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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 주방장의 은밀한 무공4화

객잔 주방장의 은밀한 무공

객잔 주방장의 은밀한 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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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향으로 푼 오해

바람 한 점 없는 야심한 밤이었다.

진도겸은 주방 선반에 놓인 청주 호리병을 들고 코끝을 가까이 가져갔다. 맑고 차분한 쌀 향기 이면에 숨은 희미한 쓴내가 다시금 비강을 자극했다.

단순히 술이 쉬거나 누룩이 잘못 뜬 냄새가 아니었다. 거친 황야의 바위틈에서 자라나 바싹 말린 야생 약초 특유의 비릿하고 매캐한 잔향이었다.

'취미초(醉迷草).'

도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북서 관문 너머 메마른 골짜기에서 주로 자생하는 독초의 일종이었다. 치명적인 맹독은 아니었으나 술이나 뜨거운 찻물에 녹아들면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고 간담의 화기를 급격히 부추기는 성질이 있었다.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고 사소한 의심에도 불같이 날뛰게 만드는 미약이었다. 뒷골목의 잡배들이 투전판에서 판돈을 가로채거나 손님들 사이에 칼부림을 일으켜 난장판을 만든 뒤 소지품을 털 때 즐겨 쓰는 비열한 수법이었다.

바스락.

주방 뒤뜰 창문 너머에서 메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도겸은 호리병을 내려놓고 소리 없이 뒤뜰 문을 열었다. 서늘한 가을밤 공기가 옷자락을 파고들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뒷마당 구석 장작 더미 곁에 마루가 잔뜩 웅크린 채 서 있었다. 아이는 도겸이 다가오는 기척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도, 도겸 아저씨!"

마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마루야, 무엇을 보고 있었느냐?"

도겸의 나지막하고 차분한 음성에 마루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마당 담장 쪽을 가리켰다.

"아까 낮에 뒷골목을 서성이던 낯선 아저씨 중 하나가… 방금 담장을 훌쩍 넘어왔어요. 그러더니 주방 뒤편 술 창고 쪽으로 살금살금 기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마침 장작을 챙기러 나왔다가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서 장작 한 토막을 와르르 떨어뜨렸어요. 그 소리에 놀랐는지 담장을 다시 타넘고 어둠 속으로 도망쳤어요."

마루의 두 손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도겸은 마루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진정시킨 뒤 처마 밑에 자리한 술 창고로 걸음을 옮겼다. 서늘한 바람이 드나드는 통풍구 곁에 객잔의 손님상에 오를 커다란 청주 독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가장 바깥쪽에 놓인 옹기독을 살피던 도겸의 시선이 멈추었다.

독 주둥이를 봉하고 있던 붉은 노끈과 기름종이가 거칠게 찢겨 있었다. 뚜껑을 살며시 들어 올리자 매캐하고 알싸한 약초 향이 코를 찔렀다.

도겸이 품에서 부싯돌을 꺼내 작은 등잔에 불을 붙였다. 등불을 술독 안으로 비추어 보자 투명한 청주 표면 위로 미세한 회갈색 가루가 기름막처럼 둥둥 떠 있었다.

'가루가 가라앉지 않고 표면에만 머물러 있다.'

취미초는 가루를 내어도 기름기가 남아 술 표면에 한동안 뜨는 성질이 있었다. 침입자가 독 안에 약초를 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하지만 오늘 밤 2층 별실과 1층 홀로 나간 주안상 청주는 바로 이 독의 윗술을 국자로 떠 담아낸 것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우당탕탕!

객잔 1층 홀 쪽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굉음과 함께 날카로운 비명이 밤의 적막을 찢었다.

"이 도적놈들! 감히 내 술에 수작을 부려?"

벼락같이 내지르는 고함에 객잔의 들보가 덜컹거렸다.

도겸은 즉시 등불을 끄고 주방을 가로질러 홀 쪽으로 쇄도했다.

홀 안은 이미 수라장이었다.

가운데 놓여 있던 단단한 박달나무 탁자가 세로로 두 동강 난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깨진 사기그릇과 술병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있었고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던 길손 서넛이 겁에 질려 벽 구석으로 물러서 있었다.

카운터 앞에서는 서연화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내저으며 소리치고 있었다.

"손님, 진정하세요! 칼을 거두세요! 우리 객잔은 손님을 해치는 흑점이 아닙니다!"

"닥쳐라! 내 목구멍이 타는 듯 마르고 아랫배의 내력이 뒤틀리는데 발뺌을 할 셈이냐!"

살기등등하게 검을 꼬나쥔 사내의 전신에서 서슬 퍼런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검은 무복을 입은 다부진 체구의 사내였다. 북서 관로를 오가며 정의로운 칼잡이로 이름난 유랑 검객 조천우였다.

조천우의 눈동자는 붉은 핏발로 가득 차 있었고 이마에는 푸른 힘줄이 흉측하게 돋아나 있었다. 거친 호흡을 몰아쉴 때마다 그의 입술에서 허연 김이 뿜어져 나왔다.

취미초의 약효가 극에 달해 체내의 기혈을 마구잡이로 뒤흔들고 있는 상태였다. 본래 심화(心火)가 성한 체질의 무인이었기에 억눌려 있던 내력이 약기운에 반응하여 폭주 직전에 이른 것이었다.

"길손의 짐을 털려고 술에 몽한약을 타는 파렴치한 것들! 오늘 내 손으로 이 굴혈을 쓸어버리겠다!"

조천우가 포효하며 칼을 비스듬히 쳐올렸다.

시퍼런 칼날이 허공을 가르며 곧장 서연화의 어깨를 베어 들어갔다. 연화는 눈앞으로 쇄도하는 차가운 검날에 숨이 턱 막힌 채 굳어버렸다.

스악!

바로 그 찰나였다.

주방 문을 박차고 나온 도겸이 번개처럼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도겸의 왼손에는 두터운 나무 쟁반이 들려 있었고 오른손에는 무쇠 국자가 쥐여 있었다.

'식도팔결 제1결, 칼끝듣기.'

도겸의 귀가 허공을 찢는 조천우의 숨소리와 칼날의 떨림을 한 올의 오차도 없이 포착해 냈다. 조천우의 기혈은 이미 가슴팍 전중혈(膻中穴)로 쏠려 호흡의 균형이 무너져 있었다.

챙!

도겸은 나무 쟁반의 모서리를 절묘한 각도로 비틀어 조천우의 칼날 옆면을 튕겨냈다.

맹렬하던 검격의 궤적이 순식간에 빗나가며 허공을 갈랐다. 칼끝이 뒤편 나무 기둥을 깊숙이 파고들며 둔탁한 파열음을 냈다.

"네놈은 또 뭐냐!"

조천우가 광기 어린 눈으로 도겸을 노려보며 박힌 칼을 거칠게 비틀어 빼냈다. 칼날이 도겸의 목덜미를 베기 위해 수평으로 맹렬하게 횡격해 왔다.

도겸은 반 보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조천우의 품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도겸의 오른손에 쥐인 무쇠 국자가 유려한 호를 그리며 뻗어나갔다. 국자의 둥근 등이 쇄도하는 검신의 허리를 미끄러지듯 감싸 안았다.

찌르르.

검에 실려 있던 묵직한 내력이 국자의 둥근 곡면을 타고 도겸의 어깨와 허리를 거쳐 바닥으로 스르르 흘러내렸다. 칼끝에 실린 힘을 온전히 받아내지 않고 흘려보내는 주방의 국자질이었다.

이어 도겸의 국자 자루 끝이 조천우의 오른쪽 손목 안쪽 내관혈(內關穴)을 톡 쳤다.

"크윽!"

내관혈을 찌르는 찌릿한 충격에 조천우의 손가락 마디가 저절로 풀려나갔다.

팅!

조천우의 손에서 벗어난 강철검이 바닥 위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도겸은 조천우가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그의 가슴팍 아래 기문혈(期門穴)을 가볍게 짚어 끓어오르는 기운의 솟구침을 일시적으로 눌렀다.

"헉… 허억…"

조천우는 칼을 놓친 채 비틀거리다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다 못해 거무튀튀한 잿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슴을 쥐어뜯는 그의 손톱 사이로 피가 배어 나왔다.

"가슴이… 불덩이를 삼킨 것 같다… 머리가 깨질 듯이…"

조천우의 입가에서 거품 섞인 핏물이 흘러내렸다. 약기운과 폭주한 내력이 뒤엉켜 주화입마의 문턱에 다다른 것이었다.

"도겸 씨! 손님이 피를 토해요! 어쩌면 좋아요!"

연화가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벽 쪽에 웅크리고 있던 손님들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흑점이었나 봐. 술에 독을 탔어!"

"어서 관아에 알려야 해! 도망치자!"

홀 안이 다시 공포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도겸은 흔들림 없는 음성으로 마루를 불렀다.

"마루야, 주방에 가서 굵은 소금을 듬뿍 탄 미온수를 큰 사발로 가져와라."

"예, 예! 금방 가요!"

마루가 주방으로 번개같이 뛰어갔다.

도겸은 조천우의 등 뒤에 앉아 그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손님, 숨을 내쉬십시오. 억지로 내력을 끌어올리면 경락이 터집니다."

곧이어 마루가 소금물이 담긴 사발을 들고 달려왔다. 도겸은 조천우의 턱을 젖히고 소금물을 목구멍 안으로 단숨에 쏟아부었다.

이어 조천우의 등 뒤 척추 사이를 손바닥으로 묵직하게 쳤다.

우웨엑!

조천우가 바닥으로 몸을 꺾으며 위장에 차 있던 술과 찌꺼기를 거칠게 게워냈다.

시큼한 위액 냄새 사이로 씁쓸하고 비릿한 풀 냄새가 진동했다. 마신 지 얼마 되지 않은 독주가 쏟아져 나오자 조천우의 가쁜 숨소리가 한풀 꺾였다.

하지만 몸 안에 이미 흡수된 열기와 약효는 여전히 그의 맥박을 미친 듯이 뛰게 만들고 있었다. 체내의 진액이 말라 입술이 부르트고 있었다.

독을 억지로 뽑아내는 환약 따위는 없었다. 필요한 것은 들끓는 화기를 가라앉히고 메마른 진액을 채워 기혈의 순환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음식이었다.

"객주님, 손님이 다시 칼을 쥐지 못하도록 지켜봐 주십시오. 주방을 다녀오겠습니다."

도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화로 앞마당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장작불이 붉게 일렁이고 있었다.

도겸은 창고 선반에서 팔뚝만 한 가을 칡뿌리(갈근) 두 토막을 꺼내 도마 위에 올렸다.

탕! 탕! 탕!

널찍한 식칼의 등면으로 갈근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단단한 껍질이 깨지며 서늘한 기운을 머금은 하얀 속살과 섬유질이 올올이 풀려나왔다.

이어 물기 가득한 무 한 토막을 강판 위에 얹고 거칠게 밀어냈다.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맑고 알싸한 무즙이 사발 가득 고였다.

여기에 가을바람을 맞고 자란 단단한 배 반 쪽을 껍질째 얇게 저미고 생강 한 톨을 으깨어 넣었다.

'식도팔결 제2결, 화후조절.'

도겸은 작은 무쇠 냄비에 샘물을 붓고 으깬 갈근과 배를 넣었다.

그리고 화로의 잿더미를 헤쳐 불길을 은은한 문화(文火)로 다스렸다.

센 불로 끓이면 칡뿌리의 맑은 기운이 탁해지고 배의 수분이 증발해 버린다. 재료가 품은 본래의 서늘한 기운을 파괴하지 않고 맑게 우려내기 위한 정교한 불 조절이었다.

잠시 후 냄비 뚜껑 틈으로 구수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도겸은 끓어오른 맑은 즙을 고운 삼베에 걸러 찌꺼기를 걸러냈다.

그 맑은 탕에 차가운 무즙과 으깬 생강 즙을 섞고 야생 밤꿀 한 숟가락과 식초 다섯 방울을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완성된 한 그릇.

'갈근해정탕(葛根解酲湯).'

갈근의 서늘한 성질이 간과 위의 열을 내리고 무즙의 알싸함이 뭉친 기운을 흩어내며 배와 꿀이 말라붙은 진액을 적셔준다. 마지막으로 식초의 산미가 제멋대로 흩어지는 기혈을 안으로 차분히 수렴시키는 원리였다.

도겸은 김이 가볍게 피어오르는 사기그릇을 들고 홀로 돌아왔다.

조천우는 여전히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며 바닥을 짚고 헐떡이고 있었다.

"손님, 이것을 천천히 들이켜십시오."

도겸은 조천우의 고개를 받쳐 들고 그릇을 입술에 대어 주었다.

달콤하면서도 시원하고 톡 쏘는 향기가 조천우의 메마른 콧속으로 밀려들었다.

조천우는 갈증에 쫓기듯 그릇에 입술을 묻고 국물을 삼키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탕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조천우의 온몸이 잘게 떨렸다.

불길이 치솟던 식도와 위장에 얼음장처럼 맑고 시원한 기운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무즙의 칼칼함이 가슴에 맺혀 있던 답답한 울화를 시원하게 뚫어주었고 은은한 단맛이 바짝 타들어 가던 목구멍을 부드럽게 감쌌다.

"하아아…"

조천우의 입에서 길고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불타는 듯 붉게 물들었던 그의 얼굴에서 흉흉한 붉은 기운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의 전신에서 차가운 독기와 땀방울이 배어 나오며 맥박이 안정을 되찾았다.

조천우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의 눈동자에는 조금 전까지 번뜩이던 광기 어린 핏발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맑고 깊은 본래의 총기가 돌아와 있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

조천우는 박살 난 탁자와 바닥에 뒹구는 자신의 칼을 내려다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서연화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겸의 곁으로 다가왔다.

"손님께서 갑자기 술에 몽한약이 들었다며 칼을 뽑아 우리를 베려 하셨어요."

조천우의 얼굴이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하얗게 질렸다.

"내… 내가 어찌 이런 망발을… 갑자기 심장이 터질 듯 뛰고 눈앞이 붉게 물들며 누군가 나를 죽이려 한다는 공포에 사로잡혔소. 무고한 사람들을 해칠 뻔하다니 내 무슨 낯짝으로 칼을 차고 강호를 돌아다니겠소."

조천우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때 뒤편에서 웅성거리던 다른 손님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도 이상하잖소! 이 양반이 멀쩡하다가 객잔 술을 마시고 저 사달이 난 것인데 우리도 아까 저 술독의 술을 마셨단 말이오! 객잔 술에 진짜 문제가 있는 것 아니오?"

손님들의 불안한 시선이 다시금 서연화에게 쏠렸다. 연화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소문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한 번 흑점으로 낙인찍히면 북서 관문의 상단과 표국은 다시는 청운객잔의 문턱을 넘지 않을 터였다.

도겸이 조용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사기종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객잔의 술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도겸은 종지를 손님들 앞에 내려놓았다.

종지 안에는 대형 술독 표면에서 걷어낸 미세한 회갈색 가루와 창고 바닥에서 주워 올린 마른 풀잎 조각이 담겨 있었다.

"이것은 북서 황야의 바위틈에서 자라는 취미초입니다. 치명적인 맹독은 아니지만 술에 타 마시면 피를 끓게 만들어 이성을 흐리고 극심한 착란을 일으킵니다."

도겸은 조천우와 손님들을 둘러보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취미초 가루는 기름기를 머금고 있어 술에 곧바로 녹지 않고 표면에 뜹니다. 방금 전 낯선 괴한이 뒷마당 담장을 넘어와 창고에 있던 청주 독의 뚜껑을 강제로 뜯고 표면에 이 가루를 뿌린 뒤 달아났습니다. 조 대협께서 마신 술은 바로 그 표면의 가루가 섞여 들어간 첫 잔이었습니다."

도겸은 주방 안쪽 밀봉된 작은 항아리에서 퍼 올린 맑은 청주를 사기잔에 따라 손님들에게 건넸다.

"이것이 본래 독 아래쪽에 담겨 있던 청운객잔의 진짜 술입니다.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잔을 받아 든 손님들이 조심스럽게 향을 맡고 술을 한 모금 넘겼다.

은은하고 구수한 쌀 향기만이 맴돌 뿐 매캐하고 씁쓸한 잡내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이네. 맑고 향기롭기만 하구먼."

"누군가 밖에서 일부러 객잔을 잡으려고 독초를 뿌리고 튄 게로군!"

손님들의 의구심이 순식간에 풀려나갔다.

조천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모아 쥐고 도겸과 서연화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내 경솔함과 미숙함으로 인해 하마터면 은혜로운 객잔을 피로 물들일 뻔했소. 주방장님의 귀신같은 안목과 이 맑은 탕이 아니었다면 내 오늘 밤 주화입마로 폐인이 되었을 것이오."

조천우는 허리춤에서 묵직한 은자 주머니를 꺼내 연화의 손에 쥐여 주었다.

"부서진 집기를 변상하는 것으로는 내 부끄러움을 다 씻지 못하오. 내 이름은 조천우요. 북서 관로를 오가며 무인들의 의뢰를 돕는 사람이오. 앞으로 이 길목을 지날 때마다 내 반드시 청운객잔에 들러 주방장님의 음식을 청할 것이오. 또한 강호의 잡배들이 이 객잔을 모함하거나 해치려 든다면 내 칼이 결코 그자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오!"

진심에서 우러나온 장부의 맹세였다.

연화는 은자 주머니를 쥐며 비로소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조 대협. 언제든 오시면 따뜻한 밥상을 차려 드리겠습니다."

객잔의 첫 단골이자 북서 관로에서 명망 높은 의협 무인이 청운객잔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준 순간이었다.


새벽안개가 객잔 마당을 하얗게 뒤덮을 무렵 홀의 소동은 말끔히 수습되었다. 손님들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도겸은 빗자루를 들고 바닥에 흩어진 나뭇조각을 쓸어 담고 있는 마루에게 다가갔다.

"마루야."

도겸의 부름에 마루가 흠칫 놀라며 빗자루를 멈추었다.

"예, 예? 아저씨…"

도겸은 아이의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까 그 괴한이 달아나면서 뒷마당 장작 더미 쪽에 무언가 남겨두지 않았더냐?"

도겸의 나지막한 질문에 마루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아이의 시선이 주방 문밖 짙은 어둠 속에 잠긴 뒷마당 장작 더미 쪽으로 파르르 흔들리며 향했다.

마루의 가슴속에 묻어둔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이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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