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의 1층에서 100년 동안 스탯만 올림

3화: 규격 외의 질량, 부서진 챔버
쿠구구구궁—
두께 30센티미터의 특수 방호 강화유리가 맞물리며 육중한 밀폐음이 울렸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A급 심층 마력 챔버 내부. 천장에 설치된 열두 개의 고출력 마도 프로젝터에서 붉은빛의 집속 스캔 광선이 쏟아져 내렸다.
치지지직!
붉은 광선이 강서후의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훑고 지나갔다.
서후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발바닥 아래 놓인 원형 금속 발판에서 규칙적인 고주파 진동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대상의 체내에 깃든 마력의 총량과 순도, 그리고 신체 스탯의 파동을 읽어내는 정밀 센서였다.
하지만 기계의 회로는 첫 번째 스캔 주기부터 거칠게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스캔 개체: 식별 코드 01-E-4402]
[생체 마력 반응 검색 중……]
[오류: 마력 핵 부재]
[경고: 내부 마력 순환 경로를 감지할 수 없습니다.]
챔버 외부 조종석의 모니터에 샛노란 경고창이 어지럽게 깜빡였다.
"뭐야? 마력이 전혀 없다고?"
단말기를 조작하던 오퍼레이터가 눈을 크게 치켜떴다.
현대 탑의 헌터들은 각성하는 순간 심장이나 단전에 마력 코어를 형성한다. F급의 말단 헌터라 할지라도 실오라기 같은 마나의 흐름이 감지되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뼛속까지 텅 비어 있었다. 마나의 티끌 하나 흐르지 않는 완벽한 무마력 상태였다.
"말도 안 돼. 그럼 아까 로비에서 휴대용 측정기는 어떻게 터뜨린 겁니까?"
오퍼레이터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수석 관측관이 비웃음을 흘렸다.
"흥, 마력도 없는 껍데기 주제에 뼈대만 질기게 타고난 놈이군. 보나 마나 비정상적인 체중과 완력으로 센서를 짓누르고 있는 거다. 신체 스탯 측정 모드로 전환해. 마력 환산 강제 알고리즘 돌려!"
"알겠습니다. 환산 모드 가동합니다!"
오퍼레이터가 붉은색 토글스위치를 망설임 없이 꺾어 올렸다.
위이이잉—!
챔버 천장의 복합 마법진이 푸른색으로 빛을 바꾸며 맹렬하게 회전했다. 마력이 없는 대상의 물리적 근력과 골밀도, 신경 반응 속도를 강제로 측정해 마력 등급으로 역산하는 고위험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기계는 자신이 건드려서는 안 될 영역의 빗장을 열고 말았다.
지지직, 콰직!
서후의 피부 표면에 닿은 푸른 측정 파동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아니, 튕겨 나간 것이 아니었다. 서후가 지닌 무지막지한 신체 스탯의 질량 앞에 기계의 측정 파동이 산산이 으스러지고 있었다.
[경고: 물리적 저항값 과부하!]
[추정 근력 환산치: 3,000…… 8,500…… 19,000……]
[체력 계수: 측정 상한선 도달!]
[스케일 변환 불가! 수치가 폭증하고 있습니다!]
"어, 어어?!"
오퍼레이터의 비명이 조종실을 갈랐다.
계기판의 바늘이 오른쪽 끝을 세차게 때리더니 그대로 뚝 부러져 나갔다. 모니터에 출력되던 수평 그래프는 단 1초 만에 수직으로 치솟아 화면 상단을 뚫고 사라졌다.
5만. 10만. 50만.
탑의 시스템조차 에러 코드를 띄우며 손을 놓았던 백 년 치의 반복 보상.
36,500일 동안 매일 흑암석 골렘의 급소를 찌르고, 그 거대한 암석을 맨주먹으로 부수며 쌓아 올린 순수 육체의 괴력이 협회의 기계망 속으로 거칠게 밀려들었다.
끼기긱! 끼이익!
챔버 바닥 아래 설치된 특수 합금 완충 스프링들이 끔찍한 쇳소리를 토해 냈다.
용의 꼬리치기 충격도 흡수한다는 초탄성 스프링이 한계 이상으로 압축되더니, 이내 엿가락처럼 뒤틀리며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쾅!
바닥을 받치고 있던 강철 프레임이 서후의 발밑에서 우묵하게 꺼져 들어갔다.
서후는 그저 평범하게 두 발로 서 있었을 뿐이었다. 살기를 품은 것도, 힘을 주어 바닥을 구른 것도 아니었다. 단지 기계가 그의 몸에 깃든 무게를 억지로 측정하려 들자, 존재 자체의 질량이 반작용으로 터져 나온 것뿐이었다.
"강제 종료! 당장 정지시켜!"
수석 관측관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오만한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관측관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비상 정지 레버를 향해 몸을 던졌다.
"마력 밸브 차단해! 코어 방출구 열어!"
"안 먹힙니다! 역류하고 있어요! 대상의 신체 압력이 챔버의 내압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오퍼레이터가 패닉에 빠져 절규했다.
쩍, 쩌저적!
마침내 두께 30센티미터의 방호 강화유리에 거대한 균열이 달리기 시작했다.
거미줄 같은 금이 순식간에 챔버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미스릴 합금으로 주조된 외벽 프레임이 굵직한 볼트를 튕겨내며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다.
서후는 유리벽 너머로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지르는 관측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낡은 가죽 코트 자락이 기압 차로 인해 거칠게 펄럭였다. 서후의 메마른 입술이 조용히 달싹였다.
"말했을 텐데."
부서질 거라고.
그 짧은 독백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쿠와아아앙—!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A급 심층 마력 챔버가 내부에서 폭발했다.
폭발은 화염의 형태가 아니었다. 기계가 짓눌린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가며 발생한 순수한 물리적 충격파였다.
콰가가각!
수만 조각으로 깨진 강화유리 파편이 폭풍처럼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미스릴 프레임이 찢겨 나가며 콘크리트 벽면을 강타했다. 조종석에 서 있던 수석 관측관과 오퍼레이터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충격파에 휩쓸려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커헉!"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무장 경비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방호 장비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돌풍 같은 후폭풍에 밀려 바닥을 뒹굴었다.
재측정실의 벽면이 허물어지고 천장의 배관이 터져 나가며 새하얀 수증기와 시커먼 매연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파괴의 진원지.
폭심지의 한가운데에 서후가 서 있었다.
타앙! 타다당!
눈먼 총알처럼 쏟아지던 수천 개의 유리 파편과 날카로운 금속 파편들이 서후의 전신을 덮쳤다.
어떤 파편은 눈동자를 겨누었고, 어떤 파편은 목덜미와 심장을 파고들 기세로 날아들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에 흩뿌려졌을 흉기들이었다.
그러나 파편들은 서후의 살갗에 닿는 순간 맥없이 튕겨 나갔다.
칭! 채앵!
맑은 쇳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서후의 드러난 목덜미에 정면으로 부딪혔지만, 흠집 하나 내지 못하고 오히려 파편 쪽이 산산조각이 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100년 동안 축적된 체력 스탯.
그것은 단순히 오래 달릴 수 있는 지구력이 아니었다.
피부 조직과 근섬유, 골격의 밀도가 초월적인 경지에 도달하여 형성된 불가침의 물리적 방벽이었다. A급 몬스터의 발톱조차 서후의 살갗을 베지 못할 터였다. 하물며 인간이 만든 유리와 철조각 따위가 상처를 입힐 수 있을 리 없었다.
치지지직! 펑!
챔버가 폭발하면서 지하로 연결되어 있던 메인 동력선이 차례대로 타들어 갔다.
스파크가 번쩍이며 재측정실의 형광등이 일제히 깨져 나갔다. 암흑 속에서 붉은색 비상등만이 섬뜩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1층 중앙 통제실은 물론, 드넓은 로비 전체에 울려 퍼지는 최고 등급의 비상 사이렌.
로비 중앙의 거대한 전광판들이 일제히 노이즈를 뿜어내며 꺼져 버렸다.
수천 명의 헌터와 길드 관계자들이 오가던 1층 로비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뭐, 뭐야?! 정전인가?!"
"경보음 소리 들어 봐! 1급 재난 경보잖아!"
"던전 브레이크인가?! 1층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 거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무기를 뽑아 들었다.
공포에 질린 하위 헌터들이 출구를 향해 우왕좌왕 달리기 시작했고, 대형 길드의 베테랑 헌터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대형을 갖췄다.
그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2층 테라스에 서 있던 한미루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미루의 손에 들린 데이터 패드가 기괴한 경고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삐빅, 삐비비빅!
[원격 모니터링 세션 강제 종료]
[사유: 측정 노드 물리적 파괴]
[마지막 수신 로그: ERR-OVERFLOW]
[세부 내용: 신체 물리 질량 한계 초과. 환산 불능 대상.]
"……마력 폭주가 아니야."
미루의 입술 사이로 떨리는 숨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패드에 남은 0.1초 전의 프레임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되감았다.
화면에 잡힌 그래프는 마력 파동의 폭주가 아니었다. 마력 곡선은 0에 고정되어 있었고, 오직 순수 물리 압력 게이지만이 챔버를 부수고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마력을 전혀 쓰지 않고 오직 몸이 가진 순수한 힘과 질량만으로 A급 챔버를 내부에서 찢어발겼다는 뜻이었다.
"말도 안 돼. 인간의 몸이 어떻게 그런 질량을 가져?"
미루의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해든 길드는 지난 3년간 대형 길드들의 정보 독점과 자본력에 밀려 고사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하위 헌터들을 위한 공략법을 개발하려 해도, 상위 길드들이 던전 독점권을 쥐고 흔드는 탓에 진입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기존의 모든 등급 체계와 측정 룰을 비웃듯이 깨부순 괴물이 나타났다.
'잡아야 해.'
분석관으로서의 차가운 계산과 본능적인 직관이 동시에 미루의 뇌리를 강타했다.
저 남자는 단순한 위험분자가 아니었다. 탑의 고착화된 서열과 규칙을 밑바닥부터 뒤엎을 수 있는 미증유의 변수였다.
미루는 패드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망설임 없이 비상계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협회 1층 중앙 통로.
육중한 방호 코트를 걸친 백도겸 감찰관이 긴 보폭으로 복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검은 정장을 입은 특수감찰국 요원 대여섯 명이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요원들의 얼굴은 긴장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감찰관님! 심층 재측정실의 A급 챔버가 완전히 완파되었다고 합니다!"
"부상자는?"
백도겸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건조하게 물었다.
"수석 관측관과 현장 오퍼레이터가 중상을 입고 후송 준비 중입니다. 경비 요원 넷도 충격파로 기절했습니다."
"사망자는."
"놀랍게도…… 없습니다. 하지만 챔버 내부에 있던 피측정자, 그러니까 10년 전 사망자 강서후의 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폭발의 중심에 있었으니 즉사했을 확률이……."
"살아 있다."
백도겸이 요원의 말을 매몰차게 잘랐다.
그의 손에 들린 녹음 펜이 규칙적인 금속음을 내며 딸깍거렸다.
"그 챔버는 밖에서 터진 게 아니다. 안에서 터져 나온 거지. 애초에 그걸 터뜨릴 만한 놈이 그깟 파편에 맞아 죽겠나?"
백도겸의 서늘한 시선이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복도 끝, 심층 재측정실의 방호 셔터로 향했다.
10년 전 튜토리얼 01구역.
공식 기록에는 단순한 차원 마력 폭주로 수백 명의 신입 헌터가 생매장당한 비극으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협회 감찰국의 비밀 서고 깊숙한 곳에는 다른 기록이 잠들어 있었다.
탑의 관리자들과 결탁한 교단 세력이 초기 등반자들을 제물로 삼아 무언가 기괴한 실험을 벌였다는 의혹.
그리고 그 의혹의 중심지였던 01구역에서 10년 만에 한 남자가 살아서 걸어 나왔다.
치이익—
백도겸이 손을 뻗어 반쯤 찌그러진 재측정실의 비상 레버를 당겼다.
육중한 철문이 끼기긱 비명을 지르며 위로 올라갔다. 매캐한 탄내와 함께 희뿌연 연기가 복도로 쏟아져 나왔다.
스파크가 튀는 어둠 속에서 백도겸이 천천히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바닥은 온통 날카로운 유리 파편과 찢겨 나간 철판투성이였다. 벽면은 폭압에 밀려 둥글게 파여 있었고,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관측 요원들이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방의 정중앙.
산산조각 난 챔버의 잔해를 밟고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서후는 잿빛 가죽 코트 자락을 가볍게 털어내고 있었다. 옷에 묻은 먼지가 흩날릴 뿐, 그의 몸 어디에도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상처는커녕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서후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가 문가에 선 백도겸과 마주쳤다.
백도겸은 숨을 들이켰다.
오랜 세월 수많은 S급 헌터와 고위 관료들을 심문해 온 그였지만, 눈앞의 남자가 풍기는 기운은 그 누구와도 달랐다.
살기를 뿜어내며 으스대는 맹수의 그것이 아니었다.
억겁의 세월 동안 깊은 심해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거대한 암초를 마주한 것 같은 묵직함. 인간의 감정이 완전히 마모된 채 오직 생존과 살육의 효율만을 남긴 절대자의 무표정이었다.
서후가 찢겨 나간 미스릴 파편을 발끝으로 툭 차며 낮게 입을 열었다.
"내가 부서질 거라고 했을 텐데."
메마른 음성이 폐허가 된 측정실 안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백도겸은 안주머니에서 협회 특수감찰관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협회 특수감찰국 백도겸 감찰관입니다."
백도겸이 서후를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발밑에서 유리 조각이 바스락거리며 깨졌다.
"10년 전 튜토리얼 01구역에서 사망 처리된 E급 헌터 강서후 씨. 맞습니까?"
"맞다."
"당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는 협회 차원에서 정밀 조사가 필요합니다. 지금 로비와 전산망이 당신 때문에 완전히 마비되었어요. 대형 길드의 시선도 전부 이곳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백도겸의 녹음 펜이 깜빡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본부로 가시죠. 당신이 지난 10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01구역을 닫았던 자들이 누구인지 전부 밝혀내야 합니다."
서후는 백도겸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감찰관이라는 자의 눈빛에는 다른 협회 놈들과 같은 오만함이나 탐욕이 없었다. 대신 집요한 의심과 진실을 파헤치려는 서늘한 집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서후는 고분고분 끌려갈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100년 만에 나온 바깥세상이었다. 협회의 조사실이나 취조실 따위에 갇혀 시간을 낭비할 여유는 없었다.
서후가 입을 열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타닥, 타닥.
통제 구역 외곽의 어수선한 인파를 뚫고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재측정실 문가에 한 여성이 숨을 헐떡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카키색 필드 재킷을 입은 한미루였다.
미루의 눈동자가 폐허가 된 챔버와 그 한가운데 멀쩡히 서 있는 서후의 모습을 포착했다.
그녀의 눈에 경악과 함께 강렬한 확신의 불꽃이 타올랐다.
미루는 서후를 향해 조용히, 그러나 그 누구보다 또렷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여기서 벗어나야 해요.'
백도겸의 날카로운 시선이 문가의 미루를 향해 돌아갔다.
협회의 칼날과 길드의 계산, 그리고 100년 만에 지상으로 올라온 괴물의 시선이 얽혀 들며 팽팽한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