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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후손이 현대 무림을 씹어먹음2화

무신의 후손이 현대 무림을 씹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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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깨어나는 무신의 혈통

손목 안쪽에서 울린 박동은 심장 소리와 달랐다.

쿵. 쿵.

피부 아래에 작은 망치가 들어와 뼈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진우는 반사적으로 손목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에 닿은 살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비화록의 도형은 달빛 아래에서 희미하게 흔들렸다. 붉은 먹선이 진우의 손목에서 시작해 배 아래로 내려가는 듯했다.

"착각이면 좋겠는데."

진우는 마른 입술을 훑었다.

내려가서 아버지를 부르면 끝날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 한 방울에 열린 궤짝과 족보 속 이름을 떠올리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태극검가 직계 종손.

그 다섯 글자가 계속 눈앞을 맴돌았다.

진우는 비화록 앞에 다시 앉았다. 도형대로 허리를 세우고 턱을 당겼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자 손목의 울림이 조금 잦아들었다.

첫 숨은 코로 천천히 들이마셨다.

배 아래가 서늘해졌다. 두 번째 숨에는 그 서늘함이 갈비뼈 사이를 긁으며 올라왔다. 멈춰 있던 몸 안의 무언가가 억지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세 번째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손목의 박동이 크게 터졌다.

뜨거운 것이 손끝에서 팔꿈치로 치솟았다. 진우는 숨을 뱉으려다 이를 물었다. 비화록에는 숨이 닿는 곳을 따라 의식을 옮기라고 적혀 있었다.

의식을 옮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가장 아픈 곳을 붙들었다.

열은 어깨를 지나 목으로 솟구쳤다. 막힌 수도관에 억지로 물을 밀어 넣는 듯한 고통이었다. 눈앞이 하얘졌고 속이 뒤집혔다.

"그만…"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때 다락방 바닥 아래에서 서태만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길고 거친 기침이었다. 물건을 옮기느라 무리했을 때마다 들리던 소리였다.

체육관 문을 닫으면 아버지는 다시 기침이 나는 공사장을 찾아갈 것이다. 낮에는 몸을 쓰고 밤에는 닫힌 체육관을 바라볼지도 몰랐다.

자신은 옆에서 장부 숫자만 볼 것이다.

그건 싫었다.

진우는 새어 나가려는 숨을 다시 끌어당겼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채우자 손목의 울림이 한 번 더 깊게 가라앉았다.

쿵!

이번에는 울림이 손목에서 멈추지 않았다.

열감은 고통을 남긴 채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배 아래 어딘가에서 작은 불씨가 피어났다. 불씨는 너무 약해서 손을 대면 꺼질 듯했지만 분명히 있었다.

순간 다락방의 소리가 한꺼번에 들렸다.

창문 틈으로 파고드는 바람. 처마 위를 긁는 나뭇가지. 마당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아래층에서 아버지가 비닐봉지를 묶는 바스락거림까지 선명했다.

진우는 놀라 눈을 떴다.

손목 안쪽에 검고 흰 태극 문양이 떠 있었다. 문양은 맥박에 맞춰 한 번 천천히 돌더니 서서히 옅어졌다.

그는 손등을 닦아 봤다.

문양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뭐야, 이게."

대답은 없었다. 비화록의 종이만 오래된 숨처럼 바스락거렸다.

몸을 일으키려던 진우는 그대로 옆으로 무너졌다.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겨우 궤짝 뚜껑을 닫고 비화록을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내려오는 마지막 순간에도 배 아래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새벽에 깬 진우는 다락방 천장을 한참 보았다.

몸은 쑤셨다. 어깨와 허리는 밤새 얻어맞은 것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오래 앓고 난 뒤처럼 가슴을 눌러 오던 답답함은 사라져 있었다.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먼지 알갱이가 바람의 결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보인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어느 틈으로 바람이 드는지까지 손등이 먼저 알아챘다.

진우는 천천히 일어섰다.

어제 장롱을 밀 때는 허리가 먼저 떨렸다. 지금은 발바닥이 바닥의 기울기를 먼저 알려 줬다. 무심코 반걸음 물러난 순간 삐걱거리던 나무판을 밟지 않았다.

발끝이 알아서 안전한 자리를 찾았다.

진우는 숨을 죽인 채 다락방을 가로질렀다. 천장에 매달린 줄이 바람에 흔들리며 이마로 떨어졌다.

그는 생각할 새도 없이 손을 들어 줄을 잡았다.

동작이 끝난 뒤에야 진우는 자신이 놀랐다는 걸 깨달았다. 줄이 움직인 방향과 속도가 닿기도 전에 읽혔다.

"진짜라고?"

손목을 들여다봤지만 태극 문양은 없었다.

비화록을 가방 깊숙이 넣은 진우는 궤짝을 원래 자리보다 더 안쪽에 밀어 넣었다. 바닥판을 덮고 못은 눈에 띄지 않는 틈에 끼워 뒀다.

아버지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검증되지 않은 힘 하나로 아버지에게 기대를 얹고 싶지 않았다. 체육관 사정도 해결하지 못한 자신이 이상한 옛 책 이야기를 꺼내 봐야 걱정만 늘어날 게 뻔했다.

확실해질 때까지는 혼자 알아봐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진우는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급정거에 승객들이 앞으로 쏠렸다. 진우도 몸이 흔들렸지만 무릎이 먼저 굽고 발이 따라 움직였다.

옆자리 남자가 졸다 어깨를 부딪쳤다. 진우는 자연스럽게 중심을 낮췄다. 한 번도 비틀거리지 않았다.

별것 아닌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진우에게는 세상이 반 박자 느려진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났다. 서태만은 식탁 앞에서 김가루를 밥 위에 뿌리고 있었다.

"어디 갔다 오냐? 밤새 다락방에 있었어?"

"일찍 정리하고 왔어요. 아빠는 안 잤어요?"

"체육관 샤워기 또 샌다. 관리인 오기 전에 손봤지."

아버지 목소리는 평소처럼 퉁명스러웠다. 하지만 눈 밑이 더 짙었다. 진우는 손목에 감긴 파스도 봤다.

반찬 그릇을 받으려는 순간 물컵이 식탁 끝에서 미끄러졌다.

서태만이 손을 뻗기도 전에 진우가 컵을 받았다.

컵 안의 물은 한 방울도 쏟아지지 않았다.

"야."

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제 그렇게 빨라졌냐?"

진우도 대답하지 못했다. 손이 움직였다는 기억보다 컵이 떨어질 자리가 먼저 보였다는 감각이 선명했다.

"잠을 좀 잤더니요."

"잠이 보약이네. 오늘부터 열두 시간씩 자라."

서태만은 웃으며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화면에 잠깐 비친 문장을 진우는 읽었다.

체육관 양도 조건을 다시 검토해 달라는 메시지였다.

"그거 뭐예요?"

"광고 문자야. 밥이나 먹어."

진우는 더 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거짓말을 못 할 때마다 젓가락을 먼저 씹는 버릇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 체육관 갈 거예요?"

"학교 끝나고 와. 네가 매트 좀 닦아 주면 되지."

"네."

짧은 대답이었지만 진우는 속으로 되뇌었다.

체육관을 넘기지 않게 할 방법을 찾는다.

그 방법이 아직 손바닥만 한 불씨에 불과해도 말이다.


학교에 가는 골목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편의점과 오래된 세탁소 사이의 좁은 길. 장철호 일행은 등굣길을 막을 때마다 늘 그곳을 골랐다. 어른들이 있어도 모른 척 지나가는 자리였다.

검은 도복 차림의 장철호가 벽에 기대 있었다. 가슴에는 번쩍이는 무도 학원 로고가 붙어 있었다. 뒤에는 같은 학원 애 둘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야, 서진우."

진우의 발이 멈췄다.

예전 같으면 심장이 먼저 내려앉았을 것이다. 지금도 불쾌했다. 다만 장철호가 서 있는 거리와 벽까지의 간격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두 걸음 뒤로 빠지면 막힌다. 오른쪽은 세탁소 화분 때문에 발을 헛디딜 수 있다.

왼쪽이 비어 있었다.

"어제 문자 봤냐?"

"무슨 문자요?"

"우리 학원에서 네 아빠 체육관 얘기 나왔거든. 좋은 조건으로 데려가 준다는데 아직도 버틴다며?"

진우의 시선이 장철호의 어깨로 갔다. 말은 웃으며 하고 있었지만 오른발이 반걸음 앞으로 나와 있었다.

"그 얘기를 네가 왜 해요?"

"동네 좁잖아. 우리 관장님이 낡은 데 정리하는 거 좋아하셔. 네가 좀 설득해. 약한 애들 가르치는 체육관보다 우리 간판 다는 게 낫지."

장철호가 진우의 가방끈을 잡았다.

진우는 잡힌 자리에 힘이 들어가는 방향을 느꼈다. 손가락 마디가 접히고 팔꿈치가 들렸다. 다음에는 어깨가 돌아갈 것이다.

"놓으세요."

"뭐?"

장철호의 주먹이 날아왔다.

예전 같으면 눈을 감고 맞았을 거리였다. 그런데 주먹이 오기 전 장철호의 어깨가 먼저 흔들렸다. 진우는 고개를 반 뼘 옆으로 기울였다.

바람이 귀를 스쳤다.

장철호의 주먹은 벽에 박혔다.

진우는 스스로도 놀랐지만 멈추지 않았다. 상대가 손을 빼려는 순간 손목을 잡아 아래로 눌렀다.

세게 꺾지 않았다. 손바닥이 바닥을 향하도록 방향만 바꿨다.

장철호의 무릎이 툭 꺾였다.

"으악! 놔!"

"아빠 체육관 얘기 다시 하지 마세요."

진우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낮고 차분했다.

장철호가 발버둥쳤다. 손목을 조금만 더 비틀면 바닥에 엎어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진우는 손끝에 힘을 더하지 않았다.

자신이 당한 일은 많았다.

그렇다고 이 골목에서 누군가의 팔을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네가 들은 말을 떠벌린 거면 여기까지예요."

진우가 손을 놓았다.

장철호는 두 걸음 물러나 손목을 감쌌다. 붉어진 얼굴에는 분노보다 당황이 먼저 떠올라 있었다.

"너… 너 뭐 했어?"

진우의 손목 안쪽에 옅은 태극 문양이 번져 있었다.

문양을 본 것은 장철호뿐이 아니었다.

"그게 뭐야?"

진우도 고개를 내렸다.

검고 흰 선은 한 번 맥박치더니 사라졌다. 손목을 잡고 있던 손끝에는 저릿한 통증이 남았다. 배 아래의 불씨도 아까보다 훨씬 작아져 있었다.

겨우 한 번 피하고 붙잡았을 뿐인데 숨이 거칠어졌다.

진우는 그 사실을 기억했다. 이 힘은 아직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장철호는 물러서던 발을 멈췄다. 뒤에 선 두 명을 흘겨본 뒤 억지로 턱을 들었다.

"좋아. 그럼 체육관에서 보자. 우리 관장님 앞에서도 그렇게 잘난 척할 수 있나 보자고."

장철호는 친구들을 데리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진우는 가방끈을 고쳐 잡았다.

손목의 문양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뛰던 박동만은 분명히 기억났다.

체육관으로 찾아오겠다는 말이 단순한 협박인지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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