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전용 수면실의 꿈 기록관

3화: 꿈을 꾸지 않은 증언자
이준혁은 꿈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병동 야간 간호사였고, 7년 전 검은문 던전 구조 호출이 왔던 밤에도 병원에서 근무했다. 당시 이송 기록에는 이름 없는 생존자 한 명이 도착했다고 적혀 있었다. 준혁은 그 호출을 기억했지만, 자신이 꿈을 꾼 건 아니었다. 지아는 그의 기억을 환자 꿈과 같은 칸에 넣지 않았다.
“누가 왔는지 기억하십니까?” 문지아가 물었다.
“얼굴은요. 피가 말라붙은 장갑과 손전등이 기억나요.”
“이름은요?”
“못 들었습니다. 의식이 없었어요.”
준혁은 호출 이후 자신이 작성한 간호 기록을 찾았다. 스캔된 파일의 이름란은 비어 있었고, 입원번호도 절반이 지워져 있었다. 이송 시각은 새벽 3시 17분. 병원 도착 기록과 야간 출입 로그는 남아 있었지만, 환자가 어느 병동으로 옮겨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날 우리가 누군가를 숨겼다는 뜻일까요?” 지아가 물었다.
“그럴 수 있지만, 기록이 옮겨지며 누락됐을 수도 있습니다. 결론은 못 내리겠어요.”
준혁은 당시 자신의 근무 수첩을 가져왔다. 그는 이름 없는 환자를 ‘검은 장갑’이라고 적었다. 그 표현은 환자에게 모욕이 될 수 있어 공식 기록에 옮기지 않기로 했다. 지아는 수첩을 촬영하지 않고, 준혁이 직접 그날을 진술하고 싶을 때만 받아 적었다.
“환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 안 납니까?”
“한 번 눈을 떴어요. 복도는 닫혔다고 말한 것 같습니다.”
“꿈 이야기였을까요?”
“그땐 꿈인지 몰랐어요. 던전에서 탈출했다고 생각했죠.”
준혁은 기억을 더듬다 잠시 숨을 멈췄다. 당시 그는 밤샘 근무를 하며 여러 환자를 돌봤다. 이름 없는 환자는 잠에서 깨어난 뒤 물을 찾았고, 준혁은 물을 건넸다. 환자는 손목에 차고 있던 붉은 실을 끊어 달라고 부탁했다. 준혁은 끊지 않았다. 환자가 다시 잠들자 실은 손목에서 사라졌다.
“그게 누구의 물건이었는지 알아보셨습니까?”
“아니요. 그때는 환자가 누군지도 확인할 수 없었어요.”
지아는 의료 기록을 검색하려면 병원 개인정보 담당자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준혁은 자신의 이름으로 기록 열람을 신청하겠다고 했다. 환자 식별 정보를 찾는 게 아니라, 구조 이송 절차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기억이 맞지 않더라도 자신의 진술을 수정할 수 있게 사본을 보관해 달라고 했다.
병동에서는 세 환자에게 과거 기록 조사를 공유할지 다시 물었다. 박태원은 자기 이름으로 신청한 자료 결과만 알고 싶다고 했고, 다른 환자의 기록과 비교하는 건 원하지 않았다. 윤세라는 꿈 세부를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과거 레이드 지도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세 번째 환자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지아는 그 결정을 그대로 남겼다.
“그 사람에게서도 단서를 찾을 수 있었을지 모르잖아요.” 도윤이 말했다.
“그분이 말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물론입니다.” 도윤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빈자리를 우리가 단서라고 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네요.”
지아는 병원 개인정보 담당자에게 기록 열람을 신청했다. 신청서에는 검은문 던전 구조 호출 시각, 이송 차량 기록, 당시 병동 이동 로그만 적었다. 환자 꿈이나 잠꼬대는 넣지 않았다. 담당자는 자료가 오래되어 원본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고 답했다.
태원은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꿈속 손전등을 그렸다. 그는 손전등을 든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적었다. 빛이 벽의 왼쪽 아래를 비췄고, 그 아래에 낮은 문이 있었다고 했다. 문 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태원은 문을 열지 않았다.
“그 문을 안 연 게 후회됩니까?” 지아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꿈에서는 내가 열지 않았고, 실제로도 열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태원은 종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지아는 그가 기억을 꾸며 내지 않도록, 꿈과 실제 사건의 선을 여러 번 확인했다. 태원은 지금은 레이드 동료에게 연락하지 않겠다고 다시 말했다. 그 선택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세라는 과거 공략 지도를 보고 벽의 낮은 문과 비슷한 표식을 찾았다. 지도에 표시된 건 폐쇄용 수문이었다. 레이드가 끝난 뒤 물이 차오르지 않도록 닫아 둔 시설이었다. 세라는 그 구조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꿈인지 실제로 본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당신이 기억하는 방식대로 남기겠습니다. 실제로 본 적이 있다고 적지는 않을게요.”
“그게 좋아요.”
지아는 지도를 그녀에게 돌려줬다. 세라는 지도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꿈의 세부를 병원 밖으로 가져가지 않기로 한 것은 그녀의 선택이었다.
저녁 무렵, 개인정보 담당자에게 회신이 왔다. 이송 기록의 일부가 보관소 이전 과정에서 누락됐지만, 환자 번호가 연결된 응급 처치 비용 청구는 남아 있었다. 병원 도착 직후 무릎에 외상이 있었고, 손전등 장비에 균열이 있었다. 이름과 퇴원 장소는 없었다.
태원은 그 기록을 보자 손을 움켜쥐었다. 손전등 그림 속 낮은 문 아래에는 세로로 금이 그어져 있었다. 응급 기록에는 오른쪽 손등에 작은 절상이 있었다고 적혔다.
“저도 오른손에 상처가 있었어요.” 태원이 말했다. “그때 기억은 없지만, 흉터는 남아 있습니다.”
그는 소매를 걷어 오래된 흉터를 보여 줬다. 흉터 모양은 일치할 수 있었지만, 지아는 그 기록만으로 이름 없는 생존자가 태원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응급 기록에는 동일한 부상이 흔했고, 손전등 장비도 여러 명이 사용했다.
“제가 그 사람이면 어떡하죠?”
“그걸 확인하고 싶다면, 다음 단계에서 당신이 동의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볼 수 있어요. 오늘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태원은 손을 내렸다. “이름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도 기억해야 할 것 같아요.”
“그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눌지는 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준혁은 오래된 수첩을 다시 살폈다. 간호 기록에는 ‘환자 손전등을 돌려줌’이라는 짧은 메모가 있었다. 장비 보관 목록에는 손전등이 한 개만 반납됐고, 번호는 17이었다. 검은문 던전 공략 기록에서 17번 장비는 정찰조가 사용했다.
그 사실을 들은 세라는 한동안 지도를 바라보다가, 지아에게 자기 기록과 연결하지 말라고 했다. 태원과 같은 정찰조인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지금은 병원에서 쉬고 싶다고 했다.
“알겠습니다. 조사 기록은 별도로 보관하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말할게요.”
지아는 그녀가 돌아간 뒤 기록 파일을 나누었다. 환자들의 꿈은 각자 동의한 범위에서만 남았다. 준혁의 근무 진술과 병원 이송 기록은 별도의 조사 자료였다. 서로 연결될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하나의 사건으로 묶을 근거가 없었다.
병원 자료에서 구조 호출이 들어온 건 새벽 2시 54분이었다. 기록에 남은 이름 없는 환자는 3시 17분에 도착했다. 그 사이 23분 동안 구조대는 검은문 던전의 폐쇄 구역을 오갔다. 호출 기록에는 현장 음성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지만, 재생 권한은 병원 밖 기록 보관실에 있었다.
도윤은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병원 안전 담당자에게 연락하겠다고 했다. 지아는 환자 기록과 무관한 절차인지 먼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꿈이 사실을 알려 준 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실제 구조 기록은 별도로 확인할 수 있어요.”
그날 밤, 준혁은 수면실 당직을 자청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환자에게 다시 묻지는 않았다. 지아는 그의 선택을 기록했다.
다음날 아침, 보관실에서 도착한 음성 파일에는 구조대원의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복도 끝에 한 명 더 있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 말고, 길을 기억하는 사람을 데려오세요.”
녹음에는 그 뒤로 잡음이 이어졌다. 담당자는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고, 구조대는 복도 끝으로 이동하라는 답을 남겼다. 음성의 주인이 준혁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파일을 한 번 더 들은 뒤, 자기 목소리와 비슷하다고 했지만 확신하지 않았다.
“그날 저는 환자를 데려왔던 기억만 있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게 길을 알려 줬다는 건 떠오르지 않습니다.”
지아는 그 말도 별도 진술에 적었다. 그가 잊었는지,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했는지 판단하지 않았다. 기록이 확인될 때까지 그의 기억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았다.
도윤은 구조 호출 파일의 원본을 병원 기록 보관실에서 안전하게 보존하겠다고 했다. 음성을 공개하거나 꿈 기록과 함께 연구 자료로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수첩을 지아에게 넘기지는 않았다. 아직 자기 손에 두고 싶다고 했다.
태원은 상담실에서 그 음성을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아는 재생하지 않았다. 세라 역시 수문 지도와 관련한 조사를 더 미루겠다고 했다. 세 환자는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기록관이 해야 할 일은 한데 모으는 게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 세라의 악몽 발작은 없었다. 태원은 네 시간 연속으로 잠들었다. 지아는 그 사실을 의료 기록에서 확인했지만, 꿈과 연결하지 않았다. 조용한 밤도 회복의 일부일 수 있었다.
다음 교대에서 준혁은 수첩을 다시 펼쳤다. 구조 호출 기록 아래에는 자기 글씨로 한 문장이 더 적혀 있었다.
‘문을 닫기 전, 복도 끝에 남은 사람을 확인할 것.’
그 문장이 언제 적혔는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