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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조사 피하려다 국민 헌터의 계약 연인이 되었다10화

세무조사 피하려다 국민 헌터의 계약 연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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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내 연인에게 무례하군요

루시안 벨로크가 치켜든 감찰 영장의 붉은 인장이 정오의 햇살 아래 번들거렸다.

"에셀 영지는 즉시 제국에 몰수될 것이며 영주 당신은 쇠사슬에 묶여 황도 감옥으로 압송될 것입니다."

그 잔인한 선고가 광장의 공기를 단숨에 얼려 붙였다.

입구 쪽에 늘어서 있던 영지민들과 던전 손님들의 숨소리가 일제히 멎었다. 조금 전까지 슬라임 쉐이크를 마시며 웃던 귀족 청년의 손에서 유리잔이 미끄러질 뻔했다. 환전소 창구 뒤편의 직원들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영주를 바라보았다.

제국 재무부와 델마르 교단의 합동 감찰. 그것은 변방의 이름 없는 영지 하나쯤은 서류 한 장으로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이었다.

에블린은 이를 악물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 들어갔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야.'

에셀 코인의 조례도 안전 자문 계약서의 조항도 저들이 마음먹고 짓밟으려 든다면 시간을 버는 방패에 불과했다. 루시안은 이미 결론을 내리고 온 사냥개였다.

그녀가 반박을 위해 입술을 떼려던 찰나였다.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번져 나왔다.

묵직하고 차가운 발소리가 돌바닥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카일 폰 델마르였다.

그가 에블린의 곁을 지나쳐 루시안의 코앞에 멈춰 섰다.

은발 사이로 드러난 서늘한 청안이 감찰 사제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광장의 온도가 순식간에 몇 도는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데…… 델마르 경?"

루시안이 흠칫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방금 전까지 에블린을 몰아세우던 오만한 태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길고 단단한 손가락을 뻗어 루시안의 코앞에 들려 있던 감찰 영장의 모서리를 툭 건드렸다.

쩌적.

마찰음과 함께 영장 가장자리에 서릿발 같은 냉기가 맺히더니 종이가 힘없이 아래로 꺾였다. S급 헌터의 순수한 마력이 뿜어내는 무언의 경고였다.

루시안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지…… 지금 공무를 집행 중인 감찰관에게 위력을 행사하는 겁니까? 경이 아무리 제국의 영웅이라 해도 교단과 황실의 법도를……!"

"말을 조심해."

카일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서슬 퍼런 살기는 광장에 선 모두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누구를 쇠사슬로 묶어 어디로 끌고 가겠다고?"

"경! 이 여자는 조세 포탈 혐의자입니다! 경의 명성을 도용해 불법 자금을 세탁하고 교단을 농락한 사기꾼이란 말입니다!"

루시안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 순간 카일이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에블린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제 품 안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

"앗……!"

에블린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시야가 핑 돌며 코끝에 시원한 박하 향과 은은한 햇살 냄새가 훅 끼쳐왔다. 단단한 흉통이 에블린의 뺨에 닿았다. 카일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며 완벽하게 자신만의 영역 안으로 가두어 넣었다.

광장 전체가 충격으로 뒤흔들렸다.

카일이 에블린의 정수리에 턱을 괸 채 루시안을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내 연인에게 무례하군요. 벨로크 감찰관."

그 한마디가 광장에 폭탄처럼 떨어졌다.

루시안의 턱이 덜컥 떨어졌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심하게 흔들렸다.

"여…… 연인이라니! 델마르 경, 제정신입니까? 교단의 성검이신 분이 어찌 이런 변방 영지의 장사꾼 계집 따위와……!"

"계집?"

카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마력 파동이 파도처럼 루시안을 덮쳤다.

쿠구궁!

광장의 돌바닥이 비명을 지르듯 진동했다. 루시안이 비틀거리며 두 발자국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카일은 품에 안긴 에블린의 어깨를 더욱 단단히 쥐었다.

"한 번만 더 그 천박한 입으로 에블린을 모욕하면 교단 감찰관이고 뭐고 네 혓바닥부터 뽑아 버리겠다."

루시안은 숨을 들이켜지도 못하고 굳어 버렸다. 저 남자는 빈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자신을 도륙 낼 수 있는 제국 최강의 무력이 눈앞에서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루시안도 교단에서 뼈가 굵은 간부였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영장을 다시 그러쥐었다.

"거…… 거짓말입니다! 증거가 없습니다! 세무 조사를 모면하려고 지금 급조해 낸 연극에 불과합니다! 내일 정오 청문회에서 두 분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증명?"

카일이 조소하듯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는 에블린의 턱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시선이 에블린의 입술로 떨어졌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영지민들이 보는 앞에서 입을 맞춰 증명해 주면 되겠나?"

에블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귓가에 닿는 카일의 숨결이 불꽃처럼 뜨거웠다. 장난이 아니었다. 카일의 눈빛은 루시안이 한 번만 더 지껄인다면 정말로 이 자리에서 입술을 겹쳐 버릴 기세였다.

"히익……!"

루시안이 마침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삼켰다.

S급 헌터 카일 폰 델마르가 영지민 수백 명이 보는 길거리에서 영주와 입맞춤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자리에서 더 버텼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루시안은 피가 배어 나오도록 입술을 깨물며 뒤로 돌아섰다.

"이…… 이 오만방자한 행태는 즉시 본당과 황실 재무부에 낱낱이 타전할 겁니다! 후회하게 될 겁니다. 델마르 경! 영주 당신도 마찬가지요!"

루시안은 마차 문을 부서질 듯 열어젖히고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출발해! 당장 출발하란 말이다!"

마차를 끌던 마수들이 거칠게 울부짖으며 바퀴를 굴렸다.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검은 마차가 영지 정문 밖으로 도망치듯 내달렸다.


루시안의 마차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후에도 광장에는 기이한 침묵이 감돌았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가을바람이 흙먼지를 쓸고 지나가는 소리만이 텅 빈 공기를 채웠다.

그리고 몇 초 뒤.

와아아아아아!

마치 둑이 터진 것처럼 폭발적인 함성과 웅성거림이 광장을 뒤덮었다.

"방금…… 내가 들은 게 맞아? 카일 님이 방금 뭐라고 하셨어?"

"내 연인……! 내 연인이라고 하셨잖아!"

"세상에 맙소사! 제국 최고의 헌터 카일 폰 델마르가 우리 영주님의 연인이었단 말이야?!"

"어쩐지! 정화석 옆에서 둘이 붙어 있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 했어!"

"마탑 연예지에서 맨날 찾던 카일 님의 비공개 연인이 우리 에블린 님이었다니!"

슬라임 카페 앞의 손님들은 음료를 팽개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환전소 직원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비명을 질렀으며 광장의 모험가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 아수라장 한가운데에서 에블린은 여전히 카일의 품에 안겨 있었다.

단단한 팔이 에블린의 어깨와 허리를 감싸 쥔 채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카일의 심장 박동이 그녀의 뺨을 타고 규칙적으로 울렸다.

에블린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간신히 수습하며 카일의 가슴을 살짝 밀어냈다.

"카일 님."

"……."

"저기요. 카일 님. 사제는 도망쳤어요. 이제 손 놓으셔도 돼요."

그제야 카일의 푸른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천천히 팔을 풀었다. 하지만 손길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에도 그의 시선은 에블린의 얼굴에서 조금도 빗겨나지 않았다.

에블린은 헛기침을 삼키며 옷깃을 여몄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루시안의 위협 때문인지 아니면 방금 귓가를 간질였던 카일의 숨결 때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녀는 황급히 한스를 돌아보았다.

한스는 기둥 뒤에서 턱이 빠진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한스!"

"예! 예, 영주님! 아니, 예!"

한스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광장의 손님들을 진정시키세요. 슬라임 카페와 환전소는 정상 영업을 유지하되 입구 통로는 안전을 위해 정돈해 주세요. 외부 기자나 수상한 인영이 보이면 즉시 보고하시고요."

"그…… 그럼 두 분의 관계에 대해서는…… 손님들이 계속 물어볼 텐데요……."

에블린은 슬쩍 카일을 흘겨보았다. 카일은 태연한 얼굴로 서 있었다.

"영주성 차원의 공식 입장이 곧 발표될 거라고만 전하세요. 카일 님, 따라오세요."

에블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영주성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카일은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쾅.

영주성 집무실의 두꺼운 참나무 문이 닫히자마자 에블린이 홱 돌아섰다.

"카일 님, 제정신이에요?!"

참아왔던 목소리가 한 번에 터져 나왔다.

"루시안을 쫓아내 주신 건 고마워요. 정말 시원했고요. 하지만 방금 그건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잖아요!"

카일은 방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그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에블린을 내려다보았다.

"뭐가 선을 넘었다는 거지?"

"뭐가요? '내 연인에게 무례하군요'? 게다가 '지금 이 자리에서 입을 맞춰 증명해 주면 되겠나'라니요! 그게 S급 헌터 입에서 나올 소리예요?!"

에블린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우리가 맺은 건 조용히 세무 감찰만 넘기기 위한 7일짜리 비공개 계약이었어요! 그런데 광장에 모인 수백 명 앞에서 그렇게 소리를 쳐 버리면 어떡해요!"

"그럼 가만히 보고만 있으란 뜻이었나?"

카일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의 한마디에 집무실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카일이 에블린을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그 사제 놈이 네 몸에 쇠사슬을 채우겠다고 지껄였다. 영지를 몰수하고 너를 황도 감옥으로 압송하겠다고 했어."

"그건…… 법적으로 겁을 주려고 한 말이었잖아요. 제가 대법원 판례를 들이밀며 시간을 끌었으면……."

"그자는 법 따위를 들으러 온 놈이 아니다."

카일이 에블린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교단과 재무부가 보낸 사냥개야. 처음부터 꼬투리를 잡아 너를 무너뜨리고 이 영지를 손에 넣으려는 목적 하나로 온 자다. 그런 놈에게 서류 뭉치를 흔들어봐야 아무 소용없어."

카일의 푸른 눈동자 속에서 억눌린 불꽃이 일렁였다.

"네가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꼴을 내가 보고만 있어야 했나?"

에블린은 숨을 멈추었다.

카일의 얼굴에는 거짓이나 계산 따위는 없었다. 오직 날것 그대로의 분노와 에블린을 지켜내야 한다는 지독한 결의만이 서려 있었다.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합리적인 선을 넘은 것은 에블린이 아니라 카일이었다.

하지만 그 무모함의 이유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에블린의 가슴속 깊은 곳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그래도 너무 위험해요."

에블린이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루시안은 이미 마차 안에서 황도로 통신구를 띄웠을 거예요. 몇 시간 뒤면 교단 본당과 황실 재무부 그리고 제국의 모든 신문사가 발칵 뒤집힐 텐데요. 카일 님의 팬덤인 '델리아'는 또 어떻고요? 그들이 영지로 몰려오면 감당할 수 있겠어요?"

"상관없다."

카일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교단이든 델리아든 내가 감당할 몫이다. 너는 네 영지만 지키면 돼."

에블린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제국 최고의 권력과 수천만 명의 팬덤을 등 뒤에 둔 남자가 고작 빚더미 변방 영주의 안전을 위해 제 모든 것을 내던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남자 정말 바보 아니야?'

하지만 그 바보 같은 진심이 에블린의 차가웠던 현실 감각을 세차게 흔들어 놓았다.

에블린은 심호흡을 깊게 내쉬며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녀의 눈동자에 다시 익숙한 계산의 빛이 돌아왔다.


"좋아요."

에블린이 집무실 책상 앞으로 걸어가 의자를 빼고 앉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우리가 가장 값비싸게 팔아치워야죠."

카일의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갔다.

"팔아치운다니?"

"카일 님이 방금 던진 그 폭탄 말이에요."

에블린은 책상 서랍에서 백지 몇 장과 잉크병을 꺼내 놓았다. 깃펜을 집어 든 그녀의 손놀림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루시안이 교단에 뭐라고 보고하겠어요? 카일 폰 델마르가 에셀 영주와 눈이 맞아 공무 집행을 방해했다고 하겠죠. 그럼 교단과 재무부는 우리를 어떻게 처리하려 들까요?"

카일이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비밀리에 덮으려 할 거다. 내 이탈과 스캔들은 교단에 치명적인 약점이니까. 그 후에는 은밀히 기사단을 파견해 영지를 봉쇄하고 나를 강제로 압송하려 하겠지."

"맞아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목을 조르는 것. 그게 권력자들의 특기죠."

에블린의 깃펜이 사각거리며 종이 위를 내달렸다.

"하지만 전 제국민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요?"

카일의 시선이 종이 위에 적히는 글자들로 향했다.

"내일 아침이면 황도 신문사들이 특종을 쏟아낼 거예요. '제국 최고의 영웅 카일 폰 델마르, 변방의 영주와 세기의 열애!' 그 소식을 들은 기자들과 음유시인들 그리고 수만 명의 팬들이 어디로 몰려올까요?"

"……이곳 에셀 영지로 몰려오겠군."

"빙고."

에블린이 고개를 들며 활짝 웃었다. 그 미소는 영락없는 승부사의 얼굴이었다.

"온 제국민의 눈과 귀가 에셀 영지에 쏠려 있는 동안 교단이 우리를 비밀리에 공격할 수 있을까요? 광장에 수천 명의 기자가 진을 치고 있는데 감찰 사제들이 쇠사슬을 들고 영주성에 쳐들어올 수 있겠냐고요."

카일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감탄이 새어 나왔다.

"스캔들을 방패로 삼겠다는 건가."

"방패이자 최고의 황금알이죠."

에블린이 작성한 종이를 카일 쪽으로 쓱 밀었다.

[에셀 영지 긴급 종합 대책안]

  1. 환전소 3배 확충 및 에셀 코인 발행량 500% 증대.
  2. 슬라임 카페 및 던전 1구역 24시간 철야 운영 체제 전환.
  3. 황도 언론사 전용 프레스룸 개설 및 유료 취재석 판매.
  4. 카일 & 에블린 공식 연인 데이트 코스 기획 및 던전 스트리밍 준비.

종이를 읽어 내려가던 카일의 입꼬리가 어이없다는 듯 씰룩였다.

"내 스캔들로 입장료와 코인을 팔아 치우고 취재석까지 돈을 받고 팔겠다고?"

"당연하죠!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않는 건 상인에 대한 모욕이에요. 게다가 데이트 코스를 공개하면 사람들은 우리를 완벽한 연인으로 믿을 테고 교단의 위장 계약 의혹은 자연스럽게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

에블린은 당당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카일 님의 압도적인 인지도가 우리의 방패예요. 그 방패를 유지하는 대가로 저는 영지의 수익을 불리고 카일 님에게는 교단이 침범할 수 없는 완벽한 은신처를 제공하는 거죠. 어때요, 훌륭한 협업이죠?"

카일은 종이와 에블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영지가 몰수될 위기에 처했던 여자가 불과 몇 분 만에 제국 전체를 상대로 한 거대한 사업판을 짜 올리고 있었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벅차올랐다. 이토록 당차고 거침없는 사람은 평생 처음이었다.

카일이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그의 커다란 손이 책상 위를 짚으며 에블린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혀왔다. 은빛 머리칼이 흘러내리며 에블린의 뺨을 스쳤다.

"지독하군."

카일의 낮게 긁는 음성이 에블린의 귓가를 울렸다.

"하지만…… 마음에 들어."

그의 청안에 짙은 호선이 그려졌다.

"기왕 판을 벌였으니 끝까지 제대로 해보지, 내 연인."

에블린의 목덜미가 다시 붉게 달아올랐다. 카일은 그 반응을 즐기듯 입꼬리를 올린 채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집무실 창밖의 하늘이 번쩍였다.

콰르릉!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 하늘을 가르며 수십 개의 붉고 푸른빛의 통신 마법구들이 수도 방향에서 유성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황도 최고의 신문사들과 교단 본당이 보낸 긴급 확인 전령들이었다.

제국 전역을 뒤흔들 세기의 스캔들이 마침내 막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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