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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의 퇴로까지 재는 던전 측량사3화

보스의 퇴로까지 재는 던전 측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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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퇴로를 먼저 그리는 사람

이번 측량은 보스가 방을 옮기는 주기를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배유찬은 던전 입구에서 세 개의 기준점을 다시 고정했고, 고은채는 측정 장비를 별도로 맞췄다. 정태경은 구조팀과 함께 안전줄을 검토했다. 정세혁은 부목을 뗐지만 통증이 남아 정찰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좌표를 받아 적기로 했다.

“지도가 완성되면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세혁이 말했다.

“완성되기 전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아요.” 유찬은 그렇게 답하며 지도 여백에 ‘미확인’을 크게 적었다.

던전 안은 첫 조사 때보다 조용했다. 보스 방으로 가는 통로에는 새 균열이 없었지만, 바닥의 먼지 결이 동쪽으로 쓸려 있었다. 유찬은 공기맥 측정기를 들어 풍속을 확인했다. 1초에 0.4미터. 일주일 전 기록보다 약했다. 보스가 벽을 밀어 통로를 막았다면 공기 흐름도 달라질 수 있었다.

태경은 앞서 뛰어가지 않고, 유찬이 좌표를 부를 때마다 분대원들의 위치를 갱신했다. “앞쪽 세 걸음은 안정. 좌측 벽은 접근 금지. 오른쪽 바닥에 얕은 함몰.” 유찬의 말이 끝나면 은채가 지도에 숫자를 적었다. 한 명이 길을 읽고, 다른 한 명이 같은 숫자를 확인했다.

보스 방에 도착하자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벽에 박혀 있던 화살은 그대로였지만, 주변 돌가루가 한 방향으로 밀려 있었다. 유찬은 바닥에 놓인 기준점에 측정기를 맞췄다. 방의 북쪽 벽이 지도보다 20센티미터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남쪽은 변하지 않았다. 지형 변화는 한쪽에서만 진행 중이었다.

“보스가 북쪽 벽을 밀고 있나 봐요.” 태경이 말했다.

“벽의 압력 흔적은 있어요. 하지만 움직이는 동안인지, 이미 멈춘 건지는 모릅니다.”

그들은 보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벽의 표면에 압력 센서를 붙이고, 출구 두 곳의 폭을 측정했다. 유찬은 가장 넓은 퇴로에 녹색 선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진입구로 돌아가는 기본 경로를 굵은 회색으로 표시하고, 남쪽의 낮은 틈은 노란 점선으로 표시했다. 통행 가능성은 있지만 붕괴 위험이 남아 있었다.

그때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보스가 북쪽 벽 뒤편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태경은 즉시 파티를 후퇴시키려 했지만, 보스는 방 안으로 뛰어들지 않고 북쪽을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갑각이 벽에 쓸릴 때마다 먼지가 떨어졌다. 유찬은 압력 센서의 진동을 확인했다. 벽이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보스가 길을 막으려 해요. 돌아가는 통로는 두 분 뒤쪽에 있어요.”

태경은 팀을 움직이며 말했다. “기본 퇴로로 간다.”

하지만 바닥 균열이 돌아가는 길을 가로질렀다. 방패병이 균열 앞에 멈추자, 보스가 몸을 틀어 접근했다. 태경은 방패로 막으려 했고, 세혁의 부상 손이 활을 잡으려 움직였다. 유찬은 그들이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바닥의 경사와 보스의 궤적을 살폈다. 괴물은 태경을 쫓는 게 아니라 벽을 따라 북쪽으로 밀고 있었다. 방의 바닥 중앙은 단단했고, 남쪽 틈 쪽으로 약간 기울었다.

“보스가 왼쪽 벽을 밀 때 중앙으로 유도하세요. 남쪽 바닥은 무게를 버티지 못합니다.”

“그럼 어디로?” 태경이 물었다.

“벽이 아니라 빈 공간 쪽으로 돌려야 해요. 여기 중앙에서 오른쪽으로만 움직이면 퇴로 앞까지 갈 수 있습니다.”

태경은 방패를 들어 보스의 정면을 가리지 않고, 기둥 쪽으로 물러났다. 보스는 그녀를 따라 몸을 틀었고, 갑각이 벽에 닿지 않도록 방향을 바꿨다. 그 움직임으로 북쪽 통로가 잠시 비었다. 유찬은 측정 막대를 던져 바닥의 깊이를 확인했다. 구멍은 얕았고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지금 오른쪽으로!”

은채가 세혁을 붙잡고, 방패병이 뒤를 지켰다. 태경은 마지막으로 움직이며 보스가 다시 벽을 밀기 전에 통로를 빠져나왔다. 유찬은 그들의 위치를 세며 이동했다. 한 명이 사라질 때마다 이름을 불렀다. 모두가 입구 구역에 도착했을 때 그는 기록판에 다섯 개의 체크 표시를 남겼다.

보스는 통로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북쪽 벽을 계속 밀었다. 잠시 뒤 벽 일부가 무너져 남쪽의 빈 공간으로 쏟아졌다. 유찬이 점선으로 남긴 퇴로는 방의 일부가 무너진 뒤 막혔다. 그가 위험을 측정하지 않았다면 그 선을 안전하다고 표시했을 것이다.

입구에서 태경은 유찬에게 “오늘은 퇴로를 먼저 그린 게 맞았어”라고 말했다. 유찬은 칭찬을 바로 받지 않았다. “다음에는 다른 방향으로 바뀔 수도 있어요.”

“그럼 다음에도 다시 재면 돼.”

세혁은 지팡이를 내려놓고 방금의 기록을 확인했다. “저는 보스가 올 때 공격부터 생각했어요. 빠져나갈 길부터 찾는 게 더 어려웠네요.”

“싸움에 들어가면 나올 길을 잊기 쉽습니다.” 유찬이 말했다. “그래서 지도에 퇴로를 남겨야 해요.”

은채는 태블릿에서 또 다른 수정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사고 당일 배포본의 수정 시간이 아니라, 수정 권한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위치가 나왔다. 던전 입구의 중계 단말이었다. 유찬의 계정으로 보였지만 실제로 로그인된 장비는 보스팀의 전술 태블릿이었다.

태경은 운영팀에 즉시 알리려 했다. 유찬은 먼저 로그 사본을 봉인하고, 계정 소유자와 장비 사용자를 분리해 기록하자고 했다. 아직 누가 조작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한 가지였다. 누군가 지도에서 위험을 지웠고, 그 흔적은 던전 안에 남아 있었다.

귀환 뒤 유찬은 보고서를 수정했다. 기존 지도는 회수 대상으로 표시하고, 현장 사본마다 측정 시각과 확인자를 넣었다. 위험 구간은 여러 색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붕괴 가능성·통행 폭·관측 시점을 분리했다. 세혁은 자신의 사고 위치를 다시 표시하고, 그 표식 옆에 당시 자신이 본 것과 못 본 것을 적었다.

“다음 파티가 이걸 읽으면, 괜히 겁부터 먹을지도 몰라요.” 세혁이 말했다.

“겁을 먹고 멈추는 건 실패가 아닙니다.”

“그럼 지도는 겁먹게 하는 물건이네요.”

“위험을 무시하지 않게 하는 물건입니다.”

세혁은 그 말에 작게 웃었다. “그런 지도라면, 제 이름도 증언으로 남겨 주세요.”

유찬은 확인서를 준비했다. 그날 저녁 서버에서 새로운 경보가 도착했다. 같은 관리자 계정이 다른 던전 지도의 위험 표시를 다시 수정하려 했다는 로그였다. 대상 던전은 내일 아침 출발하는 초보 파티의 공략지였다.

유찬은 보고서를 저장하자마자 운영실로 돌아갔다. 경보에는 위험 표시가 지워진 위치와 수정 전후 파일값이 담겨 있었다. 대상 던전은 그가 측량한 적 없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지도 제목에는 그의 측량 규격이 사용되고 있었다. 계정이 복제된 것인지, 누군가 그의 작업 양식을 가져간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은채는 출발 파티의 목록을 화면에 띄웠다. 신입 헌터 여섯 명과 보조자 둘. 보스 등급에 비해 경험이 적었고, 지도에는 북쪽 회랑이 안전 통로로 표시돼 있었다. 수정본에서 삭제된 것은 회랑 끝의 붕괴 가능성 경고였다.

“우리가 지금 멈추라고 하면 그 파티는 계약을 잃을 수 있어요.” 은채가 말했다.

“그대로 들어가면 위험을 모른 채 출발합니다.” 유찬은 길드 당직자에게 연락했다. “지도 파일의 무결성 문제가 있습니다. 진입을 보류해 주세요.”

당직자는 누구의 지시인지 물었다. 유찬은 자신이 담당 측량사가 아니라고 밝히고, 수정된 파일값과 기존 경고를 전송했다. 상대는 전화를 끊지 않고 자료를 열어 봤다. 잠시 뒤 “출발 차량이 이미 대기 중이라 현장 책임자와 협의하겠다”고 답했다.

태경은 장비함에서 안전 표지판과 휴대용 측정기를 꺼냈다. “말만 듣고 진입을 멈추기 힘들면, 현장에 가서 직접 설명하자.”

유찬은 다친 발목을 만졌다. 던전에 다시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입구에서 변형 지도를 대조할 수 있었다. 그는 무리해서 걷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은채와 함께 출발 지점으로 향했다.

파티 책임자 강필수는 지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신입들이 출발을 늦추면 다음 임무를 받지 못한다며 불편한 얼굴을 했다. “여기 경고가 없어도, 앞서 두 번 통과한 길입니다. 오늘도 문제없겠죠.”

유찬은 “두 번 통과한 날짜와 당시 보스 위치가 다릅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수정 전 지도를 펼치자 붕괴 경고가 표시되어 있었다. 필수는 “그건 오래된 표시라 지웠다고 들었다”고 했다.

“누가 지웠는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현장 측정도 없었습니다.”

필수는 젊은 파티원들을 돌아봤다. 한 명은 이미 헬멧을 썼고, 다른 사람은 출발 직전 가족에게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도를 읽지 않았다. 앞선 사람들이 통과했다고 들었을 뿐이었다. 유찬은 그들에게 위험 구간과 측정 날짜를 보여 주고, 현재 지형을 확인하기 전까지 출발을 보류하자고 제안했다.

“그럼 오늘 수당은 못 받는 겁니까?” 신입 한 명이 물었다.

“그건 길드와 계약을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위험을 모른 채 들어가면 선택권이 없어져요.”

필수는 항의하며 안전 구간까지만 정찰하면 된다고 말했다. 태경은 그 정찰에도 측정팀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파티는 결국 지도에 표시된 입구 구간만 확인하기로 하고, 본 공략은 보류했다. 일정이 깨졌지만, 신입들은 위험한 회랑으로 바로 향하지 않았다.

그들이 돌아서는 순간, 전술 태블릿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기존 지도에 없던 지형 변동 신호가 들어왔다. 북쪽 회랑의 기준점이 던전 진입 전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출발을 미뤄 두지 않았다면 파티가 그 안에 있었을 시간이었다.

유찬은 보고서에 ‘위험 경고 삭제 시도 후 기준점 변위 발생’이라고 적었다. 두 사건이 연결됐다는 증거는 없었다. 다만 위험 표시가 사라진 채로 배포되면 누구도 변화를 의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수는 헬멧을 벗고 지도에 새 표시가 찍히는 걸 지켜봤다.

“내일 다시 올 수 있습니까?” 그가 물었다.

“측정팀과 구조팀이 준비되면요. 먼저 경로를 재확인해야 합니다.”

“오늘은 내가 너무 서둘렀네요.”

유찬은 그 말을 용서나 비난으로 받지 않았다. “다음엔 출발 전 지도의 측정 날짜부터 확인해 주세요.”

필수는 신입들에게 지도를 다시 읽게 했다. 그들은 통로 폭과 표기 시각을 하나씩 확인했다. 누구도 익숙한 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저녁 늦게, 은채는 유찬에게 관리자 계정의 소유자가 최근 퇴사한 직원이라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계정 복구 메일은 현직 보스팀 책임자에게 전달돼 있었다. 유찬은 이름을 보고 잠시 멈췄다. 사고 당일 세혁이 말한 검은 장갑의 인물과 같은 팀 소속이었다.

“이제 그 사람을 범인이라고 쓸까요?” 은채가 물었다.

“아니요. 출입기록과 태블릿 로그를 대조한 뒤에요. 증거가 더 생길 때까지 이름은 조사 대상에 둡시다.”

유찬은 두 번째 던전의 지도에 위험선을 복구하고, 수정 이력을 공개 요청으로 올렸다. 그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길드 내부의 지도 관리 방식도 드러날 것이다. 그의 개인 계정이 악용됐다면, 누군가 책임을 묻기 전에 원본을 지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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