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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의 퇴로까지 재는 던전 측량사1화

보스의 퇴로까지 재는 던전 측량사

보스의 퇴로까지 재는 던전 측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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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줄자로 잰 보스의 방

배유찬이 던전에 다시 들어왔을 때, 사고가 난 방의 벽에는 아직 세혁의 화살이 박혀 있었다.

화살촉은 통로의 오른쪽을 향했다. 길드 보고서에는 세혁이 유찬의 지도에 표시된 안전선으로 달려갔다가 바닥 붕괴에 휘말렸다고 적혀 있었다. 유찬은 그 지도를 그린 사람이고, 기준점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사고 현장을 정리하려고 온 게 아니었다. 무엇이 바뀌었는지 측량하러 왔다.

윤태경이 먼저 방에 들어가 바닥을 살폈다. “줄자는 벽에서부터 재요. 균열은 밟지 말고.”

“알겠습니다.”

태경은 탱커의 방패를 들고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유찬의 측정이 우선이었다. 그녀는 정해진 구역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정세혁은 후방에서 손에 부목을 댄 채 따라왔다. 그는 화살을 뽑지 않고 유찬의 지도를 눈으로만 확인했다.

“내가 여기로 갔어요.” 세혁이 바닥의 밝은 표식을 가리켰다. “지도에 ‘퇴로’라고 써 있었으니까.”

유찬은 대답을 바로 하지 않았다. 그는 벽에 박힌 화살과 지금 바닥에 남은 균열 사이 거리를 쟀다. 지도상 기준점은 방의 북서 모서리였는데, 현재 벽에는 작은 금속 핀이 없었다. 핀을 박은 자리에 사각형의 먼지 자국만 남아 있었다.

“기준점이 옮겨졌습니다.”

태경이 고개를 돌렸다. “누가 옮겼다고 생각해?”

“아직 모릅니다. 먼저 현장에 남은 자국을 재겠습니다.”

유찬은 삼각 측량기를 세우고 레이저를 쏘았다. 벽의 사각 먼지 자국에서 바닥 균열까지는 지도상 거리보다 43센티미터 짧았다. 이 던전은 지난 레이드 뒤에 무너진 벽을 보수했지만, 지도에는 보수 전 좌표가 그대로였다. 그러나 기준점이 옮겨진 사실은 그 차이를 설명하지 못했다. 새로운 기준점이 찍힌 곳은 원래 자리보다 방 안쪽으로 43센티미터 밀려 있었다.

“지도에서는 안전 구역이 실제보다 넓게 보이겠네요.” 세혁이 말했다.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시 측정 원본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때 보스 방 너머에서 돌을 끄는 소리가 났다. 태경은 방패를 들고 앞을 막았다. 유찬은 장비를 접지 않고 공기 흐름을 느꼈다. 균열에서 나온 먼지가 통로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틈 너머에 빈 공간이 있다는 신호였다. 그는 기록기에서 온도와 풍속을 확인했다. 바람은 남쪽으로 흐르다 방 중앙에서 갑자기 끊겼다.

“벽이 움직였을 수 있습니다.”

“보스가 방을 다시 짜는 건가?” 태경이 물었다.

“그건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측정할 동안 안전선 밖에 머물러 주세요.”

태경은 유찬이 찍은 좌표를 공유해 파티에 표시했다. 세혁은 부상 손을 가슴에 붙인 채 후방을 살폈다. 그는 더 이상 지도에 적힌 선을 무조건 따라가지 않았다. 유찬은 그가 한 발씩 바닥을 확인하는 걸 보았다. 자신이 만든 지도는 길을 알려 주었지만, 그 선을 맹신하도록 만든 책임도 있었다.

유찬은 보스 방 벽에 남은 기준점 자국을 네 개 찾아냈다. 세 개는 일정한 거리로 배열돼 있었지만, 네 번째는 바닥에 떨어진 돌가루 아래 묻혀 있었다. 돌을 밀어내자 금속 핀 하나가 나왔다. 핀의 옆면에는 새로 긁힌 은색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핀을 뽑았다가 다시 박은 것이었다.

태경은 핀을 비닐 증거봉투에 넣고 번호를 적었다. “네가 박은 거야?”

“아니요. 제가 쓰는 핀은 바닥에 고정하는 방식입니다. 이건 뒤쪽 나사산에 다른 규격의 공구 자국이 있습니다.”

세혁이 입을 열었다. “사고 전날 지도팀 직원이 방을 다시 확인한다고 했어요. 그때 기준점을 바꿨을 수도 있겠네요.”

“그 사람 이름 기억해요?”

“박… 박정호였던 것 같은데, 얼굴은 잘 모르겠어요. 지도판을 들고 왔고, 출입증이 있었어요.”

유찬은 그 진술을 단정하지 않고 기록했다. 측량팀은 당일 현장에 오지 않았다고 보고했지만, 누군가 출입증을 썼을 가능성은 있었다. 그는 안전 구역을 다시 표시하려고 임시 테이프를 펼쳤다. 지도에 있는 선 대신 지금 측정한 균열과 바닥의 울림을 기준으로 했다.

보스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때였다. 굽은 갑각 위로 돌가루가 흘렀고, 앞다리 하나가 방 바닥을 끌었다. 괴물은 파티를 향해 돌진하지 않고, 방의 왼쪽 벽을 몸으로 밀었다. 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유찬은 보스의 움직임을 기록하며 벽의 균열이 퍼지는 방향을 확인했다.

“보스가 퇴로를 여는 게 아니라 막으려는 것 같아요.”

태경은 방패를 올렸다. “그럼 어디로 빠져?”

유찬은 통로 바닥에 기울기계를 댔다. 남쪽 경사면은 지도보다 더 낮아져 있었다. 물이 그쪽으로 흐르고, 낮은 틈으로 바람이 빠져나갔다. 그 방향에 빈 공간이 있었다. 다만 통로는 좁고, 보스의 몸이 지나가면 무너질 수 있었다.

“지금은 북동쪽 통로가 낫습니다. 보스가 왼쪽을 밀고 있으니 오른쪽 벽은 아직 버티고 있어요. 그쪽이 퇴로입니다.”

세혁은 자신이 뛰어들었던 표식을 보고 물었다. “아까 제가 달린 길은요?”

“현재는 균열이 그 선을 가로질렀어요. 예전에는 안전했을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경은 파티에게 북동쪽으로 빠지라고 신호했다. 유찬은 뒤로 물러나며 바닥에 표시한 테이프를 따라 좌표를 읽었다. 보스가 벽을 한 번 더 밀자, 방의 가장자리에서 돌이 무너져 내렸다. 먼지가 일어 시야가 흐려졌다.

세혁은 지팡이를 짚고 따라오다 한 번 휘청했다. 태경이 그를 받쳤다. 유찬은 장비를 놓치지 않으려고 줄을 몸에 감았다. 레이저 측정기가 바닥에 부딪히며 깨졌다. 그는 장비를 살피지 않고 사람부터 통로 밖으로 안내했다.

던전 입구로 나온 뒤에도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유찬은 도면 위의 ‘안전 퇴로’라는 글자를 지웠다. 대신 측정 시간, 기준점 변위, 관측한 균열, 미확인 공간을 적었다. 세혁은 지팡이를 짚은 채 그 옆에 섰다.

입구 대기실에는 레이드 후속 조사를 맡은 길드 운영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은 유찬에게 사고 원인을 “지도 오기”로 적어 달라고 했다. 그래야 보험 처리가 빨라지고, 길드는 다음 공략 일정을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유찬은 그 문구를 보고도 펜을 들지 않았다.

“지금 확인한 건 기준점 변위와 지도 파일의 불일치입니다. 그게 사고 원인인지까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지도를 만든 사람이잖아요. 현장에서 틀렸다고 쓰면 되는 것 아닙니까?”

세혁이 옆에서 지팡이를 바닥에 세웠다. “그렇게 쓰면 제가 본 걸 다 지우는 거예요. 사고 전날 다른 직원이 들어왔다는 말도 있었고요.”

팀장은 세혁에게 “부상 치료에 집중하라”고 했다. 태경은 한 발 앞으로 나섰지만, 유찬이 먼저 손을 들었다. “그 말도 기록하겠습니다. 누가 어떤 진술을 했는지.”

운영팀장은 목소리를 낮췄다. “지도 공개가 늦어지면 파티 재편도 밀립니다. 오늘 여기서 확정해 줘야 다들 움직여요.”

“확정할 수 없는 건 확정하지 않겠습니다.”

유찬은 지도에 임시 경로를 표시하고, 변위와 측정 시각을 포함한 현장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새 경로의 위험 등급을 높게 표시했고, 보스가 벽을 밀어 통로가 다시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운영팀장은 불만을 감추지 못했지만 서명을 받지 않은 채 종이를 가져갔다.

정태경은 대기실 창가에서 세혁의 팔을 살폈다. “다시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겠어?”

“오늘은 안 됩니다.” 세혁이 답했다. “지금 들어가면 또 지도만 보게 될 것 같아요.”

유찬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판단이 맞습니다. 부상 상태와 입구 통제부터 확인해야 해요.”

세혁은 그가 자기 책임을 일부 인정한 뒤에도 자신을 탓하는 눈빛을 놓지 않았다. 유찬은 사과를 반복하지 않았다. 대신 사고 당시 좌표를 정확히 듣고, 세혁이 어느 순간 발을 옮겼는지 표에 표시했다. 사고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건 죄책감의 크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순서였다.

그들이 대기실을 나설 때 길드 데이터 분석가 고은채가 태블릿을 들고 뛰어왔다. 그녀는 서버 백업에서 지도 수정본을 하나 더 찾았다고 했다. 파일 이름은 유찬의 ID로 되어 있었지만, 저장 시각은 그가 던전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수정 기록은 권한이 있는 관리자 계정에서 실행됐다.

“누가 저장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대신 수정 전에 있던 도면을 복구했어요.”

유찬은 화면을 들여다봤다. 복구본에는 북동쪽 통로가 점선으로만 표시되어 있었다. 배포본에서 ‘안전 퇴로’라고 바뀐 구역이었다. 누군가 불확실성을 지우고 확정 경로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원본도 완벽한 건 아니에요.” 유찬이 말했다. “제가 확인할 시간이 부족해 보류를 표시했어야 했습니다.”

은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따로 조사하면 됩니다. 우선 누가 보류 표시를 지웠는지 찾아야 해요.”

세혁은 화면의 점선을 바라보다가, 유찬에게 “다음 지도에는 모르는 곳도 그대로 남겨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 말을 하고 나서 먼저 출구로 걸어 나갔다. 유찬은 복구본을 보안 저장소에 넣고 파일의 확인값을 기록했다. 길드가 요구한 한 줄짜리 결론 대신, 여러 사람의 진술과 현장 흔적이 남았다.

“사고 때 지도에 표시된 선만 믿은 건 제 잘못일 수도 있어요.”

“지도에는 선만 있었고, 변한 조건은 표시되지 않았습니다. 내 책임도 있습니다.”

유찬은 안전 구역을 새로 그리지 않았다. 임시 경로만 점선으로 표시하고, 확정하지 못한 곳에는 ‘측량 필요’라고 적었다. 그때 분석가 고은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사고 당일 서버에 저장된 원본 지도와 지금 배포본의 해시값이 다르다는 내용이었다. 파일이 수정됐지만, 수정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유찬은 보스 방의 사각 먼지 자국을 다시 떠올렸다. 누군가 기준점을 옮겼고, 지도도 나중에 바뀌었다. 그때 방 안쪽에서 잠시 보였던 새로운 통로는 지도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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