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우체국은 새벽에만 배달합니다

1화: 어머니에게 온 반송 편지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입니다.”
새봄은 비에 젖은 봉투를 카운터에 올렸다. 봉투 모서리에서 여우불 같은 푸른 빛이 새어 나왔다. 우체국장 구월은 눈길도 주지 않고 장부를 덮었다.
“그건 반송함이 아니라 접수함이야.”
“주소가 없어요. 이름은 강미정, 사망일은 3년 전.”
새봄은 봉투에 적힌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렸다가 다시 봤다. 어머니 이름이었다. 발신인은 빈칸. 주소란에는 ‘새벽 네 시의 세탁소’라고 쓰여 있었다.
“이런 편지는 접수 안 받는다고 했잖아요.”
“배달은 네 업무야.”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편지를 받으면 뭐가 달라져요?”
“수취인이 받거나 거절해야 끝나지.”
“죽은 사람한테 어떻게 물어봐요?”
구월은 장부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계약 제7조. 죽은 수취인의 마지막 생활 주소에 도달했을 경우, 편지는 그 주소를 기억하는 사람이 대신 거부할 수 있다. 단, 내용을 읽거나 전달해선 안 된다.”
새봄은 봉투를 쳐다봤다. “그럼 제가 거부하면 돼요?”
“네가 그 주소에 사는 사람이면.”
“저는 거기서 산 적 없어요.”
“그럼 배달해야지.”
새벽 우체국의 시계가 세 시 십오 분을 가리켰다. 문은 네 시에 닫혔다. 그때까지 편지를 배달하지 못하면 새봄의 첫 수당은 보류되고, 계약은 하루 더 연장됐다. 집주인은 오늘 오전까지 월세를 넣으라고 했다. 그녀가 이 일을 구한 이유는 저승의 우편이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분류원 이목이 자전거 열쇠를 던졌다. “세탁소는 서쪽 골목. 지금은 편의점으로 바뀌었는데, 지하에 옛 주소가 남았을 거야.”
“편의점 지하에 누가 살아?”
“주소는 사람이 살지 않아도 남아. 네가 잘못 배달하면 편지가 너를 따라 돌아와.”
“그런 걸 왜 웃으면서 말해요?”
“무서운 걸 웃으면서 말하면 덜 무섭잖아.”
새봄은 봉투를 방수 가방에 넣었다. 구월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손톱 끝에서 푸른 불이 흔들렸다.
“편지는 열지 마. 수취인이 받기 전에는 누구도 내용을 알아선 안 돼.”
“제가 어머니에게 온 편지라면요?”
“더더욱.”
새봄은 손목을 뺐다. “그 말은 어머니가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하는 말 같네요.”
구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은회색 머리 뒤로 그림자가 아홉 갈래로 흔들렸다. 꼬리는 보이지 않았지만, 카운터 밑에서 푸른 불빛 하나가 사라졌다.
자전거를 타고 서쪽 골목으로 향했다. 비는 오지 않았는데 도로가 젖어 있었다. 새봄은 편지의 방향을 코끝으로 느꼈다. 종이에서 세탁 비누와 식은 국 냄새가 났다. 어머니가 일하던 작은 세탁소의 냄새와 달랐다. 더 오래되고, 낡은 옷장 속 같은 냄새였다.
편의점 뒤편에는 벽돌로 막힌 출입구가 있었다. 새봄은 담벼락에 그려진 주소를 읽었다. 14-4, 새벽 세탁소. 휴대전화 지도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봉투가 가방 안에서 떨렸다. 새봄은 꺼내 들었다. 여우불 같은 빛이 주소의 ‘4’ 아래에서 작게 타올랐다. 벽돌 한 장이 안쪽으로 밀렸다.
“이런 게 주소 표시등이야?” 새봄이 중얼거렸다.
안쪽은 폭이 좁은 계단이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도시의 소음이 줄었다. 계단 끝에 낮은 철문과 낡은 초인종이 있었다. 초인종 옆에는 오래된 손글씨로 ‘세탁물은 새벽 네 시 전에 찾아가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새봄은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자 노인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왔다. 그는 새봄이 든 봉투를 보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받지 않겠소.”
“수취인은 강미정 씨예요. 편지를 보낸 분이 누군지는 모르고요.”
“그 이름은 내가 쓰던 세탁소 손님 이름이오.”
“이 주소가 그분 마지막 생활 주소로 남았어요.”
“그럼 기록이 틀렸소.”
노인은 문을 닫으려 했다. 새봄이 봉투를 내밀지 않은 채 물었다. “왜 거부하는지 여쭤봐도 돼요?”
“편지를 안 받겠다는 데 이유가 필요하오?”
“아니요. 다만 반송 기록에 적어야 해요.”
“그럼 ‘이 주소에는 그런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적으시오.”
노인은 허리를 돌렸다. 안쪽에는 세탁기가 없고 낡은 다리미와 옷걸이만 있었다. 문 옆 벽에 여러 사람의 이름이 연필로 적혀 있었다. 이름마다 작은 날짜가 붙어 있었고, 어머니 이름은 제일 아래에 있었다.
“어머니를 아세요?”
“강미정 씨는 여기서 일했소. 빨래를 맡긴 게 아니라, 밤마다 옷을 고쳤지.”
새봄은 봉투를 더 꽉 쥐었다. “우리 어머니는 세탁 일을 한 적 없어요.”
“사람은 낮에 하는 일만으로 기억되지 않소.”
“그럼 편지를 받으세요. 어머니가 이곳에 왔다는 증거가 될 수 있잖아요.”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분에게서 답을 받은 적이 없소. 이제 와서 편지 한 장으로 끝내고 싶지 않아.”
“답을 받았는데도 모르는 척한 건 아니고요?”
노인의 눈빛이 거칠어졌다. “내가 거부한다고 했지, 네 어머니 이야기를 더 하겠다고 한 적은 없소.”
새봄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거절은 편지를 향한 거절이었다. 자신의 질문을 향한 허락은 아니었다. 봉투의 푸른 불빛이 한 번 흔들렸다. 우체국에서 배운 규칙은 정확했다. 수취인이 거부하면 배달 완료. 거절의 뜻을 바꾸려 설득하면 안 됐다.
“알겠습니다. 수취 거부로 기록하겠습니다.”
노인이 놀란 듯 그녀를 보았다. “정말 그냥 가겠소?”
“네. 이 편지는 당신이 받지 않겠다고 했어요. 대신 어머니가 여기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다음에 물어도 될까요?”
“그건 편지를 받는 일과 상관없소.”
“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
노인은 문을 닫지 않았다. “낡은 코트 하나를 수선해 달라고 맡겼지. 주머니가 찢어졌는데, 안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오. 그 편지를 내가 대신 부치겠다고 했고.”
“부쳤어요?”
“아니. 주소를 몰랐소. 그분이 다시 찾으러 오면 돌려주려 했는데, 오지 않았지.”
“그래서 편지를 보관했어요?”
“내가 열면 그분이 맡긴 마음까지 훔치는 것 같았소. 대신 봉투 겉면에 내가 아는 사람들 이름을 써 봤지. 아무도 수취인으로 받겠다고 하지 않았소.”
“왜요?”
“받으면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사람은 답을 모를 때 편지를 더 무서워하니까.”
노인은 낡은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우표 자국이 남은 빈 봉투만 있었다. “코트는 돌려줬어도 이 주소는 기억했소. 누가 편지를 찾으러 돌아올지 몰라서.”
“어떤 편지였어요?”
“열어 보지 않았소.”
새봄은 봉투를 바라봤다. 지금 들고 있는 편지가 그때의 편지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노인은 내용도 발신인도 모른다고 했다.
“어머니가 왜 밤마다 옷을 고쳤죠?”
노인은 문 안쪽 벽에 걸린 누런 코트 자국을 바라봤다. “세탁소에 버려지는 옷이 많았소. 주인은 수선비가 아깝다고 했고, 맡긴 사람은 다시 찾으러 오지 않았지. 그분은 옷 안쪽에 작은 주머니를 달아 이름표와 동전 몇 닢을 넣어 뒀소. 누군가가 그 옷을 입고 떠날 수 있도록.”
“그걸 받은 사람이 있었어요?”
“두 명. 한 사람은 새벽 열차를 타고 떠났고, 다른 사람은 세탁소 뒷방에서 잠을 잤소. 그분은 누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 했지.”
새봄은 손에 든 봉투를 보았다. 어머니가 보낸 편지라면, 받지 못한 답을 요구하는 게 아닐 수도 있었다. 누군가가 떠날 수 있게 한 뒤 자기 몫의 이름을 지우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짐작하는 일조차 어머니를 대신 말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분이 왜 사라졌는지 아시오?”
“그날 코트는 찾아갔소. 누가 기다린다고 하더군. 내가 붙잡을 이유는 없었지.”
“그 코트는 아직 있나요?”
“없소. 수선은 끝냈지만 전달하지 못했지. 몇 년 뒤 우체국 사람이 와서 가져갔소.”
새봄의 목 뒤가 서늘해졌다. “누가 가져갔어요?”
“회색 머리 여자였소. 꼬리가 길었지.”
새봄은 구월을 떠올렸다. “왜 그때 저희 우체국에 말하지 않았어요?”
“그 여자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노인이 문을 닫으려다 다시 멈췄다. “강미정 씨는 편지를 받으러 온 적이 없소. 하지만 코트는 찾아갔어요. 그날 새벽 네 시 전에.”
벽의 작은 시계가 세 시 오십팔 분을 가리켰다. 새봄은 우체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녀는 노인에게 인사하고 계단을 올랐다. 골목에 나오자 봉투의 푸른 빛이 사라졌다.
새봄은 편지를 가방에 넣고, 닫히지 않은 문을 뒤로한 채 자전거를 탔다.
새 주소가 더 생길까 봐 두려웠다.
골목 끝은 여전히 젖어 있었다.
돌아가는 길, 휴대전화가 울렸다. 집주인의 문자였다. ‘입금 안 되면 오전에 짐을 뺍니다.’
새봄은 자전거 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우체국 문은 닫히기 직전이었다. 이목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배달 성공?”
“수취 거부. 어머니는 여기서 일한 적이 있대.”
“그럼 편지는 끝났네.”
“아니. 편지가 끝났다는 뜻이지, 어머니가 남긴 일이 끝났다는 뜻은 아니야.”
구월은 장부에 반송 완료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그 순간 봉투의 뒷면이 젖은 종이처럼 부풀었다. 주소란 아래에 한 줄이 더 나타났다.
‘수취인 강미정의 마지막 주소: 새벽 네 시의 빈 골목.’
구월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누가 이 주소를 봉투에 썼어?”
새봄은 봉투를 내려다봤다. 손글씨는 어머니의 것이었다. 새봄은 반송 도장을 찍은 손을 바라봤다. 어머니가 이 주소를 남긴 까닭을 더는 장부에 맡길 수 없었다. 그녀는 새벽 네 시까지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