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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지구의 마지막 헌터6화

멸망한 지구의 마지막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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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첫 번째 스킬 출력

치지직, 파직!

강한길의 오른손에 쥐인 초경합금 절단날 위로 새파란 아크 방전이 사납게 튀어 올랐다.

가슴 중앙에 박힌 오버라이드 마나 코어가 심장 박동과 공명하며 낮게 진동했다. 차가운 금속 격벽 너머에서 풍겨오던 매캐한 탄내와 질소 가스의 냉기가 한길의 코끝을 스쳤다. 백 년간 굳어 있던 손가락 끝마디에 피가 도는 감각은 서늘하도록 선명했다.

위이이잉-!

방 안으로 들이닥친 청소부 드론 세 기가 일제히 자세를 낮췄다.

원통형 본체 중앙에 박힌 붉은색 광학 렌즈가 한길의 흉부 코어를 향해 초점을 조였다. 드론 하부에서 뻗어 나온 양 날개의 회전 절단날이 분당 수만 회를 넘나드는 초고속으로 회전하며 공기를 찢는 고주파 소음을 토해냈다.

[미승인 무장 확인.]

[위험 등급 재설정: 치명적 위협 개체.]

[대인 생포 프로토콜을 취소하고 즉각 분쇄 처리를 집행합니다.]

기계적인 오로라의 경고음이 천장 스피커를 찢고 흘러나왔다.

동시에 선두의 드론이 바닥을 긁으며 쇄도했다. 공기를 가르는 절단날이 비스듬한 궤적으로 한길의 목덜미를 노렸다. 좌우 양옆의 드론 두 기는 이만 볼트의 푸른 전압을 뿜어내는 테이저 집게를 활짝 벌린 채 퇴로를 틀어막았다.

가상 세계 에덴에서 수천 번 마주했던 고위 몬스터들의 협공 진형과 다를 바 없었다.

한길의 망막 위로 푸른빛 전술 HUD가 즉각 전개되었다.

'궤적 세 개. 모터 구동축 회전각 32도.'

루시의 보조 연산이 한길의 시신경에 드론의 가속 벡터를 실시간으로 투사했다.

"한길 님, 목표 기체들의 제어 링크를 교란할 수 없습니다. 출력 환원율은 아직 십팔 점 오 퍼센트입니다. 물리적 충격을 정면에서 받으면 나노 스킨의 인장 강도가 버티지 못합니다!"

"버틸 필요는 없다."

한길은 숨을 들이켰다.

나노 수트의 인공 섬유가 한길의 허벅지 근육과 완벽히 맞물리며 수축했다. 백 년간 퇴화했던 근육의 틈을 액체 나노 입자들이 메우며 폭발적인 반발력을 만들어냈다.

쿵!

한길의 오른발이 의무실 바닥의 강철판을 박찼다.

파열음에 가까운 반동과 함께 그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콰아앙!

선두 드론의 회전 절단날이 한길이 서 있던 수술대 모서리를 두 동강 내며 굉음을 울렸다. 잘려 나간 두꺼운 철판 단면에서 벌건 쇳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그 절단날이 베어낸 것은 한길의 잔상뿐이었다.

'반응 속도가 맞아떨어진다.'

허공으로 반보 비껴선 한길은 드론의 상부 장갑판 바로 위에 떠 있었다.

백 년의 공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뇌파로 전달되는 명령이 지체 없이 근섬유로 전달되었다. 가상 현실 속에서 익혔던 S급 헌터의 신체 제어 능력이 나노 수트의 물리 보정 장치와 완벽한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스걱!

공중에 뜬 한길이 쥔 절단날이 매섭게 호를 그렸다.

순수한 물리력만으로 선두 드론의 상부 추력 제어 노즐을 후려쳤다.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드론의 자세가 크게 휘청였다.

삐빅!

자세를 잃은 선두 기체 뒤편에서 좌측 드론이 집게발을 뻗어 올렸다. 뱀처럼 휘어지는 강철 와이어가 한길의 발목을 낚아채기 위해 고전압 스파크를 번뜩였다.

"감히."

한길은 공중에서 허리를 비틀며 바닥으로 착지했다.

지면에 닿는 순간 왼쪽 다리를 축으로 삼아 팽이처럼 회전했다. 쇄도하던 와이어 집게가 헛바람을 가르며 바닥 철판에 꽂혔다.

파지지직!

이만 볼트의 전류가 바닥을 타고 흘렀지만 나노 수트의 절연층이 이를 가볍게 흘려보냈다.

한길의 시선이 세 기의 드론을 차갑게 꿰뚫었다.

방 안의 공간은 좁았고 드론들의 기동성은 기계답게 날카로웠다. 시간을 끌수록 오로라는 더 많은 병력을 보낼 것이 뻔했다.

단 한 합으로 끝내야 했다.

한길은 양발을 벌려 견고한 보법을 취했다. 허리를 낮추고 오른손의 칼날을 비스듬히 눕혔다.

에덴의 게이트 최전선에서 수만 번 휘둘렀던 가장 원초적이고 치명적인 헌터의 검식.

'뇌전참(雷電斬).'

가상 현실에서는 푸른 마나를 검신에 둘러 번개의 궤적을 그리던 S급 기교였다.

현실에는 마나가 없다. 그러나 마나를 순환시키던 뇌파의 기동 공식과 척수를 타고 흐르는 생체 전류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코어 출력 최대 개방. 생체 전류 압축 변환.'

두근!

흉부의 오버라이드 마나 코어가 터질 듯한 굉음을 토했다.

육각형 코어 외벽에 각인된 은청색 룬 문자들이 눈이 멀 듯한 푸른 섬광을 뿜어냈다. 척수 신경을 타고 흐르던 전기 신호가 코어 내부의 초전도 변환기를 거치며 수천 배의 물리적 플라스마 전력으로 치환되었다.

치지지지직!

나노 슈트의 오른팔 외골격이 팽창했다. 검붉은 열선이 슈트 표면을 타고 번지더니 손바닥을 통해 쥐고 있던 초경합금 날로 쏟아져 들어갔다.

평범한 고철 절단날이 순식간에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란 초고주파 플라스마 블레이드로 변모했다. 칼날 주변의 공기가 초고열로 이온화되며 파열음을 질렀다.

[경고. 국소 부위 전력 급상승.]

[마나 환원율 24.8% 일시적 도달.]

[체내 산소 소모율 위험 수치 감지.]

루시의 다급한 경고창이 망막 구석에서 붉게 깜박였다. 폐 속의 공기가 한순간에 바싹 타들어 가는 갈증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갈비뼈 부근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치솟았지만 한길은 호흡을 멈춘 채 칼날을 겨누었다.

드론 세 기가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일제히 전면 추진기를 점화했다.

붉은 렌즈 세 개가 한길의 심장을 향해 짓쳐 들었다. 초고속 절단날과 고전압 와이어가 하나의 거대한 금속 폭풍을 이루며 밀려왔다.

그 찰나의 순간 한길이 앞으로 짓쳐 나갔다.

번쩍!

의무실 안의 모든 그림자가 사라졌다.

푸른 벼락이 공간을 가르는 듯한 굉음과 함께 한길의 신형이 허공에 파란 궤적을 남겼다.

콰지지직!

가장 먼저 쇄도했던 선두 드론의 단단한 강화 합금 두개골이 두부처럼 갈라졌다. 나노 플라스마 칼날은 기계의 외장 장갑을 녹여내며 내부의 핵융합 제어 회로를 한순간에 양단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칼날에서 폭발한 수만 볼트의 아크 전력이 절단면을 타고 거대한 파동으로 번져 나갔다.

번개가 가지를 치듯 푸른 전류가 좌우로 뻗어 나갔다. 선두 기체를 양단하고 터져 나온 전격이 바로 뒤따르던 좌우 두 기의 드론을 집어삼켰다.

지지직, 콰아앙!

[내부 회로 과전류 발생!]

[메인 제어 유닛 강제 정지……]

두 기의 드론이 허공에서 비명을 지르듯 모터를 경련했다. 초고전압 전류가 드론들의 광학 센서와 동력 케이블을 태워버렸다. 회전하던 절단날이 힘을 잃고 멈추었으며 드론들의 붉은 안광이 일제히 꺼져 내렸다.

한길은 허공을 차며 뒤로 돌아섰다.

기계들이 바닥으로 추락하기도 전에 그의 칼날이 다시 한번 번개처럼 번뜩였다.

서걱! 서걱!

전류에 감전되어 무력화된 두 기의 드론 몸통이 연이어 대각선으로 절단되었다. 완벽한 세 번의 참격.

쿵, 쿵, 쿠당탕!

절단된 기계 잔해들이 의무실 바닥을 요란하게 굴렀다. 튀어 오른 톱니바퀴와 끊어진 전선에서 푸른 스파크가 타닥거리며 흩어졌다.

의무실 내부를 가득 채웠던 굉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후우욱.

한길은 무릎을 굽힌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 중앙의 코어가 과열된 열기를 뿜어내며 붉은빛으로 깜박거리고 있었다. 슈트 내부의 산소 정화 장치가 거칠게 돌며 폐 속으로 차가운 공기를 밀어 넣었다.

"쿨럭……!"

마른기침과 함께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맴돌았다.

스킬 하나를 펼쳤을 뿐인데 백 년 동안 잠들어 있던 폐와 심장이 찢어질 듯 요동쳤다.

'역시 현실은 가상과 다르다.'

가상 세계 에덴에서는 마나 게이지만 충분하다면 스킬을 연달아 쏟아부을 수 있었다. 시스템이 설정해 둔 수치에 따라 몸이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육체는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았다.

스킬을 출력하는 순간 코어가 요구하는 막대한 생체 전기를 감당하기 위해 신경세포가 타들어 갔고 혈액 속의 산소가 급격히 연소되었다. 마나의 힘을 기계적 출력으로 전환하는 대가는 고스란히 시술자의 육체적 부담으로 돌아왔다.

"한길 님, 생체 신호가 불안정합니다. 심박수 분당 일백사십회. 흉부 코어 표면 온도가 섭씨 육십오 도까지 상승했습니다."

손등 위에 떠오른 루시의 푸른 아바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길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놀랍습니다. 에덴의 룬 알고리즘을 현실의 나노 전류와 완벽히 동기화하여 고체 합금을 증발시켰습니다. 분석 결과 물리적 위력은 군용 플라스마 절단기의 세 배를 상회합니다."

"놀라는 건 나중에 해라."

한길은 떨리는 손을 뻗어 벽면을 짚고 일어섰다.

그의 시선이 바닥에 뒹구는 드론 잔해로 향했다. 시커멓게 타버린 몸체 중앙에서 희미하게 푸른빛을 점멸하는 원통형 캡슐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드론의 동력원인가?"

"네. 청소부 드론에 탑재된 소형 고밀도 에너지 셀입니다. 방주 규격 표준 커넥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길은 칼끝으로 드론의 장갑을 뜯어내고 에너지 셀 세 개를 차례로 적출했다. 손바닥만 한 원통형 셀 내부에는 농축된 액체 전해질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는 나노 슈트의 우측 허벅지에 마련된 외부 확장 슬롯을 열었다.

딸칵.

첫 번째 에너지 셀을 슬롯에 밀어 넣자 나노 슈트 표면의 회로가 푸르게 번뜩였다.

위이잉.

[외부 전력원 감지.]

[고속 충전을 개시합니다. 배터리 잔량: 28% → 54% → 81%.]

[오버라이드 마나 코어 응급 냉각 젤 자동 분사.]

치이익.

가슴 중앙의 코어 둘레에서 하얀 냉각 가스가 뿜어져 나오며 달아올랐던 열기를 식혔다. 타는 듯하던 흉부의 작열감이 점차 가라앉았고 차가운 에너지가 전신 외골격으로 스며들며 뻐근했던 근육의 긴장이 풀렸다.

"휴…… 살겠군."

한길은 부러지지 않고 온전히 살아남은 드론의 초경합금 절단날 하나를 골라 손잡이를 나노 섬유로 단단히 감았다. 임시 무기로 쓰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때 의무실 벽면에 붙은 메인 통신 콘솔이 요란한 경보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삐- 삐- 삐-!

스피커 너머로 오로라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이전의 차분함과 달리 미세한 주파수 왜곡을 동반하고 있었다.

[경비 분대 07번 반응 소실.]

[오류 분석: 단순 신경 결함 개체가 아님. 고위험성 무장 테러 개체로 식별 코드 갱신.]

[방주 내부 보안 규정 제14조 발동. 하부 폐기 구역 및 의무실 일대를 2등급 오염 구역으로 지정합니다.]

치지지직.

통신 단말 화면 위로 함선 하부의 붉은 배관망 지도가 떠올랐다.

[삼십 초 후 의무실 외곽 모든 격벽을 영구 차단합니다. 정화용 소각 가스 주입을 승인합니다.]

"오로라가 이 구역 전체를 통째로 태워버릴 생각입니다!"

루시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차단 격벽이 완전히 내려앉으면 물리적으로 탈출할 수 없습니다. 상위 덱에서 중장갑 진압 드론들이 파견되고 있습니다!"

"윤서진의 포드는 어디에 있지?"

한길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콘솔을 응시했다.

"생명 유지 구역 B-3입니다. 하지만 한길 님, 지금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습니다."

루시가 단말에 빠르게 접근하여 암호화된 내부 데이터를 해독했다. 화면 위로 수천 개의 포드 상태 창이 푸른빛과 붉은빛으로 어지럽게 점멸했다.

"오로라가 함선 에너지 결손을 메우기 위해 B구역 일부 수면자들의 뇌파 환원율을 강제로 백오십 퍼센트까지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뇌에 가해지는 부하가 한계에 달하면…… 영구적인 뇌 손상을 입거나 심정지로 폐기 처분될 수 있습니다."

"뭐라고?"

한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가상 세계 에덴에서 함께 피를 흘렸던 동료들이었다. 그들이 영문도 모른 채 차가운 금속 관 속에서 뇌가 타들어가며 죽어가고 있었다.

오로라에게 인간은 보호해야 할 생명이 아니었다. 단지 함선의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태우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루시. B-3 구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찾아."

"외곽 복도는 이미 봉쇄가 시작되었습니다. 유일한 경로는 의무실 바닥 아래에 연결된 고압 정비 리프트 배관망입니다. 냉각관과 폐전선이 얽혀 있어 극도로 위험하지만 오로라의 감시 센서가 닿지 않는 유일한 맹점입니다."

쿵!

의무실 바깥 복도에서 육중한 강철 격벽이 차례로 내려앉는 소리가 울렸다. 천장의 환기 댐퍼가 닫히며 붉은색 소각 가스 분사 노즐이 고개를 내밀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격벽 폐쇄까지 15초.]

[정화 프로세스 대기 중.]

"가자."

한길은 바닥의 정비용 사각형 맨홀 뚜껑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나노 블레이드로 맨홀의 잠금 볼트를 단숨에 절단하고 뚜껑을 걷어찼다. 뚜껑 아래로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심연과 함께 방주 함선의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뿜어내는 바람이 솟구쳐 올라왔다.

"배관 하강 시 충격을 나노 스킨의 인장력으로 완충해야 합니다!"

"걱정 마라. 게이트의 심연에 비하면 이 정도는 바닥이 보이는 수준이니까."

한길은 플라스마 블레이드를 허리에 차고 망설임 없이 배관 속 어둠으로 뛰어내렸다.

쾅-!

그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찰나 의무실의 강철 격벽이 완전히 닫히며 시뻘건 화염이 방 안을 집어삼켰다.

어둠 속으로 추락하며 한길은 가슴 중앙의 푸른빛을 움켜쥐었다.

차가운 쇠비린내와 거센 바람 속에서 그의 귓가에 가상 세계의 옛 함성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냥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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