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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으로 간 천재 외과의사5화

조선으로 간 천재 외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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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물과 불의 규칙

새벽의 별당에는 고름 냄새보다 젖은 천 냄새가 먼저 고여 있었다.

이진이 문턱을 넘자 상궁 하나가 청평군의 등에 감긴 천을 풀고 있었다. 물그릇에 손을 담근 흔적도 없는 손이었다.

"멈추십시오."

상궁의 손이 허공에서 굳었다.

"천이 흠뻑 젖었사옵니다. 갈아야 하옵니다."

"그러니 손부터 씻어야 합니다."

정 의원이 곁에서 고약 사발을 들어 보였다.

"밤새 독기가 빠졌으니 이제 고약으로 기운을 돋울 때이옵니다. 상처가 벌어진 채로 있으면 바람이 듭니다."

이진은 사발을 보지 않았다.

"상처 안에는 아직 고름이 나올 길이 있습니다. 지금 덮어 막으면 다시 안에 고입니다."

청평군은 엎드린 채 베개 끝을 물고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전날처럼 짧게 숨을 토해 내지는 않았다.

[대상 재평가.]
[체온 상승 지속. 배액 유지.]
[국소 압력 감소. 전신 감염 관찰 필요.]

이진은 그 마지막 문장을 마음속에서 지웠다. 열이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방 안의 사람들은 충분히 겁을 먹고 있었다.

"복아. 물은 끓였느냐."

"밤새 두 솥을 끓여 식혔사옵니다. 새 무명도 가져왔사옵니다."

복이는 물동이 앞으로 가 손목까지 걷었다. 손바닥을 비빈 뒤 손가락 사이와 손톱 밑까지 문질렀다. 이진은 상궁에게도 같은 동작을 시켰다.

"손은 이리 씻습니다. 상처에 닿은 천은 저 항아리에만 넣으세요. 새 천은 바닥에 놓지 말고 뚜껑 덮은 상자에서 꺼냅니다."

상궁은 이진의 말보다 세종 곁의 김 내관 눈치를 먼저 보았다. 김 내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두 손을 물에 넣었다.

정 의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고름을 빼는 것은 그러려니 하겠사오나 천 하나를 갈 때마다 이 난리를 벌일 일은 아니옵니다."

"천 하나가 아니라 손 하나입니다."

이진은 낮게 말했다.

"고름이 묻은 손으로 다른 데를 만지면 그 손이 옮깁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복이가 깨끗한 천을 손에 감고 조심스럽게 덮개를 풀었다. 입구에 걸친 천은 누런 배액으로 젖어 있었으나 선홍색 피가 많이 섞이지는 않았다. 주변의 붉은 테도 밤사이 더 넓어지지 않았다.

이진은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발목이 쑤시며 시야 끝이 잠깐 흔들렸다. 그는 손을 짚지 않고 숨을 고른 뒤 상처 가장자리만 살폈다.

"통증은 어떠십니까."

청평군이 한참 뒤에 대답했다.

"등을 짓누르던 돌은 빠진 듯하다."

"열이 다시 오르고 정신이 멍해지면 즉시 사람을 보내십시오. 오늘은 세 번 천을 확인합니다. 젖으면 기다리지 말고 바꾸고요."

청평군은 고개를 조금 돌렸다.

"네 말대로 했더니 밤에 잠을 두 번이나 잤다. 그뿐이라도 고맙다."

종친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정 의원의 눈썹이 떨렸다.

그때 김 내관이 이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진성군마마. 술독이 거의 비었사옵니다. 끓인 물을 나를 나인도 모자라옵니다. 별당마다 물을 달라 하니 부엌이 뒤집혔사옵니다."

이진은 젖은 천이 담긴 항아리를 보았다. 오늘 이 천을 잘 삶아도 내일은 또 새 천이 필요했다. 한 사람의 상처를 지키는 데도 물과 불과 사람이 끝없이 들었다.

"전하께 아뢸 일이 생겼군요."


세종은 이진의 처소 앞마당에 물동이와 화로를 놓게 했다.

자욱한 김 사이로 내의원 의관들과 상궁들이 모였다. 한쪽에는 새 무명천을 담은 나무 상자가 놓였고 다른 쪽에는 쓴 천을 받는 뚜껑 달린 항아리가 놓였다.

정 의원은 내의원 장부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전하. 상처 하나마다 새 천과 술을 쓰면 궁의 물자가 버티지 못하옵니다. 쓴 천도 삶으면 다시 쓸 수 있사옵니다. 굳이 나누어 두는 것은 사치이옵니다."

"삶은 천은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이진이 곧장 받았다.

"하지만 상처에 닿은 천과 아직 깨끗한 천을 한데 두어서는 안 됩니다. 삶기 전까지는 따로 둬야 합니다."

"그리 나누는 까닭이 무엇이옵니까."

"덕삼의 팔에서 나온 피가 다른 상처에 묻으면 안 됩니다. 청평군의 고름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이 다르더라도 더러운 것은 서로에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정 의원이 코웃음을 쳤다.

"보이지 않는 더러움을 어찌 궁의 법도로 삼겠사옵니까."

이진은 대답하기 전에 화로의 불길을 보았다. 끓는 물이 흰 김을 뿜어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면 눈에 보이는 결과를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피 묻은 천을 맨손으로 만진 뒤 의원의 옷자락을 잡으면 붉은 자국이 남습니다. 고름도 마르고 나면 흔적이 남지요. 흔적이 안 보인다고 손에 남은 것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세종이 물었다.

"그러면 네가 바라는 규칙은 무엇이냐."

"상처에 닿기 전에는 손을 씻습니다. 물은 끓여 식힌 것만 씁니다. 상처에 닿은 천은 따로 모아 삶기 전에는 다시 쓰지 않습니다. 술은 상처 속에 붓지 말고 손과 칼을 닦는 데 씁니다."

"누가 그 많은 일을 맡겠느냐."

"처소마다 물과 천을 맡을 사람 한 명을 두면 됩니다. 처음에는 상처가 있는 곳만 해도 됩니다."

복이가 사람들 뒤에서 숨을 삼켰다. 이진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복이는 절차를 압니다. 보여 드려라."

복이는 잠시 멈췄다. 이진의 얼굴은 열에 창백했고 발목을 딛는 모양도 불안했다. 그래도 아이는 물동이 앞으로 나왔다.

두 손을 씻은 뒤 새 천을 상자에서 꺼냈다. 쓴 천은 항아리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마지막으로 화로 위 물을 가리켰다.

"이 물은 식힌 뒤에만 상처에 쓰겠사옵니다."

목소리는 작았으나 끝이 흐리지 않았다.

세종의 시선이 정 의원에게 옮겨 갔다.

"내의원의 의원들은 이 순서를 익혀라. 오늘부터 상처를 다루는 곳에는 물동이와 화로를 둔다. 새 천과 쓴 천을 섞지 말며 손을 씻지 않은 자는 환자에게 가까이하지 못한다."

정 의원의 안색이 굳었다.

"전하. 의원이 환자를 만지지 못하면 진찰을 어찌 하겠사옵니까."

"손을 씻으면 된다."

세종의 목소리는 짧았다.

"그리 어려운 일이라면 네가 먼저 익혀라."


덕삼은 툇마루 끝에 앉아 왼팔을 가슴 앞에 고정하고 있었다. 천을 감은 팔을 조금만 움직여도 얼굴이 찌푸려졌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아라."

덕삼이 오른손으로 왼손 손가락을 하나씩 펴 보였다. 새끼손가락이 조금 늦게 따라왔다.

"저것만 둔하옵니다."

이진은 두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손끝 색을 살폈다. 붉고 따뜻했다. 천 밖으로 피가 번진 흔적도 없었다.

"복아. 천을 벗기고 붉은 범위를 봐라. 먼저 손을 씻고."

복이는 망설임 없이 물동이로 갔다. 깨끗한 손으로 천을 풀자 상처 둘레는 아직 부어 있었지만 붉은 기운이 팔을 타고 번지지는 않았다.

"피도 안 나고 어제보다 붉은 데도 넓지 않사옵니다."

"새 천으로 다시 덮어라. 손가락이 더 안 움직이거나 열이 나면 바로 말하고."

"예."

정 의원이 문밖에서 헛기침했다.

"전하. 대군마마께서 고열을 앓으시는데 다른 병자의 곁을 지키는 것도 마땅치 않사옵니다. 마마께서 말한 보이지 않는 더러움이 있다면 마마의 몸에서도 옮을 수 있지 않사옵니까."

비아냥이 섞인 말이었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진은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감긴 천 아래에서 욱신거림이 맥박처럼 뛰었다. 자신도 아직 안전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모든 상처를 만질 수는 없습니다."

정 의원의 눈빛이 잠깐 밝아졌다.

"하지만 그것이 의원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절차를 아는 손을 늘리면 됩니다. 의원도 나인도 내관도 손을 씻고 순서를 지키면 돕는 손이 됩니다."

이진은 복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내가 없는 때에도 할 수 있겠느냐."

복이의 손이 새 천을 묶다가 멈췄다. 아이는 덕삼의 겁먹은 얼굴과 물동이와 이진의 창백한 낯을 차례로 보았다.

"할 수 있사옵니다. 천이 젖으면 손을 씻고 새 천으로 갈겠사옵니다. 열이 나거나 피가 나면 사람을 부르겠사옵니다."

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면 된다."

정 의원은 더 말하지 못했다. 어린 나인이 이해한 순서를 늙은 의원이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해가 기울 무렵 청평군의 별당에서 전갈이 왔다.

열이 조금 내렸고 천에는 고름이 묻었으나 악취와 양이 줄었다는 보고였다.

[체온 하강 경향.]
[배액 관리 지속 권장.]

이진은 가마 안에서 눈을 감았다. 두 번의 절개와 한 번의 지혈을 지나고 나서야 겨우 첫 걸음을 옮긴 셈이었다. 궁궐 안의 상처가 모두 나을 리는 없었다. 그래도 누군가 손을 씻고 천을 바꾸는 동안에는 같은 실수를 조금 덜 하게 될 것이다.

가마 곁을 따라오던 김 내관이 목소리를 낮췄다.

"진성군마마. 궁 밖에 칼날을 곱게 다루는 장인이 있다는 말을 들었사옵니다."

이진이 눈을 떴다.

"어떤 장인입니까."

"한성 남문 밖 대장간의 유청이라 하옵니다. 작은 칼과 침통을 만들 줄 안다 들었사옵니다."

청평군의 등을 가르던 거친 칼날 감각이 손끝에 되살아났다. 지금의 칼은 살리기 위해 쓰기에는 너무 두껍고 둔했다.

"전하께 아뢰어 그를 부르십시오. 화로와 솥을 한곳에 둘 자리도 마련해야 합니다."

"칼을 또 쓰시려 하시옵니까."

"칼만이 아닙니다. 깨끗하게 만들고 깨끗하게 지킬 도구가 필요합니다."

가마가 궁문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궁궐 안에는 이제 물과 불의 규칙이 생겼다.

하지만 규칙만으로는 칼날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이진은 아픈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다음에는 사람을 살릴 칼을 제대로 만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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