 모호한 비유가 아닌 눈앞의 흙과 쇠가 증명하는 명백한 인과관계였다.

여자의 눈가 흉터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아버지가 살아생전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화로가 숨을 고르게 쉬지 못하면 쇠는 제 속살을 찢고 죽어버린다.'

아버지가 중얼거리던 그 막연한 훈계가 눈앞의 낯선 사내 입을 통해 뼈아픈 현실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진혁은 몸을 굽혀 화로 아래쪽의 공기 주입구를 들여다보았다.

풀무와 연결된 송풍구 안쪽을 확인한 진혁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송풍구가 완전히 막혀 있습니다."

진혁이 바닥에 뒹굴던 쇠꼬챙이를 집어 송풍구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챙그랑거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꼬챙이가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쇳똥…… 슬래그가 굳어 눌어붙었군요."

송풍구 안쪽 벽면에는 쇳물이 녹아내리다 엉겨 붙은 시커먼 광재 덩어리가 관을 절반 이상 틀어막고 있었다. 공기가 통할 틈이 바늘구멍만 했다.

"바람이 들어가지 못하면 산소 공급이 어긋납니다. 불길의 중심 온도가 오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불완전 연소로 인해 탄소 가스가 쇠 표면의 성질을 망가뜨립니다. 강도를 잃고 무른 쇳덩이가 된다는 뜻입니다."

진혁이 꼬챙이를 내려놓고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이 화로는 지금 숨을 쉬지 못하는 시체입니다. 시체 속에 쇠를 밀어 넣어봤자 살아날 리 없습니다."

여자는 입술을 피가 배어 나오도록 깨물었다. 절망이 그녀의 눈동자를 뒤흔들었다.

"그럼 어쩌라는 거야! 화로를 새로 쌓으려면 며칠 밤낮이 걸려! 지금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새로 짓지 않습니다. 응급 보수를 합니다."

진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공방 구석에 내화 점토가 남아 있습니까?"

"……뭐?"

"벽을 바를 점토와 굵은 모래 그리고 짚단을 태운 재가 필요합니다. 당장 찾아오십시오."

여자는 멍하니 진혁을 바라보다가 이내 턱을 악물었다. 사내의 목소리에는 거역하기 힘든 단단한 확신이 실려 있었다.

"따라와!"

여자가 공방 뒤편의 어두운 자재 창고로 달음질쳤다.

잠시 후 여자가 묵직한 나무 궤짝과 짚단 부스러기가 든 바구니를 들고 돌아왔다.

"이게 아버지가 쓰던 찰흙 점토다. 모래는 저기 담장 밑에 쌓여 있어."

진혁은 지체 없이 무릎을 꿇고 궤짝 속의 점토를 살폈다. 다행히 습기가 완전히 마르지 않은 양질의 찰흙이었다.

"모래를 세 되 가져오십시오. 짚단 재는 체에 걸러 고운 것만 섞습니다."

진혁의 손이 흙탕물 속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점토만 바르면 열을 받을 때 수분이 급격히 증발하며 다시 갈라진다. 적절한 굵기의 모래를 섞어 열팽창을 버티게 하고 짚단 재의 탄소 성분과 규산염을 결합시켜 단열성을 끌어올려야 했다.

"내가 뭘 하면 돼?"

여자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바짝 다가앉았다. 어느새 그녀의 눈빛에서 의심 대신 필사적인 열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풍구를 뚫어야 합니다. 징과 망치를 드십시오."

진혁이 턱짓으로 화로 하부를 가리켰다.

"안쪽에 엉겨 붙은 쇳똥을 깨부숴야 합니다. 관이 상하지 않도록 비스듬히 날을 대고 정을 쳐내십시오."

여자는 군말 없이 쇠징을 쥐고 화로 밑으로 기어들었다.

챙! 챙! 챙!

쇳소리가 공방 안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부서진 슬래그 조각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사이 진혁은 배합을 마친 점토 반죽을 양손 가득 쥐고 화로의 좁은 입구 안으로 상체를 들이밀었다.

후끈한 분진이 폐부를 찔렀지만 손놀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벌어진 벽돌 틈새 깊숙한 곳까지 반죽을 꾹꾹 눌러 담았다. 단순한 메움질이 아니었다. 열기가 화로 중심부에 놓일 칼날을 향해 골고루 복사되도록 안쪽 벽면을 완만한 돔 형태로 다듬어 나갔다.

손바닥으로 점토를 문지르며 곡면의 각도를 잡는 손길은 마치 쇳물을 다루듯 정교했다.

"풍구 다 뚫었어!"

얼굴에 검댕을 잔뜩 묻힌 여자가 밖으로 기어 나오며 외쳤다.

진혁이 송풍구 안쪽으로 쇠꼬챙이를 밀어 넣었다. 걸리는 것 없이 시원하게 관통되었다.

"좋습니다."

진혁이 화로에서 상체를 빼내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의 이마와 뺨에도 흙탕물과 잿가루가 엉켜 흘러내리고 있었다.

화로 내벽의 균열은 빈틈없이 메워졌고 매끄럽게 다듬어진 곡면이 둥근 아치를 이루고 있었다.

여자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화로 안쪽을 응시했다. 무너져 가던 낡은 화로가 불과 반 시진 만에 완전히 다른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아버지 서태호가 전성기 시절 다루던 화로의 위용이 어렴풋이 겹쳐 보였다.

여자가 거친 숨을 고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너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야? 보통 솜씨가 아닌데."

진혁은 손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묵묵히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려다 말고 씁쓸하게 웃으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서하린이다."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노을대장간의 전 대장장이 서태호의 딸이자 지금은 이 망해가는 공방의 주인이지."

하린이 진혁을 똑바로 응시했다.

"네 이름은 뭐야?"

진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백진혁입니다."

"백진혁…… 낯선 이름이군."

하린이 중얼거리며 화로 옆에 놓인 풀무 손잡이를 잡았다.

"화로는 고쳤어. 이제 불을 때야지."

하지만 진혁의 시선은 풀무 손잡이로 향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풀무의 낡은 가죽 주름과 바닥에 팽개쳐진 숯 자루에 멈추어 있었다.

가죽 이음새에서는 삐걱거리는 마찰음과 함께 미세한 바람 새는 소리가 났고 숯은 여전히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딩- 딩- 딩-.

그때 낙양 남문 누각에서 밤의 깊어짐을 알리는 육중한 종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들었다.

철검단의 무인이 찾아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진혁은 단단히 굳은 얼굴로 숯 자루를 움켜쥐었다. 화로는 바로잡았으나 불길을 지필 숨통은 여전히 턱없이 가쁘기만 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