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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천재 발명가는 은퇴하고 싶다8화

조선의 천재 발명가는 은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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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냇가로 향한 잠행

충청도로 이어지는 삼남대로의 산길은 늦가을의 서늘한 바람에 바짝 마른 낙엽을 흩날리고 있었다.

말발굽 소리가 거칠게 자갈밭을 울렸다. 말을 모는 사내들의 옷차림은 평범한 양반 행색이었으나 말등에 앉은 품세와 허리춤의 긴장감은 일개 유람객의 그것이 아니었다. 맨 앞에서 말을 모는 사내는 짙은 남빛 무명 도포를 입고 소박한 갓을 눌러쓰고 있었다. 수수한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넓은 어깨와 굳게 다문 입매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흘러넘쳤다.

조선의 제4대 국왕, 세종 이도였다.

“전하, 부디 고삐를 조금만 늦추어 주시옵소서! 어가 행렬을 공주 목 관아에 머물게 하시고 이리 친히 산길을 달리시다 행여 옥체에 변이라도 생기시면……!”

뒤를 바짝 따르던 호위무관 최우혁이 땀을 비 오듯 쏟으며 간곡히 외쳤다.

조정의 대신들과 삼정승에게는 ‘충청도 일대의 수해 복구 상황을 직접 점검하고 백성들의 민정을 살피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공주 관아에 도착하자마자 세종은 도승지와 감사 이정연에게 공식 행차를 맡겨두고 단 세 명의 호위만을 거느린 채 샛길로 빠져나왔다.

세종은 고삐를 쥔 손을 늦추지 않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변은 무슨 변이냐! 장시간 말등에 흔들리니 오히려 궁궐 편전에 틀어박혀 서안만 들여다보던 허리 통증이 씻은 듯이 가시는구나.”

“하오나 전하, 최소한 호위 병력을 한 영이라도 더 풀어야 마땅하옵니다.”

“호위를 구름처럼 몰고 다니면 시골 연장장이로 숨어든 그 맹랑한 놈이 산속으로 도망칠 것 아니냐. 그놈은 눈치가 귀신보다 빠른 놈이다. 내가 온다는 낌새만 채도 또 무슨 가사의 묘약을 처먹고 가마니를 뒤집어쓸지 모른다.”

세종의 두 눈이 서슬 퍼런 안광으로 번뜩였다.

“감히 임금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고 시골 냇가에서 낚시나 하며 낮잠을 자? 내 그놈을 생각하면 가슴속에서 불화로가 활활 타오르는 것 같구나. 그놈이 상의원을 비운 탓에 멈춰 선 수차 개량이며 간의대 자동 회전축 설계가 몇 개더냐! 닷새 밤샘으로도 죗값을 다 치르지 못할 것이다.”

최우혁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군주로서의 분노라기보다는 아끼는 최고의 명검을 되찾으러 가는 대장장이의 탐욕스러운 집념에 가까웠다.

산등성이를 하나 넘어서자 저 멀리 산골짜기를 가로지르는 맑은 냇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냇가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 길목에 다다랐을 때 세종의 시선이 비탈밭 쪽으로 쏠렸다.

비탈진 언덕 위로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본래 저토록 가파른 비탈밭은 농부들이 지게에 물통을 지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비탈을 기어올라야 겨우 목을 축일 수 있는 척박한 땅이었다. 그런데 밭머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농부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아니었다.

덜컹, 콸콸콸.

규칙적인 나무 삐걱거림과 함께 시원스러운 물줄기가 솟구쳐 오르는 소리였다.

세종이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최우혁이 놀라 따라 내리며 칼자루를 쥐었으나 세종은 손짓으로 그를 제지하며 성큼성큼 비탈밭으로 걸어 올라갔다.

밭머리에는 굽은 허리를 두드리며 흐뭇하게 담뱃대를 물고 있는 늙은 농부가 서 있었다. 밭 가장자리의 커다란 물독에서는 맑은 냇물이 쉴 새 없이 차올라 고랑을 따라 골고루 흘러들고 있었다. 냇가 물레방아의 회전력을 받아 굵은 참나무 도르래가 밧줄을 당기고 대나무 관 속의 피스톤이 물을 밀어 올리는 무동력 도르래 양수기였다.

세종의 눈이 경이로움으로 크게 뜨였다.

‘장계로 읽은 것보다 훨씬 정교하구나.’

수직으로 끌어올린 물길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관의 굽이를 완만하게 곡선으로 깎아내고 이음새마다 삼베와 송진을 발라 한 방울의 물도 새지 않게 마감했다.

세종이 헛기침을 하며 농부에게 다가갔다.

“노인장, 잠시 길을 묻겠소.”

박 노인은 낯선 양반 차림의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비록 평복을 입었으나 기품이 범상치 않아 박 노인은 얼른 담뱃대를 내리고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나리, 어디를 찾으시기에 이 험한 골짜기까지 오셨습니까?”

“한양에서 낙향하여 산천을 유람하던 길인데 저 신기한 연장이 눈에 띄어 올라와 보았소. 소나 말도 없이 물이 절로 산비탈을 거슬러 오르니 이것이 대체 무슨 조화요?”

세종의 물음에 박 노인의 얼굴에 자부심 섞인 미소가 번졌다.

“조화는 무슨 조화입니까. 저 아래 냇가에 터를 잡은 젊은 연장장이가 만들어 준 신기한 물길이지요.”

“연장장이?”

“예. 지난여름 내내 제가 허리가 끊어질 듯 물통을 지고 나르는 것을 보더니만 뚝딱거리며 나무와 대나무를 깎아 저걸 엮어 주었습니다. 냇물이 도는 힘만으로 물이 솟구치니 이제는 지게를 질 일도 없고 콩이며 조가 아주 실하게 영글었지요.”

세종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그리 대단한 물건이면 그 연장장이라는 자가 큰돈을 요구하거나 관아에 자랑하여 벼슬이라도 탐낼 법한데 어찌 시골 밭머리에 저런 것을 놓아두었소?”

박 노인은 손사래를 세차게 쳤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돈 한 푼 받지 않았을뿐더러 관아에 알려지면 귀찮은 일만 생긴다고 질색을 하더군요. 고장이 나면 마을 스스로 고쳐 쓰라면서 부속 다듬는 법과 줄 매는 법까지 나무패에 죄다 새겨 주었습니다. 아래 굽이에 무너질 뻔했던 제방도 그 젊은이가 만든 지렛대 압착기 덕에 인부 열 명이 하룻밤 만에 다져 올려 막았지요. 참으로 착하고 재주 많은 젊은이인데 낮잠 자는 걸 어찌나 좋아하는지 허허허.”

세종은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묵직한 감동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이 치밀어 올랐다.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기물이었다. 게다가 기술을 독점하여 권세를 누리려 하지 않고 백성들 스스로 운용할 수 있도록 규격과 수칙을 전파했다. 당대 최고의 석학이라 자부하는 조정의 신료들 중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진정한 위민(爲民)의 기술이었다.

‘과연 한소은이다. 내 너를 잘못 보지 않았어.’

허나 감동은 감동이었고 부려먹어야 할 일거리는 산더미였다.

세종의 눈매가 다시 가늘어졌다.

‘이토록 위대한 재주를 지닌 놈이 시골 구석에 처박혀 낚시나 하고 낮잠을 자? 이런 인재를 놀리는 것은 하늘에 대한 죄악이다. 반드시 한양으로 끌고 올라가 주야장천 도면을 그리게 하리라.’

세종은 박 노인에게 묵직한 엽전 몇 닢을 쥐여 주며 부드럽게 물었다.

“그 연장장의 공방이 어느 쪽이오?”

“저 냇물 줄기를 따라 반 마장만 내려가시면 물레방아가 크게 도는 낡은 방앗간이 보일 겁니다. ‘소은의 연장 공방’이라는 나무 간판이 걸려 있지요.”

“고맙소, 노인장.”

세종은 뒤돌아서며 최우혁에게 나직이 일렀다.

“가자. 내 귀한 신하를 맞이하러.”


같은 시각, ‘소은의 연장 공방’.

늦가을의 청명한 하늘 아래 물레방아는 한가로이 돌고 냇물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마당 한편에 자리 잡은 소은의 표정은 그리 평온하지 못했다.

며칠 전 느꼈던 등골의 오싹함과 원인 모를 재채기 이후 소은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무런 징조도 없었고 관아의 포졸이 들이닥친 것도 아니었으나 공학자의 직감은 거대한 재앙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장인, 흙손질이 거의 다 끝났습니다.”

마루 아래에서 흙반죽을 개던 설향이 땀을 훔치며 환하게 웃었다.

공방 곁채의 구들방 외벽에는 소은이 이틀에 걸쳐 새로 만든 기괴한 형상의 아궁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일반적인 조선의 아궁이와는 확연히 달랐다. 솥을 거는 자리 아래로 공기가 나선형으로 빨려 들어가도록 유선형의 흡기 통로를 파고 아궁이 문에는 얇은 쇠판으로 만든 이중 공기 조절 덮개를 달았다.

이른바 ‘무연기 회전 온돌 아궁이’였다.

“수고했소, 설향 낭자. 이제 흙이 거의 말랐으니 첫 불을 지펴 봅시다.”

소은이 마른 참나무 장작 두 토막을 아궁이 깊숙이 밀어 넣었다.

설향이 부싯돌을 쳐서 불씨를 짚단에 붙여 아궁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 불꽃이 장작에 옮겨붙자 소은은 아궁이 덮개를 비스듬히 닫고 측면의 회전식 흡기 밸브를 살짝 비틀었다.

화르륵―!

순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보통 아궁이에 불을 처음 지피면 덜 마른 장작과 재 때문에 마당 가득 매캐한 회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소은의 아궁이는 연기를 밖으로 뱉어내기는커녕 회오리바람처럼 공기를 빨아들이며 무서운 기세로 장작을 태우기 시작했다.

“어머나! 연기가 마당으로 전혀 나오지 않아요!”

설향이 탄성을 터뜨렸다.

“이것이 유체역학과 연소 순환의 힘이지요.”

소은이得意로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차가운 공기가 아궁이 하단의 나선형 관을 지나며 뜨겁게 예열된 뒤 연소실로 들어가오. 공기가 회전하면서 불꽃의 온도를 극대화하고 타지 않은 미세한 검은 연기와 그을음까지 모조리 재연소시키는 원리요. 굴뚝 끝을 보시오.”

설향이 고개를 들어 지붕 너머 흙굴뚝을 바라보았다. 굴뚝 끝에서는 아지랑이 같은 투명한 열기만 일렁일 뿐 매캐한 연기는 단 한 점도 피어오르지 않았다.

소은은 곁채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방바닥 장판지 위에 손을 얹자 은은하고 깊은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크으…… 좋다.”

소은은 참지 못하고 방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불을 지핀 지 반각도 지나지 않았는데 구들장 밑을 회전하며 돌아나간 열기가 방바닥 전체를 골고루 데우고 있었다. 밖에서는 찬바람이 불어도 이 온돌방 안에 누워 솜이불을 덮고 곶감이나 까먹으면 그 어떤 겨울 추위도 두렵지 않을 터였다.

“따뜻한 구들에 등을 지지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문명의 최고봉이지.”

소은이 감격에 겨워 중얼거렸다.

“상의원에서 사흘 밤을 새우며 차디찬 마룻바닥에 엎드려 도면을 그리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오. 임금의 야근 명령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소.”

설향이 문간에 서서 어이없다는 듯 생긋 웃었다.

“장인의 손재주는 하늘이 내린 것인데 어찌 이리 게으름을 피우는 데에만 모든 지혜를 쏟아부으십니까.”

“게으름이야말로 문명 발전의 어머니요!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하는 자가 지렛대를 만들고 걸어 다니기 싫은 자가 수레를 발명하는 법이지.”

소은이 낄낄거리며 기지개를 켜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공방 앞마당의 사립문 쪽에서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자갈을 밟는 발소리는 서두르지 않고 묵직했다.

“장인, 손님이 오신 모양입니다. 박 노인 어르신이 낫이라도 벼리러 오셨을까요?”

설향이 몸을 돌려 마당을 내다보았다.

소은은 평상시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마루로 걸어 나왔다. 농부들의 찌그러진 괭이나 무뎌진 칼을 갈아주는 것은 공방의 소소한 일상이었기에 아무런 경계심도 없었다.

그러나 마당으로 들어서는 인영(人影)을 본 순간 소은의 발걸음이 거짓말처럼 우뚝 굳어버렸다.

사립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두 사람이었다. 뒤에 선 사내는 눈빛이 매섭고 손을 도포 안쪽에 찔러 넣고 있는 무관의 형색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수수한 남빛 도포를 입은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찰나 소은의 뇌리 속에서 거대한 벼락이 내리쳤다.

숨이 멎었다.

심장이 덜컥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더니 피가 차갑게 식어 들어가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울렸다.

넓은 이마, 굳건한 턱선, 온화한 듯하면서도 모든 사물의 본질을 단숨에 꿰뚫어 보는 저 서슬 퍼런 안광.

전생의 기억과 조선에서의 기억이 뒤섞여 비명처럼 솟구쳐 올랐다.

‘세…… 세종대왕……?!’

저 얼굴을 잊을 리가 없었다.

상의원 별좌 시절 밤 열두 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에 불쑥 연구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도면을 들이밀며 ‘과인이 새로운 물시계 구조를 생각해 보았는데 이것을 아침 조회 전까지 제도로 옮겨 보라’며 생글생글 웃던 그 악마 같은 직장 상사.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이자 신하들의 영혼까지 탈탈 털어 야근의 기름으로 쓰던 워커홀릭의 화신.

그 국왕 이도가 지금 궁궐 편전이 아니라 충청도 산골 냇가 공방 마당에 버젓이 서 있었다.

설향은 낯선 손님의 범상치 않은 기풍에 저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디서 오신 손님이신지요? 연장을 손보러 오셨습니까?”

세종은 설향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세종의 시선은 마당 한편에서 콸콸 돌아가는 물레방아를 스치고 비탈밭으로 이어지는 대나무 관을 지나 굴뚝에서 연기 한 점 나지 않는 곁채 구들의 회전식 아궁이에 머물렀다. 세종의 입가에 감탄과 경악이 깃든 옅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연기가 밖으로 새지 않는 회전식 아궁이라…… 밖은 스산한데 방안에는 훈기가 가득하구나. 불길의 회전을 이용해 그을음을 태우고 열기를 온돌 바닥에 가두어 두었어. 도면도 없이 뚝딱거려 이런 천하의 기물을 마당에 늘어놓다니.”

세종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마루 위에 굳어 있는 소은을 응시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소은의 다리가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지금 당장 뒷문으로 뛰쳐나가 산속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바닥이 땅에 못 박힌 듯 단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세종이 마당을 가로질러 세 걸음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굶주린 맹수가 눈앞의 사냥감을 바라보듯 세상에서 가장 서늘하고도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사흘 밤을 지새우고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두었다기에 과인이 친히 관직을 추증하고 장례 비용까지 넉넉히 하사했거늘.”

낮게 깔리는 세종의 음성이 공방 마당을 뒤흔들었다.

“이런 산골짜기 냇가에 숨어서 따뜻한 구들에 등을 지지며 낮잠 잘 궁리를 하고 있었구나.”

세종이 눈을 가늘게 뜨며 쐐기를 박았다.

“그리도 낚시가 좋더냐, 한 별좌?”

그 한마디에 소은의 세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은퇴의 꿈이 박살 나는 소리가 귓가를 사납게 짓밟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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