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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현장의 마지막 1분을 재생합니다1화

범죄 현장의 마지막 1분을 재생합니다

범죄 현장의 마지막 1분을 재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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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붉은 잔향

쇠 비린내와 썩은 기름 냄새가 늦가을의 눅눅한 안개에 엉겨 붙어 있었다.

경기도 외곽의 폐금속 가공 공장은 십 년 넘게 방치된 거대한 고철 무덤 같았다. 깨진 창문 틈으로 들어온 북풍이 헐거워진 슬레이트 지붕을 덜컹거리며 흔들었다. 폴리스라인 안쪽은 이미 감식반의 플래시 불빛과 형사들의 웅성거림으로 어지러웠다.

서울경찰청 미제범죄분석팀 프로파일러 강도윤은 목도리 안으로 턱을 묻은 채 공장 안쪽을 응시했다.

"현장 보존 상태가 엉망이네요."

옆에 선 박지후 형사가 헛기침을 뱉으며 턱짓했다. 구겨진 야상 점퍼에 흙먼지를 묻힌 지후는 관할서 형사들이 밟고 지나간 바닥의 족적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관할서 애들은 벌써 노숙자 시비 끝에 난 단순 강도 살인으로 가닥 잡는 눈치예요. 금고가 뜯겼다고 하니까요."

"서두르지 마세요. 박 형사님."

뒤편에서 나지막하지만 서늘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팀장 윤해진 경정이었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낮은 굽의 구두를 신은 해진은 피곤한 기색 속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우리가 부름을 받은 건 관할서의 결론에 도장을 찍어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현장이 말하는 진짜 순서를 읽기 위해서죠. 강 경위."

"예, 팀장님."

도윤은 주머니에서 라텍스 장갑을 꺼내 손에 뀄다. 얇은 고무가 손가락 마디마디를 조여 왔다.

현장 중앙, 녹슨 선반 기계 옆에 피해자가 쓰러져 있었다. 피해자는 이 폐공장의 야간 경비와 자재 관리를 맡고 있던 김성철, 마흔여덟 살의 사내였다.

시신은 엎어진 채 굳어 있었고 뒤통수에는 둔기에 강하게 가격당한 함몰 상흔이 선명했다. 바닥에는 검붉은 피가 넓게 번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도윤은 시신 곁으로 다가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의 시선이 바닥의 비산 혈흔과 끌림 흔적을 훑었다.

관할서의 보고서에는 피해자가 도망치다가 뒤에서 일격을 맞고 쓰러진 것으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바닥의 핏방울은 단속적인 점 형태가 아니라 무언가를 긁어내듯 문질러진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도망친 게 아니야.'

도윤의 미간이 좁혀졌다. 피해자의 발끝은 출구가 아니라 공장 구석에 달린 낡은 철문 쪽을 향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큰 문이 열려 있었는데도 피해자는 굳이 막다른 곳에 위치한 녹슨 철문을 향해 기어갔다.

이상했다. 인간은 공포에 질리면 본능적으로 넓은 탈출구를 찾는다. 그런데 왜 스스로를 가둘 수도 있는 좁은 방 쪽으로 향했을까.

"강 경위, 뭐가 보입니까?"

해진이 다가와 물었다.

"타격 위치와 혈흔의 방향성이 맞지 않습니다. 피해자는 습격을 당한 뒤 도망치려 한 게 아닙니다. 무언가를 막으려 했습니다."

"막으려 했다고요?"

지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다가왔다.

"저 안쪽은 작은 공구 창고인데요? 저기 숨으려고 한 거 아닙니까?"

"숨으려는 사람의 손톱은 안으로 꺾입니다. 하지만 바닥에 긁힌 자국은 밖을 향해 밀어낸 형태입니다."

도윤은 몸을 더 낮췄다. 바닥의 혈흔 상태를 확인하려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기계 모서리의 날카로운 쇳조각에 장갑 끝이 스쳤다.

찌익 소리와 함께 얇은 라텍스가 찢어졌다.

그리고 도윤의 오른손 검지와 손바닥이 바닥에 고여 있던 끈적한 혈액 잔류물에 그대로 닿았다.

'아.'

차가운 피의 감촉이 피부에 스며드는 순간 귓가에서 이명이 울렸다.

도윤은 손을 떼려 했다. 그러나 손가락 끝에서부터 핏줄을 타고 거대한 전류 같은 맥박이 심장으로 치고 올라왔다. 5초, 8초, 10초.

시야가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공장의 냄새, 지후의 목소리, 해진의 발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12년 전 여동생 서윤이 사라졌던 그 비 오던 골목길에서 찰나처럼 스쳐 지나갔던 그 기괴한 감각의 폭풍이 온몸을 집어삼켰다.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눈앞이 번쩍이며 완전히 다른 공간의 시야가 도윤의 망막 위로 덮어씌워졌다.


숨이 막혔다.

도윤의 시야는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키는 평소보다 낮았고 시야의 오른쪽 가장자리는 흐릿한 핏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시신 김성철의 눈이었다.

"헉, 헉…… 끄으윽……."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거친 숨과 함께 비릿한 피 맛이 혀를 마비시켰다. 뒤통수가 쪼개질 듯한 맹렬한 통증이 신경을 난도질했다. 머릿속이 핑핑 돌았지만 손은 본능적으로 눈앞의 쇠붙이를 잡고 있었다.

공구 창고의 녹슨 철문 문고리였다.

덜컹.

피해자는 밖으로 도망치려던 것이 아니었다. 창고 안쪽에서 문을 닫고 안쪽의 걸쇠를 걸어 잠그려 필사적으로 문고리를 당기고 있었다.

문 틈새로 차가운 바람과 함께 어둠이 밀려왔다.

쾅!

바깥에서 거대한 힘이 철문을 걷어찼다.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틈이 벌어졌다.

그 틈 사이로 한 남자의 손이 쑥 들어왔다.

두꺼운 검은색 작업용 가죽 장갑이었다. 손등에 누런 오일 얼룩이 번진 가죽 장갑은 익숙하고 거친 동작으로 문 가장자리를 억세게 틀어쥐었다.

왼손이었다. 남자는 왼손 하나로 문을 비틀어 열어젖히고 있었다.

피해자는 필사적으로 체중을 실어 문을 닫으려 밀어붙였다.

"살, 살려…… 줘……."

피해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문틈 너머로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역광 속에서 남자의 턱선과 굳게 다문 입술만이 희미한 윤곽으로 드러났을 뿐이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남자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기묘한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딱, 딱, 뚝.

딱, 딱, 뚝.

남자의 품 안에서 혹은 손목 부근에서 울리는 규칙적인 금속성 리듬이었다. 메트로놈처럼 일정하면서도 끝 음만 둔탁하게 떨어지는 3박자의 기계적인 박자.

남자는 그 박자에 맞춰 호흡하고 있었다.

스륵.

벌어진 문틈으로 남자의 묵직한 군화 앞코가 비집고 들어왔다. 피해자의 힘이 빠져나가는 순간 철문이 활짝 열렸다.

어둠이 시야 전체를 덮쳐왔다.

목덜미를 틀어쥐는 차가운 악력. 산소가 단절되며 시야가 붉게 타오르다 이내 칠흑 같은 암흑으로 꺼져 들어갔다.

딱, 딱, 뚝.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귓가에 맴도는 서늘한 3박자의 금속 소리와 남자의 나지막한 한숨뿐이었다.


"허억!"

도윤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뒤로 나자빠졌다.

"강 경위!"

해진의 날카로운 외침이 귓전을 때렸다.

도윤은 공장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짚은 채 과호흡으로 가슴을 들썩였다. 온몸의 핏줄이 얼어붙는 것 같았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폐가 타들어 가는 통증과 함께 손가락 끝이 마비된 듯 떨려왔다.

정확히 60초.

피해자 김성철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겪었던 고통과 공포가 도윤의 전신을 관통하고 지나간 직후였다.

"도윤아,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지후가 깜짝 놀라 달려와 도윤의 어깨를 부축했다.

"괜찮…… 습니다. 잠시 빈혈이……."

도윤은 떨리는 손으로 찢어진 장갑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에 묻은 피가 차갑게 굳어가고 있었다.

환각이 아니었다. 12년 전 여동생이 사라진 방 안에서 서윤의 헤어핀을 쥐었을 때 느꼈던 그 7초간의 기괴한 감각. 그것이 지금 이 살인 현장에서 완전한 60초의 시야로 되살아난 것이다.

'죽은 사람의 마지막 1분.'

도윤은 입술을 깨물며 어지럼증을 억눌렀다. 머릿속이 쪼개질 듯 아팠지만 기억은 칼로 새긴 것처럼 선명했다.

녹슨 철문.

문을 안쪽에서 잠그려던 피해자의 절박한 손.

문틈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왔던 범인의 왼손 가죽 장갑.

그리고 귓가를 울리던 규칙적인 3박자의 금속 소리.

'이건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없어.'

도윤은 스스로에게 냉정하게 경고했다. 초능력으로 본 환영을 수사 보고서에 적을 수는 없다. 판사와 배심원은 프로파일러의 오감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물질적 증거만을 믿는다.

내가 본 것을 현실의 증거로 증명해야 한다.

"강 경위, 안색이 너무 안 좋습니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쉬는 게……."

해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도윤의 팔을 잡았다. 도윤은 해진의 손을 부드럽게 밀어내며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아닙니다. 팀장님. 제가 방금 중요한 걸 놓칠 뻔했습니다."

도윤은 비틀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시신 뒤편의 공구 창고 철문 앞으로 걸어갔다.

"강 경위?"

지후가 의아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도윤은 문고리 안쪽을 가리켰다.

"박 형사님, 감식반 불러서 이 문고리 내측과 걸쇠 홈을 특수 라이트로 비춰 주십시오."

"문고리요? 여긴 피해자가 도망치려다 쓰러진 곳 뒤쪽인데……."

"피해자는 도망친 게 아니라 저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려 했습니다. 범인이 밖에서 문을 강제로 당겨 열었고요."

도윤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해진이 다가왔다.

"근거가 뭡니까?"

"피해자의 양손 손톱 밑을 보면 페인트 부스러기가 나올 겁니다. 문을 안쪽에서 지탱하려 긁은 흔적입니다. 그리고 범인은 문을 열기 위해 왼손을 문틈으로 집어넣었습니다."

도윤은 문틈의 칠이 벗겨진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보십시오. 철문 좌측 프레임에 눌린 자국이 있습니다. 낡은 작업용 가죽 장갑의 유분과 섬유질이 묻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범인은 오른손잡이가 아니라 왼손잡이입니다."

감식반원이 도윤의 말에 따라 조심스럽게 자외선 램프를 비추고 시약을 뿌렸다.

잠시 후 감식반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팀장님, 진짜로 가죽 오일 반응이 나옵니다. 문틈 안쪽에 섬유 가닥도 두 올 걸려 있습니다!"

해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변했다.

"왼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면 피해자를 제압한 둔기의 타격 궤적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떨어졌겠군요."

"맞습니다."

도윤이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이 공장은 낡아서 낮에도 어둡습니다. 일반적인 침입자라면 출구가 없는 막다른 창고 문을 피해자가 잠그려 할 때 굳이 문을 부수고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피해자가 안에 숨어 문을 잠그면 자신이 밖에서 갇히거나 시간을 끌게 되니까요."

도윤의 목소리가 점점 차분해졌다.

"하지만 범인은 망설임 없이 문틈으로 손을 넣어 제압했습니다. 이 공장의 구조를 완벽하게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창고 안에 다른 비상구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피해자가 거기서 무엇을 꺼내려 했는지를 알고 있었던 겁니다."

지후가 주먹을 쥐며 감탄사를 뱉었다.

"그럼 단순 강도가 아니라 공장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놈이라는 소리네요?"

"예. 관할서의 노숙자 강도 가설은 폐기해야 합니다. 범인은 이 공장에서 일했거나 자재를 정기적으로 납품하던 인물 중 왼손을 주로 쓰는 자입니다."

도윤은 거기서 말을 멈추지 않았다. 재생 속에서 들었던 그 차가운 소리를 떠올렸다.

딱, 딱, 뚝.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뭔가 더 있습니까?"

해진이 도윤을 응시했다.

"범인은 특정한 금속성 리듬을 내는 도구나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3박자로 떨어지는 기계음이나 계측기, 혹은 손목시계일 수 있습니다. 용의자들을 탐문할 때 이 독특한 박자 반응을 확인해야 합니다."

지후는 수첩을 꺼내 빠르게 메모하며 눈을 빛냈다.

"좋습니다. 당장 공장 전현직 명부랑 납품업체 리스트부터 털어보죠. 왼손잡이에 현장 지리 밝은 놈으로 추리면 오늘 안에 몇 놈 안 남을 겁니다!"

지후가 즉시 관할서 형사들에게 소리치며 달려 나갔다.

현장에 정적이 감돌았다. 해진은 출발하는 지후의 뒷모습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도윤을 바라보았다.

"강 경위."

"예, 팀장님."

"방금 그 분석, 감식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확신하고 있었죠?"

도윤의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해진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사건을 거쳐 온 베테랑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었다.

"현장의 혈흔과 바닥의 마찰 흔적을 종합한 프로파일링 결과였습니다."

도윤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해진은 도윤의 찢어진 장갑과 굳은 피가 묻은 손가락 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몸조심해요. 자네 가끔 보면 현장에 너무 깊게 들어가는 것 같아."

"명심하겠습니다."

해진이 감식반을 지휘하기 위해 돌아서자 도윤은 조용히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끝에 남아 있는 희미한 저림.

그리고 망막 뒤편에 여전히 남아 있는 피해자의 마지막 1분.

도윤은 주먹을 쥐었다.

12년 전 여동생의 실종 현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력하게 도망쳤던 그 아이는 이제 없었다. 비록 저주처럼 찾아온 감각일지라도 이 마지막 1분이 남긴 조각들을 모아 반드시 법정의 진실로 완성하리라.

바람이 불어와 공장의 깨진 유리창을 날카롭게 울렸다. 늦가을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첫 번째 추적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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