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유일의 24시 마트 영주님

9화: 통행세엔 1+1이 약이다
한낮의 태양이 메마른 바위산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심연의 아가리 앞 야영지는 평소와 달리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던전으로 향하는 모험가들의 발걸음은 뜸했고 AZA 24 매장 앞 공터 주변에는 수군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성벽 경계선을 정찰하고 돌아온 리아가 거칠게 투구를 벗어 던졌다. 그녀의 단정한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도련님, 로델 가문 놈들이 기어이 선을 넘었습니다.”
진우는 카운터 위 먼지를 털어내며 느긋하게 고개를 들었다.
“순찰병 놈들이 다녀가더니 무슨 짓을 벌였길래 그래?”
“영지로 들어오는 유일한 협곡 길목에 불법 검문소를 세웠습니다. 던전 안전 관리와 불법 물품 단속이라는 해괴한 핑계를 대며 통행세를 은화 두 닢씩 뜯어내고 있습니다.”
“은화 두 닢?”
진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은화 두 닢이면 하급 모험가가 하루 종일 던전 주변에서 약초를 캐야 만질 수 있는 돈이었다. 목숨 걸고 던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길목을 틀어쥐고 통행세를 뜯는 것은 명백한 날강도 짓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검문소 징세관 놈들이 모험가들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라트 영지의 잡화점에서 파는 푸른 캔 음료와 주먹밥은 마족의 사술로 만든 저주받은 독약이라면서 말입니다. 마시면 마나가 폭주하거나 몸이 마비되어 죽는다고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독약?”
마침 옆 식사 테이블에서 마른 빵을 씹고 있던 오르딘이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요! 내가 그 푸른 캔 비약을 마시고 말라붙었던 마나 회로를 되살려 던전 늑대 무리를 쓸어버렸는데 무슨 독약이란 말이오!”
바드 역시 억울하다는 듯 방패를 바닥에 쿵 내려찍었다.
“맞소! 어제 내 어깨에 멘 무거운 도마뱀 가죽도 저 점장 양반이 순식간에 도시로 부쳐 주지 않았소? 로델 영주 놈이 배가 아파서 모험가들을 겁주는 게 분명하오!”
하지만 기존 단골들의 외침과 달리 야영지 입구에 도착한 신규 모험가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협곡에서 통행세를 뜯기고 들어온 풋내기 바람 마법사 루카가 불안한 눈빛으로 AZA 24를 쳐다보며 동료들에게 속삭였다.
“저기가 그 소문의 가게인가? 징세관 말이 저기서 파는 푸른 통 물약을 마신 마법사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던데…”
“괜히 은화 두 닢이나 내고 들어왔군. 독약에 당하느니 그냥 다른 사냥터로 갈 걸 그랬어.”
루카의 동료 전사가 입맛을 다시며 발길을 돌리려 했다. 로델 영주의 흑색선전과 억지 통행세가 신규 고객의 유입을 가로막는 단단한 장벽이 된 셈이었다.
리아가 허리춤의 검자루를 꽉 쥐며 이를 갈았다.
“도련님, 제가 지금 당장 말을 타고 가서 그 검문소를 부수겠습니다. 폰 그라트 가문의 영지 진입로를 가로막는 것은 제국 법률상 명백한 영지 침해입니다.”
“가만있어, 리아.”
진우가 피식 웃으며 리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칼 들고 가봤자 저쪽은 우리 영지 경계선 안에서 통행세를 걷었을 뿐이라고 발뺌할 게 뻔해. 관할권 분쟁으로 제국 재판소까지 가면 반년은 걸려. 그사이에 우리 손님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영지는 굶어 죽는다고.”
“그럼 저 날강도 같은 짓을 그냥 보고만 있자는 말씀입니까?”
“장사꾼 싸움은 칼로 하는 게 아니야.”
진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지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할 때도 길 건너 대형 마트가 미끼 상품을 던지거나 악성 경쟁자가 허위 위생 신고를 넣는 짓을 숱하게 겪어보았다. 그런 유치한 수작에 대응하는 법은 이미 뼛속까지 익혀 둔 터였다.
“손님이 발길을 돌리는 이유는 딱 두 가지야. 손해 볼까 봐 두렵거나 의심스러워서. 그럼 그 두 가지를 한 번에 박살 내면 돼.”
진우는 허공에 손을 뻗어 시스템 창을 띄웠다.
어제 편의점 택배 첫 발송과 숙박 운영으로 적립된 포인트가 넉넉하게 쌓여 있었다.
[보유 시스템 포인트: 480P]
[보급품 재주문 목록을 호출합니다.]
- 핫나인 (1박스 / 24캔): 100P
진우는 망설임 없이 300P를 소모해 핫나인 3박스를 긴급 재주문했다.
[띠링!]
[핫나인 3박스(총 72캔)가 매장 창고로 즉시 입고됩니다.]
[남은 포인트: 180P]
[프로모션 지원 시스템이 개방됩니다: '1+1 홍보 입간판' 및 '무료 시음용 미니 종이컵(100개)'이 지급됩니다.]
매장 카운터 안쪽에 묵직한 핫나인 박스 세 개와 깔끔한 종이컵 묶음 그리고 큼직한 형광색 입간판이 나타났다.
진우는 형광색 펜을 집어 들고 입간판에 큼직한 글씨를 써 내려갔다.
[긴급 특별 프로모션: 로델 검문소 통행세 돌파 기념 폭탄 세일!]1. 핫나인 1+1 타임 세일 (은화 5닢에 2캔 증정 / 1인 1세트 한정)2. 의심 많은 분들을 위한 핫나인 즉석 무료 시음회 진행 중!※ 마나 과열 방지를 위해 하루 1인 1세트 구매 제한을 엄격히 준수합니다.
리아가 입간판에 적힌 글씨를 읽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련님! 1+1이라니요? 은화 다섯 닢에 두 캔을 주면 한 캔을 그냥 거저 주겠다는 뜻입니까? 이건 완전 밑지는 장사 아닙니까!”
“리아, 계산을 해 봐.”
진우가 손가락을 꼽으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저 협곡에서 로델 놈들이 통행세를 얼마 뜯는다고?”
“은화 두 닢입니다.”
“핫나인 한 캔 정가가 얼마지?”
“은화 다섯 닢 또는 하급 마석 하나입니다.”
“그래. 모험가들이 협곡에서 은화 두 닢을 뜯기고 들어와도 여기서 핫나인 한 캔을 사면 은화 다섯 닢짜리 한 캔을 공짜로 더 받아. 그럼 결과적으로 모험가는 은화 세 닢을 번 셈이 되지?”
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통행세로 잃은 돈보다 여기서 얻는 이득이 더 커집니다!”
“그렇지. 로델 놈이 통행세 은화 두 닢으로 벽을 쳤다면 우리는 은화 다섯 닢짜리 혜택으로 그 벽을 부숴버리는 거야. 게다가 무료 시음으로 한 모금 맛보게 해주면 독약이라는 헛소문은 순식간에 박살 난다.”
진우는 매장 앞 테이블을 공터 한가운데로 옮겼다.
그 위에 시원하게 살얼음이 낀 핫나인 한 캔을 따서 앙증맞은 하얀 종이컵에 3분의 1씩 따라 채웠다. 청량하고 달콤한 탄산 향이 공터 전체로 퍼져나갔다.
“자! 다들 주목! AZA 24 긴급 무료 시음회 시작합니다! 돈 안 받습니다! 딱 한 모금만 마셔보고 판단하십시오!”
진우의 카랑카랑한 외침에 야영지에 모여 있던 모험가들이 웅성거리며 다가왔다.
하지만 독약 루머 탓인지 다들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그때 야영지 구석에 서 있던 험상궂은 사내 하나가 비아냥거리며 끼어들었다. 로델 가문에서 돈을 받고 헛소문을 퍼뜨리던 바람잡이였다.
“공짜라고 넙죽 마셨다간 목숨이 날아갈 거요! 저 수상한 파란 통에 마족의 피라도 섞였을지 누가 안단 말이오?”
사내의 선동에 몇몇 모험가가 뒷걸음질을 쳤다.
그 순간 오르딘이 성큼 걸어 나와 테이블 위의 종이컵을 낚아챘다.
“입만 산 놈이 헛소리를 지껄이는군! 내가 먼저 마시겠다!”
오르딘은 망설임 없이 종이컵을 입에 털어 넣었다.
짜릿한 탄산과 함께 푸른 마나의 파동이 오르딘의 전신을 감쌌다. 전날 밤샘 연구로 퀭했던 그의 눈빛에 번쩍 생기가 돌더니 지팡이 끝에서 푸른 불꽃이 파지직 튀었다.
“크아아! 이 서늘하고 달콤한 청량감! 온몸의 마나 회로가 깨어나는 이 감각! 이게 독약이면 제국의 모든 성수는 구정물이란 말이냐!”
오르딘의 과장된 외침에 주저하던 풋내기 마법사 루카가 침을 꼴깍 삼켰다.
루카는 협곡을 넘어오느라 지친 데다 마나가 바닥나 손끝이 떨리던 상태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시음대 앞으로 다가왔다.
“저… 저도 한 모금 마셔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편하게 들이켜.”
진우가 미소를 지으며 종이컵 하나를 건넸다.
루카는 조심스럽게 컵을 받아 입술을 축였다.
‘톡 쏘는 맛… 달콤하다?’
탄산이 혀를 자극하는 순간 얼어붙었던 마나 통로가 순식간에 요동치기 시작했다. 피로로 무겁게 가라앉았던 머리가 번개가 친 것처럼 맑아졌다.
“어… 어어? 마나가 돌아온다! 손끝에 바람 마나가 모이고 있어!”
루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허공에 손을 휘두르자 상쾌한 회오리바람이 손바닥 위에서 맴돌았다.
“진짜다! 독약은커녕 고위 연금술사가 만든 마나 농축액보다 훨씬 반응이 빨라!”
루카의 외침에 공터가 발칵 뒤집혔다.
“나도 마셔보겠소!”
“나도 한 컵 줘!”
모험가들이 벌떼처럼 시음대로 몰려들었다. 종이컵을 받아 마신 모험가들의 입에서 감탄과 환호성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선동을 시도하던 로델의 사내는 사색이 되어 슬금슬금 뒤로 빠져나가려 했다.
리아가 번개처럼 검집을 뻗어 사내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딜 도망치려 하느냐. 폰 그라트 영지 안에서 허위 사실을 유포해 질서를 어지럽힌 죄는 가볍지 않다.”
“히익! 살려주시오! 난 그저 검문소 병사들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오!”
사내가 바닥에 엎드려 싹싹 빌자 모험가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로델 영주 놈의 개였군그래!”
“검문소에서 통행세 뜯으려고 사기를 친 거였어!”
진우는 카운터 뒤에 서서 손뼉을 짝짝 쳤다.
“자자, 진정들 하시고! 무료 시음은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로델 검문소 통행세 돌파 기념으로 핫나인 1+1 행사를 진행합니다! 은화 다섯 닢에 두 캔! 딱 오늘 하루 선착순 36세트 한정입니다!”
진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험가들이 주머니에서 은화를 꺼내 흔들었다.
“내가 먼저요! 은화 다섯 닢 여기 있소!”
“두 캔 주시오! 아니, 네 캔은 안 되오?”
“규칙은 규칙이야! 1인 1세트 한정! 마나 과열되면 던전에서 큰일 나니까 욕심부리지 마!”
진우와 리아의 손이 쉴 틈 없이 움직였다.
리아가 은화를 받아 장부에 기록하고 진우가 차가운 핫나인 두 캔을 봉투에 담아 건넸다. 캔을 받아 든 모험가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걸렸다.
“통행세 은화 두 닢을 뜯겨서 피눈물이 났는데 여기서 은화 다섯 닢짜리 캔을 하나 더 받았으니 세 닢이나 남는 장사잖아!”
“야! 너 협곡 밖에 있는 애들한테 빨리 연락해! 로델 놈 검문소에 은화 두 닢 던져주고 여기로 뛰어오라고 해!”
“1+1 끝나기 전에 빨리 오라고 소리쳐라!”
모험가들이 흥분하여 협곡 쪽으로 전령을 보내기 시작했다.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협곡 검문소에 서 있던 로델 가문의 병사들은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통행세 은화 두 닢에 분통을 터뜨리며 돌아가던 모험가들이 갑자기 눈에 불을 켜고 협곡을 향해 우르르 달려오고 있었다.
“어, 어이! 통행세는 은화 두 닢이다!”
징세관이 겁을 먹고 외치자 맨 앞에 선 모험가가 은화 두 닢을 징세관 얼굴 앞으로 툭 던졌다.
“옛다, 통행세 은화 두 닢! 잔돈 필요 없으니까 빨리 비켜라! 1+1 세트 다 팔리기 전에 가야 한다!”
“나도 은화 두 닢! 길 막지 말고 빨리 문 열어!”
모험가들은 검문소를 비웃듯 은화를 던져두고 그라트 영지를 향해 맹렬하게 질주했다. 통행세를 뜯어 발길을 막으려던 로델의 검문소는 오히려 모험가들의 통과 속도를 늦추는 귀찮은 장애물 취급을 받을 뿐이었다.
정오가 지나갈 무렵 AZA 24 앞에 준비되었던 핫나인 72캔은 단 세 캔만을 남기고 전량 완판되었다.
카운터 상자 안에는 짤랑거리는 은화가 가득 찼고 진우의 시야에 황금빛 시스템 알림이 떠올랐다.
[띠링!]
[상권 방어 및 프로모션 퀘스트 성공!]
[악의적 통상 방해를 돌파하고 단시간 내 대규모 고객을 유치했습니다.]
[핫나인 36세트(72캔) 판매 완료 / 수익: 은화 180닢]
[입소문 포인트 폭발적 상승: '영지 인지도 D단계' 도달]
[시스템 포인트 +300P 적립]
리아는 카운터에 산더미처럼 쌓인 은화를 바라보며 감탄 어린 숨을 내쉬었다.
“도련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나를 거저 주는 장사로 적자가 나기는커녕 로델 영주의 방해를 완전히 무력화하고 은화 백팔십 닢을 벌어들였습니다.”
“장사는 단순히 물건을 넘기는 게 아니야. 손님의 마음을 얻고 판을 주도하는 쪽이 이기는 거지.”
진우가 시원한 핫나인 마지막 캔을 따서 리아에게 건네며 씩 웃었다.
그 시각 협곡 너머 언덕길 위에서는 고급스러운 제국 황실 문양이 은밀하게 새겨진 흑단 마차 한 대가 멈춰 서 있었다.
마차 창문을 열고 심연의 아가리 앞 공터를 망원경으로 바라보던 푸른 머리칼의 귀족 여성이 흥미진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통행세 장벽을 파격적인 증정 행사와 시음회로 돌파했다라… 제국의 노련한 상단 대행수도 떠올리기 힘든 발상이군요.”
그녀의 손가락이 우아하게 턱을 매만졌다.
“카일 폰 그라트… 몰락한 가문의 서자라고 들었는데 아주 재미있는 자가 나타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