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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의 호위기사로 취직했습니다8화

여주인공의 호위기사로 취직했습니다

여주인공의 호위기사로 취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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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1분이면 충분합니다

바람을 가르는 여섯 자루의 장검이 일제히 은빛 궤적을 그리며 쏘아져 들어왔다.

체스터 공작가의 기사들은 수도 경비대나 어설픈 용병 따위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제국 최상위 대공가의 위세를 지탱하는 정예들답게 발을 내딛는 보법과 검을 쥔 손목의 각도에는 빈틈이 없었다.

그들은 에린 자작가의 일개 호위기사 하나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토막 낼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죽여라! 살점을 저잣거리에 뿌려버려라!”

전복된 마차 바퀴 옆에 처박힌 에드윈이 핏대를 세우며 악을 썼다. 와인으로 얼룩진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선두에 선 두 명의 기사가 전술 간격을 유지한 채 좌우에서 협공해 왔다.

왼쪽 기사는 로잘린의 상체를 노리는 사선 베기였고 오른쪽 기사는 퇴로를 차단하는 묵직한 하단 찌르기였다. 둘의 검끝이 교차하는 지점에는 피할 틈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로잘린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반 걸음 앞으로 파고들었다.

챙강!

날카로운 마찰음이 고막을 때렸다. 로잘린은 오른손에 쥔 낡은 검을 비스듬히 기울여 왼쪽 기사의 칼날을 미끄러뜨렸다. 칼날과 칼날이 맞부딪치며 튀는 불꽃 사이로 로잘린의 서늘한 흑요석 눈동자가 번뜩였다.

“하나는 궤적이 너무 크고.”

로잘린은 검을 흘려낸 반동을 그대로 이용해 몸을 반 바퀴 회전시켰다. 동시에 왼손에 쥔 단검의 손잡이 끝(폼멜)으로 왼쪽 기사의 턱밑을 정밀하게 내리찍었다.

턱뼈가 울리는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기사의 고개가 꺾였다. 그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찰나 로잘린의 오른발이 번개처럼 뻗어나가 오른쪽 기사의 무릎 오금을 정확히 걷어찼다.

우두둑!

“큭!”

하단을 노리던 기사의 무릎이 바닥에 처박혔다. 로잘린은 무방비하게 드러난 그의 손목 관절을 단검 칼등으로 가볍게 후려쳐 쥐고 있던 장검을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떨어지는 검을 발끝으로 걷어차 전복된 마차 바퀴 살에 꽂아 넣은 로잘린이 차갑게 읊조렸다.

“15초 경과. 둘.”

시작된 지 불과 열다섯 걸음의 호흡도 지나지 않은 순간이었다.

선두의 두 기사가 피를 토하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무, 무슨 짓을 한 거냐!”

뒤따르던 네 명의 기사가 경악하며 걸음을 멈췄다.

일개 자작가의 고용 기사가 대공가의 정예 기사 둘을 칼을 뽑아 제대로 맞대기도 전에 맨손과 단검 자루만으로 무력화해 버린 것이었다.

골목 어귀와 상점가 처마 밑에서 숨죽여 지켜보던 시민들 사이에서 억눌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돼... 저 사내들은 체스터 공작가의 사자 기사단이잖아?”

“어떻게 검을 맞부딪치자마자 꺾여 나가는 거지?”

마르센은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품에 꼭 안은 채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곁에서 창을 고쳐 쥐고 있던 베른의 눈에도 짙은 충격이 서려 있었다.

“기교가 아니다. 저건 사람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무력화하는 군용 실전 체술이야.”

베른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남은 네 명의 기사들은 물러설 수 없었다. 주군인 에드윈 공작이 뒤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고 이대로 물러선다면 가문의 치욕이자 기사로서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방심하지 마라! 마력을 실어라!”

조장으로 보이는 가장 덩치 큰 기사가 고함을 내질렀다.

순식간에 네 자루의 검신 위로 푸르스름한 마력이 피어올랐다. 단순한 검술이 아니라 제국 공작가 기사들만이 연마하는 실전 검기 결속이었다. 칼날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공기가 찢어지는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살상 모드로 전환한 네 기사가 부채꼴 형태로 로잘린을 포위해 들어왔다.

“영애님, 물러서 계십시오.”

로잘린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낮게 말했다.

클라라는 가슴을 움켜쥐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의 맑은 녹송석 눈동자는 로잘린의 은빛 머리칼과 서늘하게 뻗은 어깨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로잘린, 조심해요!”

네 명의 기사가 일제히 도약했다.

상단, 중단, 좌우 측면에서 마력을 머금은 네 줄기 검섬이 공간을 찢으며 로잘린의 목과 심장, 팔다리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피할 수 있는 각도는 없었다.

그 찰나 로잘린의 몸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순발력으로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것이었다.

그녀는 전복된 마차의 차체를 가볍게 딛고 공중에서 한 바퀴 역회전했다. 낙하하는 로잘린의 낡은 검신을 따라 은백색의 서늘한 기운이 칼날을 감쌌다.

마력 상쇄 검기였다.

마법사의 주문이나 기사의 인위적인 마력 결속을 근본부터 끊어버리는 실전의 비기.

챙-그랑!

허공에서 벼락같은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로잘린의 검날이 스쳐 지나간 순간 네 기사의 검을 감싸고 있던 푸른 마력이 유리창이 깨지듯 산산조각 났다. 결속된 마력이 강제로 파괴되자 역류한 충격파가 기사들의 손목과 어깨를 강타했다.

“커헉!”

기사들이 마력 반동으로 비명을 지르며 주춤거렸다.

그 빈틈을 로잘린이 놓칠 리 없었다.

지면에 가볍게 착지한 로잘린은 바람처럼 파고들었다. 왼손의 단검 손잡이로 셋째 기사의 명치를 짓찧었고 회전하는 원심력을 실은 팔꿈치로 넷째 기사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투구가 우그러지며 두 기사가 동시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어 다섯째 기사가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돌진해 오자 로잘린은 그의 검신 안쪽으로 파고들어 어깨로 그의 흉갑을 들이받았다.

쿵!

거대한 쇳소리와 함께 다섯째 기사의 육중한 몸이 길가의 석재 가로등 기둥에 처박히며 맥없이 늘어졌다.

“40초 경과. 다섯.”

차분하게 숫자를 세는 로잘린의 숨결은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대로변 교차로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불과 사십 초 만에 다섯 명의 무장 기사가 바닥에 쓰러져 끙끙 앓고 있었다.

피비린내 대신 부러진 강철 냄새와 짓밟힌 먼지 냄새만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이제 남은 것은 마력을 두르고 있던 기사단 조장 한 사람뿐이었다.

조장은 떨리는 손으로 검자루를 고쳐 쥐었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식은땀이 눈가를 적셨지만 닦아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눈앞에 선 여자는 괴물이었다.

귀족 가문의 호위기사가 아니라 전장의 참호 속에서 수천 번의 살육을 겪어낸 망령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칼날을 부딪치기도 전에 상대의 체중 이동과 호흡을 읽어내고 가장 적은 힘으로 뼈와 관절을 꺾어버리는 완벽한 살상과 제압의 예술.

“네, 네년의 정체가 뭐냐... 일개 자작가의 기사가 이런 검술을 쓸 리 없다!”

조장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로잘린은 대답 대신 검끝을 천천히 들어 올려 그의 미간을 겨누었다.

“말이 많군요. 아직 1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오만한 년이!”

조장이 마지막 남은 모든 오러를 끌어모아 검신에 쏟아부었다. 붉은빛이 감도는 폭발적인 검기가 길바닥의 보도블록을 뜯어내며 폭풍처럼 쇄도했다.

공작가의 수석 기사다운 필살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로잘린의 눈에는 그 처절한 일격마저도 지나치게 느리고 투박했다.

로잘린은 검기를 향해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검기가 그녀의 옷자락을 스치기 직전 로잘린의 상체가 물결치듯 유연하게 비틀렸다. 검기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흘려보낸 로잘린의 오른손 검이 조장의 칼날 밑동을 쳐올렸다.

쨍강!

조장의 검이 허공으로 치솟으며 빙글빙글 돌았다.

검을 놓친 조장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 순간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그의 목젖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로잘린의 왼손에 쥐인 단검 날이 조장의 목덜미 피부에 정확히 밀착되어 있었다. 힘을 조금만 더 주면 경동맥이 끊어질 위치였다.

조장의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항복... 항복한다...”

조장이 파랗게 질린 입술로 더듬거렸다.

로잘린은 허공에서 떨어지는 조장의 검을 가볍게 발등으로 받아낸 뒤 에드윈의 발치 앞으로 툭 차 던졌다.

검이 돌바닥에 부딪치며 맑은 쇳소리를 냈다.

로잘린이 품 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보듯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55초. 전원 무력화 완료.”


정적.

대로변을 가득 메운 수백 명의 시선이 바닥에 나뒹구는 여섯 기사와 홀로 우뚝 선 로잘린에게 꽂혔다.

1분.

정말 단 1분 만에 제국 최고 공작가의 정예 기사단이 단 한 명의 여검사에게 완벽하게 분쇄당했다. 그것도 칼날로 목을 베어 죽인 것이 아니라 제국 호위 기사법에 따른 비살상 무력 제압으로 말이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에드윈은 공포로 턱을 덜덜 떨었다.

와인과 흙먼지로 뒤범벅이 된 그의 고급 벨벳 코트는 더 이상 귀족의 권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사각, 사각.

부츠가 자갈을 밟는 일정한 소리가 에드윈의 귓전을 때렸다.

로잘린이 검을 검집에 절반쯤 밀어 넣은 채 에드윈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오, 오지 마라! 물러서라!”

에드윈이 엉덩이를 뒤로 빼며 비명을 질렀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체스터 공작가의 후계자다! 감히 내 기사들을 상해하고 나를 위협해? 이건 황실에 대한 반역이다!”

로잘린은 에드윈의 코앞 세 걸음 거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에드윈을 내려다보았다.

“제국 형법 제104조 특수폭행 및 사유지 무단침입 미수. 동법 제112조 폭행 교사죄.”

로잘린의 낭랑한 목소리가 대로변 전체에 울려 퍼졌다.

“공작께서는 정당한 공무 집행 권한 없이 무장 기사들을 동원해 사유지 도로를 불법 봉쇄하고 에린 자작가의 적법한 통행을 방해했습니다. 또한 본 기사에게 불법적인 살해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 그건 황실 자선회의...!”

“황실 자선회 준비 위원이라는 직함은 타인의 신체를 강제로 구속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방금 전의 무력 행사는 제국 호위 기사법 제4조에 의거한 정당방위이자 주군의 신체적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적법한 호위 조치였습니다.”

로잘린이 허리를 숙여 바닥에 뒹굴던 체스터 공작가의 사자 문장 인장을 발끝으로 짓밟았다.

오도독 소리와 함께 붉은 밀랍 인장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공작님.”

로잘린의 목소리에는 서슬 퍼런 살기가 묻어 있었다.

“다음번에 영애의 길을 가로막는다면 부서지는 것은 마차 바퀴나 기사들의 뼈마디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 서슬에 질린 에드윈은 딸꾹질을 하며 숨을 삼켰다.

그 순간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시민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다.

“저것 봐, 공작이 자작가 영애를 억지로 데려가려다가 호위기사한테 호되게 당했나 봐.”

“기사 여섯 명이 1분 만에 뻗었다며? 세상에 저런 대단한 여검사가 어디서 나타난 거지?”

“와인에 젖어서 길바닥을 기어 다니는 꼴이라니... 저게 무슨 제국 대공가 후계자야?”

비웃음과 손가락질이 에드윈의 전신을 채찍처럼 내리쳤다.

평생 귀족들의 칭송과 아첨 속에서 살아왔던 에드윈에게 시민들의 노골적인 조롱은 살을 에는 칼날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었다.

수치심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에드윈은 피를 토하듯 이를 갈았다.

“너... 너희들... 후회하게 될 거다! 내 기필코 에린 가문을 파멸시키고 네년의 가죽을 벗겨낼 테다!”

에드윈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서진 마차 뒤편에 대기하고 있던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았다.

그는 쓰러진 기사들을 챙길 여유도 없이 도망치듯 골목길 너머로 사라졌다.

대로변을 가로막고 있던 검은 마차들과 바리케이드가 맥없이 허물어졌다.

에린 자작가 앞길을 옭아매고 있던 감금의 족쇄가 완전히 산산조각 난 순간이었다.


“와아아아!”

어디선가 구경하던 상인 한 명이 환호성을 질렀다.

폭압적인 공작가의 횡포에 짓눌려 숨죽이고 있던 시민들이 하나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마르센은 안경을 벗어 눈물을 훔쳤고 베른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로잘린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괴물... 아니 진짜 제국 최고의 기사다...”

로잘린은 검을 완전히 검집에 밀어 넣었다.

달칵, 하는 단정한 쇠소리와 함께 그녀의 서늘했던 눈빛이 본래의 담담한 평정심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클라라가 서 있었다.

클라라는 양손을 가슴에 모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 자신의 삶을 짓누르던 거대한 권력과 공포가 눈앞에서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목격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가슴 벅찬 전율 때문이었다.

자신을 괴롭히고 위협하던 오만한 귀족이 길바닥에 쓰러져 도망쳤다.

자신의 호위기사가 오직 자신만을 지키기 위해 검을 뽑아 그 모든 폭력을 물리적으로 깨부숴 주었다.

클라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흘러내린 눈물은 슬픔이나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억눌려 있던 영혼이 비로소 자유를 찾았을 때 터져 나오는 환희의 눈물이었다.

“로잘린...”

클라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로잘린의 이름을 불렀다.

로잘린은 클라라의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호위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영애님. 주군의 길을 가로막던 모든 장애물을 치웠습니다.”

로잘린의 차분하고 단단한 목소리가 클라라의 귓가를 울렸다.

클라라는 천천히 손을 뻗어 로잘린의 단단한 어깨를 감싸 쥐었다.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기사의 체온이 그녀에게 무한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클라라는 눈물을 훔치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에는 이전의 유약함이나 망설임은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고마워요, 로잘린. 당신이 제 길을 열어주었어요.”

클라라는 마르센이 들고 있던 서류 가방에서 토마스의 자백서와 정문 파손 기록 장부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 대로변 너머 황실 행정원과 중앙 법무원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가요, 로잘린. 이제는 우리가 에드윈 공작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차례예요.”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로잘린이 일어나 클라라의 반 걸음 뒤에 섰다.

햇살이 쏟아지는 수도의 대로변 위로 두 여인의 결연한 발걸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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