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우체국은 새벽에만 배달합니다

3화: 새벽 네 시의 빈 주소
이목은 문 앞에 멈춰 선 채 자기 얼굴을 한 남자를 바라봤다.
“저건 내 얼굴이 아니야.” 그는 말했다.
새봄이 봉투를 든 손에 힘을 줬다. “그럼 누구 얼굴이에요?”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얼굴.”
문 안의 남자는 낡은 배달 가방을 들고 있었다. 모자 아래 드러난 눈매와 턱의 작은 흉터가 이목과 똑같았다. 하지만 어깨가 더 좁았고, 입술은 잉크처럼 검었다.
“이목 씨가 그날 편지를 배달했나요?” 새봄이 물었다.
“응. 나는 그 사람에게 편지를 건넸어. 그 사람은 거절했지. 그런데 내가 도장을 찍지 않았어.”
문 안의 남자가 말했다. “나는 거절한 게 아니야. 받을 수 없다고 했어.”
“그게 거절 아닌가요?”
“주소가 내 주소가 아니었으니까.”
구월은 꼬리를 코트 아래에서 단단히 감쌌다. “수취인 강미정에게 온 편지야. 이 주소에 강미정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어.”
남자는 웃었다. “기록은 사람을 붙잡아 두는 데 편리하지.”
새봄은 봉투를 문 앞에 놓았다. “이 편지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당신인가요?”
“아니.”
“그럼 거절 의사를 제가 기록해도 돼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계가 새벽 네 시를 가리키자 골목의 벽이 움직였다. 건물 외벽이 접히면서 좁은 골목 안쪽에 세탁소와 오래된 빨랫줄이 나타났다. 새봄은 그곳이 편지의 마지막 주소임을 알았다. 종이에서 나던 세탁 비누 냄새가 골목을 가득 채웠다.
이목은 장부를 펼쳤다. “그날의 수취인이 누구였는지 기억해. 얼굴은 다르지만, 목소리는 같아.”
“그 사람은 이미 죽었을 수도 있어.” 구월이 말했다.
“그럼 거절 기록을 남기면 주소가 닫히겠죠?” 새봄은 구월의 꼬리를 봤다. 불빛이 약해지고 있었다.
“응. 꼬리도 풀릴 거야.”
“그럼 국장님은 편지를 보관할 수 없겠네요.”
“그게 맞는 순서라면.”
새봄은 문 안의 남자에게 봉투를 밀었다. “받을지 거절할지 직접 말해 주세요. 누구를 대신해서가 아니라, 당신 뜻으로.”
남자는 봉투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 편지는 내가 받을 수 없어.”
새봄은 장부를 펼쳤다. “반송 완료로 기록하겠습니다.”
“잠깐.” 이목이 그녀를 막았다. “그 사람은 강미정이 아니야.”
“그래서 수취인에게 묻는 거예요. 그가 자기 의사로 거절했으니까요.”
“네 어머니가 남긴 편지를 이렇게 끝내면, 다시는 열어 볼 수 없어.”
“편지를 열지 않고도 배달을 끝낼 수 있어요.”
“너는 그 내용을 궁금해하지 않아?”
새봄은 어머니의 마지막 전화를 떠올렸다. 전화가 울렸을 때 그녀는 친구와 다투고 있었다. 어머니의 걱정이 잔소리로 들려 받지 않았다. 다음날 전화가 끊겼고, 그 뒤에는 병원 연락이 왔다. 그때 못한 말은 편지를 읽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궁금해요. 하지만 제가 궁금하다고 수취인의 거절을 무시하진 않을 거예요.”
남자는 봉투를 내려다봤다. “그럼 나는 왜 이 주소에 남아 있지?”
“그건 당신이 말해 줘야죠.”
“나는 이 세탁소의 주인이었어. 미정 씨가 옷을 고치는 동안 가게를 빌려 줬지. 그 사람이 여길 떠난 뒤에도 우편이 왔어. 나는 주소를 지우지 못했어. 손님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거든.”
“이목 씨가 말한 수취인이 당신이었나요?”
“그때는 거절할 수 없었어. 미정 씨가 내게 맡긴 코트가 있었거든. 그녀가 돌아오면 돌려주려고 했어. 편지까지 받으면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았어.”
이목은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네가 받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도 기록하지 않았어. 내가 그 사람을 기다리게 만든 거야.”
“아니야. 내가 기다린 건 내 선택이었어.” 남자는 이목을 바라봤다. “하지만 네가 기록하지 않아서 골목이 계속 열렸지.”
이목은 장부에 펜을 댔다. “내 실수라고 쓰겠다.”
“쓰면 주소가 사라져.”
“그래도 써야 해.”
이목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골목 바깥에 서 있었다. “그날 내가 장부에 거절을 적었으면, 이 세탁소는 사라졌을까?”
정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랬겠지. 나는 주소를 잃고, 네 우체국은 배달을 끝냈을 거야.”
“그럼 내가 널 붙잡아 둔 거네.”
“내가 편지를 받지 않은 건 내 선택이야. 네가 기록을 미룬 건 네 선택이고. 둘 다 있었던 일로 남기면 돼.”
이목은 웃으려다 실패했다. “난 그때 계약직이었어. 수취 거절 건수가 많으면 정규 배달원 심사에서 떨어질 거라 생각했지. 네가 울어서 기록을 못 했다고 말하면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내 점수가 걱정됐어.”
새봄은 장부의 빈칸을 보았다. 누군가의 울음 앞에서 할 일을 미룬 이유가 선의만은 아니었다. “그럼 이제 네 이름으로 쓰세요. 미안하다는 말은 그 다음에 해도 돼요.”
“미안하다.” 이목이 정성태에게 말했다. “네가 답을 못 고르게 한 건 내가 잘못했어.”
정성태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는 편지를 향해 돌아섰다. “나는 받지 않겠다고 했어. 이번에는 그 말 그대로 남겨 줘.”
구월이 꼬리를 풀려 했다. 푸른 불이 한 번 꺼졌다가 다시 살아났다. 그녀는 새봄을 쳐다봤다. “마지막 기회야. 편지를 열면 주소를 보존할 수도 있어. 수취인이 실제로 누구인지 확인하면 보관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럼 편지 안에 뭐가 있는지 읽을 수 있겠네요.”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새봄은 편지를 열지 않았다. 대신 장부에 적었다.
‘수취인 정성태, 강미정 앞으로 온 편지를 받지 않겠다고 본인 의사로 거절함. 발신인 불명. 배달 완료.’
그녀는 펜을 놓았다. 남자는 자기 이름을 천천히 읽었다. “정성태. 오랜만에 내 이름이 기록됐군.”
정성태는 빈 봉투를 주워 가슴주머니에 넣었다. 편지는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지운 채 사라지길 원한 것은 아니었다. “세탁소가 없어져도, 주소가 바뀌어도 내 이름은 남겨 줘. 누군가 이 골목을 찾으면 내가 여기 살았다고 알려 줘.”
“우체국 장부에는 남길게요.” 새봄이 말했다.
“네 어머니 이름도?”
새봄은 답을 바로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원한다면요. 지금은 제가 대신 정하지 않을 거예요.”
정성태는 그 대답을 받아들이듯 고개를 숙였다. 이목이 장부에 수취 거부를 적자, 벽에 남은 세탁소의 간판이 천천히 접혔다. 주소가 사라지는 동안에도 그의 이름은 마지막까지 남았다.
그의 얼굴이 서서히 흐려졌다. 세탁소의 창문이 닫히고 빨랫줄이 사라졌다. 골목은 지도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대신 ‘빈 골목’ 대신 ‘정성태의 옛 세탁소’라는 이름이 잠깐 나타났다.
구월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녀는 대답 대신 숨을 골랐다. 꼬리 끝의 불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편지를 빼앗아 보관할 수도, 정성태의 선택을 바꿀 수도 없었다. 새봄이 장부를 닫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그녀에게는 오랜만의 일이었다.
구월의 꼬리 하나에 감겼던 봉투 실밥이 풀렸다. 푸른 불이 그녀의 손목을 떠나 우체국 천장으로 올라갔다. 구월은 숨을 몰아쉬며 코트 안에 꼬리를 감췄다.
“괜찮아요?” 새봄이 물었다.
“꼬리 하나가 자유로워졌다고 아홉 개가 되는 건 아니야.”
“그래도 하나는 풀렸네요.”
“그건 네가 편지를 끝냈기 때문이야. 네가 나를 구한 건 아니고.”
“알아요.”
“그렇게 빨리 대답하지 마.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어.”
새봄은 이목에게 장부를 건넸다. “이제 그날 기록을 고쳐요.”
이목은 찢어진 페이지를 맞춰 붙였다. 그날의 공란 아래에 자기 서명을 남겼다. ‘수취인의 거절을 기록하지 않음. 배달 책임은 분류원 이목에게 있음.’
“이제 주소가 닫힐까?” 그가 물었다.
“그건 편지가 정할 일이 아니야.” 새봄이 말했다. “우리가 기록을 남겼고, 그 사람이 선택했어요.”
골목이 닫히기 직전, 문 안쪽에서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봉투도 주소도 없었다. 앞면에는 ‘강미정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구월이 손을 뻗었지만 푸른 불은 더 이상 그 종이에 닿지 않았다. 새봄은 종이를 들었다. “이건 배달물이 아니에요.”
“그럼 뭐지?”
“아직 주소가 없는 편지요.”
이목은 새로 붙인 장부를 덮었다. “그건 우리가 접수할 수 있어.”
“누가 보냈는지 모르는 데도요?”
“새벽 우체국은 그런 우편을 받으려고 열리는 거야.”
새봄은 종이를 봉투에 넣지 않았다. 먼저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향하는 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에게 물어볼 주소를 찾아야 했다.
우체국으로 돌아오자 집주인의 독촉 문자가 또 와 있었다. 새봄은 밀린 월세가 아직 남아 있다는 걸 떠올렸다. 구월은 배달 수당을 약속한 것보다 조금 더 넣어 줬다.
“왜 더 줘요?”
“잘못된 장부를 바로잡았으니까.”
“수당은 배달 건수로 계산한다면서요.”
“규정이 바뀌었어.”
“언제요?”
“방금.”
이목이 웃었다. “국장님은 귀찮은 말이 길어지면 규정을 바꾸더라.”
구월은 대꾸하지 않았다. 새봄은 수당을 받았지만, 마음 한구석의 질문은 그대로였다. 어머니가 직접 쓰지 않은 편지가 왜 어머니의 필체를 기억하는가.
오래된 봉인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날 밤 첫차가 지나간 뒤, 우체국 문밖에서 새 봉투 하나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봉투가 새봄의 손에서 한 번 떨렸다.
수취인란은 비어 있었다.
발신인란에 적힌 이름은 강새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