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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대장간의 전설급 도검 장인1화

무림 대장간의 전설급 도검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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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잿더미 속의 균열

고막을 찢던 폭발음이 멎은 자리에는 짙은 쇠 비린내와 메케한 탄내가 내려앉아 있었다.

특수강 연구소의 고진공 용해로가 폭주하던 마지막 순간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경보음과 붉은 섬광 그리고 섭씨 천육백 도가 넘는 용탕이 챔버를 찢고 뿜어져 나오던 작열감. 백진혁은 거친 기침을 토해내며 바닥을 짚었다.

손바닥에 닿은 것은 차가운 타일이나 강철 바닥이 아니었다.

푸석푸석하게 바스러지는 흙과 검게 그을린 숯가루였다.

"쿨럭, 쿨럭……!"

진혁은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시야를 가로막던 뿌연 연기가 걷히자 낯선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콘크리트 벽면도 전자기판의 계기판도 없었다. 흙으로 빚은 두터운 벽체와 거칠게 깎아지른 목조 기둥들이 위태롭게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공방 한구석에는 불씨가 거의 꺼져가는 흙벽돌 화로가 놓여 있었고 낡은 가죽 풀무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되어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연구소의 폭발 사고에서 살아남아 병원으로 실려 온 것이 아니었다.

진혁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특수강 시편을 만지며 생긴 화상 자국과 굳은살은 그대로였으나 입고 있던 내열 방호복 대신 낡고 헤진 무명 옷감이 걸쳐져 있었다.

꿈이나 섬망이라 치부하기에는 흙먼지의 서늘한 감촉과 코를 찌르는 매연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진혁의 시선이 공방 중앙에 놓인 거대한 쇠 모루로 향했다.

육중한 강철 모루 위에는 칼날 한 자루가 덩그러니 얹혀 있었다. 푸르스름한 칼등 위로 붉은 석양이 비껴들고 있는 환도(環刀)였다. 하지만 칼의 상태는 온전하지 않았다. 칼날 중간 부분이 흉하게 뒤틀려 있었고 날카로운 파열음이라도 낸 것처럼 칼등에서 날밑까지 깊은 균열이 그어져 있었다.

진혁은 홀린 듯 모루 앞으로 다가갔다.

금속공학자로서 수만 번을 들여다보았던 파손 시편의 형상이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뻗어 칼날의 균열 부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 순간이었다.

화악!

단전 깊은 곳에서 미약한 열기가 꿈틀거리더니 손가락 끝을 타고 차가운 쇳물 속으로 파고들었다.

"큭……!"

진혁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눈을 감지 않았는데도 시야 안쪽으로 기묘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단순한 시각적 잔상이 아니었다. 손끝에 닿은 칼날의 미세한 결정립 구조와 잔류 응력이 거미줄 같은 붉은 선으로 뇌리에 직접 투영되고 있었다.

탄소 함유량 약 0.6퍼센트의 고탄소강.

하지만 결정 조직이 기형적으로 엉켜 있었다. 칼날의 표면은 급랭되어 단단했으나 내부 심재는 불순물을 머금은 채 물러터져 있었다. 게다가 균열이 시작된 부위에는 기괴할 정도로 검고 끈적한 이물질 층이 얇은 띠를 이루며 박혀 있었다.

'응력 집중…… 피로 파손이 아니야.'

누군가 칼을 벼릴 때 고의로 불순물을 심재에 섞어 넣은 흔적이었다. 강한 충격을 받으면 반드시 이 부위부터 쪼개지도록 설계된 치명적인 결함.

금속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재료의 이력과 상(相) 구조가 감각처럼 읽히는 기현상.

진혁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손을 떼어냈다. 손가락 끝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달칵.

그때 공방의 낡은 나무문이 거칠게 밀려 열렸다.

"거기서 뭐 하는 놈이야!"

서늘한 쇳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기합이 날아들었다.

진혁이 튕기듯 고개를 돌렸다. 붉은 끈으로 머리를 높게 묶은 여자가 문간에 서 있었다. 왼쪽 눈가에 옅은 흉터가 남은 여자는 흙먼지 묻은 가죽 토시를 차고 있었고 그녀의 오른손에는 서늘한 날을 번뜩이는 단검이 쥐여 있었다.

여자의 눈빛은 맹수처럼 사나웠다.

"어떤 쥐새끼가 남의 공방에 기어들어 왔나 했더니…… 빚쟁이 놈들이 보낸 도둑고양이냐?"

여자는 바닥을 짚고 선 진혁의 행색과 모루 위의 칼날을 번갈아 훑으며 단검을 고쳐 쥐었다. 한 걸음만 더 다가오면 가차 없이 목덜미를 꿰뚫을 기세였다.

진혁은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폭발 사고 뒤 낯선 장소에 떨어졌다는 충격보다 눈앞의 칼날이 풍기는 현실적인 위험이 먼저 뇌를 각성시켰다.

"도둑질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진혁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차분했다.

"그럼 뭔데? 문도 잠겨 있는 빈 대장간 구석에 처박혀서 남의 의뢰품을 주무르고 있었잖아."

"정신을 차려보니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침입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여자는 진혁의 대답에 콧방귀를 뀌었다.

"헛소리 집어치워. 낙양 바닥에서 그런 수작질에 속을 줄 알고? 순순히 무릎 꿇고 손 뒤로 묶지 않으면 손목을 분질러 놓겠다."

여자가 단검을 겨눈 채 성큼 다가왔다. 발걸음에 군더더기가 없었고 손목의 각도는 언제든 찌르기로 전환할 수 있도록 안정되어 있었다. 진혁은 상대가 단순한 장사치가 아니라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자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진혁의 시선은 여자의 단검 너머 모루 위에 놓인 부러진 환도로 향했다.

"그 칼."

"뭐?"

"그 환도를 오늘 넘겨야 하는 겁니까?"

여자의 걸음이 뚝 멈추었다. 날카롭던 눈매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알아?"

"모루 옆에 놓인 기름종이와 납품용 나무 궤짝 그리고 저 벽에 걸린 장부에 적힌 날짜를 봤습니다. 오늘 저녁이라고 적혀 있더군요."

진혁이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붉은 먹줄이 그어진 납품 장부와 깨끗이 닦인 궤짝이 놓여 있었다. 여자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알면 어쩔 건데? 그래 오늘 밤 철검단의 무인이 칼을 찾으러 온다. 그런데 노인네가 죽기 직전에 손댄 칼이 이 꼬락서니로 망가졌어. 이제 속이 시원하냐?"

여자의 목소리에 짙은 독기와 절망이 엉겨 붙어 있었다.

"이 대장간은 끝장이야. 오늘 밤 환도를 온전히 넘기지 못하면 배상금 때문에 공방 문서까지 통째로 털릴 테니까. 빚쟁이 놈들이 네놈을 보낸 게 아니라면 당장 꺼져. 여기서 얼쩡거리다 칼침 맞기 싫으면."

여자는 단검을 거두지 않은 채 모루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구석에 뒹굴던 얇은 잡철 판과 땜질용 놋쇠 가루를 집어 들었다.

"어쩌겠어. 겉에 쇠판이라도 덧대고 망치로 두들겨서 대충 모양이라도 맞춰 놔야지. 일단 오늘 밤만 넘기면……."

"그딴 짓을 했다간 칼 주인이 죽습니다."

진혁의 단호한 목소리가 공방의 정적을 갈랐다.

여자가 사납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뭐라고?"

"덧댐 용접…… 아니 쇠판을 덧대어 땜질하는 건 부러진 뼈 위에 종이를 바르는 것과 같습니다. 겉보기엔 붙은 것처럼 보여도 칼등에 가해진 비틀림 응력이 전혀 분산되지 않습니다."

진혁은 모루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부러진 칼날의 단면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보십시오. 칼날 표면만 깨진 게 아닙니다. 심재 한가운데에 검은 줄무늬가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불순물이 섞여 굳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메워 치기만 한 겁니다. 이 상태에서 겉에 쇠판을 덧대고 열을 가하면 내부의 균열이 양옆으로 번져나갑니다."

여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검은 줄무늬……?"

여자는 진혁이 가리킨 칼날의 틈새를 들여다보았다. 붉은 노을빛 아래로 정말 칼날 속살에 거무튀튀한 재 같은 결이 얇게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대장간 일을 오래 보아왔지만 저렇게 깊숙한 속 결함까지 단번에 짚어내는 자는 본 적이 없었다.

"너…… 대장장이냐? 대체 정체가 뭐야?"

"공학…… 쇠를 다루는 일을 했습니다."

진혁은 짧게 답하며 공방 구석을 빠르게 훑었다.

"이 환도를 살리려면 덧대는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균열 부위의 불순물을 완전히 긁어내고 적정 온도까지 다시 달궈서 결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 뒤에 칼날과 칼등의 냉각 속도를 다르게 해서 담금질해야 합니다."

"다시 달궈서 두드린다고?"

여자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말은 쉽지! 이미 금이 간 칼을 화로에 다시 넣었다간 칼날 전체가 산산조각이 난다. 게다가 우리 대장간 화로는 불길이 고르지 않아. 저 낡은 풀무로 바람을 넣어봤자 쇠를 태워 먹기 십상이라고!"

"제가 합니다."

진혁이 망설임 없이 말했다.

"뭐?"

"방법이 없어서 사기라도 칠 생각이었잖습니까. 겉만 번지르르하게 기워 붙여서 보냈다가 첫 격돌에서 칼이 부러지면 칼 주인은 목숨을 잃고 당신은 사기죄로 목이 달아납니다."

진혁의 직설적인 일침에 여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장간을 지키고 싶다면 저 칼을 제대로 고쳐야 합니다. 화로에 불을 피우십시오."

여자는 턱을 굳게 다문 채 진혁을 노려보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 흙바닥에 쓰러져 있던 정체불명의 사내. 하지만 사내의 눈빛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도검을 대하는 태도에서 묻어나는 기이한 무게감이 여자의 발을 붙들었다.

여자가 거칠게 단검을 칼집에 꽂아 넣었다.

"좋아. 해봐."

여자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대신 허튼수작 부리다 칼을 완전히 부러뜨리면 네놈 손목부터 자를 테니 그리 알아."

"숯부터 가져오십시오. 질 좋은 흑탄이어야 합니다."

진혁은 모루 옆의 망치를 집어 들었다. 묵직한 쇠망치의 감촉이 손바닥의 굳은살에 착 감겨왔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떨어진 낯선 세계.

하지만 눈앞에 놓인 쇠와 화로만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진혁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꺼져가는 화로의 잿더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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