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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던전 마수 요리 백과4화

맛있는 던전 마수 요리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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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백과의 첫 장

축축한 진흙 위로 새겨진 발자국은 명백히 인간의 것이었다.

도윤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의 흔적을 면밀히 살폈다. 흙바닥에 깊게 파인 둥근 홈들은 쇠징이 박힌 가죽 장화가 남긴 자국이었다.

그 발자국 바로 옆에는 짙은 붉은색 혈흔이 점점이 흩뿌려져 있었다.

"……피가 아직 굳지 않았어."

리아가 활을 움켜쥔 채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녀의 시선은 바닥의 핏자국을 지나 전방에 우뚝 솟은 석조 구조물로 향해 있었다.

푸르스름한 이끼가 융단처럼 뒤덮인 고대 유적의 입구였다. 양옆으로 늘어선 거친 각석 기둥 한가운데에 어른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석판 하나가 비스듬히 박혀 있었다.

표면에는 마모된 고대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 틈새에서 차가운 밤안개 같은 희미한 청백색 빛이 맥박처럼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저게 고대 표식석이야."

리아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설명했다.

"던전 개척 시대에 고대인들이 심어둔 일종의 영역 표식이야. 저 돌이 뿜어내는 마력 파동은 마수들이 본능적으로 꺼리는 기운이라서 결계 안쪽으로는 몬스터들이 발을 들이지 못해."

"마수만 막는 겁니까?"

도윤의 날카로운 질문에 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성을 가진 인간이나 도구는 막지 못해. 결계가 마수를 쫓아낼 뿐 물리적인 벽은 아니니까."

도윤은 핏방울 하나를 손가락 끝으로 살짝 훔쳐 냄새를 맡았다.

마수의 썩은 악취나 독침토끼의 쏘는 듯한 독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차갑고 무거운 쇠비린내. 공기 중에 노출된 지 한 시간을 넘기지 않은 인간의 혈액이었다.

도윤은 손끝을 가볍게 털어내며 일어섰다.

"부상자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발자국의 보폭이 좁고 오른발 쪽으로 깊게 쏠려 있는 걸 보면 오른쪽 다리나 옆구리에 중상을 입은 상태군요."

"탐사자일까? 혹시 나를 버리고 도망쳤던 그 녀석들이……."

리아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불안과 원망이 뒤섞인 기색이었다.

"어느 쪽이든 이 자리에 서서 추측만 할 수는 없습니다. 숲속의 밤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있고 우리에게도 안전한 거점이 필요해요."

도윤은 셰프 나이프를 역수로 고쳐 쥐었다.

"내가 앞장서겠습니다. 리아 씨는 서너 걸음 뒤에서 활을 겨눈 채 사각을 살펴주세요."

"알았어."

두 사람은 숨을 죽인 채 청백색 빛이 일렁이는 표식석의 경계선으로 다가갔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숲과 유적의 경계.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을 뚫고 결계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귀를 멍멍하게 울리던 감각이 단숨에 뒤바뀌었다.

등 뒤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던 독침토끼들의 부스럭거림과 숲의 축축한 벌레 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마치 거대한 유리 덮개를 머리 위에 씌운 것처럼 기괴할 정도로 완벽한 정적이 피난처 내부를 감쌌다.

유적의 내부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천연 석굴을 고대인들이 깎아 다듬은 인공 공동(空洞)이었다.

천장은 높았고 벽면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메워져 있었다. 바닥에는 오래전에 깨진 목제 보급 상자의 파편들과 삭아버린 밧줄 부스러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돌을 둥글게 쌓아 올린 커다란 화덕 자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가…… 옛 탐사 피난처야."

리아가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주위를 둘러보며 속삭였다.

"1권역을 개척하던 선발대가 중간 보급 기지로 쓰다가 결계 출력이 떨어지면서 버려진 곳이라고 들었어. 그래도 비바람을 피하고 마수의 습격을 막기에는 충분해."

도윤은 대답 대신 바닥을 가리켰다.

핏자국은 입구에서 멈추지 않았다. 붉은 점들은 중앙의 화덕을 지나 석굴 안쪽 가장 어두운 암벽 틈새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무너진 석판들이 바리케이드처럼 비스듬히 겹쳐 있는 어두운 구석이었다. 그 틈바구니 너머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어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었다.

"저 안쪽으로 기어 들어갔군요."

도윤이 낮게 읊조렸다.

리아가 활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리며 어두운 틈새를 겨누었다.

"저기…… 안에 누구 있어? 대답해!"

리아의 외침이 둥근 천장을 맴돌며 메아리쳤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바위벽의 울림뿐이었다. 거친 숨소리도 무기를 부딪치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직 무겁고 가라앉은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지금 무작정 좁은 구석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건 위험합니다."

도윤이 손을 들어 리아를 제지했다.

"상대가 패닉에 빠진 패잔병이라면 눈앞의 그림자만 보고도 무기를 휘두를 수 있어요. 먼저 주변을 밝히고 우리의 영역을 확보해야 합니다."

"하지만 부상자라면 위험할 수도 있잖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라면 당장 튀어나와 우리를 덮칠 기력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체온과 시야가 먼저예요."

도윤은 중앙 화덕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덕 안에는 오래전에 타다 만 검은 숯과 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손을 넣어 만져보니 습기는 찼지만 흙탕물이 들이치지는 않아 쓸 만했다.

도윤은 바닥에 흩어져 있던 마른 궤짝 널빤지들을 나이프로 쪼개어 장작을 만들었다. 그리고 회랑에서 뜯어온 소금풀의 바깥쪽 마른 껍질과 질긴 섬유질을 부싯깃 삼아 바닥에 깔았다.

챙. 치익.

도윤의 주머니에서 나온 조리용 부싯돌과 핀셋의 쇠붙이가 부딪치며 날카로운 불꽃을 튀겼다.

두어 번의 시도 끝에 소금풀 섬유질에 주황색 불씨가 옮겨붙었다. 도윤이 입술을 모아 조심스럽게 숨을 불어넣자 가느다란 연기와 함께 불길이 널빤지 조각으로 번져 나갔다.

화르륵.

마침내 화덕 안에서 따스하고 붉은 화염이 솟구쳐 올랐다.

주황색 불빛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자 차갑고 축축하던 석굴의 공기가 순식간에 훈훈하게 덥혀졌다. 그림자가 벽면을 따라 일렁이며 사위의 어둠을 밀어냈다.

"하아…… 살 것 같네."

리아가 화덕 옆에 주저앉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불꽃이 피어오르자 비로소 긴장이 풀린 듯 그녀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숲속에서 독침토끼 떼와 사투를 벌이며 극도로 곤두서 있던 신경이 따뜻한 불기운에 녹아내리는 듯했다.

"긴장을 완전히 풀지는 마세요. 여전히 저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으니까요."

도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품속에서 챙겨온 식재료 꾸러미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우두머리 독침토끼의 두툼한 뒷다리살과 한 아름의 소금풀 줄기들이었다.

"도윤 씨는…… 진짜 대단해."

리아가 불꽃 너머로 도윤을 올려다보며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끔찍한 괴물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이렇게 피난처에 불까지 피우고. 원래 지상에 있을 때도 이런 위험한 탐사를 하던 사람이야?"

"아닙니다."

도윤은 셰프 나이프의 칼날을 깨끗한 천으로 닦아내며 덤덤하게 답했다.

"나는 그저 서울…… 아니 어느 도시의 작은 식당에서 불을 다루던 요리사였습니다."

"요리사? 그 맛있는 걸 만들어서 귀족들이나 부자들에게 대접하는 그 요리사?"

"대략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주방이란 곳도 여기 못지않게 매일이 전쟁이었지요. 날카로운 칼과 펄펄 끓는 기름 그리고 사람의 입에 들어갈 음식을 만드는 책임감이 부딪치는 곳이니까요."

도윤은 화덕 주변에 놓여 있던 편평한 납작돌 두 개를 골라 불꽃 바로 옆에 얹었다.

지하의 습기를 머금은 돌판이 달아오르며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김을 뿜어냈다. 일종의 간이 석판 그릴이었다.

도윤은 나이프를 놀려 독침토끼의 다리살을 결대로 얇고 넓적하게 포를 떴다. 마수의 근육은 사람의 손길이 닿자마자 붉고 탄력 있는 붉은 살점을 드러냈다.

그는 채취해 온 소금풀의 다육질 잎을 손바닥으로 으깨었다.

바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굵은 백색 결정들이 부서지며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도윤은 그 소금 알갱이들을 포를 뜬 고기 표면에 고르게 문질렀다.

"마수의 살코기는 던전의 마력을 머금고 있어서 상온에 두면 지상의 고기보다 두 배는 빠르게 부패합니다."

도윤의 목소리에는 주방을 지휘하던 베테랑 총괄 셰프의 엄격함이 배어 있었다.

"단순히 구워 먹는 것만으로는 내일 아침까지 이 고기를 보존할 수 없어요. 염분을 깊게 침투시키고 겉면의 수분을 날려 막을 형성해야 합니다."

도윤은 뜨겁게 달아오른 평평한 돌판 위에 손질한 고기를 한 점씩 올렸다.

치이익―!

기분 좋은 파열음과 함께 맑고 구수한 육향이 피난처 내부로 퍼져 나갔다.

돌판의 은근한 잔열이 고기 속 수분을 증발시키고 타오르는 나뭇가지에서 피어오른 맑은 연기가 살점에 훈연 향을 입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게 말라붙는 휴대용 보존육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고기가 익어가는 동안 도윤은 조리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의 손끝에 닿은 것은 손바닥만 한 작은 가죽 수첩과 은색 볼펜이었다. 지구에서 마지막 서비스를 준비하던 그 순간 앞치마 주머니에 꽂아두었던 유일한 소지품이었다.

도윤은 수첩을 펼쳤다.

백지 상태의 첫 장이 주황색 불빛을 받아 부드럽게 반사되었다.

사각. 사각.

도윤은 망설임 없이 펜촉을 종이 위에 대고 글씨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르카디아 심연 1권역: 마수 식재료 및 환경 생태 백과』

리아가 신기한 눈으로 도윤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게 뭐야? 마법 스크롤?"

"아닙니다. 그냥 장부예요. 앞으로 우리가 먹고 살아남기 위해 기록해야 할 것들입니다."

도윤의 펜 끝이 유려하게 움직이며 정갈한 한글로 문장을 채워나갔다.

[제1조: 독침토끼 (1권역 이끼 숲 자생)]

  • 위험도: 중(집단 서식 및 원거리 침 사격).
  • 위험 부위: 등줄기 흑요석 가시침(신경 마비성 맹독 분비), 간 및 흉강 독낭(치명적 독소 농축, 절대 섭취 불가, 해체 시 파손 금지).
  • 가용 부위: 뒷다리살 및 안심.
  • 육질 및 풍미: 결이 촘촘하고 지방질이 적어 담백하나 오버쿡 시 질겨짐. 저온에서 서서히 익히거나 얇게 저며 염장 훈연하는 것이 최적.
  • 특이 효능: 독낭을 완벽히 제거한 살코기 섭취 시 체내 신경계 마비 완화 및 체온 회복(단기적 공명 반응).

[제2조: 소금풀 (암반 자생 광물성 다육식물)]

  • 특성: 고농도 나트륨 결정 함유.
  • 조리 적성: 잎 표면의 결정을 으깨어 천연 암염으로 활용 가능. 특유의 미네랄 향이 잡내를 억제함.
  • 전술 적성: 줄기 내부 세포낭에 고압의 염수가 갇혀 있어 끓는 기름 및 고열 접촉 시 급격한 열팽창(수증기 폭발)을 유발함. 파열음, 섬광, 강한 알칼리 연기로 마수의 시각과 후각을 일시적으로 무력화 가능.

리아는 도윤이 적어 내려가는 낯선 글씨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비록 문자의 모양은 처음 보는 형태였지만 그 안에 담긴 구조와 그림, 화살표로 이어진 부위별 설명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

리아가 경외감이 깃든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길드의 상급 탐사자들이나 연금술 학회 학자들도 마수의 부위를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분류하지 않아. 대개는 마석의 크기나 가죽의 질긴 정도만 적어두지. 위험한 독낭의 위치와 먹을 수 있는 부위를 따로 정리하다니……."

"요리사의 본분은 재료를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도윤은 수첩을 덮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독이 되는 것과 약이 되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 그것이 사람을 살리는 요리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모르면 독이 되지만 알면 생존을 지탱하는 가장 훌륭한 자원이 되지요."

도윤의 갈색 눈동자 속에는 흔들리지 않는 장인의 신념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노릇하게 구워진 육포 한 점을 집어 리아에게 건넸다.

"드셔보세요. 아까 만든 꼬치구이와는 또 다른 맛일 겁니다."

리아는 조심스럽게 고기 조각을 받아 입에 넣었다.

바삭.

겉면은 소금 결정이 은은하게 씹히며 고소한 불향을 풍겼고 씹을수록 농축된 고기 본연의 감칠맛이 입안 가득 번져나갔다. 질기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씹는 맛이 살아 있어 지친 턱과 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맛있어."

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소금의 떫은맛이 하나도 안 느껴져. 고기 냄새도 향긋하고…… 진짜 육포 같아."

"소금풀의 쓴맛은 껍질 쪽에 몰려 있습니다. 안쪽 결정만 긁어내서 쓰면 훌륭한 정제염이 되지요."

도윤은 남은 육포들을 깨끗한 넓은 잎사귀로 정성스럽게 감싸 배낭 대신 묶어두었다. 며칠 동안의 이동에 든든한 비상식량이 되어줄 터였다.

하지만 그 훈훈한 안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달각.

화덕 너머 깊은 암벽 틈새의 어둠 속에서 쇳소리가 울렸다.

차갑고 무거운 쇳덩이가 돌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리아가 씹던 고기를 멈추고 굳어버렸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등 뒤의 활을 쥐고 화덕에서 일어나 어둠을 겨누었다.

"……움직였어."

도윤 역시 즉시 셰프 나이프를 쥔 채 화덕의 장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끝부분이 붉게 타오르는 굵은 나뭇가지였다.

"내가 먼저 다가갑니다. 리아 씨는 화덕의 불빛 안쪽에 머무르며 시위를 유지하세요."

"조심해, 도윤 씨."

도윤은 횃불을 높이 치켜들고 천천히 발을 떼었다.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불빛이 바닥에 흩뿌려진 검붉은 혈흔을 선명하게 비추었다. 핏자국은 무너진 석판들 사이로 좁게 이어진 틈새를 향해 곧장 뻗어 있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석굴 안쪽의 공기는 화덕 주변과 달리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마치 던전의 바닥에서 스며나오는 냉기가 한곳에 고여 있는 듯했다.

도윤은 무너진 석판의 모서리를 돌아 틈새 안쪽으로 횃불을 불쑥 들이밀었다.

붉은 불꽃이 암흑의 장막을 걷어내며 안쪽 제단 형태의 좁은 공간을 환하게 밝혔다.

"……!"

도윤의 숨이 턱 끝에서 멎었다.

그곳에는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의 모습을 한 시신이었다.

온몸을 감싼 묵직한 강철 판금 갑옷은 처참하게 찌그러져 있었고 가슴 한가운데에는 맹수의 거대한 발톱에 찢겨 나간 듯 세 줄기의 깊은 파열흔이 선명하게 패여 있었다.

상처 주위로 흘러나온 피는 이미 검게 굳어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투구 틈새로 드러난 남자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고 굳게 닫힌 눈꺼풀 위로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인기척이라 생각했던 소리는 쓰러져 있던 시신의 팔이 한계에 달해 바닥으로 힘없이 툭 떨어진 것이었다.

"도윤 씨……? 무슨 일이야?"

뒤편에서 조심스럽게 다가온 리아가 도윤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이내 경악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길어야 두어 시간 전이군요."

도윤은 횃불을 낮추며 침착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시신의 찢겨진 갑옷이 아니라 굳어버린 시신의 오른손에 멈추어 있었다.

남자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쥐고 있었다.

그것은 손바닥만 한 직사각형 모양의 부서진 청회색 석판이었다.

표면에는 입구의 표식석과 닮은 기하학적인 고대 문자들과 함께 붉은 핏물로 얼룩진 세 개의 문양이 희미한 잔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죽은 탐사자의 손아귀에 굳게 들려 있는 의문의 석판.

피난처의 결계를 넘어 도망쳐 온 그가 목숨과 맞바꾸면서까지 품에 안고 있던 마지막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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