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던전 싹 쓸어서 만렙까지10화

던전 싹 쓸어서 만렙까지

던전 싹 쓸어서 만렙까지

AD
스폰서 광고

10화: 쓰레기라고 하셨잖아요

대한이능력관리청 경기지청 7층 던전환경관리과.

출근 시간 직후의 사무실은 전날보다 더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전광판 상단에는 붉은색 대신 짙은 녹색으로 물든 현장 보고서가 떠 있었다.

[B급 던전: 흑연 암혈]
[긴급 특수 정화 최종 결과: 잔여 오염도 9.4%]
[현장 확인관: 경기지청 2급 감찰관 김진목 서명 완료]
[판정: 환경 안전 기준 완벽 도달 / 마력 폭주 위험 완전 소멸]

모니터 앞에 선 실무진은 말을 잃고 마른침만 삼켰다.

"어제저녁까지 72%였잖아."
"방역팀 스무 명이 들어가도 일주일은 걸린다던 지옥이었는데 어떻게 혼자 카트 하나 끌고 들어가서 한 자릿수로 깎아?"
"이거 장비 결함 아니야? 마그나-7 탐침기 센서가 유황 가스에 타버린 거 아니냐고."

수군거림 속에서 정 주임이 결재판을 들고 윤아린의 책상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팀장님, 흑연 암혈 완공 결재 서류입니다. 현장 감찰관 서명도 들어왔고 게이트 외곽 마력 파동도 완벽한 안정화 곡선입니다."

윤아린은 안경을 벗고 관자놀이를 가볍게 눌렀다. 냉철하기로 소문난 그녀의 얼굴에도 짙은 충격의 잔향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단독 투입이었죠?"

"예. 클린 던전 강도현 대표 혼자 들어갔습니다. 보조 인력도 없었고 중장비 지원도 일절 없었습니다."

"혼자 들어가서 반나절 만에 B급 화염 마수 사체 수십 구를 처리하고 오염도를 9.4%로 떨어뜨렸다……."

윤아린의 시선이 화면 속 수치에 머물렀다. 이론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상전이 촉매와 반응 순서를 기가 막히게 맞춘다 해도 육체적인 작업량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그 남자의 몸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때 정 주임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단말기를 내밀었다.

"저, 팀장님.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문제요?"

"흑연 암혈 긴급 정화 성공 보수 8천만 원 정산 건입니다. 원래 원인 유발자이자 원 공략권자인 태성 길드 측으로 대금 청구가 나갔는데 태성 정산본부에서 방금 지급 거부 통보를 보내왔습니다."

윤아린의 눈썹이 서늘하게 좁혀졌다.

"지급 거부요? 관리청 정식 발주 공문과 던전환경관리법에 따른 법적 구상 청구인데 거부 사유가 뭡니까?"

"F급 1인 업체의 과다 청구 및 시공 신빙성 부족이랍니다. 게다가 태성 길드 자원관리부에서 과장급 인사를 직접 보냈습니다. 지금 3회의실에서 팀장님을 면담하겠다고 대기 중입니다."

정 주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복도 쪽에서 육중한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급 정장을 차려입은 사내 둘이 거침없이 던전환경관리과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앞장선 이는 기름진 빗질을 한 40대 초반의 사내였고 그 뒤를 태성 협력 정산팀의 신우성이 따라붙고 있었다.

"윤아린 팀장님, 아침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태성 길드 자원관리부 고동석 과장입니다."

고동석이 거만하게 명함을 책상 위에 던지듯 올려놓았다. 며칠 전 도현에게 망신을 당했던 신우성은 한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동석의 등 뒤에 버텨 서 있었다.

윤아린은 명함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차갑게 입을 열었다.

"공무 집행 구역입니다, 고 과장님. 사전 약속도 없이 들이닥쳐서 큰소리를 내실 자리가 아닙니다."

"약속을 잡을 시간 따위가 어디 있습니까? 관리청이 태성의 동의도 없이 일개 1인 하청 따위에게 8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청구서로 날려 보냈는데 말입니다."

고동석이 입꼬리를 비틀며 서류 가방을 열었다.

"경기 남부 흑연 암혈은 원래 우리 태성 길드가 입찰금을 치르고 낙찰받은 던전입니다. 사흘 전 불가피한 사고로 공략이 잠시 지연되었을 뿐인데 관리청이 멋대로 하청을 집어넣어 공정을 망쳐놓고 그 비용을 태성에 떠넘기다니요?"

"사고로 인한 지연이라고요?"

윤아린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가라앉았다.

"당시 잔여 오염도가 72.8%였습니다. 유황 가스와 마력 폭주 안개가 임계점을 넘어 반경 5킬로미터 내 민간 통제선까지 위협받는 긴급 브레이크 직전 상태였어요. 관리청이 세 번이나 방역팀 투입을 통보했으나 태성은 비용과 안전을 핑계로 전부 기각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내부 재정비 기간이었을 뿐입니다! 어쨌든 우리 태성은 이번 청구 금액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고동석이 턱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돈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현장에서 무단 반출된 태성 길드의 핵심 자산 문제입니다. 그 하청 청소부 녀석 어디 있습니까? 당장 이 자리로 불러내시죠."


관리청 7층 제3회의실.

도현은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셔츠 소매를 내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피부는 은은한 윤기가 돌고 있었다. 어젯밤 흡수한 B급 화염 마수들의 정수가 체내에 완벽히 동화되면서 전신의 마력 순환이 한층 더 맑고 단단해진 상태였다.

품 안쪽 주머니에는 묵직한 가죽 주머니가 들어 있었다.

어젯밤 흑연 암혈의 보스 전초 광장에서 숨이 붙어 있던 '화염 암랑 우두머리'를 처치하고 챙긴 핵심 부산물이었다. 우두머리의 잔여 마력과 스탯은 특성으로 남김없이 흡수했지만 흉골 안쪽에서 채취한 검붉은 결정체는 물질로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화염 암랑 우두머리의 변종 심핵.'

일반 마석과는 궤를 달리하는 최상급 속성 촉매였다.

문을 열고 회의실로 들어서자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긴 탁자 상석에는 윤아린 팀장이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에 고동석과 신우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왔군."

신우성이 쏘아보며 낮게 읊조렸다.

고동석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도현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작업복을 벗고 평범한 점퍼를 걸친 도현의 모습은 어디로 보나 영락없는 하청 청소부에 불과했다.

"강도현 대표?"

고동석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앉으쇼. 시간 없으니 본론부터 말하지."

도현은 말없이 빈 의자를 빼고 차분하게 앉았다. 윤아린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도현을 응시했으나 도현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여 안심시켰다.

고동석이 서류 한 장을 도현 앞으로 밀어냈다.

[합의 정산 확약서]
[정산 대상: 경기 남부 흑연 암혈 긴급 정화비]
[변경 금액: 금 8,000,000원 (일천만 원)]
[특약: 현장 반출 부산물 전량 태성 길드 즉시 귀속]

"8천만 원은 말도 안 되는 바가지요. F급 각성자가 반나절 약품 뿌리고 나온 일당으로 8천이라니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거지. 우리 태성의 자비로 1천만 원까지는 쳐줄 테니 여기 서명하시오."

도현은 서류를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물었다.

"관리청과 체결한 정식 특별 정화 인가서의 보수는 8천만 원이었습니다. 감찰관이 현장 실측을 끝내고 9.4% 완공 확인서까지 날인했고요. 1천만 원으로 깎을 법적 근거가 무엇입니까?"

"법적 근거?"

고동석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F급 하청 주제에 법을 입에 올리네? 너 같은 놈들 업계에서 숨통 끊어놓는 건 일도 아니야. 태성이 경기권 던전 정화 입찰에서 네 놈 업체 블랙리스트 올리면 하루아침에 굶어 죽는 건 알고 까부는 건가?"

신우성도 거들며 비릿하게 웃었다.

"강 대표, 지난번엔 운이 좋았는지 몰라도 이번엔 상대가 달라. 고 과장님은 태성 자원관리부의 실세셔. 곱게 1천만 원 챙겨서 나가는 게 네 목숨줄 보전하는 길이다."

도현은 흔들리지 않고 시선을 고동석에게 고정했다.

"돈 이야기는 그렇다 치고 밑에 붙은 부산물 귀속 조항은 뭡니까?"

고동석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번뜩였다.

"모르는 척 꼬리 치지 마라. 어젯밤 네가 흑연 암혈에서 끌고 나온 카트 안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 다 보고받았다. 화염 암랑 우두머리의 사체에서 나온 '변종 심핵'을 네놈이 챙겼지?"

"……."

"그 심핵은 우리 태성이 막대한 입찰금을 주고 공략권을 산 자산이다. 하청 공격대가 퇴각하면서 위치를 파악해 둔 것이었고 우리 정예 회수팀이 수거하려던 물건이었어. 그걸 일개 청소부 놈이 슬쩍 빼돌려? 그건 횡령이고 특수절도야!"

고동석이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리쳤다.

"순순히 심핵을 내놓고 1천만 원 서명해라. 그렇지 않으면 오늘부로 네 면허 취소는 물론이고 형사 고소로 감방에 처넣을 테니까."

회의실 공기가 바늘처럼 팽팽해졌다.

윤아린이 참지 못하고 서류를 덮으며 끼어들었다.

"고 과장님, 선을 넘으시는군요. 관리청 입회하에 체결된 계약을 대형 길드의 위력으로 협박해 뒤엎으려 하십니까?"

"윤 팀장님은 빠지시죠! 이건 원 공략권자인 태성 길드와 하청 업체 사이의 소유권 분쟁입니다!"

고동석이 핏대를 세우며 도현을 쏘아보았다.

자신들의 압도적인 권력과 협박 앞에 청소부 녀석이 사색이 되어 무릎을 꿇으리라 확신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도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것은 사과나 탄식이 아니었다.

피식.

낮고 메마른 실소였다.


"웃어?"

고동석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도현은 천천히 외투 안주머니에서 두툼한 서류철 하나를 꺼냈다. 전날 윤아린 팀장과 직접 날인한 특별 정화 인가서 원본이었다.

도현의 손가락이 제5조를 짚었다.

"던전환경관리법 제9조 제1항. '던전 내 재난 발생 또는 공략 중단으로 인해 마력 오염도가 위험 수치에 도달하여 관리청이 긴급 정화를 명령한 경우, 현장에 방치된 마수 사체, 골격, 마석 파편 및 오염 부산물 일체의 소유권은 정화 작업을 완수한 청소 사업자에게 원시 귀속된다.'"

도현의 목소리는 법관처럼 또렷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계약서 제5조 특약에도 정확히 같은 문구가 기재되어 있고 관리청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습니다. 심핵이든 사체든 그 현장에 남아 있던 모든 것은 지금 법적으로 온전히 제 소유입니다."

"그건…… 그건 일반적인 폐기물에 한해서지! B급 희귀 심핵이 어떻게 폐기물이야!"

고동석이 악을 썼다.

도현은 태연하게 태블릿 화면을 띄워 고동석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화면에 뜬 것은 사흘 전 태성 길드 대외협력실 명의로 관리청에 접수된 공식 전자 공문이었다.

[문서번호: 태성-2026-0819]
[수신: 대한이능력관리청 던전환경관리과]
[제목: B급 던전 '흑연 암혈' 2차 오염 방역 조치에 대한 회신]
[내용: 현장 잔여 오염도(72.8%)가 극심하고 마력 폭주 안개가 발생하여 투입 비용 대비 회수 가치가 전무함. 내부 방치 사체 및 잔여물은 유황 독성에 심하게 오염된 유해 폐기물로 판단되므로 태성 길드는 사후 정화 및 수거 일체를 전면 포기함.]

공문 하단에는 태성 길드 대표 직인과 전략본부 결재 도장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어?"

신우성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싹 가셨다. 고동석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이게 태성 길드가 관리청에 직접 보낸 공문입니다."

도현이 서늘한 어조로 몰아붙였다.

"당신들이 직접 적었더군요. '투입 비용 대비 회수 가치가 전무한 유해 폐기물이며 사후 정화 및 수거 일체를 전면 포기한다.' 자기들 입으로 쓰레기라고 내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핵심 자산이라며 돌려달라고요?"

"그, 그건…… 행정상의 형식적인 문구였을 뿐……!"

"형식적인 문구요? 국가 기관에 정식 접수된 공문에 '포기'라고 찍어놓고 나중에 몰래 빼돌리려 했다면 그게 바로 국유 던전 자원 은닉 사기이자 직무유기 아닙니까?"

도현의 날카로운 일침에 고동석의 혀가 굳어버렸다.

도현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계약서의 다음 장을 넘겼다.

"그리고 8천만 원 대금 말입니다. 1천만 원으로 깎겠다고 하셨죠?"

"……."

"안 주셔도 됩니다."

"뭐?"

고동석과 신우성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도현을 보았다. 심지어 윤아린조차 놀란 눈으로 도현을 응시했다.

도현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계약서 제8조를 가리켰다.

"계약서 제8조 제3항. '원 공략권자가 긴급 정화 대금 지급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거나 24시간 이상 지연할 경우, 관리청은 던전관리법 제12조에 의거하여 해당 길드가 사전에 예치한 [던전 공략 이행 보증 공탁금]에서 해당 금액을 직권으로 강제 인출하여 청소 사업자에게 즉시 지급한다.'"

도현이 윤아린을 바라보며 단정한 어조로 말했다.

"윤 팀장님. 태성 길드 측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지급 거부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으니 규정대로 공탁금 직권 강제 집행을 요청합니다."

윤아린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단말기 화면을 터치했다.

"요청 확인했습니다. 태성 길드의 이의 신청은 근거 부족으로 기각합니다. 던전관리법 제12조에 의거하여 태성 길드 예치 공탁금에서 금 80,000,000원의 직권 인출 결재를 승인합니다."

윤아린의 손가락이 지문 인식 패드를 누른 순간 경쾌한 전자음이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띠링!

도현의 스마트폰 화면에 은행 입금 알림이 떴다.

[KB국민은행: 입금 완료]
[대한이능력관리청(공탁금 직권 집행): 80,000,000원]
[현재 잔액: 83,420,000원]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8천만 원 전액이 클린 던전 계좌로 꽂혔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고동석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책상 위의 서류들이 그의 거친 숨결에 파르르 떨렸다. 태성의 위세를 등에 업고 하청 청소부를 짓밟으려 했던 계획이 완벽하게 산산조각 났다.

8천만 원을 깎기는커녕 길드의 보증 공탁금에서 단 1원도 에누리 없이 돈이 뜯겨 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재앙은 따로 있었다.

고동석의 시선이 도현의 품을 향했다.

"강 대표…… 아니, 강도현 씨.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보쇼."

고동석의 목소리가 180도 바뀌어 비굴하게 떨렸다.

"그 심핵…… 화염 암랑 우두머리의 심핵만은 제발 우리한테 넘겨주시오. 그거 본부장님이 직접 지시해서 확보하라고 한 핵심 재료란 말이오. 그거 못 가져가면 난 길드에서 모가지요!"

"본부장님이요?"

도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태성 길드 전략본부장 오태경을 뜻하는 것이 분명했다.

"예, 오태경 본부장님이 S급 장비 제작용으로 점찍어 둔 촉매요! 우리가 사겠소! 1억, 아니 2억을 현금으로 당장 얹어줄 테니 우리한테 넘기시오!"

신우성도 사색이 되어 손을 모으며 애원조로 웅얼거렸다.

"강 대표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희 진짜 죽습니다……."

조금 전까지 형사 고발을 들먹이며 횡령범으로 몰아세우던 태성의 간부들이 이제는 돈다발을 쥐여주겠다며 바닥에 엎드릴 기세였다.

회의실 벽면에 기대어 서 있던 정 주임과 관리청 직원들은 혀를 내두르며 그 꼴을 지켜보았다.

도현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품에서 묵직한 가죽 주머니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주머니 틈새로 검붉은 화염의 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왔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보물을 바라보는 고동석의 눈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도현은 그 탐욕스러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주머니를 다시 깊숙한 안주머니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띠었다.

"고 과장님."

"예, 예! 강 대표님!"

"아까 공문에서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도현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치울 가치도 없는 유황 쓰레기라고."

"……!"

"남들이 버린 쓰레기를 치우는 게 제 일입니다. 그러니 이 쓰레기도 제 청소 장비 부품으로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10원 한 장 받고 팔 생각 없으니 돌아가세요."

"너…… 너 진짜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태성을 적으로 돌리고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것 같아?!"

고동석이 이성을 잃고 발악했다.

그 순간 윤아린이 차가운 눈으로 인터폰을 눌렀다.

"경비실이죠? 3회의실에 소란을 피우는 외부인이 있습니다. 즉시 퇴실 조치해 주세요."

문이 벌컥 열리며 무장한 관리청 청원경찰 넷이 들이닥쳤다.

"나가시죠, 태성 길드 분들."

"이거 놔! 내가 누군지 알아?! 강도현, 너 두고 봐! 반드시 피눈물 흘리게 해줄 테니까!"

고동석과 신우성은 청원경찰들의 완력에 질질 끌려 복도 밖으로 쫓겨났다. 요란한 고함 소리가 엘리베이터 너머로 멀어져 갔다.

회의실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윤아린이 안경을 고쳐 쓰며 도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도현을 향한 경외심과 감탄이 짙게 배어 있었다.

"대단하군요, 강 대표님. 태성 길드 전략본부를 상대로 법조항과 공탁금까지 끌어들여 완승을 거둘 줄은 몰랐습니다."

"팀장님께서 공탁금 집행을 신속하게 승인해 주신 덕분입니다."

"공무원은 규정대로 일할 뿐입니다. 하지만 덕분에 속은 아주 후련하네요."

윤아린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당분간 태성의 견제가 심해질 겁니다. 특히 오태경 본부장은 체면을 구기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예상하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버릴 줄만 알고 치울 줄은 모르는 사람들이니까요."

도현은 깍듯하게 목례를 올렸다.

"그럼 다음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강 대표님."


정오 무렵, 서울 외곽 박기문의 정비소.

"크하하하하! 진짜 8천이 통장에 찍혔다고?!"

박기문이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정비소가 떠나갈 듯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기름때 묻은 손으로 연신 화면의 0 개수를 세던 박기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태성 놈들 보증금 계좌를 관리청이 직권으로 털어버렸단 말이지?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다! 그 잘난 놈들이 네 앞에서 쩔쩔맸을 생각을 하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반장님, 웃지만 마시고 이거부터 보시죠."

도현이 탁자 위에 낡은 장비 카탈로그를 펼쳤다.

"이 8천만 원으로 먼저 클린 던전 전용 2.5톤 특수 방역 트럭 한 대 계약할 겁니다. 그리고 반장님이 쓰실 고압 세척 펌프랑 마력 중화 탱크도 전부 최신형으로 교체할 거고요."

"임마, 이걸 왜 나한테 써? 네 피땀으로 번 돈인데 네가 챙겨야지."

"클린 던전은 반장님이 계셔야 돌아갑니다. 현장 뛰려면 이동 수단이랑 베이스캠프가 확실해야죠."

박기문은 뭉클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이더니 이내 헛기침을 하며 돌아섰다.

"빌어먹을 놈, 사람 감동시키는 재주는 타고났다니까…… 알았다. 내가 경기권에서 제일 튼튼하고 마력 차폐 잘되는 놈으로 트럭 골라놓으마."

도현은 웃으며 정비소 안쪽 개인 작업실로 들어갔다.

작업대 위에 올려놓은 가죽 주머니를 풀었다.

스르륵.

달걀만 한 크기의 검붉은 결정체, '화염 암랑 우두머리의 변종 심핵'이 붉은빛을 뿜어냈다.

단순한 보석이 아니었다. B급 우두머리가 평생 응축해 온 순수한 화염 마력의 덩어리였다.

도현이 손을 가까이 대자 체내의 화염 내성(Lv.1)과 부산물 흡수(EX)가 미세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위이잉……

심핵 내부에서 아주 가늘고 불규칙한 진동음이 흘러나왔다.

도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단순한 마력 방출이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던전 벽을 일정한 박자로 두드리는 듯한 고주파 공명음이었다.

도현이 심핵을 귀에 가져다 대자 귓전을 울리는 파동이 뇌리를 스쳤다.

'이 파동은……?'

단순한 화염의 기운이 아니었다.

지맥 깊은 곳, 암반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소리'의 흔적.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그 진동은 언젠가 청소했던 경기 북부의 폐쇄 던전, 그리고 아직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던전 벽 너머의 깊은 공동을 향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도현의 입꼬리가 천천히 호선을 그렸다.

버려진 시체에서 주워 올린 전리품이 이제 또 다른 미지의 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