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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의 견랑(犬狼)이 되었다5화

화산파의 견랑(犬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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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바람이 멎는 자리

사흘 뒤 이른 아침의 외문 수련장은 살얼음이 낀 듯 차가웠다.

담장 위 소나무 가지마다 안개가 엉켜 있었고 흙바닥은 밤새 내린 서리로 희끗희끗했다. 수련장 둘레에는 수십 명의 외문 제자들이 도포를 여민 채 늘어서 있었다.

그들 한가운데에 청랑이 서 있었다.

도포 소매를 걷어붙인 청랑의 손에는 옹이가 박힌 낡은 목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사흘 동안 수련장 구석에서 바닥을 긁어댄 탓에 손잡이는 땀과 흙으로 거무죽죽했다.

"장로님께서 오신다."

누군가의 나직한 외침에 웅성거리던 제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안개를 가르며 백운자가 지팡이를 짚고 걸어왔다. 그의 뒤를 따르는 곽준의 얼굴에는 싸늘한 조소가 걸려 있었다.

백운자가 수련장 중앙의 높은 단 위에 섰다.

"오늘 치르는 낙엽 시험은 외문 제자로서 검끝에 기운을 싣고 사물의 궤적을 꿰뚫는 기본을 가늠하는 자리다. 모두 평소 연마한 바를 아낌없이 보여라."

말을 마친 백운자가 곽준을 힐끗 보았다.

곽준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시선은 곧장 청랑에게 박혀 있었다.

"사전에 장로님께 청한 바와 같이 오늘의 시험은 평소와 다르다. 담장 위의 바람통 네 개를 전부 열어젖힐 것이다."

제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바람통을 네 개나?"

"하나만 열어도 마른 잎이 제멋대로 날뛰는데 넷이면 아예 회오리가 칠 텐데."

"저 잡역 놈 하나 떨구자고 판을 이렇게 키운 건가?"

곽준은 쏟아지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갑게 외쳤다.

"화산의 검은 온실 속에서 피어나는 화초가 아니다. 비바람과 절벽의 돌풍 속에서도 매화를 피워내야 하는 법이다. 첫 번째 조, 앞으로 나와라!"

호명된 외문 제자 셋이 흙바닥에 그어진 둥근 원 안으로 들어섰다.

담장 위에서 나무 마개 네 개가 연달아 뽑혔다.

우우웅!

좁은 구멍을 통과한 산바람이 맹수의 울음처럼 수련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온 바람이 중앙에서 거칠게 부딪치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담장 아래 쌓여 있던 마른 낙엽 더미가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쳤다.

"합!"

제자들이 기합을 내지르며 목검을 휘둘렀다.

십단공의 내력을 실은 검끝이 맑은 파공음을 냈지만 바람을 탄 낙엽은 뱀처럼 비틀거리며 검날을 비껴갔다.

첫 번째 제자의 목검은 허공을 벴다. 두 번째 제자는 낙엽을 쫓아 몸을 급히 돌리다가 발이 꼬여 원 밖으로 비틀거리며 튕겨 나갔다.

오직 세 번째 제자만이 내력을 한 줄기로 쥐어짜 간신히 낙엽 한 장의 모서리를 찢어냈다.

"불합격! 불합격! 합격 하나!"

곽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험은 가혹했다. 평소 능숙하게 검을 휘두르던 제자들도 사방에서 들이치는 난류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열 명 중 대여섯 명이 낙엽을 스치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다음, 청랑!"

마침내 곽준이 청랑을 불렀다.

수련장의 모든 눈동자가 청랑에게 쏠렸다. 비웃음과 경멸 그리고 조소 어린 호기심이 뒤섞인 시선이었다.

청랑은 흙바닥에 그어진 둥근 선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곽준이 목검을 비스듬히 세우며 경고했다.

"규정은 알고 있겠지. 원 밖으로 발이 벗어나거나 손이나 발로 잎을 잡으면 즉시 실격이다. 오직 목검으로만 세 장 가운데 한 장을 갈라야 한다."

"말이 많네. 열기나 해라."

청랑이 목검을 늘어뜨린 채 툭 내뱉었다.

곽준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손짓으로 담장 위의 제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바람통에서 쏟아지는 바람줄기가 한층 거세졌다. 흙먼지가 청랑의 시야를 가렸고 도포 자락이 미친 듯이 펄럭였다.

바람을 타고 첫 번째 낙엽이 솟구쳐 올랐다.

회오리바람의 중심을 타고 높게 튀어 오른 마른 잎은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청랑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꽂혔다.

청랑은 숨을 짧게 끊으며 발바닥을 흙에 묻었다.

배 속의 기혈 매듭이 욱신거리며 통증을 뿜어냈다. 청랑은 고통을 누르며 어깨를 틀어 목검을 비스듬히 뻗었다.

쉬익!

목검이 허공을 갈랐다.

낙엽은 검끝이 닿기 직전, 아래에서 솟구친 또 다른 바람 줄기를 타고 위로 훌쩍 솟아올랐다.

"푸하하!"

외문 제자들 사이에서 참지 못한 웃음이 터졌다.

"역시나!"

"저 꼴을 보려고 장로님까지 모신 건가?"

곽준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한 장 실패다."

청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빗나간 목검 끝을 바닥으로 떨구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 손바닥으로 전해진 바람의 결, 흙바닥을 스치고 지나간 공기의 온도를 머릿속에 새겼다.

곧이어 두 번째 낙엽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아래쪽이었다. 사방 담장에 부딪힌 바람이 바닥을 긁으며 낙엽을 청랑의 무릎 높이로 쏘아 보냈다. 잎은 좌우로 거칠게 요동치며 청랑의 왼쪽 복사뼈를 스쳐 지나가려 했다.

청랑은 검을 아래로 내리찍지 않았다.

왼발을 반 뼘 뒤로 물리고 허리를 낮췄다. 그리고 잎이 스쳐 지나가는 길목에 목검의 날을 얹듯 밀어 넣었다.

딱!

가벼운 마찰음이 났지만 찢어지지 않았다.

낙엽은 목검 옆면에 부딪혀 튕겨 나가더니 원 밖의 흙바닥에 처박혔다.

"두 장 실패!"

곽준의 목소리에 조롱이 묻어났다.

"이제 마지막 한 장이다. 화산의 문턱이 잡역의 잔꾀로 넘을 만큼 낮아 보이더냐?"

청랑은 곽준을 보지 않았다.

손바닥이 저릿했고 갈비뼈 안쪽에서 올라온 피비린내가 입안에 감돌았다. 숨이 가빴다. 정통 심법을 쓰지 않고도 짧은 폭발력만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뼈를 깎는 소모를 요구했다.

하지만 청랑의 눈동자는 오히려 맑아졌다.

두 번의 실패로 확인했다.

바람통 넷이 만든 바람은 제멋대로 날뛰는 것이 아니었다. 동쪽 벽을 치고 나온 바람은 서쪽 담장 모서리에서 꺾이고 북쪽에서 내려온 바람은 수련장 바닥의 패인 흙을 타고 솟구쳤다.

사방의 바람이 한데 엉켜 정점을 찍는 순간, 담장 모서리와 바닥의 경계에는 찰나의 순간 공기가 멈추는 '숨구멍'이 생겼다.

투견장에서도 그랬다.

미친개 두 마리가 엉켜 흙먼지를 일으킬 때 개들은 사방으로 날뛰는 것 같아도 숨을 몰아쉬기 위해 턱을 멈추는 자리가 반드시 있었다.

그 자리를 물지 못하면 개싸움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우우웅!

마지막 세 번째 낙엽이 바람통에서 튀어나왔다.

누렇게 바랜 큰 가랑잎 하나가 회오리의 중심에 휘말려 공중으로 치솟았다. 잎은 비틀거리며 사방으로 튕기다가 청랑의 오른쪽 가슴을 향해 사납게 곤두박질쳤다.

제자들이 숨을 삼켰다.

바람이 너무 거칠어 이번 잎은 아예 칼날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저것을 정면에서 베려 하다가는 목검이 튕겨 나가거나 손목이 꺾일 판이었다.

곽준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청랑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가오는 낙엽을 보지도 않았고 손목을 들어 올리지도 않았다.

그는 흙바닥의 한 점을 보고 있었다.

회오리가 동쪽 벽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기 직전, 낙엽이 공중에서 힘을 잃고 멈칫할 바로 그 자리였다.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낙엽이 청랑의 오른쪽 허리 높이까지 떨어졌다. 동쪽 담장에서 튕겨 나온 역풍과 부딪치는 순간, 맹렬하게 돌던 잎이 허공에 뚝 멈춰 섰다.

지금이다.

청랑의 눈빛이 맹수의 그것처럼 번뜩였다.

그는 길게 숨을 쉬지 않았다. 폐부에 남아 있던 마지막 숨을 짧게 뱉어내며 오른발 뒤꿈치를 흙바닥에 쾅 내리찍었다.

쿵!

수련장 바닥이 울렸다.

발바닥에서 시작된 힘이 발목을 타고 솟구쳤다. 무릎과 골반을 거쳐 허리를 강하게 비틀었다. 그 힘은 갈비뼈의 통증 매듭을 그대로 뚫고 지나가 어깨와 팔꿈치로 일직선이 되어 폭발했다.

목검이 번개처럼 쏘아졌다.

검초도 아니고 기이한 궤적도 아니었다. 단지 가장 짧은 거리로 가장 빠르게 내지른 단 한 번의 찌르기였다.

쩌엉!

목검 끝이 허공에 멈춰 섰던 마른 잎의 한가운데를 정확히 꿰뚫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청랑의 손목이 안쪽으로 거칠게 비틀리며 목검 날이 가랑잎의 결을 따라 수직으로 쪼개졌다.

사라락.

두 조각으로 완벽하게 갈라진 낙엽이 청랑의 발치 흙바닥 위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수련장 안의 바람이 일순간 멎은 듯 적막이 내려앉았다.

사방을 맴돌던 거센 돌풍 속에서 오직 목검을 내지른 청랑의 거친 숨소리만이 고요를 찢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비웃던 외문 제자들의 얼굴이 허얗게 질려 있었다. 곽준의 턱이 굳어졌고 그의 눈동자가 바닥에 떨어진 두 조각의 낙엽을 보며 잘게 떨렸다.

내력의 빛도 없었다. 화려한 매화검의 형상도 없었다.

바람이 가장 거센 순간에 가장 완벽하게 멈춘 자리를 찾아내 낙엽을 갈랐다.

"저, 저게……."

"어떻게 저 바람 속에서 잎을 정확히 쪼갠 거지?"

침묵을 깬 것은 곽준의 날카로운 고함이었다.

"말도 안 된다! 저건 검이 아니다!"

곽준이 성큼성큼 다가오며 핏대를 세웠다.

"내력을 싣지도 않았고 화산의 검로도 따르지 않았다! 우연히 낙엽이 검끝에 걸려 찢어진 것에 불과하다! 저따위 사파의 요행수를 시험 통과로 인정할 수는 없다!"

곽준의 뒤에 서 있던 상급 사형 둘이 동조하듯 목검을 쥐고 청랑을 향해 다가왔다.

"사형 말씀이 맞습니다. 화산의 낙엽 시험은 검끝에 매화의 기운을 담는 법을 보는 것인데 저놈은 그저 몽둥이질로 잎을 짓이긴 것뿐입니다!"

"잡역 놈이 장로님 앞에서 사기를 치려 드느냐!"

사형 하나가 험악한 기세로 청랑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청랑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개장에서는 판이 끝났는데도 억지를 부리며 덤벼드는 놈들이 꼭 있었다. 그런 놈들에게는 말을 섞는 것이 아니라 이빨부터 박아 넣어야 했다.

청랑은 피하지 않았다.

다가오는 사형의 손목이 닿기 직전, 청랑은 쥐고 있던 목검 자루로 상대의 손목 안쪽 급소를 딱 소리 나게 쳐올렸다.

"큭!"

사형이 비명을 지르며 중심이 앞으로 쏠렸다.

청랑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왼손으로 둘러매고 있던 헐렁한 도포 자락을 홱 털어 상대의 눈앞을 덮어버렸다.

시야가 가려진 사형이 허둥거리는 찰나, 청랑의 오른발 끝이 바닥의 마른 흙을 파고들며 상대의 디딤발 복사뼈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콰당!

사형의 거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흙바닥에 얼굴부터 처박혔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사형 하나를 바닥에 메다꽂은 청랑이 목검 끝을 곽준의 가슴팍을 향해 툭 겨누었다.

"규정대로 세 장 중에 한 장 갈랐다. 우연이든 요행이든 찢었으면 그만이지 왜 혓바닥이 길어?"

청랑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다. 흙투성이가 된 도포와 피가 맺힌 손등, 그리고 굶주린 늑대처럼 번뜩이는 눈빛에 곽준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 이 건방진 놈이 감히 사형에게 손을 대?"

곽준이 검자루를 쥐어짜며 소리쳤지만 더 다가서지는 못했다.

그때 둔탁한 파공음과 함께 백운자의 지팡이가 바닥을 내리쳤다.

쿵!

지팡이 끝에서 번진 맑은 기운이 수련장 전체를 휩쓸며 흙먼지를 단숨에 가라앉혔다.

백운자가 천천히 단을 내려와 청랑의 발치에 섰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두 조각의 낙엽을 지팡이 끝으로 가만히 가리켰다.

"갈라진 단면을 보아라."

곽준과 제자들의 시선이 낙엽으로 향했다.

거칠게 짓이겨진 흔적이 아니었다. 잎맥을 따라 종이 한 장의 오차도 없이 칼로 베어낸 듯 매끄럽게 갈라져 있었다.

백운자의 눈에 깊은 경탄의 빛이 어렸다.

"바람이 닿는 곳과 바람이 멎는 곳을 보지 못하면 결코 낼 수 없는 검이다. 힘으로 바람을 억누르지 않고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겨 찰나의 숨구멍을 벴다."

백운자가 고개를 들어 청랑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단순한 제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득한 옛 전설의 편린을 마주한 고수의 그것이었다.

"초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물의 허실을 꿰뚫어 단숨에 목숨을 끊는 검. 이것이야말로 화산이 잃어버렸던 격살의 뿌리가 아니겠느냐."

청랑은 미간을 찌푸렸다.

'또 헛소리 시작이네.'

그저 개장에서 배운 대로 바람 멎는 자리를 보고 찍어 누른 것뿐인데 노인네의 해석은 갈수록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굳이 바로잡을 생각도 없었다. 이 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저 거창한 착각이 꽤 쓸모 있는 방패막이가 되어 줄 터였다.

백운자가 엄숙하게 선언했다.

"외문 잡역 청랑, 낙엽 시험을 당당히 통과했다. 오늘부로 청랑에게 정식 외문 수련의 자격을 부여한다."

수련장이 다시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곽준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주먹을 쥐었지만 장로의 공식 선언 앞에서는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었다.

청랑은 바닥에 꽂아둔 목검을 뽑아 어깨에 걸쳤다.

갈비뼈는 여전히 욱신거렸고 손바닥은 쓰라렸지만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화산이라는 개장의 목줄을 한 꺼풀 벗겨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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