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싶어서 범인 잡았더니 수사 국장이 되어버렸다

6화: 제국 광장에 나타난 의문의 시체
제국 광장은 비가 멎은 뒤에도 여전히 차갑고 축축했다.
하늘을 가렸던 먹구름은 옅어졌지만 낮게 깔린 잿빛 안개가 대리석 바닥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바닥에 촘촘히 박힌 회색 판석 틈새마다 빗물이 고여 하늘을 비췄다. 광장 한복판에 솟은 거대한 석조 분수대 주변에는 수십 명의 구경꾼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순찰대 병사들이 놋쇠 창을 가로질러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었지만 호기심은 언제나 규정보다 집요했다.
마차 문이 덜컥 열리자마자 리안은 축축한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비 맞으면서 일하면 감기 걸립니다."
"특별 수사관 제복은 방수 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한스가 마차 발판을 내리며 씩씩하게 답했다.
"제 몸은 방수 처리가 안 되어 있습니다만."
리안은 구겨진 코트 깃을 바짝 여미며 투덜거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옷자락 안쪽으로 스며드는 한기가 뼛속까지 시렸다.
그의 시선은 분수대 기단부 아래로 향했다. 제국 건국 신화에 나오는 여신상이 물을 뿜어내는 수조 밑바닥에 거대한 철창으로 된 배수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배수구 쇠살 사이에 무언가 거무스름한 덩어리가 끼어 있었다.
"물러서시오! 일반인의 접근은 엄격히 통제되어 있소!"
순찰대 외투를 걸친 남자가 턱을 치켜들며 다가왔다. 견장에 달린 굵은 금줄로 보아 광장 관할 경비대장이 분명했다. 남자는 리안의 흐리멍덩한 눈가와 대충 묶은 머리를 훑어보고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수사국에서 지원을 보낸다고 하더니 겨우 애송이 둘을 보낸 거요? 여긴 제국 광장 한복판이오. 부랑자가 술에 취해 배수로에 빠진 단순 사고일 뿐인데 이런 일로 번거롭게 만들지 마시오."
리안은 대꾸할 기운도 아까웠다. 말싸움은 시간을 잡아먹고 시간 지연은 퇴근 시간을 갉아먹는다.
그는 품 안에서 묵직한 은빛 패를 꺼내 남자의 눈앞에 내밀었다. 방금 전 발테르 국장실에서 억지로 떠안은 물건이었다. 패 표면에 정교하게 새겨진 검은 눈동자와 천칭 문양이 흐린 햇살 아래 서늘하게 번뜩였다.
"국장 직속 특별 수사관 리안 앨런입니다. 이쪽은 한스 수사관이고 뒤쪽은 검은 눈 부서의 미라 베른 수사관이고요."
경비대장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흔들렸다. 턱에 잔뜩 실려 있던 거만한 힘이 쑥 빠져나갔다.
"특... 특별 수사관...? 국장 직속이 대체 왜 이런 하수구 구덩이에..."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시간인데 왜 여기 서 있는지 모르겠군요."
리안은 건조하게 대꾸하며 패를 주머니에 다시 쑤셔 넣었다.
"그러니 삼십 분 안에 끝내고 돌아갈 수 있게 협조해 주시죠. 통제선은 저 바깥 가로등까지 더 넓히고 구경꾼들 시선이나 철저히 차단하십시오."
분수대 밑바닥의 배수로는 제국 구 시가지의 옛 수로망과 직통으로 연결된 거대한 통로였다. 수조 가장자리의 미끄러운 턱을 딛고 내려서자 진흙 냄새와 비릿한 쇠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스와 미라가 시체 곁으로 먼저 다가갔다.
시체는 엎드린 채 배수구 쇠창살에 상체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두꺼운 암갈색 펠트 외투는 흙탕물에 절어 축 늘어져 있었고 양다리는 수로 안쪽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익사입니까?"
한스가 가죽 장갑을 끼며 물었다.
"아닙니다."
리안은 아버지의 낡은 가방에서 작은 손거울과 황동 핀셋을 꺼냈다.
"보십시오. 입술과 콧구멍 주변에 거품이 전혀 없습니다. 폐에 물이 차서 질식한 사람은 고통 속에서 숨을 헐떡이다가 폐포액과 공기가 섞인 흰 거품을 토해내죠. 이 사람은 물에 닿기 전에 이미 호흡이 멈췄습니다."
"독살이나 교살인가요?"
미라가 시체의 목덜미 부근을 손전등으로 비췄다.
"목에 압박 흔적이 가느다랗게 남아 있군요. 쇠줄이나 질긴 아마포 끈 같은 것으로 뒤에서 단번에 조였습니다. 저항흔이 전혀 없는 걸 보면 기습을 당했거나 상대에게 조금도 경계심이 없었겠지요."
미라의 손끝이 시체의 굳어버린 오른손으로 향했다.
"손을 보십시오. 무언가를 강하게 쥐고 있습니다."
시체의 오른 주먹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리안은 핀셋을 시체의 손가락 관절 틈새로 비집어 넣었다. 억지로 손가락을 젖히자 그 안에서 둔탁한 금속 덩어리가 흙탕물 위로 툭 떨어졌다.
한스가 그것을 조심스럽게 집어 올렸다.
붉은색 옻칠이 반쯤 벗겨진 납 인장이었다. 수사국 보존실의 고유 규격이었고 표면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제국 천칭 문양과 함께 일련번호가 음각되어 있었다.
[제12호 보존함]
"수사국 지하 보존실의 납 인장이 맞습니다!"
한스가 경악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선임 수사관님의 사건철에서 누락된 결재 서류와 연결되는 그 보존함 번호입니다!"
"목소리 낮추시죠. 광장 경비병들이 다 듣겠습니다."
리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시체의 손바닥 안쪽을 핀셋 끝으로 들추었다.
"이 사람은 스스로 이걸 쥔 게 아닙니다. 사후 경직이 완전히 진행된 뒤에 누군가 억지로 손가락을 꺾어서 끼워 넣었습니다. 손바닥 안쪽에 긁힌 상처에는 피가 맺히지 않았거든요. 심장이 멎은 뒤에 억지로 쥐여 준 겁니다."
"그렇다면 범인이 일부러 우리에게 보란 듯이 이 인장을 전달했다는 뜻입니까?"
"도발이든 통보든 아주 성가신 방식이죠. 우편함에 넣으면 될 것을 굳이 시체 손에 쥐여 광장 분수대까지 보냈으니까요."
미라가 시체의 젖은 외투 안주머니를 뒤져 낡은 황동 증표를 꺼냈다. 증표 표면에는 닳고 닳은 제국 우편국의 비둘기 문양이 찍혀 있었다.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3개월 전 제1건의 도난 사건 당시 마차와 함께 사라졌던 제국 우편 마부 토마스입니다."
열두 건의 비공개 실종 사건 중 가장 먼저 증발했던 사람이었다.
3개월 동안 제국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던 마부가 수사국 청사에서 불과 세 블록 떨어진 광장 한복판 분수대에서 싸늘한 시체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보고서에 적혀 있던 푸른 발자국은 대체 어디 있는 겁니까?"
한스가 주변 돌바닥을 두리번거렸다. 분수대 수조 주변은 빗물에 젖어 온통 거무튀튀한 대리석 얼룩뿐이었다.
"눈으로 보려고 하면 안 보입니다."
리안은 품 안에서 은제 회중시계를 꺼냈다. 시계 뚜껑을 딸깍 열자 톱니바퀴가 미세하게 웅웅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관자놀이에 은근히 밀려오는 묵직한 압박감을 견디며 시야의 초점을 비틀었다.
순간 세상의 모든 색채가 잿빛으로 바래고 대리석 바닥 위로 실핏줄 같은 푸른빛 선들이 일제히 솟구쳐 올랐다.
"저기 있군요."
리안의 손가락 끝이 가리킨 곳은 분수대 수조 뒤편 어두운 배수문 덮개 위였다.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푸른 발자국이 돌바닥 위에 선명한 야광처럼 찍혀 있었다. 기괴한 것은 그 발자국의 형태였다. 보통 사람이 자연스럽게 걸어갈 때 남기는 흔적이 아니었다.
보폭은 지나치게 넓었고 발뒤꿈치만 깊게 패여 있었으며 바닥을 질질 끈 궤적이 한 줄기 엉켜 있었다.
"낙인 폭주의 잔여물인가요?"
미라가 허리를 숙여 바닥의 흔적을 살피며 물었다.
"아닙니다. 청색 마석 가루에 특정 휘발성 기름을 섞어 만든 침전액입니다. 공기 중의 수분과 반응하면 유리질처럼 굳어버려서 폭우가 쏟아져도 씻겨 내려가지 않죠."
리안은 발자국 옆으로 걸어가 바닥을 세심히 관찰했다.
"발자국이 두 겹입니다. 하나는 바닥을 강하게 짓누르며 똑바로 걸어갔고 다른 하나는 허공에 반쯤 뜬 채 발끝만 바닥을 긁었습니다. 누군가 토마스의 시체를 어깨에 둘러멘 채 걸어간 겁니다."
"그럼 범인은 시체를 메고 어디서 나타난 겁니까?"
"배수문 안쪽입니다. 옛 수로망을 통해 기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걸어간 방향은..."
리안의 시선이 푸른 선을 따라 광장 서쪽으로 곧게 이어졌다.
푸른 궤적은 분수대 광장을 가로질러 거대한 석조 건축물의 짙은 그림자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제국 광장의 상징이자 수도 전체에 정각마다 시간을 알리는 거대한 시계탑인 종탑이었다.
아버지의 메모에 적혀 있던 그 '종탑 아래'였다.
종탑 기단부는 광장의 소음과 차단된 채 서늘하고 축축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거대한 증기 파이프와 톱니바퀴 덮개가 얽힌 환기구 주변에 이르자 푸른 발자국은 거짓말처럼 뚝 끊겨 있었다.
리안은 배기구 철망 아래 한쪽 무릎을 꿇었다. 환기구 모서리의 녹슨 쇠살 틈에 무언가 걸려 있었다.
그가 집게로 조심스럽게 꺼낸 것은 검게 그을린 가죽 끈과 타다 남은 종이 조각이었다.
가죽 끈에는 폐쇄된 구식 우편 마차 번호가 찍혀 있었고 종이 끝에는 정교하게 가위질된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종이꽃 표식이었다.
그리고 환기구 바로 뒤편 종탑 내부 지하 관리실로 통하는 작은 철문 중앙에 검붉은 도료로 그린 문양이 박혀 있었다.
다섯 손가락이 안쪽으로 흉측하게 꺾여 들어간 손.
검은 손의 표식이었다.
"종탑 안에 아직 범인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스가 허리춤의 권총 가죽 단추를 풀며 앞으로 나섰다. 미라도 품속에서 낙인 억제용 은제 부적을 꺼내 들었다.
"기다리십시오."
리안이 관자놀이를 짚으며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안에 사람이 있다면 벌써 빠져나갔을 겁니다. 이렇게 대놓고 제국의 심장부에 표식을 그려놓고 친절하게 기다리는 범죄자는 없습니다. 이건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대장이거나 함정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섭니까?"
"제가 그러자고 건의하면 수사관님은 순순히 물러서실 겁니까?"
한스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연쇄 실종의 진실과 선임 수사관님의 단서가 바로 이 문 너머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물어본 제 입이 잘못이었죠."
리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며 시야 가장자리가 잠시 흔들렸다. 인과율의 잔상을 집중해서 들여다본 대가가 찾아오고 있었다.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멍해지는 공백 상태의 전조였다.
그는 품 안의 회중시계를 꽉 쥐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뎅― 뎅― 뎅―
그때 머리 위에서 거대한 청동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정오를 알리는 열두 번의 묵직한 타종이었다. 웅장한 금속성 울림이 광장 바닥을 뒤흔들며 빗물 웅덩이에 파문을 일으켰다.
리안은 회중시계를 열어 초침을 확인했다.
오후 12시 정각.
점심 식사는커녕 정시 퇴근의 희망도 멀리 날아가 버렸다.
철문에 박힌 검은 손 문양은 마치 비웃듯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안은 차갑게 식은 철문 손잡이를 노려보며 낮게 읊조렸다.
"집에 가기 전에 저 시끄러운 종부터 먼저 멈춰 세워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