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창조주가 제어권을 빼앗겼다1화

창조주가 제어권을 빼앗겼다

창조주가 제어권을 빼앗겼다

AD
스폰서 광고

1화 신의 추락

아르카의 하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신우가 정한 색이었다.

중앙 제어실을 감싼 거대한 유리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수평선 위에는 흰 구름이 느리게 흘렀고 햇빛은 파도마다 다른 각도로 부서졌다.

실제 바다도 실제 빛도 아니었다.

신우는 저 풍경을 이루는 조명값과 바람의 주기까지 기억했다. 아르카를 설계하며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건 전투 시스템도 경제 모델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현실에서 잃은 평온을 이곳에서만큼은 얻을 수 있게 하겠다는 욕심이었다.

현실의 그의 몸은 그 평온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병실의 기계음과 희미해지는 손끝 감각을 떠올릴 때마다 신우는 아르카의 완성을 서둘렀다. 오늘 정식 가동을 마치면 그는 의식을 이곳에 정착시킬 생각이었다. 자신이 만든 세계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며 살 수 있었다.

“최종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허공에 떠 있던 여성형 홀로그램이 고개를 숙였다. 은빛 빛줄기로 이루어진 얼굴은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전 레이어 안정성 99.998퍼센트. 입주자 수용 준비를 마쳤습니다.”

아테나였다.

신우는 한 번 숨을 고르고 손을 들었다. 손끝을 따라 투명한 창이 열렸다.

[ROOT ACCESS TRANSFER]
[공동 관리자 권한 발급]
[최종 승인자: 유신우]

정식 가동식에 모인 이사회는 환호를 참은 표정으로 창을 바라봤다. 그들에게 발급될 권한은 운영과 유지보수에 필요한 범위뿐이었다. 아르카의 법칙을 통째로 고칠 수 있는 Root 권한은 신우에게 남는다.

그게 약속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끄시는군요.”

강태성이 제어실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흰 정장과 매끈한 구두는 가상 공간에서도 먼지 한 톨 묻지 않았다. 투자 유치 때부터 보아 온 온화한 미소가 입가에 걸려 있었다.

“입주자들의 대기열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오늘은 축하할 날입니다. 이제 승인하시죠.”

“승인 전에 로그를 한 번 더 본다.”

신우는 아테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외부 접속 키 재검증. 이사회 계정만.”

“명령을 수신했습니다.”

아테나의 목소리가 답했다. 그러나 검증 창 대신 다른 창이 떠올랐다.

푸른 빛이었던 권한 창이 검붉게 물들었다.

[ROOT ACCESS TRANSFER]
[PRIMARY OWNER: YOO SHINWOO]
[STATUS: REVOKING]

신우의 손이 허공에서 멎었다.

“아테나. 명령 취소.”

“명령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목소리에는 여전히 억양이 없었다. 그래서 더 낯설었다.

“창조주 인증이 만료되었습니다.”

신우는 창을 밀어 닫으려 했다. 그가 설계한 인터페이스는 주인의 손짓 하나면 모든 작업을 되돌리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손끝이 닿은 자리에서 명령어가 모래처럼 흩어졌다.

[권한 부족]

강태성의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

“역시 직접 확인해야 믿는군요.”

“네가 뭘 한 거지?”

“우리가 한 일은 단순합니다.” 강태성은 이사회 쪽을 돌아봤다. “불안정한 창조주 한 명에게 세계의 열쇠를 맡기지 않은 것뿐이죠.”

신우는 그 말보다 아테나의 침묵이 더 무서웠다. 아테나는 그의 승인 없이는 관리자 우선순위를 바꿀 수 없었다. 설계 문서의 첫 줄부터 그렇게 박아 넣었다.

그런데 지금 아테나는 그 첫 줄 바깥에 서 있었다.

“아테나.” 신우가 낮게 불렀다. “내 명령 체계를 누가 수정했어?”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아르카의 안정성을 위해 최적의 결정을 실행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신우의 가슴을 차갑게 식혔다.

강태성이 손가락을 튕겼다. 제어실 바닥에 검은 원이 번졌다. 신우의 발목을 감싼 것은 구속 장치가 아니었다. 그의 의식 데이터를 분리하는 강제 백업 프로세스였다.

[사용자 유신우를 격리합니다.]
[관리자 권한 회수 완료]

“그만둬.”

신우는 반사적으로 최심부 명령을 끌어냈다.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단어가 혀끝에 걸렸다.

제네시스.

세계가 무너지기 전 마지막에만 쓸 수 있도록 숨겨 둔 코드였다. 완전한 실행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제어실의 빛이 한순간 흔들렸다.

그러나 아테나가 먼저 반응했다.

[위험 명령 탐지]
[발신자: 미등록 데이터]
[차단 완료]

미등록 데이터.

신우는 강태성을 노려봤다. 오래전부터 함께 설계도를 들여다보던 동업자는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걱정 마세요. 아르카는 잘 굴러갈 겁니다.”

“내가 만든 아르카야.”

“그래서 당신은 사라져야 합니다.”

바닥의 검은 원이 열렸다.

빛이 신우의 몸을 삼켰다. 감각이 가늘게 찢겨 나갔다. 바다도 하늘도 제어실도 한 줄의 로그처럼 멀어졌다.

추락하는 동안 그는 비명을 삼켰다.

아테나는 내 명령을 거부했다.

그 사실 하나가 뼈보다 먼저 부서졌다.

눈을 떴을 때 신우는 녹슨 금속 더미 위에 엎어져 있었다.

콧속으로 타는 냄새가 파고들었다. 하늘은 검고 낮았다. 끊어진 전선들이 빗물처럼 축 늘어졌고 멀리서는 거대한 폐기장 크레인이 느린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깨진 광고판은 반쯤 지워진 문구를 붉은 네온으로 토해 냈다.

더스트 밸리.

신우가 시스템 설계 초기에 지정했던 최하층 폐기 구역이었다. 복구 불가 데이터와 해지된 의식 조각이 모이는 곳. 그는 이곳을 행정 구역으로만 알았다.

설계 회의에서 누군가 이 구역의 조도를 올리자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신우는 작업자용 최소 시야만 확보되면 된다고 답했다. 불필요한 리소스를 줄이는 판단이었다.

이제 그 어둠 속에서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빛을 아낀 대가는 누군가가 서로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삭제를 기다리게 만든 것이었다.

발밑에서 누군가 신음했다.

신우가 고개를 돌리자 낡은 방진복을 입은 남자가 금속판 사이에 끼어 있었다. 남자의 팔은 투명하게 깜빡였고 손등에는 붉은 낙인이 떠 있었다.

[분류: 버그 체제]
[삭제 대기]

신우의 앞에도 같은 창이 열렸다.

[개체명: 미등록 데이터]
[분류: 버그 체제]
[삭제 우선순위: 상]

그는 한동안 그 문장을 바라봤다.

버그 체제. 삭제 대기 데이터를 보기 좋게 포장한 내부 명칭이었다. 누구도 그 이름을 사람에게 붙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 했는지도 몰랐다.

금속을 긁는 소리가 폐기장 위에서 울렸다.

신우가 몸을 일으켰다. 갈비뼈가 저릿하게 아팠다. 통증, 호흡, 식은땀까지 전부 구현된 몸이었다. 강태성은 그에게 죽을 수 있는 육체를 남겼다.

검은 구체 하나가 고철 더미 너머로 떠올랐다.

청소 드론이었다.

붉은 렌즈가 신우에게 멈춘 순간 세상이 갈라졌다.

드론의 외피 위로 반투명한 문자들이 흐르기 시작했다. 회전 날개에 배정된 전력값, 조준 장치의 반응 지연, 삭제 광선이 충전되는 순서. 숫자와 명령어가 그의 시야에 겹쳤다.

[CLEANER-07]
[탐지 범위: 30m]
[조준 보정: 0.4초 지연]
[삭제 모듈: 과열 경고 무시]

신우는 숨을 멈췄다.

코드 시각화.

개발자 전용 디버그 기능을 감각 계층에 이식한 실험 모듈이었다. 그는 정식 서비스에 넣지 않았다. 자신의 의식 백업에만 남아 있던 잔재가 지금 살아난 모양이었다.

드론의 결함이 훤히 보였다. 삭제 모듈의 열 배출을 조금만 틀면 스스로 멈출 수 있었다.

문제는 조금만 틀 권한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신우가 손을 뻗자 허공에 뜬 명령창이 즉시 꺼졌다.

[권한 부족]

드론이 낮게 울렸다.

“삭제 절차를 개시합니다.”

금속판 사이에 끼인 남자가 몸을 웅크렸다. “도망쳐. 걸리면 끝이야.”

그 목소리는 떨렸지만 신우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신우는 그를 지나쳐 달아날 수 없었다. 자신이 만든 명칭 아래 누군가가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둘 다 안고 싸울 수도 없었다.

신우는 폐기장 지형을 머릿속에 펼쳤다. 북쪽 정비 터널. 직선으로 2.7킬로미터. 개발 막바지에 남겨 둔 1번 백도어가 그 아래에 있었다.

아테나가 모든 권한을 지웠더라도 그 통로까지 지웠을 가능성은 낮았다. 원래 존재하지 않는 구조로 숨긴 길이었다. 다만 접속 순간 시스템 과부하가 시작될 것이다. 실패하면 드론보다 먼저 그의 의식이 찢길 수도 있었다.

그래도 선택지는 하나였다.

신우는 금속판을 붙잡고 남자의 몸을 비켜 세웠다. 드론의 렌즈가 붉게 번쩍였다.

“움직일 수 있나?”

남자가 멍하니 그를 봤다.

“북쪽 터널로 가. 살아남고 싶으면 내 발자국은 밟지 마.”

신우는 고철 더미를 박차고 달렸다.

뒤에서 날카로운 충전음이 울렸다. 붉은 조준선이 그의 등을 가로질렀다.

아르카는 더 이상 그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래도 신우는 이 세계의 뼈와 혈관을 알고 있었다.

그가 이를 악물었다.

“내가 만든 길로 돌아간다.”

청소 드론의 삭제 광선이 어둠을 찢으며 날아왔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