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옥상에 농장을 열었습니다

3화: 첫 수확은 거래가 아니다
아침에 길드 조사팀은 농장의 작물을 봉인하겠다는 통지서를 보냈다. 수확물의 소유권을 확인할 때까지 부산물과 접촉한 작물은 반출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든은 토마토를 따지 않았다. 누리는 격리 경계를 보강했고 선우는 통지서의 적용 범위를 확인했다.
“부산물 반출 규정은 있지만, 작물 소유권까지 자동으로 길드에 넘어간다는 조항은 없습니다.”
“그럼 이 작물은 누구 것입니까?” 이든이 물었다.
“토양과 씨앗을 제공한 사람을 확인해야 해요. 건물 소유자와 임시 재배 계약도 봐야 하고요.”
선우는 길드 규정을 그대로 읽지 않고 계약서의 항목을 하나씩 대조했다. 옥상의 토마토는 이든이 가져온 씨앗이었고, 화분과 흙도 개인 소유였다. 문제는 검은 비늘의 소유권이었다. 비늘이 작물 회복에 영향을 주었다면 길드가 수확물 일부를 요구할 수 있었다.
“수확을 나누는 조건으로 부산물 시험 허가를 연장할 수 있어요.” 선우가 말했다.
“이 작물은 아직 안전하지 않습니다.” 누리가 반박했다.
“판매하자는 게 아니에요. 길드가 표본으로 가져가겠다는 겁니다.”
이든은 뿌리의 반응을 확인하고 결정하자고 했다. 그는 화분을 옮기지 않고, 먼저 토양의 마력 농도를 측정했다. 전날보다 수치는 낮아졌지만, 뿌리 끝은 금속 덮개에 더 가까워졌다. 작물은 비늘을 흡수하면서 게이트 방향을 찾고 있었다.
“뿌리를 잘라 내면 성장을 멈출 수 있습니다.”
“뿌리 끝이 오염을 끌어당기는 상태라면, 자르는 순간 안에 있던 포자가 퍼질 수 있어요.” 누리가 말했다.
“그럼 안전한 방법은?”
“모릅니다. 제가 모른다는 걸 먼저 말할게요.”
누리는 정화 마법을 낮은 강도로 적용했을 때 뿌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자고 했다. 이든은 토양을 세 구역으로 나눠 한쪽만 정화하고, 다른 쪽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선우는 실험 기록의 정확성을 보증하는 증인으로 남았다.
첫 구역의 흙을 정화하자 뿌리가 천천히 방향을 바꿨다. 금속 덮개 쪽으로 가던 뿌리 끝이 화분 중앙을 향했다. 두 번째 구역은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세 번째 구역에서는 토마토 잎이 갑자기 말렸다.
“마력을 흡수한 게 아니라, 뿌리가 경보를 보내는 것 같아요.” 이든이 말했다.
그는 물을 추가하지 않았다. 누리는 정화선을 유지했고, 선우는 덮개 아래의 감지 파동을 다시 측정했다. 게이트 파동은 일정했다. 뿌리가 덮개에 닿기 전까지는 폭주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때 조사팀장이 옥상에 올라왔다. 그는 농장을 즉시 철거하라고 했다. 게이트의 위험성을 확인하는 동안 민간인은 접근할 수 없다는 통지였다. 이든은 작물을 지키려고 고집하지 않았다. 대신 철거 과정과 포자 확산 위험을 설명하고, 안전한 이동 경로를 먼저 확보해 달라고 요구했다.
“규정상 작물은 압류 대상입니다.”
“압류할 수 있어도 파괴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선우가 계약 조항을 펼쳤다. “작물의 안전 검사와 소유권은 별도 절차입니다.”
조사팀장은 잠시 망설였다. 선우는 길드가 정당한 표본 비용을 지불하면 한 화분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대신 농장 전체를 폐쇄하지 않고, 위험 구역만 임시 봉쇄하는 조건을 붙였다.
이든은 그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첫 수확물을 돈으로 바꾸면 아직 안전하지 않은 작물이 시장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는 한 화분을 표본으로 주되, 판매와 외부 반출은 검사 전까지 금지하자고 제안했다. 선우는 가격을 받지 않는 대신 실험 비용과 정화 인력을 길드가 부담하도록 계약을 고쳤다.
누리는 정화 담당자로 문서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의 실수를 숨기지 않고, 수확물의 위험 평가를 함께 맡겠다고 했다. 강우가 아니라 이든은 선우를 향해 자신이 아버지 노트의 일부 페이지를 숨겼다고 고백했다. 그 페이지에 던전의 좌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숨겼습니까?”
“아버지가 그 안에서 사라졌어요. 길드가 좌표를 알면 연구를 빼앗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좌표가 지금 농장 아래에 있어요.”
“알아요. 그래서 이제 숨기지 않으려 합니다.”
그는 노트의 빈 부분을 선우와 누리에게 보여 줬다. 좌표 옆에는 뿌리나침반의 그림과 함께 ‘자연 뿌리를 자르면 게이트가 증식한다’고 적혀 있었다. 누리는 그 문장이 맞는지 확인할 자료가 더 필요하다고 했고, 선우는 길드에 연구 기록 원본을 요청하기로 했다.
첫 수확은 토마토 한 알이었다. 이든은 그것을 자르지 않고 표본 용기에 넣었다. 농장의 작물은 아직 먹을 수 없었고, 수확량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누리는 용기 안의 마력 반응이 줄었다고 확인했다.
“좋아진 건가요?”
누리는 측정표를 닫고 오늘의 표본을 따로 보관했다. 수확은 한 알뿐이었지만, 세 사람 모두 다음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든이 물었다.
“수치가 낮아졌어요. 안전하다고 말하진 않을게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선우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길드가 표본 시험을 지원하고, 이든이 실험 기록을 공개하며, 누구도 검증 전에 작물을 판매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세 사람은 계약서의 사본을 각자 보관했다.
이든은 길드의 압류 통지서를 받은 뒤 농장 장부부터 정리했다. 씨앗과 흙의 구매 기록, 화분을 옮긴 날짜, 비늘을 발견한 위치를 순서대로 붙였다. 그는 자신이 부산물을 무단으로 반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장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작물의 안전이 입증되는 건 아니었다.
선우는 길드 평가 기준표를 가져와 표본 수수료를 계산했다. 부산물을 활용해 작물을 키우면 실험 결과의 소유권이 길드로 넘어간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결과의 공개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는 문구를 수정해 길드는 안전 데이터만 이용하고, 재배 방법과 농장 운영권은 이든에게 남기기로 했다.
“길드가 결과를 독점할 수는 없어요.”
“그럼 연구 지원을 받기 어렵습니다.”
“지원 없이도 하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조건을 명확히 하자는 겁니다.”
누리는 정화 기록을 검토해 오염 위험을 세 단계로 나눴다. 1단계는 표면 잔류, 2단계는 흙 속 확산, 3단계는 뿌리의 마력 공명. 토마토 화분은 2단계에 가까웠지만 아직 3단계로 넘어갔다고 볼 증거는 없었다. 그녀는 단계가 바뀌면 즉시 격리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이든은 농장을 태우자는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다. 대신 태우는 과정에서 포자가 퍼질 위험을 확인하기 전까지 시행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조사팀장은 불확실성을 이유로 당장 폐쇄하려 했지만, 선우가 계약 조항을 보여 주었다. 작물의 소유권 분쟁이 해결될 때까지는 파괴보다 보존이 원칙이었다.
“오늘 밤까지 안전 측정이 통과되지 않으면, 이 화분은 길드 관리 구역으로 옮기겠습니다.”
“옮기는 동안 뿌리와 게이트가 연결될 위험이 있습니다.” 누리가 말했다.
“그러면 이동 방법을 먼저 조사해 주세요.”
조사팀장은 처음으로 즉시 철거를 강요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화분 이동 경로를 표시하고, 비상시 덮을 방수 포대를 준비했다. 누리는 포자가 외부 공기로 나가지 않도록 정화막의 크기를 확인했다. 이든은 뿌리가 화분 바닥을 뚫고 나왔는지 확인하되, 손으로 잡아당기지 않았다.
선우는 길드 본부에 조건부 협약을 제안했다. 실험 비용은 길드가 부담하고, 작물 표본 하나를 제공하되 농장 전체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안이었다. 길드는 회신을 미루었지만, 선우는 전화 통화 시간과 담당자를 기록했다.
그는 과거 이든의 아버지가 제출한 재배 연구가 왜 반려됐는지도 확인하기 시작했다. 평가표에는 ‘실험 반복 부족’, ‘오염 관리 미흡’이라고 적혀 있었다. 둘 다 사실일 수 있었다. 다만 반려 결정 전날, 평가 점수가 수정된 로그가 남아 있었다. 수정자는 당시 평가팀장이었다.
선우는 그 자료를 이든에게 바로 보여 주지 않았다. 먼저 공개 가능한 기록인지 확인해야 했다. 이든은 아버지 연구를 되살리고 싶었지만, 잘못된 폭로로 누군가를 또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선우에게 로그의 원본성부터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버지가 옳았다는 증거가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틀린 부분이 있다면 그것도 남겨 주세요.”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평가사를 계속한 이유는 숫자를 믿어서였지만, 이제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조사해야 했다.
해가 지자 옥상 바닥의 금이 은은하게 빛났다. 뿌리나침반은 더 이상 덮개를 향하지 않았다. 대신 화분 안쪽으로 말려 들어갔다. 그 아래에서 아주 느린 박동이 들렸다.
누리는 격리막 너머로 뿌리 끝을 확인했다. 그 뿌리는 화분 중앙에 모여 있었지만, 끝부분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정화선을 다시 측정하고, 안전한 범위가 유지되는지 표에 기록했다. 선우는 감지기 기록을 길드 서버에 업로드하되 원본 파일도 별도로 보관했다.
이든은 농장에 남은 씨앗을 세었다. 이번 수확으로 얻을 수 있는 양은 많지 않았다. 그는 씨앗을 모두 심지 않고 절반은 건조 보관하기로 했다. 작물이 한 번 살아났다고 해서 다음 계절도 같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다음에는 어떤 작물을 키울 건가요?” 선우가 물었다.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지금 토양부터 안전하게 만들 겁니다.”
아버지의 노트 마지막 장이 혼자 펼쳐졌다. 비어 있던 페이지에 글씨가 번져 나왔다.
‘이든은 문장을 사진으로 남기고 원본 노트는 다시 덮었다. 누리와 선우는 각자 본 글씨의 위치와 나타난 시각을 적었다. 같은 페이지를 보고도 기록 방식은 따로 유지하기로 했다.
농장을 태우지 마. 씨앗이 네 이름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